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3. 15:00ㆍGeorgia 2019
명화가 흉내 내려는 풍경,
호수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사이다 바람
드라이브길이 얼핏 호주랑 비슷하다고 했더니 현주도 그 생각 했다고...
남자들이 띄엄띄엄 서서 무거운 예초기를 매고 들판에 풀을 베고 있다.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는 있었다.
변두리 동네를 지나 큰길에 진입했다. 트빌리시 서쪽 공항 근처였다,
램프를 돌아 고속화 도로에 진입했는데 갑자기 극심한 정체를 만났다. 엉금엉금 정체의 끝에 도달해보니 차선 세개를 하나로 무자비하게 줄여 놓았다. 한동안 도로 확장공사가 계속 되었다
그 구간을 벗어나자 다시 뻥 뚫림.
일반적으로 렌터카는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데 이 차는 첨 받을때부터 1/4 정도만 있어서 Beka가 반납할때 그 정도만 남기고 반납하라고 했다.
기름이 벌써 떨어졌다. 주유소 몇개를 지나처 SOCAR 란 주유소에 들어갔다,
창문을 열고 주유맨에게 호기롭게 " 만땅 ! " 을 외쳤다.
차 안에 불량감자 세자루에 놀란 할아버지가 ' 카드부터 보자 ' 고 했다. 50여년 살면서 기름 넣으라니 카드부터 보잔 놈은 첨 봤다.
체면을 구긴 채 Bev V 카드를 꺼내 바치자 -연회비 30만원짜리를- 대충 뒤집어 보더니 다시 돌려주고 그제서야 주유건을 꽂았다,
가득 채우고 70.6 라리 (29,652 원) 결재후 출발.
잠시후 게이지를 보니 10개 눈금중 8개 정도만 불이 들어왔다. 계기판이 고장인지, 할아버지가 기름을 아낀건지 ... 별게 다 신경쓰이게 한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길 양편 식당 야외화덕에선 하얀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식탁 둘레 삼삼오오 앉아 꼬치를 뜯고 있다,
황무지 벌판에 넓게 들어선 재래시장을 아쉬운 눈으로 지나치자 ...드디어 트빌리시 행정구역을 벗어난다.
" 잘 생긴 남자 한명 태워야 하는 거 아냐 ? 골라봐 ! 오늘은 히치하이커도 안 보이네~ 저 아저씨 어때 ? "
혼자 앉아 가고 있는 H를 위로한답시고 현주랑 농담을 하며 깔깔 댔다.
잠시후 백미러를 힐끗보니, 사바나 초원에서 먹잇감을 쫓느라 눈이 삘개진 하이에나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멀리 보이는 가쨔니 (Gachiani) 마을.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너른 들판에 낮게 쫘악 깔려 있다.
크다고 다 도시가 아니고 주민수에 비례해 체육관, 문화공연장, 대형쇼핑센터등의 기반시설들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저긴 집단 주거촌으로 밖엔 안 보였다. 그냥 같잖아 보였다
공동묘지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묘비는 공통적으로 검은 대리석에 생전의 얼굴을 음각으로 새겨 놓았는데 망자들이 우리를 빤히 처다보는 거 같아 으스스했다.
낡은 주유소를 지나자
갑자기 길이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무턱대고 진입하기엔 패이고 험해서 타이어가 빵구날 거 같은데 네비는 그 길이 맞다고 선을 그었다.
멈춰 망설이고 있으니 뒤에서 승합차 한대가 나타나 그 길로 진입했다. 최소한 차가 다닐 수는 있겠다 싶어 얼른 뒤따라갔다,
휠베이스가 좁은 엑센트는 전후좌우로 몸을 비틀어대고, 먼지는 수북히 일어나고 돌은 튀고 앞차는 벌써 사라지고 연약한 여자들은 입만 벌린채 할 말을 잃었다. 핸들을 꽉 쥐고 수 km를 가자 이번에 드럼통등으로 아예 길을 막아버았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밤에 비명횡사하기 딱 좋게 생겼다. 차 바닥으로 땅을 긁으며 옆으로 돌아갔다
다시 포장도로로 올라오긴 했지만 주변은 점점 삭막해져갔다
이쑤시개마냥 꽂혀 있는 전봇대들,
굴뚝 식어버린 거대한 공장들,
녹슬어가는 철 구조물,
여기저기 쌓여 있는 고철들... 이곳은 여행자가 올 곳이 아님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루스타비 (Rustavi) 라는 공장지대.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세 나라가 만나는 국경이다.
