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고리츠끼 수도원 오솔길

2018. 6. 9. 14:00Russia 2018





두번째로 찾아갈 고리츠끼수도원을 네비에 찍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서야 아까 본 언덕위에 흰 건물이 고리츠끼였다는 걸 알았다.


네비가 안내해 주는대로 민가사이로 난 길로 들어섰는데 언덕위까지 좁은 흙길이었다. 마침 사람들이 내려오길래 잠깐 기다렸다가 올라갔다.

<구글 스트리트 뷰>


차가 심하게 요동쳤다, 길 가운데로 빗물에 파인 홈이 한자 깊이나 되어 두다리를 벌린채 걷는 꼴이 되었다. 후진하거나 멈추거나 한쪽 풀밭으로 올라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속도를 유지한채 오프로드를 올라가고 있다. 이 차가 SUV를 흉내낸 CUV이긴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얼마나 고마운지. 짐 싣고 4명 탄채 세단으로 이 길을 올라갔으면 돌부리에 차바닥이 찍혀 헛바퀴 돌고 난리났을 것이다. 구루마나 사람만 다닐정도의 길에 차가 올라오자 내려오던 사람들이 길옆으로 피신하고 집앞에 나와있던 주민들이 우리 차를 탐탁치 않게 처다보았다,


언덕위로 올라서자 눈앞에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ㄷ 자로 돌아갔음 이런 스릴을 안 느껴도 됐는데...


평편한 도로를 올라타 조금 더 가자 고리츠기 수도원에 도착했다.   (56.720980   38.823878)

넓은 흙마당, 칠이 벗겨진 담장, 녹슨 함석지붕... 14세기에 지어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 분위기가 오히려 고즈넉하다,


차를 탄채 주차장 끝으로 가보았다. 표토르 1세가 어릴때 여기 살았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차량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여자 둘이 담벼락 아래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내부 구경보다는 멀찌기 떨어져 수도원을 보며 피크닉을 하고 싶어 차를 돌려 나왔다


담장을 따라 조금더 마을로 들어갔다.

야생꽃들이 만발한 풀밭


오솔길이 신작로 옆으로 나란히 숨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데 저길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

뒷자리에서 여자둘이 아쁘다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오솔길은 마을쪽으로 길게 나있다,


수도원 뒤 풀밭공터로 차를 몰았다


한켠에 방치된 소비에트 시절 기념비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명당을 발견.



차를 후진해 나무아래에 파킹해 놓고


보따리를 풀어 차안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구황식품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여자들은 손을 흔들며 오솔길로 사라지고

용철씨는 창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에 단잠을 즐기는데






난 산보를 핑게삼아 으슥한 곳을 찾아 다녔다,






더 깊이 들어갔는데 오히려 주택가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놀라, 슬금슬금 발길을 돌렸다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 나무 아래 적당한 곳에 섰


잠시 후 30루블 (보통의 화장실 사용료)을 절약했다는 뿌듯함과 한결 느슨해진 방광 괄약근의 여유를 즐기며 사진을 찍는 척 숲을 빠져 나왔다



한편 여자들은




수도원 정문으로 와서 수녀 할머니나 입을 듯한 옷들을 구경하고


수도원 담장아래로 난 오솔길을 오손도손 걷는다

어떤 운명이 우리 네 사람을 이시간 이 낯선 곳에 함께 있게 만든 걸까 ?  당연한데도 순간 신기하게 느껴졌다









수도원 둘레

<인용사진>


큰 개가 어슬렁거리는 조용한 동네



할아버지와 아들뻘 되는 남자가 빵 봉지를 들고 나른한 한낮을 지나간다.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날 보더니 할아버지가 반갑다는 듯 뭐라고 말을 걸었다


그 사이 지나가던 차가 멈춰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었다, 장황한 설명을 듣다 지친 운전수가 가버리자 할아버지가 또 나에게 계속 말을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할아버지 얼굴 한가운데에 주먹만한 딸기코가 붙어 있는데 노화로 핏기가 사라져 마치 씨 박힌 허연 딸기 같았다.

소위 대화라는 것을 하기 위해 나도 가끔 ' 난 한국에서 왔어요 ' '만나서 반가워요 ' 같은 러시아 말로 추임새를 넣었다


말없이 앞서갔던 남자가 할아버지를 찾으러 먼길을 다시 돌아왔다


이젠 두사람이 번갈아 나에게 러시아 말을 하는데 나도 오기가 생겨 아무 말이나 다 지껄였다

"  드라스위째 ! 오친 뿌리앗나,.. 미냐 자봇 리, 스빠씨바.. 오친 부꾸쓰나, 아 뿌리에할랏 까레, 아 씨뜨, 스파꼬이네 노이차 ... "

- 안녕하세요, 매우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리예요, 고맙습니다, 매우 맛있네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배 불러요, 안녕히 주무세요...-

남자가 ' 미친 고수를 뵈옵니다 ' 라는듯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굽신거렸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져도, 외면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일방적인 대화는 지속되었다.

남들보면 꽤 친한 사이 같은데 사실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고 있다,


다행히 그 순간 여자들이 산책을 마치고 가디언 엔절처럼 강림하셨다.


얼른 자리를 피해 차에 탔는데도 할아버지가 따라와 차문을 막고 이젠 차안에 일행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거의 탈출하듯 동네를 빠져 나왔다.

한 아가씨가 이젤과 화구를 들고 수도원 정문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러시아인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민족같다. 특히 이방인과의 대화를...


수도원과 주변 마을 풍경

<인용사진>





<러시아 미술> Mikhail_Nesterov - 성 바돌로매와 어린 시종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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