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생 힝칼리, SHIO's restaurant

2019. 9. 3. 21:00Georgia 2019





산꼭데기 마을을 다 본거 같은데 네비는 시그나기 (Signagi)가 이직 멀었다고 한다.

한적한 산길을 휘감아 돌다가 갑자기 눈앞에 천공의 성이 짠 !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홀린듯 차를 멈추고 할 말을 잃은 채 건너편을 바라 본다.

Signagi ... 시그나기가 나를, 우리를 놀래켰다 


원래는 트빌리시에 묵으며 한나절 갔다 올려고 한 곳이었다.

H가 합유하는 바람에 이틀을 시그나기에 배정한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니터를 통해 보는 시그나기는 나의 호기심을 끌지 못했다. 보는 방식이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바뀐 정도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앞에서 아우라를 풍기는 저 마을은 내 뇌속에 학습되었던 시그나기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이 시그나기를 외치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겠다. 그들도  나처럼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이 사진으로 시그나기를 보여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시그나기가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있는 마을이었다면 별로 특별하지 않다. 터키, 체코엔 이 마을보다 더 멋진 곳도 있다.

그런데 여기가 감동스런 이유중 하나는 그동안의 여정에 있다고 본다, 낡고 가난한 조지아만 보다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난 (깔끔하고 세련되고 부유해보이기까지 하는) 시그나기는 여행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물했다.



어느정도 눈이 순응하자 노점상 아줌마가 보였다.

" 조지안 스니커즈, 조지안 스니커즈 ! " 라며 손짓을 하는데 미안하게도 조금전 먹은 추르첼라가 아직 소화도 안됐다.


차에 올라타 조금 더 가면 전망좋은 명당자리에 카페가 있고 솨줄로 골짜기 건너 마을까지 Zip 라인을 연결해 놓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파라솔 아래에서 편안하게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도 저기 앉을까 ? 잠깐 고민했다가 얼른 시그나기의 품속으로 달려갔다


시그나기 초입




가파른 돌길을 내려오자 이 마을의 중심광장에 닿았다. 네비가 가리키는 골목 앞을 택시들이 어수선하게 막고 있다. 기사에게 " Elegance ~? " 라고 숙소 이름을 묻자 친절하게 뒷편을 가리켰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현주와 H를 먼저 숙소로 보냈다. 

잠시후 속알머리가 없는 중년남자가 나와 자기 차를 빼고 내 차를 그 곳에 대게 해 주고 짐들을 불끈 들어 안으로 옮겨 주었다,




Elegance    GPS   41.618050, 45.921007


현관문 바로 옆이 우리 방. 게스트하우스라서 큰 기대를 안했지만 막상보니 그저 그랬다.


주인장이 우리를 뒷마당 베란다(veranda)로 안내했다.


남쪽으로 처진 비닐 커튼을 걷자 찬란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마당은 여름을 난 유실수들의 종합과일선물세트였다. 

알알이 탐스런 포도를 보자 ' 맘대로 따 먹으라 '고 주인장이 선심쓰듯 말했다


수줍어 하는 여주인 ' 타마라'


주인장 ' 게라리 '를 보자마자 우리 셋은 동시에 재용이를 떠올렸다


주인내외가 우리를 테이블에 앉히더니 수박, 포도, 조지안 와인에 보드카...커피까지 모든 종류의 웰컴드링크를 내왔다







와인의 종주국이라는 조지아산 포도주





설탕보다 더 단 수박


주는대로 넙죽넙죽 잘 먹자 게라리가 안에 들어가 양주를 한병 가져왔다.

차차 (Chacha).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찌거기로 만든 양주인데 'Georgian vodka '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가정에서 만든건 65도에 육박한다.

술을 권하는 게라리의 제스처가 압권이었다.

엄지검지로 앞 사람 젖꼭지를 꽉꽉 누르는 듯한 동작을 하며 음흉한 미소와 느끼한 목소리로 " 챠 ! 챠~ "

게라리가 술잔을 들고 외쳤다 " 건배 "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같은 쑥맥 한국인은 게라리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걸.


