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5. 14:00ㆍ국내여행
크리스마스
3일 연휴의 마지막날이라 특별한 스케쥴을 만들지 않았다
오전내내 집에서 뒹굴다보니 좀이 쑤셔 커피한잔 마시자 나선게 고속도로를 바꿔타가며 안성 남쪽까지 흘러왔다
우리가 이 호수를 띄엄띄엄 지나 다닌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북카페 '세렌디피티' 는 그때에도 여기 있었다
Serendipity ... [우연한 만남, 우연한 행운]
TOEFL에도 안 나올 이 단어를 기억하는건 오로지 2002년 존 쿠삭 주연의 영화 제목이라는것 때문
그 영화속에 나오는 카페 이름이기도 하고, 실지로 뉴욕에 Serendipity 3 카페가 있다한다.
대박나서 아무때가도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능
여긴 다행히 Waiting 은 없는거 같다.
입구에 <일요일은 휴업>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현주에게 안을 둘여다보라고 했더니
왠 중년 남자가 문을 열고 반긴다.
아, 오늘이 화요일이구나. 내가 평일날 놀아본 적이 없어서...
주문을 받는 데스크옆에, 알파벳이 멋들어지게 박힌 바리스타 자격증이 떡하니 올려져 있다
커피 한잔에 칠천원이어도 찍소리 말라는 협박장인듯
커피는 비싼만큼 부드러웠다,
내가 먹어본 커피중 서울 조선호텔 커피숍 다음으로 비싼 커피라 절라~ 부드러워서 목구녕을 타고 술술 넘어간다
얼어붙은 호수위로 눈발이 회오리가 되어 흩날린다
찬 겨울바람에
손바닥만하게 남은 수면은 점점 좁아지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리들이 애처롭게 울어댔다.
호수넘어 동쪽으로 500 m 높이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마른 소 등뼈처럼 솟아있다.
그 산맥을 경계로 이쪽 땅은 경기도고 그 너머는 충청북도 광혜원과 진천땅이다.
카페에서 바라보이는 산들이
칠장산 칠현산 덕성산이다.
<클릭하면 확대됨>
옛 조상들도 저 산들을 넘나들기가 어려워 쉬어가라고 광혜원, 장호원같은 여관마을을 많이 만들었구나
산하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앞에 얼키설키 조선시대 9개의 주요도로중 4번 5번이, 그리고 영남대로가 그려졌다
예전에 역원이란 제도가 있었다,
교통 통신기관인 역과,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원을 합친 용어다
역은 말을 키우며 사람이 숙박할수 있는 시설로,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원도 비슷한 역활을 하지만 일반여행자에게도 휴식과 숙박을 제공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22개의 역도를 설치하고 525개의 역을 두었고
조선 초기에는 41개의 역도와 540여개의 역에 5380필의 말이 마련되어 있었다. 원은 1300여개.
주요도로에는 도보 기준으로 대략 30리 간격으로 역이 분포해 있었고 운영을 담당한 칠방(종 6품)도 두었다
역과 원은 군사통신상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신영접 등의 역활도 함께 하고
역원을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되면서, 교통의 요지에는 지방도시가 발달하여 유통경제츨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원으로는 조치원 장호원 퇴계원 광혜원 사리원등이 있다
하얀 눈밭위로 나무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이 카페안에서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긴 힘들듯,
그저 중늙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박장대소 하는 장소일뿐.
말없이 풍경감상하기엔 조금 소란스러워 주인아저씨가 챙겨주는 커피가루와 월간지 두어권 들고 나왔다,
호수는 판판하게 얼고 그 위에 백설기처럼 하얀 눈가루가 깔렸다.
나 어렸을때는 이 정도면 겨울내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을텐데.
장갑을 껴도 얼어 뻣뻣한 손으로 썰매를 지치는 유년의 나를 거기 놔두고 ... 호수를 떠난다.
◈ ◈ ◈
무작정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하얀 눈이 덮힌 그 산맥을 넘어보고 싶었다,
아까부터 검은 차 한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따라온다
시간이 갈수록 신경이 쓰여 백미러를 힐끔거리는데 조령마을이 나타날 때쯤 시야에서 사라졌다
궁금해 뒤돌아보니 길옆 양계장 마당에 멈춰 서 있었다,
혼자인게 갑자기 두려워지는 순간이다.
산맥밑에 조령마을은 ...
언제라도 목숨을 앗아갈 것처럼 고드름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집이 몇채 있고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길은 지도에서 없어지고 마을 뒤로 임도나 있으면 다행일거 같아서, 현주에게 더 들어가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 어여 집에가서 짱이 밥해줘야 한당께 "
그 한마디에 기가 죽어 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왔다.
다음엔 기필고 저 산맥을 넘어보리라 다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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