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선위를 걷는 Truso 트레킹

2019. 9. 7. 11:00Georgia 2019





자다깨서 매연과 페인트 냄새 빼려고 창문을 열었다. 

보고 싶은 당나귀 대신 밤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달타냥들도 비 맞기 싫은가보다,


현주가 또 창가에 붙어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 소리애 깨서 이번엔 나도 잠결에 가 보았다,

마을 가로등이 별처럼 반짝이는 새벽, 푸르스름한 창공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설산.

어제는 산봉우리만 하얗더니 하룻사이에 산 전체가 흰 눈으로 망토를 둘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수정체를 최대한 땡기자, 프로메티우스가 검은 바위에 꽁꽁 묶여 있고 그의 간을 독수리가 뽀족한 부리로 쪼아먹는 광경이 보였다, 


무심하게 지나가던 구름이 갑자기 내려 앉는가 싶더니 거대한 카즈벡산을 씩 지워 버렸다. 원래 그런 산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충분히 보여줬다는 듯... 


꿈결인지 현실인지 헷갈려 일단 다시 더 잠.


8시 반에 나와 H의 방문을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다.

혹시 아침 산책 나갔나 ? 싶어 호텔 현관문을 흔들어 봤는데 굳게 잠겨 있었다. 식당으로 내려와 보니 H가 먼저 와 있었다,


전기포트에 물 데워 커피에 꿀 한스푼


 

어제 트레킹이 무리였는지 아침에 현주 얼굴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선배가 시킨다고, 꿀과 통조림 들고 포즈를 취해 주는 착한 후배. " 통조림 좀 더 돌려봐. 상호가 안 보여 "


8시 57분이 넘어 가는데 아무도 안 나타났다. 이것들이 아침을 굶길 모양이네 ...

갑자기 계단을 부리나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곱상하게 생긴 아줌마가 허겁지겁 식당으로 들어와 ' 미안하다' 고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가 괜찮다고 하자 얼른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잼을 두 종류나 내왔고 닭구이 대신 우유가 한단지 나왔다

계란후라이가 Sunny side up 이라 현주가 못 먹길래 ' 가져가서 아줌마에게 좀 더 익혀 달래라' 고 시켰다. 말이 안통하는 조지아아줌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현주가 걱정해서, 손바닥 뒤집는 시늉을 했더니 가서 '엎어라 제처라' 몇번 했나보다. 

잠시후 Over hard 된 후라이 한 접시가 배달됐고 현주가 맛있게 먹었다,


' 나중에 청솔 사람들하고 같이 오면 좋겠다 ' 수다를 떨며 즐거운 아침식사를 마쳤다


오늘은 트루소 (Truso) 트레킹 하는 날.

비상으로 준비해 온 LG 폰 네비를 작동시키고 신나게 또 하루 출발,









사거리에서 갈림길을 놓치는 바람에 다시 유턴해 찾아가는데 뒤따라오던 차도 내 전철을 고대로 따라하고 있다,


여기에 왠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었다,

케이블 카들이 빡빡한 구름속으로 쏙쏙 사라졌다





동네사원 공사중인 사람들.

세월아 네월아... 당신들 세대에서 완공을 보겠다는 의욕은 포기한 듯   


어제 주타와 같은 비포장길이지만 비 온후라 먼지가 안나서 좋았다,



길은 점점 거질어지고 물웅덩이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도 쉽지 않다, 풀밭 여기저기로 길들이 제멋대로 생기고 없어져 있었다

깊게 패인 곳에선 두 사람을 내리게 해서 무게를 줄이고 풀쪽으로 비스듬하게 지나간다.





인적 뜸한 흙길을 30분 정도 들어가자 드디어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동네 들어가기 진, 산 아래 빈터에 차를 댔다, 주타보다 훨씬 한적하고 주차비 받으러 오는 마을 주민도 없었다,



10시 50분,

두 여인 물수건까지 단단히 챙기고 용감하게 트레킹 출발.




여기서부턴 현주와 H의 시선




















계곡을 오를수록 양옆으로 산들은 장엄해지고 하늘은 맑고 걷기 평탄한 트레킹 코스







































코스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심 표시,













지금은 텅빈 Ketrisi 마을, 전쟁통에 피난갔는지 가축들만 보인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트레킹 코스.

