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6. 11:00ㆍCzech 2015
창문 밖으로는 광장의 열기가 늦은 밤까지 식지 않았고 ... 눈 떠보니 조용한 아침이다
천정 나무판에 칠해진 단청이 여기가 계룡산인지 프라하인지 순간 헷갈렸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어제 저녁요리에 놀라 평가절하한 기대를 감안하면 아침 메뉴들은 가짓수도, 맛도 괜찮았다.
대신에 오늘은 투숙객들이 맘에 안든다. 안 보는척 서로를 견재하는 듯한 분위기에 식당안이 냉랭했다.
' Hi !' 는 안 되더라도 굳은 표정 좀 풀었으면... 영국 정도도 안 바랜다. 동유럽은 사교성이 아랍인들만도 못한 거 같다.
방으로 올라오며 현주는 계단으로, 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좁은 승강기 이름이 올로모우츠 (Olomouc)다. 그 마을의 온정이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현주는 벌써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짐 싸서 이사 할 일이 없다는 홀가분함을 만끽하며 나갈 채비를 가볍게 했다.
현주가 챙겨온 옷이 아까워 얇은 치마를 입었다가 비친다고 다시 갈아 입고 나왔다
오늘 아침 프런트엔 중년 매니저 대신 그의 딸로 보이는 아가씨가 앉아 있다. 내일 아침 공항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탁자위에 팜플렛들이 꽂혀 있길래 그 중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공연을 물어 보았더니 1인당 750 코루나 (37,500원) 이라고 한다.
아가씨가 우리 눈치를 살피며 이것 저것 추천해 주는데 티켓값이 장난 아니게 비쌌다.
그방 밖으로 나왔다
프라하 상공엔 먹구름이 두텁게 끼었는데, 광장을 지나다니는 관광객들 표정은 모두 행복하다
아직 잠이 덜 깬 광장 한쪽에서 귀에 익은 리듬이 들려왔다
어제의 5인조 밴드가 광장 남쪽 똑같은 자리에서 오늘도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 스타로메스츠키 딕시랜드 (Staromestsky Dixieland) 밴드는 10년전에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 자리가 전용 무대였다. 물론 맴버들은 바뀔지라도 앞으로 10년 100년 계속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 믿는다.
그런 기원을 담아 CD를 하나 샀다.
300 코루나 (15,000 원) 라고 적혀 있는데 10유로,15유로, 20유로...추운 겨울엔 좀 비싸고 경기 좋으면 좀 싸지고 가격이 대중없다.
잔돈을 거슬러 주며 내 국적을 물어보았다.
돈을 보더니 연주가 끊어지고, 무안하게시리 내 돈이 여러 손을 거쳐 간다.
어제 오늘 보면 CD 주구매고객은 동양인이더라능... 더 신나는 연주가 시작되었다
광장을 빠져 나와 천문시계탑을 끼고 구시가지로 깊숙히 들어갔다,
좁은 골목길이 나눠지고 합쳐지고 ... 길은 다 직각인줄만 알았던 나에게 지멋대로 꺾이고 돌고 하는 이 자유분방한 길은 기대와 흥분의 연속이었다. 마치 신비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외진 곳에선 지린내도 났고, 길을 잃을 걱정도 없는건 아니었지만 ... 아기자기한 볼거리에 넋을 빼고 다녔다
선한 인상을 가진 아줌마가 미싱을 앞에 놓고 가게 안에 포옥 들어 앉아 있었다.
모 하는 곳인가 ? 보다가 아줌마랑 눈이 마주쳤다. 교련복 명찰 새겨주던 그런 곳이었다.
내 이름을 물어 보더니 Lee 글자를 직접 수놓아 '선물' 이라며 주셨다.
선물을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또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페도라가 잘 어울리던데 그냥 나오는 현주
하늘 좁은 골목에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 찼다.
트레들로(trdelnik) 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손님들이 마법에 걸린 듯 빵가게로 빨려 들어갔다
빵킬러 현주도 어느새 그 안에서 지갑을 열고 있었다
65 코루나 (3,250원) 어치 빵을 사 들고 또 골목 구경
" 나 저 사탕 사달라고 ! 언제 사줄꺼야 ? "
Black light theatre 라는 공연 장르가 있다
검은 무대를 배경으로 배우들이 몸과 소품에 형광물질을 바르고 이크로바틱한 동작을 하면 그 영상이 참으로 판타스틱하다. 체코에만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유독 프라하에서 많이 공연되고 유명하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Black light 공연을 하는 극장이 눈에 띄었다
현주에게 가격과 시간을 알아보라고 들여보냈다.
