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Caucasus가 진정한 원더랜드

2019. 9. 5. 22:30Georgia 2019




울창한 숲과 깨끗한 강 풍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원시 그대로의 거친 자연속을 달린다

곳곳에 솟은 절벽들은 개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듯 위압적으로 으르렁댔다.





네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파란색 갈 지(之) 자가 화변에 거칠게 그어져 있었다.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드디어 무지막지한 산악도로에 진입했다.


오른편 절벽의 도로난간을 보니 Hair pin 커브가 얼마나 예리한지 알 수 있었다. 핸들을 더 꽉 쥐었다,


천천히 올라갔는데도 나보다 더 기어가는 차량행렬의 긴줄끝에 막혔다.

속도를 더 줄이고 절벽과 낭떠러지 사이 평균대만한 선 위를 위태위태하게 쫓아간다


두 여인은 험준한 산악과 낭떠러지가 눈앞에 들이닥치자 공포에 질려 외마디 괴성만 질러냈다.

안락한 버스차창에 기대 바깥 풍경을 감상하거나, 깜깜한 밤에 이동하느라 아무것도 안 보이거나, 아예 오는 내내 잠들었다면 이런 살벌한 서바이벌은 안 겪어도 됐을텐데...

한국에서 구굴지도로 열심히 노선을 눈에 익혔지만 납작한 모니터에선 고도차를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옆 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일 즈음에 비탈길 경사도 완만해졌다.

산 위는 약간 평평한 분지로 거기에 성당, 상점, 별장같은 건물들이 제법 들어선 큰 마을이 있었다. 변변한 마을 하나 없는 외진 산길만 수십km 계속 되다가 정작 산꼭데기에 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게 신기했다. 여긴 신들이 사는 세상이거나, 제크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 구름위의 마을임이 분명하다








더 신기한 건 조지아에서 가장 세련되고 모던한 건물들이 여기 다 모여 있더라는 거. 도로를 따라 중형급이상 호텔들이 족히 수십개 이상 건설중이었다. 아나누리나 구다우리 전망대는 자주 들었는데 정작 그 중간에 있는 여긴 누구도 말해 준 적이 없다. 모냐 ?





그 동네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파른 산악도로가 또 다시 시작되었고 수십대의 차들이 방구를 끼어대며 힘겹게 기어 오르고 있었다.

다 올라온 줄 알았는데 아직도 더 오를 곳이 남았나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구름이 꽉 끼어 가시거리가 떨어지고,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찬 외부기온으로 앞유리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와이퍼, 에어컨, 히터, 창문을 번갈아 작동시키며 운전하려니 피로가 급격히 쌓여갔다


흐릿한 전방에 눈에 익은 조형물이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구다우리 전망대 (Gudauri observatory)였다,

들렸다 가고 싶어도 날이 금방 어두워질꺼고, 차가운 비바람에 나갈 엄두가 안나 그냥 지나쳤다



사방으로 분명 또 산이 솟아 있는데 구름에 가려서 도대체 얼마나 높은지 가늠조차 안된다

힘겹게 올라간 산위에 넓은 분지 그리고 그 위에 또 높은 산,.. 코카서스 맛뵈기가 이정도인데 최고봉들은 우리를 얼마나 죽여 놓을랑가 ?




제대로 큰 나무 하나 안 박힌 산. 

9월인데도 골짜기엔 빙하같은 얼음이 히끗히끗 보였다


밤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이 서서히 고개를 숙이더니 드디어 내리막길이란걸 처음 만났다,



길옆으로 반원형 거대한 진흙 터널이 수 km 나란히 달리고 있어 ' 내가 지금 차선을 잘못 들어 역주행을 하고 있는건 아닌가 ? ' 걱정도 됐다,

이 가파른 산악도로가 겨울 폭설로 막혔을때 비상 통행로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도로 끄트머리에 길다란 건물이 있는가 싶더니


허걱 ! 대형 컨테이너 트럭이 쓰러져 있었다.

부딪친 것도 아니고 심하게 구르거나 부서진 것도 아닌데, 그냥 올라가다 힘들어서 잠시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코카서스를 정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저런 수십톤 트럭정도는 가베압게 쓰러트릴 정도로 기세가 등등한지 여실히 깨달았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지나가는 트럭들


내리막길도 수십분... 그리고 약간 평지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는 건물들











따각 ! 따각 ! 따각 !

말과 당나귀의 발굽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도로 끝, 허공에 거대하고 육중한 땅 덩어리가 불쑥 솟아 있다.

머리에 구름 왕관을 쓴 5천미터가 넘는 산들. 아니 신(God) 들. 코카서스 신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다.


얼마나 멋있는지 현주가 ' 사진좀 찍게 차좀 세워봐 ' 할 정도로 장관이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 넋을 잃고 바라본다. 

TV로 컴퓨터로 익히 보았던 풍경이지만 눈 앞에 실제로 펼처진 것은 완전히 다른 개체였다. 

압도감, 아우라가 수 킬로 떨어진 여기까지 뿜어져 나왔다 



다시 차에 올라 홀린듯 그 봉우리들만 바라보며 끌려간다.