외곽에는 큰 공장들이 폐쇄 방치되어 있었다,
1922년 조지아가 러시아와 손잡고 소비에트 연방이 된 후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고 그 시절엔 큰 어려움 없이 먹고 살 만했다, 그러나 1991년 연방이 해체된 후 큰 시장이 없어지자 경쟁력이 없는 산업들은 지금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긴 소들도 엉치뼈가 보일 정도로 삐쩍 말라있다.
공장지대를 벗어난 도로는 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깊이 패인 구댕이들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연신 핸들을 돌려야 했다. 저 앞에 가고 있는 택시는 자기 나와바리인데도 나보다 더 소심하게 운전하고 있다. 잠시후 그 차를 천천히 추월하며 서로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기사의 환한 미소에 우리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벌판에 뜸금없이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트빌리시 벼룩시장에서 본 민화속에 호랑이랑 싸우는 남자를 시멘트로 대충 주물러 놓았다.
현주가 풀숲에서 여우를 봤다고 좋아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은 Lemshveniera
경찰서 앞을 조신하게 지나처 마을에 다다를 무렵 찌그러진 표지판이 나타났다.
수도원 그림을 보니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맞는 거 같다. 왼쪽으로 차를 돌리자.
지금까지 온 것보다 더 삭막한 길이 우리를 반겼다.
좁고 부서진 세멘길을 덜덜거리며 기어가고 있으니 현주가 옆에 흙길을 가리켰다.
차들이 많이 다녀 표면이 더 매끈해진 흙갈이 세멘길과 붙었다 떨어졌다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로 차를 빼자 비단위를 미끄러지듯 편안했다
산 잔등에 흰 돌로 글자를 써 놨는데 조지아어라서 문맹.
그 산을 향해 돌진한다.
거대한 파이프가 뱀처럼 지나가고
멀리선 낮아 보였는데, 차를 잠시 멈출 수도 없을 정도로 급경사가 계속되었다.
루스타비 공장지대 벌써 희미하게 멀어졌다
산아래엔 긴 막사가 늘어선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9부 능선까지 올라왔다, 산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휘어져 가속도를 낼 수 없는데 얼핏보니 아스팔트가 조금 남아 있는 왼편은 깊게 패인 구댕이가 세개나 도사리고 있다. 자갈이 깔린 오른편을 선택해 올라가는 순간...
차가 헛바퀴를 돌았다.
브레이크를 밟은채 기어를 L로 옮긴후 다시 차를 출발시켰지만 자잘한 돌과 모래때문에 타이어만 신음소리를 내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엑셀을 더 밟자 차가 좌우로 비틀거리면서 오히려 뒤로 밀렸다. 겁이 덜컥 났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은 상태로 멈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니 현주가 " 너무 위험하다. 가지 말자 " 고 말렸다. 혼자였거나 현주랑만 있었음 객기를 부렸을텐데 우리를 믿고 따라온 H를 위험에 빠트릴 순 없었다.
과감히 포기했다. 브레이크에서 살짝만 발을 떼면 후진기어가 아닌데도 차가 뒤로 밀렸다. 차가 데굴데굴 구르는 상상을 하며 핸들과 브레이크만으로 조심조심 거꾸로 내려왔다.
경사가 완만해진 지점까지 내려왔다.
아예 미련을 버리기 위해 전후진을 반복하며 차를 돌려 세웠다.
차에서 내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길도 험하지만 성인 세명에 트렁크까지 실려 있어 그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고물 SUV 한대가 아래에서 올라오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산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
황무지 산비탈에서 소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우리가 그 옆에 굴러 뒤집혀 있을 뻔 했다
차를 멈추자 현주와 H는 멀찌기 도망가 버렸다.
