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6. 20:00ㆍLife is live !
“ 능행차는 못 보더라도, 토요일 저녁 연무대에서 하는 야간군사훈련은 꼭 보세요,
이번엔 서울에서 온 유명한 분이 연출감독을 해서 볼만합니다 ”
정조대왕 모델이신 윤원장님의 특별한 추천이 없었다면 이번 수원화성문화제도 나에겐 49번째 의미없는
Numbering 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한의원하며 19년, 총 22년을 수원에 살면서도 제대로 이
축제를 즐긴 기억이 없다. 외국에서 하는 건 기를 쓰고 찾아가도 정작 더 크고 유명한 이 축제는 왜 외면했을까 ?
언제라도 볼수 있다는 방심이 한번도 못 본 결과를 낳았고,
일하느라 못봤다는 핑계는 평생 일만 하다 죽을거란 경고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 8시 공연인데 5시 반부터 주섬주섬 카메라와 지팡이를 챙겨 일어났다.
하루 죙일 자고 이제 일어나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경재.
현주가 뜸금없이 경재한테 ‘ 용돈줄테니 아빠 모시고 갔다오라 ’ 고 한다.
꽁똔에 눈이 먼 경재는 샤워하러 들어가고,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자리를 확보하려는 난 차 안에서 하염없이 Stand-by 하고 있다.
졸지에 대리기사가 되버렸다.
아들과 수다를 떨며 공연장에 가까워졌는데 동문로터리에서 교통통제를 하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다고 투덜대며 순간 ‘ 집으로 돌아갈까 ’ 고민하다가 이내 동네 안쪽길을 생각해내곤
그리로 차를 몰았다, 넓은 공원주차장은 딱 두세대의 빈공간만 남아있고 내 뒤로 차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기 시작했다,
1분만 늦었어도 그대로 빽홈 !
공연장은 성벽을 넘어 도성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둠속에서 화려하게 서 있는 창룡문 아래엔 분장실과 대기실 텐트가 처져있고 조선시대 의상을 입은
단원들이 지루함을 못 견뎌 서로 발장난을 치고있고, 경극수준의 화장을 한 아가씨 셋이 팔짱을 끼고
우리 앞을 지나간다. 수십명의 백의 백성들이 천막아래 쭈구리고 앉아있는 옆엔 깃발과 창이 하늘을
향해 세워져 있고 북과 장구같은 악기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군청색 구운 벽돌로 높게 쌓은 셩벽을 돌아 창룡문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자 눈앞에 연무대와 널적한
잔디밭이 야간조명을 받아 대낮같이 환하게 펼쳐져있다. 수많은 스텝과 진행요원들이 각자 할 일로 바쁘다...
급해진 마음에 경재한테 먼저 가서 자리를 맡으라고 보냈다.
풀밭을 가로질러 한참 멀어지는 경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 따라가다 다급하게 경재를 불렀다.
소음속에서도 다행히 아빠 목소리를 듣고 멈춰 날 기다리길래 얼른 내려갔다
“ 너 잃어버리느니 차라리 같이 가는게 낫겠다 ”
공연 1시간 반 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 빈 자리가 없었다,
사람들 표정엔 저녁도 굶고 앉아 있는 비장함까지 보였다.
의자를 쌓아놓고 서 있는 요원에게 장애인인데 의자를 줄수 있나고 물어보니 여긴 ‘귀빈용’ 이라고
저쪽 가면 자리 있다고 손짓을 한다. 강한 Spot light 에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투덜대는 경재를 따라 한참 들어가니 진짜 그쪽은 빈 자리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명당은 아니지만...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마자 화장실에 간 경재가 한참만에 나타나 캔커피를 내민다.
아빠 한의원에 올 때도 꼭 마실거를 사가지고 오는 그 마음이 대견하고 짠하다.
경재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에 일을 잊을수가 없다.
그날 동네 단골식당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데 경재가 검은 비닐봉투를 달랑달랑 들고 들어왔다.
열어보니 고기였다.
길거리에서 2,3천원인가를 줏은 경재가 고기집에 가서 그 돈만큼 고기를 사 온것이다.
식당아저씨도 황당해서 나갈 때 만화책을 한보따리 챙겨주었다.
그때 진작 경재의 천성을 알아챘어야 하는데...
1시간 넘게 지루한 기다림
<夜操>는 야간군사훈련이다.
이번 야조는 1795년 윤 2월 정조대왕이 화성을 행차한지 넷째 날이 되던 12일 서장대에 친림하여
주간및 야간 군사훈련을 지휘했던것을 화성성역의궤등의 문헌을 통해 재현한 것으로
무예24기보존회의 병학연구소에서 책임고증을 맡았다
마당에서 공연시작전 예행연습이 열렸다.
포졸들이 나와 구령에 맞춰 긴 창을 휘젖고, 군졸인지 광대인지 혼동할 정도로 말위에서 씰데없는 발광을 하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동작에 지레 질려버렸다.
쌀쌀해져 오는 시월의 밤공기를 반팔로 버티고 있는 두 부자에게 그 리허설은
집에 가서 따땃하게 배깔고 TV 나 보라는 유혹이었다
사람구경에 더 빠져있는데 드디어 8시에 맞춰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밤하늘을 휘저어대는 레이져쑈,
수많은 군사들의 호의를 받으며 정조대왕이 말타고 입장,
도성안에 태평성대의 풍악이 울려 퍼진다.
갑자기 높은 성벽 너머로 우르릉 번쩍하는 폭발과 자욱한 포연이 뭉실뭉실 올라온다.
전쟁이 난 것이다.
성안으로 밀고 들어온 적군과의 교전,
신기전 화차의 불꽃같은 폭격-히로시마 원자폭탄같은 위력으로-즉시 제압된 적군,
승리 축하연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이 객석으로 몰려와 손에 손잡고 연무대 잔디밭 위에서 대동제 한마당이 벌어졌다,
기대이상의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었다.
9시넘어 공연이 끝나고 거대한 인파에 묻혀 주차장까지 흘러갔다.
집에 전화하니 부자지간에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오란다.
순대국 먹자고 했더니 경재가 동수원사거리에 아는 곳이 있는데 맛은 그닥이지만 24시간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과연 선술집,야식집 같은 분위기. 드럼통 탁자앞에 앉아 경재에게 몇 번 와봤냐고 물으니
계면쩍게 웃으며 두번 ? 얼버무린다.
나 초등학교때 아버지랑 단둘이 오산시장에서 먹은 순대국맛이 뇌세포에 또렷히 박혀있다.
경재도 오늘 이 시간을 몇십년후까지 기억하겠지 ?
순대국 한그릇으로는 모자란 대화의 연속, 고기까지 시켜 먹으며 많은 얘기를 했다.
뒷자리의 할아버지가 혼자 술이 취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다니며 술주정이다.
“ 박근례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경부고속도로가...돈 다 냈다고 써비스도 안주고...나라 발전에...이거 싸줘,집에가서 먹게...”
볼품없이 주름진 할아버지 가슴속엔 아직도 푸른 젊음이 고대로다.
고소한 토요일 밤이 돌판위에 삼겹과 함께 지글지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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