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 14:00ㆍ국내여행
일요일이라고 11시까지 방바닥에 엎드려 되뇌였다
" 오늘은 해야될 일은 생각하지 않고 하고싶은 일만 생각해야지 ! "
옆에서 현주가 개집이나 사러 가자는걸,
" 지금까지 든 돈도 얼만데 이젠 집까지 사줘야 하냐 " 고 개진상을 부리고
아침 먹자는 것도 못 들은척 노트를 펼쳤다.
대신, 커피랑 스콘으로 아침을 먹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고
단골 동탄과는 정반대인 인계동 커피숖으로 향했을때 비로소 ' 하고싶은 일' 만 한거 같아 흐믓했다
" 이런 길로 올거면 다음부턴 드라이브 가자고 하지마 ! "
현주의 투정이 오른쪽 귀로 들어와 뇌도 안거치고 순식간에 왼쪽 귀로 빠져 나갔다.
내 맘대로 계속 안성쪽으로 향하다 절 이정표를 보며 즉흥적으로 외딴길로 핸들을 꺽었다,
산속에 이런 저수지가 숨어있었군.
호수주변을 따라 자동차시트가 촘촘히 박혀있고 낚시꾼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다,
더미 (Dummy-자동차 충돌시험때 쓰는 인형, 멍청이란 뜻도 있음)들 처럼 묵묵히...
낚시터옆에서 산쪽으로 차 한대 다닐만한 길이 보였다
약간 무서워, 갈까 ? 말까 ? 갈까 ? 말까 ? ...고민하는 새
차는 이미 유턴도 안되는 길로 쭐레쭐레 올라가고 있다
중턱좀 오르자 이상한 표지석이 우리를 맞았다,
" 이 뭐꼬 ? "
현주랑 한참 시답지않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킥킥거렸다
하긴 우리같은 중생들이 이런걸 알리가 있나
성철스님과 사명대사가 주고 받는 선문답 화두를...
산은 갈수록 시꺼멓게 울창하고 인적도 없고 잡초만 무성했다.
휘어져 부러진 나무가지가 차를 긁을 정도로 험악한 길로 계속 들어가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는데...
흔한 일주문도 없고, 달랑 시골 기와집 한채에 '천덕청원사' 란 현판만 붙어 있엇다,
사찰을 기대했건만 개인 절집같아 급 후회했다.
은행나무 거목아래 둥굴둥굴한 돌들이 모여 의자가 되고 탁자가 되었다
단풍이 지천인 가을에,
따뜻한 차, 보온병에 담아와
노란 은행잎이 날리는 풍경속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자고 현주랑 약속했다
볼라벤인지 졸라맨인가 하는 짜식이
이 구석까지 다녀갔구만 !
그린카펫,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자 너른 마당을 안고 있는 대웅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행랑채쪽에서 보살 두분과 스님 한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어. 얼른 고개 숙여 묵언인사를 드렸다.
현주는 두손 합장
대웅전앞 요 칠층 석탑이 문화재라고 한다.
법당뒤로 낙락장송
그 법당에 海底泥牛含月走 (해저-니우-함월-주) 라고 쓴 주련이 눈에 들어왔다
한의사라면 금오 김홍경선생님의 강의중에 기억이 나실 법도 한데,
불교와 한의학과는 서로 주고 받는 형제지간이다.
바다밑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아나니
바위앞의 돌호랑이 새끼를 안고 자고 있네,
쇠뱀이 금강의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니
곤륜산에서 코끼리를 타고 백로가 실을 끌어당긴다
전 문장의 첫 구절로서 불교에선 선문답이고 한의학에선 '바다밑 진흙소'는 남자의 거시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 절도 있을건 다 있다.
삼성각은 원래 절이 아니고 불교가 전파될 때,
토속신앙을 믿고 있던 백성을 달래기 위해 잡신을 모시는 특별예외 구역이다. 주로 산신령이나 호랭이등...
현주야, 빨래가 하고 싶은겨 ?
잠자리였다
손을 가까이 대도 안 도망간다.
불교에선 살생을 금한다는 걸 이 녀석도 알아버린 듯.
난 성악설을 믿는 무신론자란것도 알아줬음 해.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보살님이 포도좀 드시라고 몇번을 부르셔서 툇마루에 와 앉았다.
얻어먹는 포도라 더 맛있어서 두알씩 뜯어 입에 넣고
산속에 포근하게 자리한 절의 분위기에 넋 놓고 있는데
한쪽에서 보살님의 망치소리가 들린다.
시주함을 들고와 수리를 하고 계셨다.
절에 남자라곤 주지스님 한분이신거 같은데
이런 일은 계급장 떼고 남자가 해야 하는거 아닌가.
" 제가 못질을 좀 하는데 ...도와드릴까요 ? " 하며 달려들었다
나무가 말라서 쪼개지고, 나사못도 두꺼워 완벽하게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별명이 땀보라 바닥에 땀이 뚝뚝 떨어지자 보살님이
휴지도 갖다 주시고,
감당이 안되자 마른 수건도 걷어 오시고
박가스로 채찍질하시니
부담되서 진땀까지 삐질삐질 났다.
보살님 없을때 혹시나 하고 시주함 안쪽을 들여다 봤는데
십원짜리 동전하나 없더라,
경첩이 틀어갈 틈이 없어 직각으로 꺽고 나사못 사이에 공간에 틀라스틱 관을 대며 수리가 마무리되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최선을 다 했으니
잠시 앉아 쉬다가 엉덩이 털고 일어나며 보살님에게 인사를 했다,
" 잘 먹었습니다. 포도값이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
" 아닙니다. 복 지으셨어요 "
절을 내려오다 불연듯
집에서 배 곪고 있을 짱이 생각이 났다, 벌써 6시가 다 되어 간다.
오는 차안에서 현주가
' 절에선 절대 꽁자로 먹으면 안된다. 얻어 먹었으면 마당이라도 쓸고 와야 한다.
신도들이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린것이라 부처님 꺼다...'
그 말 듣고 다행이다 싶다가
기독교빠인 현주가 어제 저렇게 불교에 정통했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 ▦ ▦
아래 지도에 별표가 절 위치
청원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안성 最古의 건축물로서 화성 용주사의 말사다
이 절을 품고 있는 天德山은 병자호란때 의병 千名이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하늘 天자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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