자기들 묘자리가 될 뻔한 곳에 서서 조용히 구사일생의 감회에 젖어 있었다.
제정신이 돌아와 차로 돌아오는 동반자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가려고 했던 곳은 다비드 가레지 (David gareji) 수도원이다. 6세기경에 세워진 조지아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데 우리에겐 황무지 위에 신기루로 남겨졌다.
아래 지도애서 빨간선은 트빌리시 호수에서 산정상 고갯길까지, 파란선은 가레지 수도원까지를 표시해 보았다.
<클릭하면 확대됨>
같은 길인데도 돌아올때는 덜 고통스러웠다
맞은편에서 군용트럭이 한대 오고 있다.
이 근처 마을 옆으로 국경이 지나가고 다비드 가레지 수도원 바로 뒤는 아제르바이잔이라서 주변에 군부대가 많다.
러시아,터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이웃을 둔 가난한 나라 조지아의 애환.
비포장도로를 피해 ㄷ 자로 옆동네를 지나간다
간선도로에 진입했는데 차들이 많아서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그 뒤를 따라 가는데 갑자기 모든 차들이 오른편 샛길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공동묘지로 향하는 장례식 행렬이었다. 네비 없었음 우리도 쫄레쭐레 따라 갈뻔,
이제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삼거리에서 트빌리시를 등지고 시그나기를 향해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비드 가레지가 있는 조지아 남쪽은 사막처럼 황무지 땅이었는데 지금 향하는 조지아 동부는 확실히 비옥한 평야지대다
길이 뻥 뚫렸는데도 많은 차들이 중앙선 침범, 무리하게 끼어들고 과속을 해댔다. 기름게이지는 벌써 반으로 줄어 있다.
H는 잠이 들었는지, 기절했는지 뒷자리가 조용하다.
한참을 달리자니 어느새 추르첼라(Churchela)를 파는 집들이 길가에 이어졌다.
쉬어갈겸 한 집앞에 차를 댔다
난 안 내리고 현주에게 동전을 다 긁어 줬는데
H가 칼을 들고 와서 돈을 더 강탈해갔다.
하나에 2 라리 (840원)라서 동전 몇개론 택도 없었다. 종류별로 세개를 샀다.
추르첼라가 ' 조지아의 스니커즈' 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서 꼭 먹어보라는데 내 취향이 아니여서 내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트빌리시 호텔 조식에서 한번 먹어보고 지금 또 먹어보니 의외로 중독성이 있었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한조각만 먹어도 든든하고 또 스니커즈보다 훨 싸고 화학성분들이 덜 들어간 건강식이다.
※ 와인 담그고 남은 포도찌꺼기에 밀가루 풀을 쑨 후에, 실에 꿴 견과류에 듬뿍 묻혀 굿히면 추르첼라가 된다.
추르첼라 한조각을 오물거리며 몇분 더 달리자 이번엔 수박파는 집들이 이어졌다
운전중에 차량 계기판의 모든 불이 순간적으로 들어왔다 꺼졌다. 예전에 운행중 시동이 꺼졌을때랑 똑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아까 산위에서 헛바퀴 도느라 차에 무리가 갔나 ? 아님 원래 전기계통에 문제가 있는 차인가 ?
마을 한복판을 지나가는데 개 한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비명을 지르며 급히 핸들을 꺾어 무사히 빠져 나왔다.
이후 현주가 옆자리에서 자꾸 웃길래 왜 그러냐니 ' 아까 개 놀란 표정이 생각나서... 다리는 이쪽 얼굴은 저쪽 ㅎㅎ ' 라며 또 웃었다.
그때 내 표정까지 봤으면 배꼽 빠졌을 껄 ?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난 한적한 도로로 차를 몰았다. 시그나기 가는 길.
이 동네 덩치 큰 깡패들
이 마을에선 주민보다 소들을 더 많이 봤다,
동네 끝 휘어져 나가는 길.
누가 부르는 거 같아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손짓했다
" 추르첼라, 허니~ "
' Honey '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을 할머니가 영어로 호객을 할 정도로 돈이 무섭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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