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천국을 거닐다, Juta 트레킹

2019. 9. 6. 10:07Georgia 2019





한밤중 화장실에 간 현주가 ' 욕실에 불이 안들어 와 무섭다' 고 내 침대로 와서 잤다.


어디선가 매연이 자꾸 들어온다. 창문을 닫으면 페인트냄새, 열면 매연

골목에 차가 다니기 시작해서 그런가 ?  옆 건물 굴뚝가스인가 ?  뭐 하나 맘에 드는게 없네. 


" 와~우와 ! "

환호성에 실눈을 떠보니 날은 환하게 밝았고 현주가 서쪽 창에 기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어젯밤 달타냥 세마리에 홀려 잠을 설쳤더니 절경이고 뭐고 난 더 자는 걸로...


서쪽 창밖 풍경



오른편 해골바가지 같은 허연 봉우리가 Mt Kazbek (5,037 m) 정상

왼편 검은 산위에 두 건물은 게르게티 수도원 (츠민다사메바 성당)


현주는 아침 산책 하러 나가려는데 호텔 현관문이 잠겨 있었다, 한층 내려와 식당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나가긴 했는데 주차장 팬스에 이렇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서 투덜대며 돌아왔다 


만약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구 ... 이름만 호텔이지 관리나 서비스마인드가 민박집만도 못하다 


현주는 열리지도 않는 창문만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카즈베기 봉우리에 걸린 구름모양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간밤에 라지에터가 꺼졌다 켜졌다 했지만 다행히 아침까지 방안이 훈훈하다

8시에 내가 씻으러 들어갔을때는 욕실 전등이 들어왔다. 전기세 아낄려고 이런것까지 원격조종하는 건가 ?


아침 먹으러 나오다 복도에서 Baqa 와 마주쳤다.

' 현관문이 아침에 잠겼더라. 어떻게 열고 나가야 되냐 ? ' 물어보는데 장승에 대고 말하는 줄... 


뒷마당에 허름한 판넬집이 주방겸 직원 휴게소



아무도 없어 썰렁한 식당. 창가에 자리를 잡자 Beqa가 아침상을 차렸는데 ... 차디찬 빵 몇조각에 꿀도 아닌 잼 한종지.

조식 뷔페를 기대하고 호텔을 예약했는데... 너무 짜증 나 상을 엎을려고 하는 순간


뒷마당 주방에서 Beqa 가 접시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소시지 구이다.

반가워 얼른 집어 먹었는데 짜.

짜서 상을 엎으려는데...


이번엔 계란 세개를 부처왔다.

내가 계란을 좋아해 얼른 한 조각을 뜯었는데 이건 후라이가 아니라 튀김이다. 흰자위는 검게 탔고 노른자는 건들면 톡 터질 정도로 안 익었다. 현주가 비리다고 아예 손을 안 대길래... 승질나서 상을 엎으려고 두 손을 짚고 일어나는데


이번엔 닭고기를 구워왔다,

굽네인줄 알고 허겁지겁 하나 먹었는데 퍽퍽해. 목 마쳐서 상 밑에 두 손을 밀어 넣었더니


이번엔 빵을 리필해 주고 갔다.


Hot food 를 준다더니 뭐 성엔 안 차도 약속은 지킨거라 상은 그대로 뒀다. 트레킹중에 만나는 개나 주려고 남은 치킨을 몇개 냅킨에 싸서 일어났다. 방에 와 손에 묻은 달걀 노른자를 닦고 외출 준비물을 가볍게 챙겼다


날씨가 너무 환상적이다.

코카서스산맥은 동서로 여러 나라에 걸쳐 있고, 카즈벡이란 큰 산이 있는 이 지역은 카즈베기라고 부른다. 카즈베기를 즐기는 여러 방법중에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오늘은 Juta를 내일은 Truso를 정복할 예정이다. 이 동네 이름은 스테판츠민다 (Stepantsminda)


어젯밤 내 차를 긁었던 곳을 가보았다. 도롯가에 꼬부기 등처럼 불룩하게 콘크리트 덩어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용도는 딱 하나, 눈 먼차 골탕먹이기


차 밑을 꼼꼼히 들여다봤는데 다행히 부서진 곳은 없어 보였다. 

차 시동도 잘 걸림, 


차 세워놨던 공터 옆. 아침부터 공사가 한창인데 왠지 일하는 게 어설퍼 보임


두 Trekker 는 옆 마트가서 생수와 음료수를 사왔다.


주타벨리 (Juta valley) 까지는 20 km

스테판츠민다를 나와 어제 저녁 온 길을 따라가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섰다. 마주오던 차가 멈추더니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조지아가 이런 나라가 아닌데 ...?  약간 놀라서 고맙다고 손인사 해주고 얼른 핸들을 꺾었다.


한적한 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조그만 동네를 통과하자마자 이내 오프로드가 시작됐다.

먼지때문에 차창이 바로 지저분해졌다








둔덕위에 옛 스타일의 집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인적이 안 느껴졌다 





빨간 차 한대가 우리랑 평행하게 달린다. 네비엔 없는 그 길이 더 좋아보였다. 주변지형을 훤히 알고 있는 주민인듯...



이 길을 무거운 짐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양놈들, 징허요~




산 사이 평지길이 이제부터 하늘로 향하기 시작했다.

