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우가 사라진 Lisi 호수엔 곰 세마리

2019. 9. 2. 12:47Georgia 2019





조지아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그런데... 춥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다,

9월초에 한국에서 조지아로 왔다는 건 타임머신을 타고 늦여름에서 늦가을로 한 계절을 점프했다는 의미.



주차장 구석탱이에 얌전히 매어 있는 흰색 엑센트

어젯밤엔 어두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끌고 왔는데 지금은 3충애서 내려다 봐도 앞뒤문짝 색깔이 다른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 너나 나나 달려온 날들의 상처가 이젠 지워지지 않을 나이가 됐구나...' 렌터카를 보고 짠하긴 또 첨이다.


H가 ' 밥 먹자' 고 9시 전에 다녀갔다고 한다. 어제 그렇게 피곤했을텐데 시차 때문에 일찍 깼나보다.

아침 먹으러 한층을 걸어 올라갔다,


' 너무 일찍 왔나 ? ' 아무도 없다. 머뭇거리고 서 있자 오른편 쪽문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자리를 안내했다.

대리석 바닥과 식탁, 중후한 갈색 의자와 커튼, 부담스런 벽지... 하나하나는 나무랄데 없는데 합쳐 놓으니 왠지 부담스러운 인테리어.


음식 종류가 다양하진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조지아의 유명한 추르첼라까지 갖춰져 있어서 엿부러 안 사먹어도 되겠네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지 않고 맛도 있었다. 조식이 만족스러우니 갑자기 이 호텔이 Lovely 해졌다.

단 하나 맘에 안 드는 건 시끄러운 음악.


우리 이후에 투숙객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들어왔는데 여자는 검은 부르카를 입고 니캅을 뒤집어 쓴채 눈만 빼꼼히 내놓았다, 기독교국가인 조지아에서 예상치 못한 복장이라 놀랐지만 이웃나라인 터키나 아제르바이잔은 국민의 90 % 이상이 이슬람이라서 바로 이해가 됐다


잠시후 H 가 나직이 말했다.

" 저렇게 입고 어떻게 밥을 먹나 궁금했는데, 먹을땐 천을 들추네 " 


배가 불러도 후식으로 복숭아까지 먹었다



방에 와 외출준비하고 11시전에 숙소를 나섰다,


조지아에서의 첫 일정은 Lisi 호수로 정했다.

볼 것 많은 시내 구경은 여행 후반에 다시 트빌리시에 오니까 그때로 미루고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도 트빌리시 북서쪽 다소 외진 곳에 얻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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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에 Lisi 호수 gps 좌표를 입력했는데 또 먹통이다. 지도로 대충 길을 익힌 후 호수근처로 차를 몰았다.


호수 입구를 놓친째 한참 더 가다가 유턴하여 숲속으로 난 진입로를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주차장이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고 주변엔 차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떡할까 ? 갈등하다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차 한대가 주차장 앞에 멈추자 주차장 안에 삐딱하게 주차되어 있던 BMW에서 껄렁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나와서 바리케이트를 올리고 입장료를 받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얼른 차 돌려 바리케이트 앞에 대자 껄렁 청년이 나와 주차비 3라리 (1,260원)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젊은 애가 좋은 차에 주차장 관리까지 하는 거보니 조지안 금수저 ? 


널널한 주차장.

사진 오른쪽에 검은 차에 금수저가 타고 있다,


두 여인은 먼저 산책 하라고 보내고 난 차 안에서 네비를 좀 더 주물럭거리다가 늦게 나왔다





분위기 포근하고 울창하고 수심이 깊은 호수를 상상했는데...

<인용사진>


<인용사진>


 막상 와 보니 작고 삭막한 풍경에 실망했다



여긴 산이 삐죽한게 아니라 비스듬한 일직선.


텅 빈 벤치에 홀로 앉아 Lisi 호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남자 두명이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뒤쪽 사무실 같은 곳에 자전거를 반납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옳다구나 싶어 나도 자전거를 빌리려고 그 사무실로 갔다, 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자전거를 빌릴 수 없다' 고 했다, 사무실 안을 힐끗보니 자전거 대여소가 아니라 공원 관리소였다능,


배가 쥐어 짜듯 아파왔다. 공터 너머에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혼자 계단공사를 하고 있는 남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나올때 보니 여자화장실 입구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현주와 H는 산책로를 따라 호수를 반바퀴 돌다 돌아왔다

아래는 현주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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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 니캅의 조합








다음날 호텔 프런트 여직원이 ...

' 수십년전까지 이 숲에 여우가 살았다. 러시아인들이 여우를 lisi 라고 불러서 이 호수의 이름이 유래됐다 ' 고 알려주었다.

※ 러시아어에서 lis 는 ' 여우들 ', 폴란드어에서 lisi 는 '여우의, 여우모피의, 교활한' 뜻이다.


여우가 사라진 호수에 지금은 붉은 곰세마리가 앉아 있다.



호수 주변을 조깅하는 사람들





" 여긴 산이 이래이래~ 생겼어 "








물 빠져 볼품없는 호숫가


길 한복판에 쌩뚱맞게 서 있는 간판. 카페는 아직 오픈 안함



" 동기사랑 ! 동기사랑 ! "






한편에선 남자 셋이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다


현주와 H가 화장실을 갔다 오더니 ' 할머니가 문앞에서 돈 받던데~? '  라고 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야.


주차장엔 아까보다 차들이 더 늘었다.

출구에 설치된 살벌한 톱니 . 발로 눌러보니 가볍게 속으로 쏙 들어갔다,


사내애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다 갑자기 픽 고꾸라졌다. 우리가 놀라 소리치자 창피한지 얼른 일어났다



호수를 내려와 호텔앞을 지나 시내를 향해 내려간다,

호텔이 위치한 윗동네는 비싸 보이고 큰 맨션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랫동네는 낡고 다닥다닥 붙어 사는 달동네다.


싸구려 비닐 화문석이 연상되는 아파트 외벽 무늬


한적한 강변도로.


올드타운이 가까워질수록 차가 밀렸다






황금지붕이 밝은 대낮에 샛별처럼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