프라하에선 클래식 연주회, 블랙 라이트 씨어터, 마리오네트, 재즈 등 다양한 공연들이 참 많이 열려서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물가에 비해 관람료가 비싸서 문제지만...
잠시후 현주가 나와서 일인당 720 코루나 (36,000 원)라고 시무룩하게 알려준다,
<프라하 시내의 유명 Black Light Theatre>
① The black theater of jiri srnec (이르지 스르넥) reduta 재즈클럽과 같은 건물 7:30~9
② 3D black light theatre palace 'color dreams of Dr frankenstein' 빛 조명이 3D. vaclavske namesti 43
③ All colours theatre 'faust' 파우스트 전용극장 rytirska 31
④ The metro black light theater 'cerne divadlo metro' 삶은 삶이다 전용극장 narodni 25
⑤ Image theatre 블랙라이트쇼. 팬터마임, 모던댄스 3종류가 공연된다. parizska 4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낭만의 골목순례가 끝나간다. 어둑어둑했던 골목들이 점점 환해졌다.
갑자기 나타난 차도가 낯설고
신호등 숫자도 느리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카를교 입구에 도착했다. 조그만 마당이 전세계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건물과 다리를 부수지 않고 수백년간 잘 보존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카를교 양쪽엔 큰 탑이 세워져 있다, 처음엔 다리 통행료를 받기 위해 만든 곳인데 지금은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
구시가지쪽 탑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유명해서 망설임 없이 돌굴속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몇십 계단 올라가자 매표소가 나타났다, 중세때 통행료를 여기서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반가웠다.
우리 앞에 사람들은 매표소에서 신용카드를 안 받아, 그냥 돌아 내려갔다,
장애인 한명, 일반 한명이라고 하니 못 알아듣고 ' 장애인 두명이냐 ' 고 묻는다, 나 25, 현주 90 해서 총 115 코루나 (5,750 원)
좁은 돌계단을 돌고 돌아 계속 올라간다
다행히 중간중간에 창문이 뚫려 있어서 어지럽거나 폐쇄공포증에 쫒기진 않았다
탑 2/3 지점에는 큰 방도 있었다,
내려올때 보기로 하고 계속 올라갔다
드디어 전망대에 다 올라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고 있는 현주
카를교가 온통 다 내려다 보인다.
프라하 하면 꼭 나오는 사진. 이 풍경에 반해 한국에서 이 먼 곳까지, 죽을 X을 싸고 이 위까지 올라왔다,
전망대 위에는 함석판을 두르고 납작한 돌을 기왓장 삼아 예술적으로 쌓아 올렸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블타바강은 강폭이 꽤 넓고 수량도 상당히 많았다.
한강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의 고도를 흐르는 왠만한 강보다 훨씬 컸다.
카를교는 체코어로는 karluv most, 영어로는 Charles bridge (찰스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의 통치아래 1357~1402년에 완성되었으며 1841년까지 올드타운과 프라하성이 있는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중 하나, 중세 유럽 건축의 걸작이라는 많은 칭송을 듣고 있다.
기진맥진한 현주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내가 들고 있는 생수병을 보고 질겁을 했다,
구석에 있는 병이 우리 것인줄 알고 마신 것, 누군가 놓고 간거 같은데 깨끗한 물이라서 천만다행이다.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가영이와 현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지만 520 m 나 되는 긴 다리위에는 비를 피할 차양하나 없었다
화가의 스케치북 위로, 공연하는 사람의 악기위로, 석상의 어깨와 관광객들의 머리위로 소나기가 무자비하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다행히 비가 금방 그쳐서... 탑을 빙빙 돌아 슬슬 내려왔다
교탑 중간 돌벽 사이에 이런 큰 방도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 주며 내려오다보니 벌써 지상이다
뿌듯한 성취감에 혼자 신남.
★
'Czech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64> 무일푼의 재즈밴드 (0) | 2015.08.16 |
---|---|
63> 왕비의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는... (0) | 2015.08.16 |
61> 불꽃놀이 아래 인력거 (0) | 2015.08.15 |
60> 검은 발레리노 (0) | 2015.08.15 |
59> 도망치는 신데렐라 (0) | 2015.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