계곡사이로 사라진 길끝을 더듬으며 ' 계속 가도 되는 걸까 ?  우리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 ' 걱정이 들었다







자잘한 돌과 모래가 깔려있어 미끄러운데 절벽쪽으로 약간 기울기까지 한 산길, 그 아랜 천길 낭떠러지


산쪽으로 최대한 붙어 가는데 마침 내려오는 차 길 비켜 주느라 계곡쪽으로 밀려가게 되었다.

현주가 창밖으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다 ' 이대로 떨어져 죽는 건가... '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조지아 카즈베기 주타 트레킹 여행기를 찾아보면 모두 '멋있다, 좋다' 라고만 하지 단 한줄 ' 이런 험로를 거쳐가야 한다' 고 알려준 인간이 한명도 없었다. ' 너도 당해봐라' 이건가 ?  그럼 나도 한마디 해야지

" 주타, 대박 !  드루와, 드루와~ "

굴러 떨어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의 8분 능선쯤 올라오자 비탈진 산등성이에 점점히 박힌 집들이 보였다,



뭐 먹을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 올라와 사는 건가 ?




10시 50분, 주타 마을 도착

초입 손바닥만한 공터에 트럭과 소형차 몇대가 세워져 있어 그 틈에 차를 대려는데 마을 안쪽에서 아저씨가 손짓하며 불렀다.

차를 몰고 가자 ' 안에 좋은 자리가 있다 ' 며 냇가옆 공터를 안내했다. 아저씨가 음흉해 보이긴 했지만 여기가 더 넓고 차들도 많긴했다.


간단하고 막연하고 두루뭉실하게 만날 약속을 한 후 두 여인은 용감하게 산을 향해 트레킹을 떠났다.


이하 주타트레킹 주변 풍경




주차장 공터를 나서는 내가 찍혔다

]







차로 올라왔던 길.


트레킹 초반은 경사가 심한 계단이 이어져 힘들지만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오르면 그 이후로는 평탄해서 걷기가 수월했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여기, 천국을 거니는 기분
































































































한편 나는 두 후배를 걱정속에 올려 보내고 차에서 나와 마을을 둘러보았다


집들이 대부분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빙하가 녹은 물이 거칠게 흘러가고 있고 그 위에 카페가 오픈공사중. 방문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게 보였다




전망 좋은 계단에 앉아 높은 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11시 20분쯤. 동양인 세명이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오늘 만나기로 했던 일행들인 것 같다. 여행 카페글만 보면 조지아에서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실상은 트빌리시에서나 몇 분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 동양인들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동네 청년들이 말을 타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승마 트레킹 푯말을 본 기억이 나서 얼른 일어나 마을 입구쪽으로 향했다. 경사진 곳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 걱정도 됐지만 현주랑 H를 놀래켜 줄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신이 났다.


주차장 맞은편 마당에 트럭이 들어와 있고 임시 장이 열렸다, 트레커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주민들이 물품들을 대량으로 떼서 말에 싣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지금은 말들이 짐 실어 나르느라 바빠서 내 차례가 안 올거 같다,


작은 호텔 양지바른 뒷마당에 카페가 있다. 독일인 노부부가 파라솔에 앉아 차를 마시길래 나도 몸이나 녹일겸 그리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추워서 실내로 들어와 스프 (8라리)와 빵 (2라리)을 주문했다. 총 4,200원

음식을 주문해야 화장실을 쓸 수 있다


아줌마가 맛있대서 시킨 스프인데... 미리 만들어 놨는지 다 식은 걸 내줬다,


실내엔 인도인 가족, 아랍인 커플, 나 이렇게 세 테이블이 뚝뚝 떨어져 앉아 조용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중장년 백인 단체 관광객들이 들이닥쳤다. 엉덩이가 큰 체형과 시끄러운 스페인어로 봐서 남미사람들인거 같다.

가이드인 중년 남자와 젋은 여자가 레스토랑 안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화장실을 쓰는 문제와 메뉴 주문문제로 약간 언성이 높아지더니 이내 의견일치를 봤는지 표정들이 밝아졌다. 

화장실 앞에 긴 줄이 보기 흉하자 레스토랑 안주인이 밖에서 줄을 서라고 쫓아냈다. 단체는 대우도 못 받고 도매금. 


빵을 스프 찍어 다 먹고도, 화장실을 다녀와도, TV를 봐도, 아줌마들 엉덩이를 힐끗거려도... 춥고 심심하고 시간도 안 가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택시


오전내내 앉아 있던 계단 그 자리에 다시 쪼그려 앉아 일행들이 사라진 산길을 주인 기다리는 개마냥 하염없이 바라본다.

멀리서 옷 색깔이 나플거리는데 왠지 핏줄이 땡겼다. 점점 가까워지자 진짜 현주랑 H가 무사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한만큼 반가웠다.


3시간 10분만에 주타트레킹을 완주한 두 한국 아줌마의 무용담을 들으며 차를 빼서 나오려는데 아저씨가 다가와 여지없이 손을 내밀었다. 

주차비 5라리 (2,100원).

사전고지 안하고 사후청구하는 저 자본주의적 발상의 극치를 여기서 본다. 누가 여기 트레킹코스를 서방에 알리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주민들은 그에게 평생 감사해야 할 듯. 오지 산마을이 돈버략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