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3. 13:06ㆍGeorgia 2019
여느날보다 활기 넘치는 오늘 아침.
어젯밤의 유흥이 가시지 않아 하루밖에 안 남은 시간이 아쉽고 소중하다.
어제 먹은게 위장에 그대로 있어 얼굴이 붓고 몸은 찌뿌둥한데 눈뜨자마자 또 먹어야 하는 여행자의 숙명,
키큰 서양노인이 며칠 봤다고 오늘은 굿모닝 인사를 한다.
그가 오믈렛 먹는 거 보고 우리도 주문
포식하고 방에 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두 여인은 벌써 외출준비 다 하고 로비에 내려가 기다리는데 난 늦잠자다 12시에 허둥지둥 내려옴
여행 후반 필수코스인 쇼핑을 위해 까르푸를 찾아 가고 있다. 시내랑은 좀 떨어진 구역에 있는데 가다보니 조지아 도착 첫날밤 정신없이 들어온 거리와 건물들이 기억났다
카르푸 도착, 입구에 빈 자리 하나 남아 있어 얼른 주차.
큰 현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양편과 복도에 통신사 대리점등 생활업체들이 다닥다닥 입주해 있었고 정면 넓은 공간에 까르푸 매장이 들어앉아 있었다, 건물 전체가 복합쇼핑몰
두 여인이 작정한듯 큰 카트를 각자 끌어 왔다. 난 잠이 덜깬채 카트에 매달려 헤롱헤롱 따라간다.
입구에서 마트 직원이 사진을 못 찍게 했다, 매장 안을 둘러보는데 빵을 화덕에서 바로 구워 파는 코너가 있었다. 신기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여기 점원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 놀고 있네 '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통로에 사람들이 붐비자 H가 카트를 반납하고 왔다.
애들이 어렸을때 외국나가면 꼭 샀던 에그몽. 애들 커진만큼 에그몽도 점보가 되어 있었다.
기념으로 두개 카트에 담고...
H는 딸 준다고 무거운 조지아 꿀을 한아름 안고 왔다.
가난한 나라에서 농수산물 싼거는 이해가 되는데 다국적기업의 공산품까지 이렇게 차이나게 쌀 줄은 미처 몰랐다,
코카콜라가 캔은 400원 정도. 500ml 페트병도 500원이 채 안된다, 한국의 1/3 가격.
그런데 어쩌면 이게 보편적이고 정상가일수도 있겠다 싶다. 캐나다, 영국, 독일같은 선진국부터 후진국 조지아까지 모두 공산품 가격이 한국보다 쌌다. 한국인이 봉이고 호구였네.
열받아 냉장된 음료수를 하나 꺼내 바로 벌컥벌컥 마셨더니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왔다.
현주가 만수르 간식거리까지 챙겼다.
매대에 수북히 쌓아놓은 노트를 뒤지다가 대박 발견했다.
표지에 조지아 도안이 그려져 있어 기념품으로 딱이었다. 당연히 가격도 저렴,
계산줄에 서 있는데 뭔 이벤트 행사를 알리는 구내 방송이 나오고 한쪽 코너에서 직원들이 풍선을 매달고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봐 현주를 보냈더니 풍선 하나를 달랑달랑 들고 왔다,
원래 주는건지, 막무가내로 강탈해 온 건지는 모름
갑자기 빵빠레가 터지고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어느 계산대에 우르르 몰려가더니 한 손님에게 축하이벤트를 해주었다. 예전에 패믈리 레스토랑에서 생일축하송을 불러주는 것처럼.
' 저 손님 오늘 계탔네, 오늘 산거 다 꽁짜로 해주는건가 ? 부럽당 '
H가 산거는 자기 카드로 계산,
우리거 따로 영수증을 출력해 주던 캐셔 여직원이 갑자기 환한 얼굴로 ' 뭐에 당첨됐으니 저쪽 이벤트 코너로 가라' 고 알려주었다,
과연 영수증 하단에 대문자로 " YOU HAVE A CHANCE TO WIN " 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 아싸~ 자동차라도 한대 주려나 ? '
신나게 코너로 달려가 데스크에 영수증을 내밀자 여직원들도 밝은 미소로 축하해주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 로또 1등 당첨금 바로 내주지 않잖아 ? 이것도 절차가 있겠지 '
기대하며 한참 기디리자 또 다른 직원이 왔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니...나에게 뜸금없이 " 앱있냐 ? "고 물었다,
내용인즉슨 ' 특별히 보너스 포인트 15 %를 내 고유번호에 넣어준다' 는 것이었다,
에게~ 좀 실망,
" 난 관광객이고 한국에선 까르푸가 철수해서 보너스를 쓸 곳이 없다 " 라고 하니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 등 뒤에 Fortune wheel (뽑기판) 이라도 한번 돌려보면 안되겠냐 ? " 니 그건 안된다고 한다, 그냥 당첨돼 봤다는 것으로 만족.
현주 화장실 들렸다가 까르푸를 나옴.
