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최악의 금전운

2010. 12. 29. 19:00Turkey 2010




부르사를 떠나며...

시계를 보니 5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해가 저문다. 

 

하늘이 껌껌해지는만큼 시내에 불이 한두개씩 켜지기 시작한다.

큰 산이 부르사를 병풍처럼 빙 둘러싸고, 산 중턱부터 꽉 들어찬 집들은 들판까지 늘어져 원형극장 무대에 서서 객석을 올려다 보는거 같았다. 크리스마스 안개전구 같이 반짝이는 불빛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퇴근시간이라 시내를 벗어나는 차들로 외곽도로는 꽉 막혔지만

지루한 줄도 모를 정도로 환상적인 야경에 넋이 빠졌다. 

 

부르사 경계를 벗어나자 온 천지가 깜깜하다.

2시간 정도 운전하니 하품이 나오는데 오늘 목적지인 차낙칼레까지는 앞으로도 3시간은 더 가야 한다

 

큰 도시가 보인다.  Bandirma (반디르마)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일박해야겠다.

가운데 빨간 네모칸이 반디르마,

 

 

이 도시는 여행가이드북에도 안 나와있어 아무 정보가 없다. 첫 느낌이 안 좋다.

관광도시는 나름대로 치안이나 숙박시설이 좋지만 공업도시나 내국인용 대도시들은 외지 관광객들에겐 불편함 이상으로 두려움이 생긴다. 경주에 갈 외국인이 멋 모르고 포항공단에 들어간 꼴이랄까 ? 

도시 외곽엔 영업이 끝난 큰 할인마트와 공장들이 어둠속에 허옇게 누워있고 거리는 지저분했다. 호텔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현주랑 짱이에게 Hotel, Otel 같은 글짜 보이면 말하라고 하며 더 들어가니 ASUHAN OTEL 이란 글자를 붙인 장급 모텔이 보였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여서 차 세우고 들어가 프런트에 대머리 아저씨에게 일박 얼마냐고 물으니 40 TL 이라고 한다. 현주에게 방좀 한번 보고 오라고 했더니 뭐 그런대로 잘만하다고 한다. 현주도 많이 피곤해서 빨리 쉬고 싶다는 뜻이다.

 

카드로 숙박비 계산하고 올라온 시간이 7시 6분. Room No 404호.

욕실도 방도 구리다. 창밖으로 뒤곁을 보니 공터만 휭해서 밤에 산책하기도 무섭겠다.

 

싸구려 TV 를 틀었는데 잘 안나온다.  형광등은 지맘대로 꺼졌다 켜진다. 프런트에 전화했더니 젊은애가 와서 켜보고 케이블을 빼갔다. 새로 바꿔왔다,  안 나온다.

그 사이 나는 메리야스만 입고 계속 수리하는걸 지켜봐야 했고 현주랑 짱이도 추워서 저러고 있었다. 이번엔 셋톱박스를 통째로 가져가더니 새걸로 바꿔왔다, 그제야 나온다. 


씻으려고 하는데...또 노크소리가 들린다.

프런트에 있었던 대머리 아저씨가 올라와  

  " 80 TL 을 더 내라 " 

  " 먼 소리냐 ? "

  " 한사람당 40 TL 인데 자기가 잘못 받았다고 두명껄 더 내라 " 

방도 맘에 안들었는데 잘 됐다 싶어 여기서 안 잔다고 환불해 달라고 했다.