도로 중간중간 아스팔트를 한뼘 깊이로 깎아 놓아서 매우 위험했다. 놀란 앞차들이 밟아대는 브레이크 후미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타이어가 터지고 휠이 깨지든지 뒤따라 오는 대형트럭에 종이장처럼 꾸겨지든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샤니 산을 배경으로 언덕위에 우뚝 선 성당.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처럼 맘이 놓였다,





"  어 ? 여기에 왜 Autobus 가 있지 ? "

마을을 지나가다 현주가 인터넷에서 본 카페를 발견하고 의아해 했다, 로터리 광장이 사람과 차들로 활기찼다. 두 여인을 놀래켜주려고 말없이 조금 더 들어가 어느 건물 앞에 멈췄다,

' 여기가 오늘의 호텔'  이라고 뻐기자 현주가 '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 ' 며 어리둥절, 좋아했다

험난하고 무섭고 장엄하고 신비로운 코카서스의 기세에 질려 있다가 오늘의 쉼터가 고산준봉 바로 아래에 둥지처럼 깃들어 있을 줄 예상 못한 것이었다. 해 떨어져 사방이 어슴푸레해지자 낯설고 쓸쓸했던 차에 따뜻하게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졌다


숙소 앞에 일렬주차하려고 후진하는데 차 밑에서 ' 우지근 !  ' 철판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차를 빼 공터에 대고 가 봤다, 뭔 용도인지 도로옆에 시멘트로 높은 턱을 만들어 놔서 머플러가 긁힌거 같다. 조지아도로는 밤에는 지뢰밭이다.


Hotel Kazbegi         GPS  42.660106, 44.642268


한칸 문을 밀고 들어가자 청년이 짐을 받아 아랫층으로 안내했다, Beqa는 얼굴이 잘 생긴 편인데 살이 약간 쪘고 영어를 전혀 못했다.

잠시후 주인으로 보이는 우아한 백인 중년여자가 나왔다. Deja. 

컴퓨터에서 예약서를 출력하더니 숙박비 720라리 (302,400원) 을 전부 현찰로 요구했다. 300 밖에 없다고 하자 내일 찾아줘도 된다며 근처 ATM 위치를 소상히 알려주었다



선심쓰듯 웰컴음료를 준대서 꼬낙을 고른후 옆칸으로 안내받았다.


프런트가 있던 Bar도, 여기 식당도 인테리어가 썰렁하고 횡해서 가뜩이나 추운데 더 웅쿠리게 만들었다.


꼬냑이라며 작은 유리 호롱병에 내왔는데 내 입엔 그냥 꼬량주.

러시아 야로슬라블에서 반했던 그 꼬냑맛이 아니다.


주변에 싼 민박집을 마다하고 일부러 비싼 이 호텔을 예약한건 그만큼 중간 기착지로서의 의미와 기대가 큰건데 객실에 와 보니.

화장실 변기 레버 고장. 창밖 전망도 별로고, 실내는 춥고, TV도 없고, Wi-Fi 도 잘 안 잡히고 ... 한국 모텔만도 못하다.

'3만원짜리 방이 그렇지 뭐...하며 자책했다. (H는 늦게 예약해 더 비싸게 지불했다)

현주가 화장실 고처달라고 Beqa를 불러 왔는데 해결책이, 물을 내릴때는 매번 변기 물통 무거운 도기뚜껑을 열고 플라스틱 레버를 눌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고장난 방을 준 거라고 생각하니 더 괘씸했다,


협탁위에 붉은 볼 조명은 가까이 보면 스프레이 페인트를 거칠게 뿌려 놓았다


조지아여행카페에서 카즈베기 동행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출국전에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했었다. 그게 내일이라서 연락을 취했는데 그쪽 인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내차 자리가 모잘라 어쩔수 없이 막판에 취소했다. 

H는 낮에 치킨케밥 먹고 체기가 있다 해서 소화제 환을 줬다, 여행에 잘 적응해주고 의도치 않은 돌발상황들도 잘 이해해줘서 고마울뿐이다.

시과 깎아 먹으며 10시 40분까지 수다떨다 자러 감,


너무 추워서 직원에게 라지에터를 켜 달라고 했더니 ' 비싸서 안된다. 이불을 더 가져다 준다 ' 고 했다,

파자마만 입고 있는데 Deja가 Beqa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라지에터를 만져 보더니 켜 준다고 했다. 당연한 건데도 오히려 감사했다

잠시후 차가운 라지에터 쇳덩어리가 슬슬 따스해졌다,


혹시 물라 문옆에 보조침대를 꺼내 펴 놨더니 현주가 그걸 라지에터 옆으로 끌어다 놓고 이불을 깔고 있다. 예전 터키 베르가마 숙소때 하던 버릇이 다시 도졌다. 

한결 따뜻해진 방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페인트 냄새때문에 잠이 깬 건 새벽 4시.

창문을 열려고 커튼을 걷자 맞은편 마트가 밤새 불을 켜 놓아 주변이 환하다.

고양이 한마리가 골목에서 나와 광장쪽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골목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숨죽이고 촛점을 맞춰보니 검은 당나귀가 길가 풀을 뜯어 먹으며 내려왔다,



신기해서 한참을 보고 있었더니 다시 골목위로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후 얼룩 당나귀를 데리고 나타났다.


사이좋게 풀을 뜯어 먹다가 검은 당나귀가


큰길쪽으로 갔는데...



얼룩당나귀가 한마리가 아니라 두마리였다. 당나귀 삼총사




내가 지금 꿈을 꾸나 ?  눈앞에 비현실적인 상황을 혼자 보기가 아깝지만 지금 현주를 깨울 수도 없고, 추워서 몸은 달달 떨리는데 카메라를 들이댄채 창문에 계속 매달려 있다,



한동안 동네를 활보하던 당나귀 세마리가 다시 골목위로 사라졌다


다시 텅빈 거리

산바람이 부나보다. 가로수 나뭇잎들이 일제히 바스락거렸다,




신나는 것이 가득한 곳, 아주 멋진 곳, 동화의 나라를 원더랜드라 하지. 조지아가 Original Wonderland 다. 


내일은 또 얼마나 날 놀래키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