갠지 맷돼지인지 근무태만,
장 본거 차 트렁크에 싣고 H에게 카트 갖다 놓으라고 부탁하고, 현주랑 모두 다 차에 탄 후 출발하려고 시동을 거는데...완전 먹통이다.
몇번을 시도해도 헛발질 하는 것처럼 미동조차 없다. 보통은 아침 첫 출발때만 애를 먹지 운행중엔 바로바로 걸렸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트렁크를 리모컨 버튼으로 눌러 여는 바람에 전동모터가 작동하며 그나마 남은 밧데리를 완전 거덜낸 거 같았다.
망연자실 한 5분정도 앉아 있다가 다시 시도하니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주차장을 돌아 나오는데 출구 바리케이트가 자동으로 안 열린다. 뒷편에 조그만 부스가 있길래 후진해보자 안에서 띨하게 생긴 놈이 영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아까 트렁크에 짐 실을때 H에게 비닐봉투 안에 영수증 넣어두라고 했던게 기억나서 H에게 트렁크에서 영수증을 찾아 보여 주라 시켰더니 확인하고 바리케이트를 열어 주었다,
짜증이 나 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뒷차가 빵빵 크락션을 울렸다. 주차장을 나와 도로에 진입할때도 차들이 밀려드는 바람에 잠시 멈춰 있자 또 빵빵댔다. 욱해서 한판 붙으려다가 H도 있고 또 여행 후반이라 꾸욱 참았다.
주변 도로상황이 아주 개판이다. 정체와 과속,끼어들기, 크락션등이 뒤섞여 아비규환이었다
시내뒷산에 뭔 공원같은게 보여 거긴 조용하고 전망이 좋을거 같아 목적지로 찍고 가는데 도로가 공사중이라 공항방향으로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힘들게 찾아왔는데 정작 공원입구 도로가 공사로 폐쇄되어 차량 통행자체가 불가능했다. 기름 버리고 시간 버리고... 그냥 내일 공항가는 연습한 셈 쳤다.
더 돌아다니면 내일 차 반납하기 전에 또 주유소를 들려야 할거 같아 그냥 숙소로 향했다,
마침 경찰이 근처에 진을 치고 있어 한바퀴 더 돌아 숙소옆에 차를 댈 수 있었다. 두 여인은 장 본거 방에 갇다 놓고 온다고 하고 난 천천히 벼룩시장쪽으로 걸어갔다
도로 매연이 극심했다. 담배를 피우며 뛰는 것 같다. 길거리 교통경찰이 불쌍할 정도였다,
다리 아래에 공원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가 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아 건너는 중간에 신호가 바뀌었다.
근처에 경찰이 있는데도 그 새를 못 참고 엑셀을 밟아 우리 앞을 지나가는 차들...
공원전체가 갤러리다.
각 코너마다 판매상이 따로 있었다. 맘에 드는 그림은 있는데 가격표가 안 붙어 있어 선뜻 사기도, 물어보기도 불편하다. 정가표를 붙여 놓으면 대박이겠다 싶다가도 먼저 그렇게 했다간 다른 판매상에게 돌맞아 죽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겨 먹을 여지가 큰 시장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다. 시나 정부차원에서 정가제를 시행하면 분명히 효과는 있을 거 같다.
느즈막하게 나타난 젊은 남자가 주변 상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후 녹슨 철제 케비넷을 열었다. 그 안에 판매할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공원 여기저기 녹슬어가는 철통의 용도를 알았다.
그림을 하나하나 꺼내 걸어놓는 청년.
백인여자가 지나가다 현주가 신고 있는 젤리슈즈를 보며 ' 이쁘다' 고 했다. 옆에 동행하던 여자는 웃으며 친구에게 핀잔을 줬다, 예전 영국에서도 이 신발 이쁘다고 대놓고 말하던 서양여자가 있었다.
만원짜리 플라스틱 신발일뿐인데...
현주가 벼룩시장에서 맘에 드는 티스푼 세트를 봤는데 5라리라고 고민했다.
H가 깎아 보겠다고 같이 가더니,
잠시후 돌아온 현주가 " H가 3라리로 깎았어 ! " 하며 놀랍다는듯 말했고 그 뒤로 H가 뻐기듯 따라왔다.
H가 잘 적응하더니 이젠 베테랑이 다 됐다
하나에 420원짜리 티스푼
드라이브릿지 공원엔 그림뿐만 아니라 골동품, 중고품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한국인도 볼 수 있다,
쉴겸 강가 Corner 카페를 2주만에 다시 찾아 갔다.
지난번 서빙하던 남자가 안 보이고 우리를 기억하는 직원은 없었다.
우릴 감동시켰던 치킨스프 다시 주문.
좀 걸린다고 하길래 화장실가서 세수하고 나왔다.
음식값 총 37.38 라리 (15,700원)
35는 지폐로 내고 호주머니 털어 동전까지 주고 나니 수중에 1라리도 안 남았다. 남은 재산 약 300원.
알뜰하게 딱 맞춰 여행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2주만에 카페안에도 바깥에도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새 여행자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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