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8. 22:00ㆍGeorgia 2019
빗속에서 길을 더듬어 내려왔다. 고속도로에 진입후 트빌리시를 등지고 다시 북쪽 카즈베기 방향으로 올라가다 차를 크게 돌려 서쪽으로 향했다. 므츠헤타를 벗어날 때쯤 맘에 드는 레스토랑을 봤는데 달리던 관성을 못 버리고 그냥 지나쳤다. 이후엔 그런 좋은 곳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서 한동안 아쉬움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조지아의 서쪽 하늘은 구름을 쥐어짜 막 폭우를 뿌릴 기세였다.
먹구름 천하를 10 여 km 쯤 지나자 갑자기 햇살이 비치고 사방이 환해졌다.
아까부터 ' 다닥다닥 ' 바퀴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타이어 빵구 났나 ? 불안한 상태로 한참을 달리다 한적한 구간에서 차 속도를 줄여 도로바닥을 보니 가로로 홈을 일정한 간격으로 파 놓았다.
' 그나마 제대로 된 도로 하나에 별 짓을 다 해놨네 ... ' 혼자 중얼거렸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욕심나는 땅덩어리가 있다. 이 나라도 그랬다. 저 넓고 텅빈 평야를 처 들어와 점령하고 싶다.
국토로만 본다면 욕심 나는 나라 : 터키, 일본, 프랑스.
거저 줘도 뜨고 싶은 나라 : 튀니지, 러시아, 캄보디아
휴게소 간판이 보여 맘 먹고 브레이크 밟아 갓길로 빠졌는데...
이건 뭐, 빙 둘러 나무판자를 덧댄 작은 술집 하나랑. 드럼통 석유 판매소 보고 놀라서 얼른 다시 올라왔다.
소련은 스탈린이 만들었고 스탈린은 조지아가 만들었고 조지아를 소련이 점령했고... 난해하다 난해해.
스탈린의 출생지 고리 (Gori)를 지나가며 역사의 아이러니에 빠져 본다
지대로 된 고속도로 휴게소가 나타났다. 한국보다 더 멋졌다. 조지아에서 이렇게 세련된 조형미의 건축물을 본 적이 없다
건물 입구에서 한 여자가 개를 데리고 동냥을 하고 있다. 현주가 돈을 적선했다
Wendy's 햄벅 발견.
배고픈 두 여인도 고민없이 " Call ! " 을 외친다
일단 멀찌기 떨어져 메뉴판부터 정독하고
버벅대며 햄버거, 음료수, 스프등 주문
조지아에서 며칠 있으니 우리도 자연스럽게 눈높이가 낮아져서 이 정도 깨끗한 인테리어만 봐도 신기해 촌놈처럼 두리번 거리게 된다.
현주에게 메뉴를 들고 서 있으라고 부탁했더니, 입금 안됐다고 저 표정 보소~
한참있다가 우리 주문 번호가 떠서
받아 왔는데 콜라 하나가 빠져 있다. H에게 ' 얼른 가서 콜라 빠졌다고 받아오라 ' 고 시켰다,
H가 계산대에서 직원이랑 따지고 있는 사이 영수증을 자세히 보니 주문 자체가 안되어 있다. 난 주문했는데 직원이 입력을 실수했나보다. 다급히 H를 불러 들였다,
조지아 신문에『 한국국적 아줌마아저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콜라 내 놓으라고 행패 부리다 체포됨』 대서특필 될뻔...
추가주문하려다 대기줄이 너무 길어 그냥 있는거 나눠 마셨다.
햄버거가 비주얼은 별론데 소스 범벅이 아니여서 맛이 담백했다
대박은 이 Chili soup.
가격도 저렴하고 고기 건데기가 푸짐하고 따뜻하고 얼큰해서 노스텔지어 병 걸린 한국인에게 딱이다.
