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9. 12:22ㆍRussia 2018
9시 조금 넘어 모스크바를 떠나서 삐리슬라블 잘레스끼에 도착한 시간은 1~2분 모자란 정오 12시였다
장시간의 운전이었지만 모처럼의 호쾌한 드라이브여서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직진하면 삐리슬라블 시내이고 우리 목적지는 호수 남쪽에 있어 좌회전하려는 차들 뒤꽁무니에 붙었다. 샛길로 들어서자 가난한 동네 언덕위에 제법 큰 수도원이 있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시선을 떼지 못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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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고리 첫 여행지인 이곳에선 두 곳을 들르려고 한다. 지금 향하는 표트르 1세 동상과 고리츠끼 수도원.
바로 저 곳이 고리츠끼였다는 걸 다음 네비를 찍고서야 알았다
호수남쪽길은 차라리 비포장도로가 더 나을 정도로 도로상태가 엉망이었다. 아스팔트는 거북이 등무늬처럼 갈라지고 곳곳이 패여서 핸들을 꼭 쥐고 엉덩이를 들고 운전했다,
오른편으로 검푸른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평선만 보고 오다 수평선을 만나니 또 다른 맛이다,
수백년된 길을 조금 더 들어가자 왼편 언덕위로 표토르 1세 (Peter 1) 동상과 보틱박물관이 보이고 호수편으론 카페와 기념품점에 포위된 주차장이 있다, (56.724545 38.776042)
주차후 동상쪽으로 건너가려고 갓길에 섯는데 오던 차가 멈췄다. 그게 오로지 나를 위한 호의라는걸 바로 알지 못했다. 살짝 어리둥절했다가 길을 건너며 차에 손을 들어주었다
철재 팬스 사이에 계단을 오르면 작은 매표소가 있다, 그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동네 아줌마에게 얼마냐고 묻자 붙여놓은 종이를 가리키는데 거기엔 키릴문자가 적혀 있고 30 이란 숫자가 써 있었다. (용철씨가 가이드북엔 입장료가 180루블 이라고 했다) 박물관과 행궁까진 보고 싶지 않아서 ' 동상 사진만 찍고 오면 안될까요 ? ' 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아줌마가 ' 치나(중국인) ? '냐고 묻길래 ' 까레' 라고 했더니 무표정한 얼굴이 풀어지며 자청해 우리 기념사진도 찍어 주었다.
' 피터의 성' 이란 뜻의 상뜨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수도를 그리로 옮겨 모스크바인들이 싫어 한다고 설명드린,
모스크바 강 유람선에서 본 거대한 동상의 주인공이자,
짜리찌노 궁전의 주인 예카테리나 2세 여왕의 시할아버지이기도 한 표트르 대제.
그가 청소년시기를 보냈던 플레쉐예보 호수를 한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호수 건너엔 삐리슬라블 잘레스끼가 나즈막하게 깔려 있다
그를 어둑한 강에서 처음 봤을땐 너무 거대해 험오스러웠는데 지금 등신불 정도의 풋풋한 모습은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나무아래 벤치에 앉자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매표소 아줌마가 여수팀을 뒷곁으로 안내해 손수 가꾼 화단을 보여주었다
동상 구경을 다 마치고 내려와 일행들에게 쪼르르 줄 서라고 한 다음 아줌마앞에서 합동으로 감사인사를 드렸더니 좋아했다.
여자들이 아줌마에게 ' 이쁘시다' 고 보시성 맨트를 하자 당신의 손등을 보여주며 모라모라 러시아어로 말을 했다.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
' 옛날엔 나도 동네 청년들 애간장좀 태웠는데 이젠 쭈구렁 할머니가 다 됐어, 이 손좀 봐 '
떠나는 나를 부르더니 잠깐 부스 안에 들어가 뭘 가지고 나왔다. 영어로 된 관광 팜플렛이었다, 따뜻한 정을 받았다
길을 건너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수공예 뜨게질용품점에 들렸다.
현주가 쇼울을 하나 골랐는데 1,500루블이라고 한다.
" 비싸지는 않는데 안 살거야. 달래 모자나 좀 깎아줘 " 라고 현주가 말했다.
덩치큰 주인여자가 달래씨 앞에서 거울을 비춰주며 시중을 들고 있다,
달래씨가 맘에 드는 모자를 하나 고르자 1,700 루블 (30,600원) 달라고 한다.
일단 달래씨에게 '모자를 쓰고 나가 있으라' 하고 용철씨에게 지폐를 받은 다음. 아줌마에게 1,000루블짜리 지폐를 한장 건네며
" 1,000 "
" No "
" 1,100 "
" No "
" 1,200 "
" No "
옆에서 보고 있던 달래씨가 ' 꼭 필요한거 아니니까 ' 안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돈을 주머니에 도로 넣고 나오는데, 주인여자가 ' 모자 어딨냐 ? ' 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흥분해서 상기된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일행과 호수쪽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육중한 곰이 달려드는 기색이 느껴졌다.
뜨개질 주인여자가 우리를 쫓아와 큰소리로 빠르게 뭐라고 쏘아 붙였다. 붉은 옷탓에 얼굴빛이 더 빨개 보였다. 순간 이 여자가 우리에게 '물건이 없어졌다' 라느니 ' 고소할거다' 라는 등의 시비를 거는 걸로 들려 나도 당황했다.
