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9. 14:08ㆍ국내여행
주말에 어디를 갈까 ? 고민하다 몇달전 산청으로 지리산을 넘으며 흘낏 본 청학동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하여 오늘 저녁때 묵을 방을 구하려니 청학동 팬션에 빈방이 당연히 없다.
혹시나 하여 검색 맨 끝에 "황토정" 이란 곳을 들어가보니
식당에서 운영하는 민박집인데 다행스럽게 방이 있었다.
3만원짜리 민박집이 얼마나 좋겠냐고 마누라에게 미리 너스레떨며 출발했다.
먼저 청학동,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적어보려한다.
가
영현이.
부산이 집인데 엄마 아빠가 맞벌이하느라 돌봐줄 수 없어 지리산자락 할머니네에 와서 학교다니고 있다.
3 학년인데도 할머니 식당일을 잘 도와준다.
" 영혀나~ 식탁에 백지 까라라 ! "
할머니 말씀에 군말 한마디 없이 방에 들어가 크고 흰 종이를 한장 가져다 식탁에 깔고 물수건과 수저도 잊지 않고 챙겨준다
사람이 그리운지 짱이랑 금방 친해졌다.
어른에게 " 네 ! " 대답 잘 하고 예의가 바른 아이다. 청학동 예절학교에서 잘 가르쳤구나 란 생각이 절로 둔다
사서소학을 떼고 있고 많은 반찬중에 열무김치국물이 젤 맛있단다
서당에서 배운걸 할머니 앞에서 음율을 넣어가며 암송하고 휴지한장에 한자를 또박또박 적는다.
글자 크기도 일정하고 부수 획수도 정확하여 보통 어른보다 훨씬 잘 쓴다. 한자 7급수 시험엔 떨어졌다
민박겸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
10살때 청학동에 들어와 1년 모자란 50년을 쭈욱 살고 계신다.
손녀딸 영현이에게 다른건 가르쳐줄 수 없고 한문하나는 잘 가르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당신도 어렸을때 서당공부를 하여 한문에 깊이가 느껴진다.
바깥어른은 일 나갔다고 하시는데 일박하는 동안에 뵙지는 못했다
양념한 오리불고기를 불판에 올려놓고 굽다가 버섯과 부추와 마늘을 듬뿍넣고 볶아낸다.
재료의 맛이 서로 뭉뚱그려지지 않게 불 끄는 시간이 절묘하다. 산나물 맛이 달다.
투박한 목소리와 첫 인상이 친근하진 않아 무서웠는데 알아갈수록... 내공이 대단하다.
나
산비탈을 내려가는데 길옆에 눈길을 끄는 일자 형태의 한옥이 의연하게 서있다.
차를 후진으로 다시 올라와서 둘러보는데 앞장 선 안사람이 놀란 얼굴로 날 부른다.
" 형 ! 할아버지가 오래 ! "
찬 마루바닥에 요를 깔고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있던 할아버지가 우렁찬 호령을 하신다.
"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 여기 앉아봐 ! " 쫄아서 문턱에 걸쳐 앉았다.
96세인 서, 계수나무 桂자, 얼굴 容자 (서계용) 쓰신다.
논산사는 아들이 오늘 올래나 문밖을 내다보며 기다리신다.
한문책들이 잔뜩 쌓여있다. 한권 청하니 손때가 거뭇한 '道德歌謠集' 을 건네 주신다
한문과 한글을 섞어 필사체로 적혀있는 복사본이다.
" 니가 뭘 알어 ~ 신체발모는 수지부몬데 내가 머리 기르라면 기를껴 ? "
날 개무시하신다. 대학교다닐때 나도 한문깨나 읽었는데 그냥 대꾸 한마디 없이 말씀을 경청했다.
젊을때 단식을 15일간 하며 他氣(외부의 기)를 받아 도인이 되었다고 하신다.
물도 안 먹고 본단식을 보름동안 했다는데 다 믿고 싶다. 내 짧은 세월로 이해할 수 없는건 내 책임이고...
그 연세에도 주먹이 내 두배고 손톱도 크고 광채가 나며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린다.
안검하수(눈꺼풀이 내려앉아 안구를 덮는 증상)가 있어 손으로 눈꺼풀을 집어 들어서 보곤 하신다.
나중에 민박집 아줌마 말씀으론
청학동에 김봉곤(TV에도 나오고 유명했던...) 아버지랑 이 분이랑 두사람이 유명한 도인이였다고 하신다.
한마디 잊지 않고 덧붙이며
" 나이가 드싱께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카데 ! "
한동안 붙잡혀 사회복지사 이야기, 자식 이야기, 경찰과 나라 이야기등을 듣고
현주에게 시켜 차 안에 초코파이랑 과자랑 참외를 갖다드렸더니, 노란 참외를 들고
" 동짓달에 영산강가에서 빨래하다가 이런 참외가 떠 올라, 먹고 회임을 하여 ..."
전설과 신화가 시작되어 얼른 인사드리고 나왔다.
다
아이들이 산길을 올라가다 자전거 체인이 빠졌다
체인캡을 씌운 자전거라서 고치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다.
" 내 차를 빼야 되는데.. 그냥 끌고 올라가지 ...'
조용히 상황종료 되길 기다리는데 세월아 네월아다.