SUV 도 진흙탕에 빠져 버렸다









돌아오는 길


이 좁은 산길에 덤프트럭들이 들이닥처서 사람들은 연신 위험한 길가로 밀려났다,

지나가던 짚차 한대가 '타고가라' 고 하는 걸 거절하고 계속 갔다.




트럭에게 길을 비켜 주느라 늦은 짚차가 뒤따라오다 또 ' 타고가라' 고 호의를 베풀었다,

마지못해 뒷자리에 타게 되었는데 차안엔 보드카 종류 술냄새가 풍기고 남자들이 맥주를 마시다 빈 캔을 창밖으로 던졌다.

두 남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조지아말을 크게 웃고 떠들어서 ' 납치 당하는거 아닌가 ? ' 겁이 덜컥 났다.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서 차를 타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무사히 두 여인을 내려주고 가는 짚차,





한편 나는  차안에서 한동안 주변 구경을 했다.

동네 할머니가 판자집 매점의 오픈 준비를 하는 모습이 멀찌기 보였다, 트루소 트레킹 코스의 유일한 편의시설임에 틀림없다



큰 트럭이 마을 뒤에서 비포장길을 뒤뚱거리며 나온다. 뒤 화물칸에도 남자들이 몇명 앉아 있었다, 내 차 앞을 지나갈때 별 생각없이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트럭이 가다 말고 멈춰섰다. 조수석쪽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랑 눈이 마주쳤다. 화물칸에 탄 남자들의 시선이 차를 멈추게 원인 제공을 한 나에게 일제히 꽂혔다. 조수석에서 카키색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순간 머리속에서 삐뽀 ! 경보음이 울렸다 ' 좆됐다 '


30 m 거리를 군인이 다가오는 동안 ' 카메라를 뺏기는 거 아닌가 ?  그동안 찍은 사진까지 다 지워야 되나 ? 연행되는 건가 ? 현주랑 H는 어떻게 만나지 ? ... ' 온갖 불안한 상상에 휩쓸렸다,

잔뜩 쫄은 얼굴로 창문을 내리자 군인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 Can you speak english ? " 내가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명령했다

" Delete photo ! "  

yes sorry 하며 그가 보는 앞에서 얼른 트럭사진 한장을 지웠다. 다행히 군인은 더 이상의 요구나 경고 없이 돌아갔고 트럭은 다시 덜컹거리며 제 갈길을 갔다, 트럭이 손톱만하게 멀어저셔야 긴장이 풀렸다.


이 주변 지도, 

가운데가 스테판츠민다 마을. 오른쪽 작은 사각형이 주타트레킹지역, 왼쪽 큰 사각형이 트루소트레킹지역. 산맥따라 실선으로 이은 것이 러시아와의 국경, 왼쪽 구석에 점선은 러시아가 무력으로 점령한 남오세티아 지역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기는 이 지역이 실제로는 두 나라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위험한 곳이었더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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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들의 무덤' 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간지가 철철 넘치는 이 호칭은 바로 캅카스 (코카서스)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페르시아의 옛 속담에 ' 왕이 미치면 캅카스로 전쟁하러 간다 '는 말이 있듯이 고대시대부터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 티무르제국, 오스만제국, 이슬람제국, 최근에는 독일의 히틀러까지 여기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러시아의 골치거리인 체첸공화국도 이곳에서 조지아랑 국경을 맞대고 있다. 땅도 사람도 氣가 어지간히 쎈가 보다.


" 어느 나라들이 조지아를 침략했냐 ? " 는 기자의 질문에

" 무기 있는 나라들은 다 처들어왔다 " 고 담담하게 인터뷰하는 토빌리시 시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산길을 따라 소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할머니가 매점에서 작대기를 들고 나와 소들을 들판으로 쫓았다





날이 좋아 나도 차를 잠그고 산책을 나왔다. 마을쪽으로 가보니 얉은 시냇물이 길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그냥 건너기엔 폭도 넓고 신발이 다 젖을 정도로 수량이 제법 됐다, 현주와 H는 잘 건너갔나 ? 


다시 돌아와 차를 타고 시냇물을 건너 마을 앞 공터에 주자했다,




Truso 트레킹 출발점


마을 뒷길, 아까 군용트럭이 나온 곳에 작은 푯말이 세워져 있길래 가까이 가 보았다

거기엔 「반경 1 km 이내에서 휴대폰, 드론, 사진, 비디오 촬영 금지」라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 살벌하다, 살벌해. 그럼 지금껏 찍은 것도 다 불법이었던거네 '  흙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군부대가 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판자 매점. 트레킹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커피와 간단한 음식을 팔고 있다.