달래씨가 스마트폰의 구글번역을 누르고 여자앞에 대주자 여자가 또 속사포처럼 길게 말했다. 나도 일행들에게 ' 일단 정확한 의도를 들어보자 ' 고 다독이고 그여자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여자가 화를 얼추 쏟아내자 달래씨가 번역된 문장을 우리에게 읽어줬다. 띄엄띄엄 이런 단어가 들렸다
" ... 첫 손님이니... 적정한 가격 ... "
그제서야 일행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랑 달래씨랑 그 여자를 따라 가서 달래씨에게 ' 모자 한번 더 써보시라 ' 하고 내가 1,200루블 (21,600원)을 주인여자에게 쥐어주고 악수를 나누자 그제야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행들이 거래 결과에 모두 감탄하는데 난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나마 상점 여주인을 흥분시킨게 미안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순박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수쪽으로 산책을 가본다.
어느 건물 옆에 붙어 있는 그림, 표토르대제가 이 호수에서 보트를 만들고 조선기지를 건설하고 1682년앤 대포로 무장한 군함 100척을 건조했다는 이야기.
풀밭위에 지붕이 있는 벤치가 있길래 여기서 점심 먹자고 현주랑 용철씨에게 차에 가서 먹을걸 가저 오라고 부탁했다.
달래씨가 탁자에 늘어뜨린 안내 종이를 찍어 번역해보니 ' 벌금 50' 이라는 거다, 탁자위에 욜려진 안내판엔 ' 사용방법은 어린이놀이정원에. 인당 20루블 '
굳이 돈내면서까지 여기 앉을 필요는 없는거 같아 비닐봉지 들고 도착한 두 사람을 다시 돌려 보냈다.
스마트폰 유심깔고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구글 번역에 감탄하고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여수팀도 대단하다.
갈대밭과 작은 나뭇배.
황량하면서 꾸밈없는 자연의 모습이 지극히 러시아스러웠다
이 플레쉐에보 호수는 지름 9 km 둘레 28 km 깊이 25 m 의 계란모양의 호수다.
크다고 생각하면 크지만 표토르 대제가 사방이 막힌 이 호수에서 군함을 건조해 오늘날 강력한 러시아 해군의 시초가 되었다는 구절에선 믿음이 좀 안 가긴 하다. 지금은 작은 배하나만 보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다
현주야 올라가서 점프해봐
아니, 뛰어내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점프하라구 !
그라제 ~!
현주가 그 사진이 맘에 들었나보다, 여수팀도 ...
용철씨는 개구쟁이처럼 나왔고
달래씨도 마냥 행복한 순간
그냥 단지 호수랑 벤치밖에 없는데 의외로 러시아인들이 많이 왔다 간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손주랑 호수에 나들이 왔는데
할머니가 권총을 들고 있었다
우리가 할머니 앞에서 두 손 들고 항복하는 장난을 했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 모두 어디서 왔어 ? "
" 한국이요 "
" 남, 북 ? "
" 남한이요 "
" 아~ 김정은 No ! "
할아버지가 유식과 유머를 겸비했네 ㅋㅋ
내가 할머니에게
" 모스크바에 사세요 ? "
" 모스크바 위에 세르기예프 빠사드에 살아 "
" 와~ 우리도 오늘 거기 호텔 예약했어요 " 했더니 반가워 하셨다.
" 오친 뿌리앗나 " -매우 반갑습니다-
헤어질때 내가 러시아 인사를 하자 모두 웃으며 오친~ 뿌리앗나 !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쯤 돼보이는 남자애 둘이 나에게 오더니 종이 한장을 주고 갔다.
근처 치즈목장 팜플렛이었다. 잠시후 이 아이들을 주차장에서 또 보게 되었다,
장난치며 뛰어 다니는 개구쟁이들이 부모님 심부름인지 알바인지는 모르지만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전단지 배포하는 모습이 참 대견해 보였다.
러시아 음악이 흘러나오는 배모양의 카페에 들어가 차 한잔을 하려 했는데 문이 잠겨 있다.
여자들은 또 기념품점 구경가고 용철씨랑 차 안에 있는데 차 한대가 들어오더니 빈자리도 많은데 하필 우리차 바로 뒤에 바짝 대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앞뒤로 갇힌 꼴이 되었다. 황당해 그냥 지켜보고 있으니 눈치채고 차를 빼서 옆으로 댔다. 안 들리게 '빙신' 이라고 해줬다
또 다른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데 전형적인 슬라브족 러시안들이었다
젊은 여자는 하얀 피부 작은 얼굴에 선글라스가 잘 어울렸고 젊은 남자도 노가다 보단 핵물리학자 같은 지적인 인상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참 부러운 인종들이다.
일행이 다 타자 주차장을 나와 박물관 뒤 언덕위로 올라가 보았다. 한국에서 로드뷰로 몇번을 눈에 익힌 길인데도 입구를 놓쳤는지 낯설었다.
작은 동네에 성당치곤 참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 놓았다.
서민들이 사는 작은 집도 창문틀과 벽에 아름다운 조각장식을 붙여 놓았다,
마네킹인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집뒤 소파에 앉아 우리 차가 지나 가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다
▲
<러시아 미술> Vasnetsov - 이반 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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