평소에 햄벅을 안 좋아하는 현주도 맛있게 먹었다,
현지 음식에 질릴때쯤 색다른 메뉴를 끼워 넣은 것도 굿 초이스 !
입금됐다고 시키지 않아도 포즈 취해주는 모델.
야비한 건지 얇팍한 건지.
이렇게 맛있는데 Wendy 야 넌 왜 한국을 떠났니 ?
배부르니 손이 안 가는데, 인공색소를 너무 써서 싸구려 같아 보이는 던킨도넛.
같은 층에 마트가 있어서 소화도 시킬 겸 구경갔다.
작은 노트 1.9 라리 (798원) 하나 삿는데 숙소에 와서 보니 뒷장에 낙서가 되어 있어서 현주가 놀려댔다,
매장 안쪽에서 담배코너를 발견했다. 인상 무섭게 생긴 아줌마에게 KENT 한갑 5.6 라리 (2,352원) 달라고 하고 라이터와 군것질거리, 음료수등을 들고 나왔다,
차량 통행이 많아 위험한 곳인데도 동냥개들은 느긋하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재밌다
현주가 고른 수박 쥬스. 싱겁다고 남겨서 내가 다 마심
휴게소 수준을 못 따라가는 차 수준
다시 서쪽을 향해 출발
M&M 초콜릿을 하나씩 녹여 먹으며 한결 행복해진 차 안 분위기
중간중간 과속 단속카메라가 있다
잘 닦인 고속도로가 갑자기 끊기고 모든 차들이 국도로 몰렸다. 조지아엔 아직 국토종단 고속도로가 없나보다.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에 완공됐으니 조지아는 한국에 40년이 뒤진건가 ?
국도는 차가 많이 막혔다. 흑해의 휴양도시, 조지아의 주요 항구인 바투미(Batumi)로 가는 도로가 이렇다.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과 부산사이 도로.
여긴 유독 등나무 가구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다,
차량통행이 많아 소몰이 목동들도 많다
반가운 LG 간판
제법 큰데 빈곤한 Khashuri 시를 관통한다
낡은 도시를 벗어나 양측에 가로수가 높게 자란 길을 시원하게 달린다.
소떼가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다
소가 가는 길, 사람이 걷는 길, 차가 달리는 길이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높은 산맥을 양쪽으로 끼고 넓은 들판을 달리던 도로가 울창한 산 사이로 사라진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더 맛있어 보이는 식당들
오늘의 최종 목적지 보르조미 (Borjomi) 에 도착할 즈음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보르조미가 우리에게 첨 보여 준 건 사고현장이었다. 눈부신 경광등을 얹은 경찰차가 출동해 있었고 노란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보여 있었다. 갑자기 기록 임무 역활을 기억해 낸 현주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놀래서 얼른 말렸다. 경찰 눈에 띄면 카메라 압수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Guesthouse Green Rose PGPS 41.842911 , 43.380260
보르조미에서 앞으로 3일 묵을 숙소를 찾아간다. 네비가 알려준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구글맵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숙소측에서도 이메일로 GPS 좌표를 보내줘서 걱정을 안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항에 황당황했다.
고바위 골목길을 후진으로 조심조심 내려와 아랫 골목으로 쑤욱 들어가자 손바닥만한 Green rose 간판이 빠꼼히 삐져 나와 있다.
일단 숙소를 찾아서 다행이긴 한데 골목이 너무 좁아 차 한대 댈 곳이 없다. 현주에게 먼저 내려 들어가 ' 차 어디다 대냐 ' 고 물어보라 했다.
돌벽 옆 계단을 뛰어 올라간 현주가 잠시후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할아버지가 그대로 후진하라고 해서 H를 태우고 후진. 골목 중간에 작은 공터에 주차하라고 해서 T자로 차를 넣었다.