내일 일정을 묻길래 조사해 간 와이너리를 불러줬더니, 지도를 가져와 Twin's 는 비추하고 Shumi 는 멀고 어디는 레스토랑이 좋고... 생생정보를 알려 주었다,


6시까지 환대를 즐긴후 방에 와 살짝 잠이 들었다,

10 여분후 H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뒷집도 게스트하우스인데 젊은 한국인들이 7명이나 들어가고 있다. 숙소 주인장들에게 우리들은 그냥 " 코리아 " 로 통칭했다.



현주와 H는 동네 둘러보고 광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중앙광장으로 나오자 택시기사들이 달라붙어 호객을 한다.

한 남자에게 SHIO's restaurant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윗동네를 가리켰다.








현주가 찍어온 동네 모습












난 주변 상가들을 둘러보았다


비가 한두방을 떨어졌다.

마음이 급해 윗동네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다행히 내려오고 있는 현주와 H를 만났다. 


윗마을 시청앞 광장.


근처를 둘러봐도 우리가 찾으려는 간판이 안보였다. 대략 이쯤이겠다 싶은 곳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여주인이 나와 우리를 맞았다

여주인에게 식당이름을 물어보니 우리가 찾는 곳이 맞았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차분하고 고급스런 실내





전통 조지안 음식을 골고루 시켰다.

버섯 요리를 주문하며 조지아어로 " 마릴리 아라 " 라 했더니 여주인이 알아 들었다는 듯 영어로 " No salt " 라 해서 머쓱해졌다




모든 음식이 다 맛있고 양도 푸짐했다



조지안 만두인 힝칼리. 

그린, 치즈 두 종류를 조금씩 시켜봤는데 그린 힝칼리는 조지아여행중 가장 맛있게 먹은 집이었다. 치즈 힝칼리는 조금 짰다.


갑자기 골목에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번개가 치더니 ... 전기가 나가버렸다, 


가뜩이나 창문하나 없이 안으로 깊은 식당이 순식간에 암흑 동굴이 되어 버렸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의 정전이 기억난 현주가 신이 났다.

" 오늘 손님 다 받았네 "

" 밥먹고 야번도주해도 모르겠네 " 


우리는 철딱서니 없이 촐랑대고 있는데, 여주인은 일상다반사인양 느긋하게 와 초에 불을 밝혀줘서 분위기가 더 근사해졌다.



동굴에 서양 노부부들이 단체로 들이닥쳤다. 예약을 해놔서 어쩔 수 없었나보다.

촛불에 의지해 메뉴판을 보는것 부터 저녁만찬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었다




H 에게 " 이번 여행 믿고 따라와줘서 고맙다 " 고 했다.


내가 늦게 주문한 오자후리 (감자, 돼지고기, 양파를 올리브오일과 화이트와인으로 끓여서 만든 요리, 한국 갈비찜과 비슷)

간간하니 우리 입맛에 맞았는데 배가 불러 남겼다,

큰 개 한마리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갈비뼈를 줬더니 잠시후 여주인이 와서 개를 쫓아냈다,


세금포함 총 51 라리 (21,420 원) 세명이 음료수에 각자 메뉴를 시켰는데도 진짜 저렴했다.

카드 안된다고 해서 현찰내고 동전 수북히 받음.


남은 오차후리를 싸가려고 Doggy bag 을 달라고 했더니 주인여자가 잠시 머뭇거리다 포장비로 2 라리(840원)을 요구했다.

진짜로 개 줄거라서 그냥 냅킨에 둘둘 말아 나왔다.


식당을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동네 깡패 세마리가 일제히 H에게 달려들어 낑낑댔다






날씨가 변화무쌍. 산위의 밤바람이 쌀쌀하다

어느새 비구름이 걷힌 밤하늘에 매끈한 초승달이 떠있고 별들이 여기저기서 빤짝거렸다,



내리막길이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내가 비비적거리자 보다못한 현주가 어깨를 양보했다.

9월이면 시그나기가 아직 성수기일텐데 손님들이 일찍 끊겨 마을이 을씨년스러웠다.


무사히 숙소도착


샤워기에 따뜻한 물이 안 나와 당황했는데 냉온수 밸브가 바뀐거였음, TV는 무용지물, 건들지도 않았다

10시, 얼굴에 팩 붙인 현주는 ' 30분 후에 깨워' 한 마디 내뱉고 딸깍 ! 꿈나라로 떠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구사일생.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

조지아는 매일이 걱정이고 격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