소들이 이 풀밭에 들어올까봐 할머니가 그렇게 역정을 내셨구나,



좁은 마을길을 차들이 수시로 다녔다, 마침 차 두대가 서로 마주쳤길래 얼른 집 뒤 둔덕위로 올라가서 비켜주었다, 그래도 공간이 안 나오자 내려오던 동네 주민 SUV에서 한 남자가 나와 돌을 주워와 앞바퀴에 고이더니 후진해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제서야 관광객 차가 쭈욱 올라갈 수 있었다. SUV 짐칸에 실려가던 양 네댓마리가 뭔 일인가 창밖을 내다 보고 있다.


천변에 대리석 가공공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동네 집들









멀리서 봤을땐 집 몇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포근한 마을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었다.

어느 녹슨 대문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 잠시후 몸을 부르르 떤 다음 더 윗길로 향했다









마을끝까지 1시간정도 천천히 올라갔다 돌아 내려왔다.

노부부, 아이들 있는 가족 등... 길에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되었는데 인사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이후엔 사람들 오면 짐짓 외면하며 옆으로 피해주거나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남쪽에서 계곡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소 X




어제 주타에서 관광객 SUV 행렬을 봤는데 오늘 여기서 또 만났다,

드라이브에 맞는 코스가 있고 트레킹에 맞는 코스가 있다. 이 길은 천천히 걸으며 소똥도 밟고 소변도 보고 소소하게 사람들도 만나고 해야 제맛인데... 

레미콘, 덤프트럭, SUV, 양치기 차들을 받아내느라 동네 뒷길이 고생하네, 


마을 다 내려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1시 10분

작은 다리를 건너 공터에 차 세워놓은 곳까지 비비적거리며 죽으라고 왔는데도 비를 쫄딱 맞았다.


차문을 닫자마자 비가 더 심하게 쏟아졌다, 

등받이를 젖히고 물병을 베게삼아 낮잠을 청했다,


추워서 잠이 깼다.

군용트럭이 냇물을 건너 지나가고


맞은편에서 차 한대가 오다가 서로 멈췄다. 트럭에서 남자가 내려 자가용 운전수에게 가서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트럭 화물칸으로 올라가 헝겊끈으로 뭘 잡아 묶는 모습이 보였다, 긴 철제 안테나가 늘어져 옆 차선까지 뻗처 있었나보다. 그걸 모르고 큰 도로로 나갔다면 마주오던 차량들의 앞유리를 박살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폭우로 순식간에 시냇물이 불어났다. 벌써 차 바퀴가 반정도 잠길 정도였다, 더 불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데 현주와 H는 안오고...이러다 오늘 여기에 갇히는 거 아닌가 ?

비록 감방이라도 어젯밤 호텔이 그리워졌다.


' 현주와 H 는 소나기 피할 곳도 없을텐데, 비맞고 감기 걸리는거 아냐 ?  

어떻게 된 나라가 하루도 써바이벌 아닌 날이 없냐~ 한씨발 (1 : 30) '



1시간 가량 쏟아 붓던 비가 2시 10분에 딱 스탑되고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흐리다 갑자기 폭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이 트루소가 인생의 축소판이구만


차 한대가 내려오다 멈추는가 싶더니 현주와 H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 


두리번거리며 내 차를 찾길래 손 흔들어 ' 건너오지 말고 거기 있으라 ' 고 소리치고


시냇물의 얉은 곳을 찾아 얼른 건넜다,




차에 타자마자 ' 아까 비 엄청 쏟아졌는데 어떡했어 ? "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  우린 비 거의 안 왔는데 !? "

몇시간 산 탄 사람보다 차 안에서 기다린 사람 몰골이 갑자기 더 피곤해 보였다


보기보다 강인하고 운도 따라주는 5학년 두명을 태우고 돌아 나오는 길,

아까 마을에서 쫒겨났던 소들은 비가 오건 말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산의 돌들이 7중날 면도기처럼 날카롭게 서 있다







드디어 아스팔트길 위에 차를 올리자 큰 숙제를 끝낸 것처럼 내 속이 다 후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