65> 두번은 우연, 세번은 운명

2015. 8. 17. 10:00Czech 2015

 


 

오늘은 출국하는 날이라고 긴장했는지 일찍 눈이 떠졌다

 

창문엔 빗방울이 맺혀 있고 

 

천근만근 비에 젖은 프라하가 늦잠을 자고 있다.

 

천하의 프라하도 오늘은 동유럽의 그저 그런 옛도시처럼 칙칙하기만 했다,

 

 

면도기로 턱을 반질반질하게 밀고 샤워까지 끝낸후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우중충한 날씨에 신경통이 도진 노인 투숙객들은 아직 안 내려와 아침식당이 적막했다.

 

먹는둥 마는둥 대충 배를 채운 후 엘리베이터를 열어보니 좁은 공간에 보조침대가 꽉 끼어 있다. 게단으로 걸어 올라왔다.

버릴거 싹 바리고 최종 짐을 꾸린다. 그래도 배가 더부룩해 침대에서 10시까지 뒹굴거렸다.

Check-out 하며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광장으로 나왔다.

비는 다행히 그쳤고 하늘이 뽀얗게 밝아지고 있었다,

현주랑 사이좋게 얀 후스 동상옆을 지날때 한 여자가 말을 걸어 왔다. 약간 촌스런 복장의 아줌마가 자신을 삼육대 교수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을 인솔해 유럽에 처음 왔다, 여행중 인사 나눈 한국인이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경계했던 것과 달리 다른 목적은 아니고 한국말이 들리니 반갑고, 아침 분위기가 그러니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나 보다. 우리를 붙들고 못 푼 수다가 터졌다. 학생들을 여행지에 풀어주면 여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는데 남학생들은 ' 모하냐 '고 달가워 하지 않더라...다음 일정은 어디로 간다...등등

서로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머리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교수님과 헤어지고 성당 옆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어제 웅겔트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들을 우연히 조우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Cat's gallery 를 찾아왔다

현주는 진짜 갤러리인줄 알았는데 조그만 기념품점이라 좀 실망한 눈치다.

 

그러나 귀여운 고양이들 앞에서 바로 무장해제

 

곱게 나이든 주인여자에게

" 세번째 어렵게 찾아왔다 " 고 너스레를 떨며 "사진 찍어도 돼요 ? "

" Sure ! "

 

 

 

 

지난 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 넵킨'을 그리워하며, 아직도 간간히 넵킨 얘기를 하는 애들도 위로할 겸 식구수대로 고양이 케릭터를 마구마구 사들였더니 총 900 코루나 (45,000 원). 아침 댓바람부터 매상 올려주는 우리가 고마웠던지 주인여자가 내 선물이라며 엽서 한장을 주었다. 별건 아니지만 ' 안사람 것도 ' 달라고 하니 웃으며 한장을 더 주었다.

 

cat's gallery 옆가게는 Art gallery,

 

아직도 내리는 비를 피해 담옆으로 바짝 붙어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음반가게가 보이자 클래식 좋아하는 현주가 얼른 뛰어 들어갔다

 

한 남자가 공연 티켓을 반품하러 와서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형, 피아졸라 CD 하나 사주라~ "

 

안 사주고 나왔는데 뭔 비가 장난 아니게 계속 내렸다

 

 

그 와중에 기념사진 찍느라 고생하는 관광객들

우린 여행중에 비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광장 남쪽 정원옆에는 가판 기념품점이 쪼르르 붙어 잇다. 

남은 코루나를 다 써 버릴겸 현주가 액자와 은재 기념품을 골랐다

 

우리가 적어준 ' EUNJAE ♡ ' 를 아줌마가 새기다 실수했는지 액자를 숨기고, 새거에 다시 새겨 주었다. 280 코루나 (14,000 원) 

 

" 애들 선물 샀더니 기운이 나네 "

호텔로 들어오기 전, 집고 다녔던 스키폴을 호기롭게 쓰레기통에 꽂아 버렸다, 현주가 상황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체스키에서 예나가 준 선물이고 덕분에 이후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는데, 아쉽지만 인연은 여기까지다. 한국으로 가져올 부피가 아니였다.

호텔로 돌아와 카페 안에 앉아서 예약한 공항택시를 기다린다.

 

웨이트레스가 또 주문을 받으러 왔다.

이 식당과 카페 음식은 돈 내고 먹을 가치가 없어 그냥 패스했다


  

현주가 뜸금없이 ' Cat's gallery 에서는 왜 물건값을 안 깎았냐 ' 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그랬다, 이번 여행에선 내가 물건값을 깎은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돈 개념이 없었다 고 해두자

' 가판 기념품점에서는 깎지 말아 '

아까 이름 잘못 새기던 아줌마가 측은해 보였나 ? 현주가 엄한 소리를 햇다,

 

 

집에 있는 애들에게 ' 우리 조금 있으면 공항 간다' 고 카톡을 보냈다,

여행이 끝나가니 이제야 한국이 생각난다.

 

예약한 12시가 되자 광장에서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뛰어 오는데...낯이 익다,

아 ! 엇그제 우리를 외곽 호텔까지 데려다 준, 현주가 맘에 들어 하던 잘 생긴 청년이었다. 다시 만나 놀랍고 기쁘다 고 했더니 e-mail 에서 동양이름을 보고 우리라고 생각해 자기가 왔다고 한다. 두번 만나면 우연이고, 세번이나 만나면 운명이라더니 짧은 기간 운명이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짐을 들고 성큼성큼 앞서 가는 그를 따라 갔다.

이젠 친숙해진 아우디가 광장 옆에 세워져 있다

 

편한 친구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다, 

 

 

운명이기에 청년의 이름정도는 알고 싶었다

"  토마쉬, 영어로는 토마스 "

"  토마쉬, 프라하는 어느 계절이 가장 아름다워 ? "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더니 " 다 아름답다 " 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  토마쉬, 이 블타바강이 겨울에는 얼어 ? "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더니 ' 얼때도 있고 안 얼때도 있다 ' 는 실속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첨 가보는 곳으로 토마쉬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

큰 저택과 정원등... 부촌이라 했더니 이쪽은 대사관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라고 알려 줬다.

통유리로 된 현대식 빌딩,

월요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쳐졌다

 

 

 

  

 

 

 

변두리의 정겨운 동네를 지나 한참을 달리자

 

 

드디어 공항표지판이 보였다,

 

 

 

차분히 젖은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가슴이 덜컹하며 이별이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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