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4. 09:00ㆍGeorgia 2019
크기는 딱 관 사이즈. 사과궤짝 위에 지푸라기를 깐 것 같은 침대. 몸을 이불로 칭칭 말고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 " 웅~ "하는 소리에 깨버렸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검은 비가 홀겹 창을 밤새 두드리고 새벽녁엔 닭이 굳세게 울어대서 자는 걸 포기했다.
7시.
평소 같으면 시간 확인하고 다시 잘 타임이지만 위장에 남아 있는 어제 저녁의 잔반을 얼른 비워줘야 조식 맛이라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억지로 나갈 채비를 했다.
현관 복도에 부킹닷컴 인증 만족도 9.8 점수표가 세개나 붙어 있다.
엄청 대단한 점수인데 저 숫자를 획득 유지하기 위해 주인장 부부가 얼마나 간쓸개를 다 빼놨을까 ? 그 생각부터 들었다.
많은 숙박업 사장들이 Booking.com 의 현대판 노예가 되어 버렸다
현주는 먼저 횅~ 나가 버리고, 난 잠이 덜 깬 육신을 지팡이에 의지한채 힘겹게 현관문을 밀었다.
숙소 옆 3층 건물의 뒷모습.
문짝이 사라진 뒷문에서
청년과 개가 덜렁덜렁 나왔다. 둘 몸무게가 비슷해 보였다
개가 바로 풀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뒷다리를 들고 오줌을 갈기는데... 그 소리가 타우포 폭포처럼 우렁찼다.
하루치 방광을 다 비운 개가 청년을 끌고 동네 순시를 나섰다.몸놀림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경찰서 뒤 공터를 거니는데, 짙은 안개가 산아래에서 골짜기를 타고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그속도가 의외로 빨라 몇분 사이에 마을 집 한두채가 흐릿하게 사라졌다.
사린 (Sarin) 가스처럼 무서워서 얼른 계단을 올라갔다.
바께쓰를 든 남자가 적막한 동네를 깨우고 지나간다.
반대편 계곡에서도 안개가 스물스물 올라오더니 고개에서 서로 엉켜 더 진해저 버렸다.
안개속에서 Zipline 쇠줄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혼자 광장쪽으로 가다가 혼자 광장을 배회하는 (닭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칠면조를 만났다,
그런데 나를 보고도 피하기는 커녕 수상한 외지인 보듯 내 주변을 배회했다.
또 다른 남자가 큰 개랑 지나가는데 신기하게도 개와 칠면조가 서로를 겁내거나 위협하지 않더라는 거.
이 마을에 사는 동물들은 종을 초월해 이웃사촌간 정이 있었다
광장앞 2층 건물 계단위에 동네 개들이 한두마리씩 모여 들었다.
하품을 쩍~하는 놈, 앞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폈는 놈, 괜히 옆 개에게 앵기는 놈... 잠시후 쪽 수 만춰 조기축구라도 할 기세다.
시그나기의 진정한 터줏대감은 개들이다.
반면 휴먼들은 8시가 되어서야 슬슬 집밖으로 나왔다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트럭 밑에서 안개에 젖은 털을 고르고 있다,
한편 현주는 동네를 좀 멀리 돌아
인생풍경을 발견했다
내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때
현주도 동시에 도착했다. 광장에 청동기마상 구경 보내고
H 도 혼자 아침 산책을 즐기고 돌아왔다
크고 작은 동네 개들이 어느새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혀를 차는 소리를 내면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H에게 현주 간 곳을 알려주고 가보라고 보냈다,
갈비뼈가 드러난 개가 2층으로 올라갔다가 고양이에게 쫓겨났다
고양이가 떠난 걸 확인후 그 개가 또 2층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쫓겨 났다. 이번엔 게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침 먹으러 2층 베란다로 올라가자 개가 눈치를 보며 따라오다 또 게라리에게 쫓겨났다. 어지간히 배가 고픈가보다
이 빵을 훔쳐 먹으려고 했나보다.
안개가 산위로 몰려가자 마을이 뽀얗게 모습을 드러내고 아침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 세사람을 위한 아침상이 벌써 준비되었다
현주가 돌아오자 푸짐하고 두텁게 부친 계란후라이와 따뜻하게 데운 소시지 6개가 나왔다
커피 포트를 놓고 가라고 해도 계라리가 '물 식는다' 고 연신 데워 와 찻잔을 채워주었다. 서비스만으로는 5성 호텔 컨시어지 못지 않았다.
토마토에 설탕 뿌리고, 빵에 끌 바르고, 커피에 꿀을 한 스푼 넣어 마셨더니 아주 달달해져 버렸다.
이번 여행에서 먹을 것은 풍족
늦가을 녹음에 산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났다. 가을에 단풍들면 또 얼마나 예쁠까 ...현주랑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타마라는 이 집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고 계나리는 5km 떨어진 옆동네 출신이라고. 이 집에 민박집을 차린건 4년 됐다고 한다.
내가 개나리(게라리)에게 타마라를 만나 ' 럭키맨 ' 이라고 했더니 지기는 일 만하는 ' 알바생' 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게라리가 부엌에 가서 양주 병을 들고 와 또 그 특유의 제스처를 취했다
" 챠~ 챠 ! "
아침이라 사양했다.
H가 안 와서 걱정했는데 한참만에 돌아와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9시 넘어까지 수다를 떨고 빨랫거리를 가져다 세탁기를 돌렸다. 삼성세탁기 사용법을 타마라에게 배워야 했다,
다른 숙박객들도 아침상을 받고 있다.
' 빨래를 어디다 널어야 되나 ' 타마라에게 물어보니 석류나무 옆에 빨래줄을 알려 주었다. 밑으로 안 떨어지게 집개를 넉넉히 물려 널었다
석류
방에 와서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살짝 설레는 기분으로 나와 차 시동을 거는데... 안 걸린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오는 걸로 봐서 방전된 건 아닌데 모터나 엔진소리 하나 없이 조용. 고장났다고 Beka가 여기까지 와 차 바꿔 줄리도 없고, 우리가 현대자동차 블루핸즈를 찾아갈 능력도 안되고... 큰 걱정이다.
어제 게라리가 차를 옮겨 댈때 뭘 잘못 건드렸나 ? 어제 주행중 계기판이 이상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
연신 키를 비틀자 세번째 시도에서 시동이 걸렸다. 불안해서 시동을 끄고 다시 키를 돌리자 이번엔 바로 걸렸다,
차를 움직일 수는 있으니 일단 출발을 했다. 시청광장쪽으로 올라가 마을을 타고 넘어갔다
오전에 시그나기는 비왔다. 갰다. 흐렸다. 맑았다... 날씨만큼 내 기분도 변덕스러워졌다.
성곽을 따라 북쪽 성문으로 나왔더니 전망이 좋은 공터가 보였다,
개 한마리가 쫄레쫄레 다가와 차 바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민가들이 산아래에 목화솜처럼 피어 있다.
그 뒤로 조지아의 동쪽 비옥한 땅, 와인으로 유명한 카헤티 (kakheti) 평야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두 후배는 마냥 즐거운데 난 차가 계속 신경 쓰였다. 대충 전망 감상하고 다시 차에 올라 조심스레 키를 돌렸다.
' 푸득, 푸드득 ~ ' 풀숲에서 까투리 날라가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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