' 남의 집앞에 차를 대도 되나 ? 뭐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있는데 이번엔 할아버지가 조수석에 덥석 타더니 골목을 나가라고 손짓했다. ' 도대체 주차장이 얼마나 멀길래... ' 덥석 겁이 났다,
차는 골목끝까지 나와 또 다른 골목을을 통과해 경찰서 앞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 마을뒤로 돌아 갔다.
차 한대 바드시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길 삼거리,
할아버지가 차를 담벼락에 바짝 대라고 한다. 코앞이 급경사라 내일 시동 안걸리면 빼도 박도 못 할 거 같아 중간에 걸쳐 차를 댔다. 일련의 상황들이 깝깝하고 짜증나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앞집 담벼락에 기대 기어이 담배 하나를 꺼내 피워야 했다,
동네 처량한 개
현주도 다른 대문으로 해서 나왔고 다 같이 차에서 짐을 빼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왔다, 턱이 높은 대문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마당을 로즈가든으로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할아버지는 왜소하고 웃는 인상인데, 할머니는 덩치가 크고 각진 얼굴이라 성별이 바뀐 것 같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흔한 인삿말 하나 없이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채 벽에 기대 뻣뻣하게 서 있었다. 방을 안내해 주길 기다리며 모두 모여 있자 갑자기 할머니가 인상을 팍팍쓰며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지청구를 해댔다.
내 귀에 동시통역으로 ' 뭐 이런 것들을 집안에 들이냐 ' 로 들렸다.
그냥 알아보려고 들어왔음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을 슥소인데 예약을 해 놔서 화를 꾸욱 참았다
한동안 조지아말로 옥신각신하더니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어디론가 전화를 하게 했다. 할머나가 이번엔 전화기에 대고 또 막 야단을 쳤다,
' C8, 지금 모하자는 거여. 말이 안 통하면 기본 예절도 읍냐 ? ' 돈내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자 욕이 속에서 솟구쳤다,
갑자기 전화기를 나에게 던지듯이 주길래 귀를 쫑긋 대보니 이 집 아들이었다. 이 숙소에서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좀 가셨다. 숙소의 기본적인 설명과 조식을 먹을 것인지 묻는 질문이 오갔다,
현주가 마당계단으로 윗층에 올라가려고 하자 할머니가 마치 ' 도둑년 ' 보듯 정색을 하며 못 가게 막았다,
전화통화후 1층에 방을 배정 받았다.
실내는 구닥다리 시골집 분위기인데 나름 깨끗하긴 했다,
현주와 H가 저녁거리를 사러 동네 마트를 찾아간 사이, 난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대문 밖으로 나와 골목길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아랫골목에서 동네 할아버지가 천천히 올라오길래 연기 안 가게 담배를 뒤로 가렸더니 지나가다말고 멈춰 나에게 뭐라고 조지아어로 말을 걸었다. 처음엔 ' 건강에 안 좋으니 담배 피지마라' 는 건가 했는데 가만 보니 담배를 한 개피 달라는 것이 아닌가 ?
담배갑에서 하나를 꺼내 주고 불을 붙여 주려니 ' 지금은 됐다' 며 손에 꼭 쥐고 이번엔 발음마다 악센트를 주며 또박또박 영어를 했다 " 탱.큐.베,리.머.치 ! "
졸지에 동네 건달에게 담배 한개피 삥 뜯긴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
이 동네 노인들 만만치 않다. 조지아의 노인들은 몇살을 잡숴야 늙었다고 자인할까 ? 당신이 아직도 인생의 청춘인줄 아나보다.
컵라면과 장 봐온 걸로 밤 9시에 늦은 만찬을 시작하고
깨끗하게 설겆이 해 놓고
장거리 운전의 피로가 몰려와 10시쯤 방으로 들어왔다.
단톡방에 카즈베기 트레킹 사진을 올렸더니 부러워 난리다. 부러워마삼, 난 콧바람만 쐬었음
오늘 이동한 거리를 분홍색으로 이어봤다, 이렇게 보면 조지아가 별로 큰 나라가 아닌데도 우찌 그리 다채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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