놀란 현주랑 짱이도 얼떨결에 짐을 다시 챙기고 나도 메리야스위에 대충 옷을 걸치고 1층 프런트에 내려가자 자기가 영어를 좀 한다고 젊은애가 나섰다. 이차저차 해서 환불을 요구한다고 하니 알았다는 듯 대머리에게 통역을 한다. 취소해 달라고 카드를 내밀고, 대머리가 카드를 긁고 다시 영수증을 내주는데...가만히 보니 환불을 한게 아니라 40 TL을 더 청구한거였다  그 시간이 8시 10분

황당해서

  " 취소영수증은 앞에 -(마이너스)가 붙어야 하는데 이건 취소가 아니라 두번 청구한거다 "

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순간부터 말이 안 통했다. 영어를 한다는 놈이 Cancel 도 마이너스도 갑자기 잊어버린거 같았다. 경찰을 불러 달라고 하자 대머리까지 성질을 부리며 

  '경찰을 왜 부르냐 ' 고 대들고 급기야 로비 주변에 퍼져있던 터키인 7~8명이 나를 빙 둘러싸고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 호텔 주인은 메너가 있는 사람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

  " 여기선 (취소영수증도) 이렇게 생겼다 "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대머리는 40 TL을 현찰로 프런트에 내던졌다, 내가 받을 돈은 총 80 이지 40 이 아니지않은가. 이 돈 말고 전체를 다시 Cancel 해달라고 싸웠다,

 

그러길 30여분,

영어를 한다는 젊은 놈도 열이 받았는지 씩씩대고 내 앞으로 왔다갔다 했지만 난 밤을 새더라도 이 문제를 바로잡고 싶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현주가 와서 감정이 격해져 큰 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차라리 돈을 버리는게 낫지. 가족들까지 불안해지고 안 되겠다 싶어 얼른 현주랑 짱이를 데리고 호탤을 나왔다.

문을 나서자마자 턱에 걸려 엉덩방아까지 찧자 열이 받을대로 받아버렸다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짐을 싣고 얼른 도망치듯이 시동을 거는데 통역하던 놈이 차까지 따라나와

  " 왜 이 호텔에서 안 자냐 ? " 고 묻는덴 정말 귀빵머리를 날려주고 싶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디르마를 빠져나왔다, 짱이에게 아빠 넘어졌을때 부축 안했다고 엄한 애를 잡았다,

 

차낙칼레까지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달려본 길중 최악이었다,

   가로등하나 없이 깜깜하고

   9시가 넘어 차들도 거의 안 다니고 지나치는 동네는 적막했다,

   앞이나 뒤에서 오는 큰 트럭들은 상향등을 기본으로 켜고 달리고

   곳곳에 패인 길

   공사중이라 자갈과 모래가 깔려있어 커브길에선 차가 지멋대로 꼬리를 흔든다.

   이름모를 동네에 호텔을 찾아갔다가 여주인의 인상과 호텔 분위기에 질려서 다시 나왔다

아무 말없이 운전하는 나를 달랜다고 현주는 

  " 형 ! 잘 싸우더라.  그 돈 없는 샘 치자 "  고 했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했고 그 놈들이 괘씸했으며 이대로 끝난게 아니라고 이를 악 다물며 오기로 그 길을 달렸다.  

 

덜덜거리는 소음을 참아가며 달린지 3시간만에 차낙칼레에 도착했다.

몸과 맘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숙소를 찾을수 없어 길마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이 밤중에, 척 봐도 불량스런 젊은 커플이 지나간다. 어쩔수 없이 호텔이 많은 곳이 어딘지 물어보니 자기들을 태워주면 그쪽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뒷자리에 짱이만 타고 있어서 불안했지만 낑겨 태우고 그들이 말하는대로 차를 틀었다

나에게 " Right !   Left ! "  라고 하면서도 뒷자리에서 둘이 싸운다. 오른쪽이 Right 냐 Left 냐  이 방향이 오른쪽이 맞나 왼쪽이 맞나 하고... 웃을 기운도 없다

 

덕분에 해변가 호텔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고 그들은 순순히(?) 차에서 내려주었다

 

눈에 보이는대로 들어가 Check-in 하고 방에 들어와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11시 59분이었다



 

아직도 기분이 격양되어 있어, 되려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으니 분을 삭이는건 눈감고 자는게 최고다.

 

이 썩을놈의 나라 ! 

터키에 온걸 후회한다. 진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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