자전거를 끌어다 길옆에 세워놓고 애들에게 막대기를 구해 오랬더니 하나같이 다 썩고 약해서 계속 부러진다.
쑥색 물들인 계량한복 입은 아이의 댕기머리가 특이하다.
" 니들 영현이 아니 ? " 안 사람이 애들에게 묻는다
" 네 ~ 예가 영현이 친척이구요, 얘는 같은 반이구요 ~ 근데 아저씨 자전거 고칠줄 아세요 ? "
나중에 영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앞에 댕기머리애는 ...남자란다 허걱 !
여기선 남자애들은 댕기머리를 땋아야 한다.
책끼고 산길을 내려오는 남자애와 눈길이 마주쳤다. 꾸벅 인사를 하길래 아는척 !
" 넌 왜 댕기머리 안 땄어 ? " 하니
" 기르는 중이예요 ! "
하며 가베얍게 대꾸하고 지 갈길 가더라.
다 고쳐주니
" 고맙습니다 ! "
하며 막 뛰어간다. 이 애들을 있다가 또 만나게 된다.
라
막내 짱이랑 영현이가 서로 떨어지기 싫어해서 둘이 아침밥 먹으라고 하고 청학동을 다 둘러봤다.
아침 일상을 경험하고 민박집에 내려가니 영현이가 서당을 가야 한단다. 우리는 집에 가야 하고...
근데 서당까지-지도상 가에서 라 지점까지- 1시간을 걸어가야 된단다. 데려다 준다고 다 태웠다
산속깊이 한참을 올라갔고 더 이상 차가 갈수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한참을 뛰어 올라가야 했다.
짱이랑 안사람과 영현이 세명의 바램은 하나였다
' 같이 서당가자 '
크기는 강아지인데 회임을 하여 배가 엄청 불러오는 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친다.
원래 청학동은 지도상 라,마 지역이였다.
세상에 알려지며 동네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고 새로운 마을도 생겼다고 한다.
미국의 아미쉬 마을처럼 전통과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전해 내려왔으면 더 좋았을껄.
서당에 들어가니 아까 자전거 타고 가던 애들도 보이고...
훈장님은 맘씨 좋은 선비님이시구...
여기 사는 아이들은 이 서당에서 무료로 수업을 받고 간식도 얻어먹고 국가에서는 이 서당에 보조를 해준다.
" 천고일월 ~지후초목생~ "
한자 급수가 높은 짱이는 시시한지 공부는 안하고 간식만 먹고있다.
최신학문과 효율성만이 세상을 지배하는건 아니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예절교육과 전통서당이 각광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
예의바름과 진지함과 고고함이 느껴진다.
마
헥헥대며 올라가니 평상에 앉아서 쉬었다 가라 하신다.
분홍색옷 입은 아주머니가 크게 썬 호박엿을 한웅큼 갖다주신다
' 혈당이 상한가쳐도 이건 먹어줘야 해 '
개가 나 먹는걸 물끄러미 처다보며 꼬리를 친다.
" 개한테 엿주지 마이소. 줘도 안 처먹어예 ~"
할머니와 며느리가 손주에게 온 전화를 번갈아가며 받는다
용인 민속촌 참 좋다는 말과, 둘째 손주보게 어여 터 팔으라는 대화가 내 귀로 넘나든다.
내가 볼땐 용인민속촌보다 어기 청학동이 몇배 더 좋던데...
" 어~서 왔으요 ? "
흰 말총머리 땡강 묶으신 어저씨가 서스럼없이 여쭤보신다.
" 수원에서 왔습니다 "
" 황토정에 민박하신 분들이시구먼 ~ "
이 마을은 3대 4대가 모여살고 서로 왕래가 많아서 외지에서 누가 왔는지 금방 퍼진다. 놀랍다.
1층엔 기념품점과 2층엔 전통찻집을 운영하시는 이 분. 의자에 앉아있다가 드물게 등산객이 지나가면
" 중풍에도 효염있고 당뇨에도 좋고 손맛사지로 혈액순환도 잘되는..."
참나무 빗을 손으로 주무르며 호객을 하신다. 근데....유식하다.
우리나라 노동자 70 % 가 재래직업을 갖고 있어서 미래직업의 중요성과 4대강의 건설 논리와 외국어교육의 필요성등 박학다식한 말씀이 서울 여느 유명강사의 강의못지 않았다.
수업료조로 안사람에게 죽순좀 사라고 했다.
할머니가 사시는 집인데 곱게 나이드신 만큼 집도 깨끗하게 하고 계셨다.
사진좀 찍자하니 손사레를 치신다
" 하두 마이 찍어 몸서리쳐져 ~ "
밭고랑옆에 예쁘게 핀 호롱꽃을 폰카로 열심히 찍으시던 아줌마.
외모랑 안 어울려 좀 웃겼는데 내면은 순수한 소녀인가보다
친절하신 분들이 고마워 안사람만 내키지 않은 것들을 잔뜩 샀다.
사진엔 없지만 어제 밤 아들과 싸우고 속상해서 술 한잔 하러 내려오신 할아버지도 생각난다.
40줄이나 된 아들이 벌려놓은 서당이 생각대로 잘 안되자 속이 많이 상하신거 같았다.
오리불고기가 많이 남아서 한 접시 드렸더니 거나하게 취하셔서 흰나무를 지팡이 삼아 터벅터벅 산위로 올라가셨다.
청학동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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