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황금고리

2018. 6. 9. 09:00Russia 2018





오늘 아침 모스크바 하늘엔 수제비가 가득 떠 있다,


반갑지 않은 기록이지만, 난생 처음으로 돈 내고 조식 안 먹는 날이 될 거 같다. 그러나 어제 본 식당을 떠올리면 전혀 후회가 없다.

현주만 식권 쥐어줘 내려 보내고 난 굴러다니는 요플레랑 바나나로 대충 떼웠다,


세탁기 덕분에 옷들이 다 뽀송뽀송한 새옷이 되었다. 차곡차곡 개서 가방에 쑤셔 넣고 욕실용품 챙기고 있는데 현주가 돌아왔다


별로 듣고 싶진 않지만 예의상 ' 아침은 어땠어 ? ' 물었다

중국인 단체가 훨씬 줄어서 바닥도 식탁도 어제보다 나았다고 한다. 중국 시골할머니 둘과 합석을 했는데 연신 눈치를 보며 베트남 커피믹스를 3잔째 타와 수줍은듯 다소곳하게 앉아 숟가락으로 떠 먹더라고 했다. 베트남 커피믹스 G7 이 달달해서 한번 빠지면 일어나기 힘들지...




숙소가 별로 맘에 안드니 빨리 나가고 싶어 얼른 체크아웃 했다


용철씨가 오늘 아침은 실수없이 차를 끌어왔다.

짐을 차곡차곡 다 싣고 화창한 날씨에 미지의 곳을 향해 간다는 설레임에 점점 행복해졌다. 호텔을 빠져 나올때까지 용철씨가 길 안내를 잘 해줬다. 오늘도 호텔 후문엔 경찰들이 경찰차를 세워놓고 빈둥빈둥 서서 잡담을 하고 있다.

동네를 빙 돌아 외곽고속도로 밑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간다. 까마귀 전선줄에 앉아 있듯 왠 남자들이 IC 가드레일 위에 수십명이 쪼르르 앉아 있다, 아마도 인력시장 같아 보였다.


'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는 말이 딱 맞게 지금의 러시아 위상을 생각하면 국가의 역사도 깊을 거 같지만 알고보면 몇 백년이 안된다. 지금부터 딱 천년전인 10세기 전후에는 이 광활한 영토에 변변한 나라가 없었다, 고만고만한 도시국가가 공국의 형태로 존재했고 노르만족이나 몽골에게 상납금을 바치며 목숨을 연명했다. 그 당시 키예프지역에 공국이 가장 컸고 모스크바는 주변 공국들의 상납금을 모아 바치는 반장 역할을 했는데 그 돈을 조금씩 착복하며 성장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모스크바 주변 8개의 공국을 노란 줄로 연결해 황금고리(Golden ring) 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 수도원과 유적지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그 자체가 천년된 박물관이다. 복잡한 모스크바를 벗어나 조용한 성당과 아름다운 자연을 맘껏 즐길 수 있어서 러시아 여행의 반을 고대도시 골든링 순례로 할애했다. 

모스크바에서 시계방향으로 세르기예프 빠사드, 삐리슬라블 잘레스끼, 라스토프 벨리끼, 야로슬라블, 까스트로마, 이바노보, 수즈달, 블라지미르가 위치해 있고 모스크바를 빼고 서로 연결하면 총 679 km, 차로 꼬박 11시간이 걸리는 긴 코스다

<클릭하면 확대됨>


시 외곽의 쇠락한 공장지대를 지나자


드디어 탁 트인 들판이 보이고 차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앞차들이 급정거를 했다,


한번 서면 다시 못 움직이는 마법에 걸린 차도 도로 한복판에 주저 앉고


극심한 정체가 벌어졌다, 오늘이 토요일 오전이니 모두 근교로 나들이 가나보다


수십분후 정체의 원인이 밝혀졌다, 5-6개 차선이 2개로 급격하게 줄고 또 다른 도로까지 합류하느라 병목이 생긴 것이었다.


그 지점을 통과하자 흐름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이번엔 뻥 뜰린 고속도로를 달리자 일행의 감탄사가 계속 터졌다.

멋진 구름, 파란 하늘, 깊은 숲,

첫날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이던 숲속에 일직선으로 나무를 베어낸 길의 정체를 알았다.  고압선이 지나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변의 잔디깎는 무선조종 탱크



오늘 숙소는 세르기예프 포사드에 잡았는데 낮에 삐리슬라블 잘레스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로 잡았다

세르기예프 외곽 고속도로를 빙 돌아 조금 더 올라가다 왕복 2차선의 동네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끝나는 언덕위에 성당이 아름답게 세워져 있었다


하얀 성당벽과 하늘색 돔 그위에 반짝이는 황금색 첨탑


그 성당 바로 직전에 오른편에 동네 매점이 있었다,


우다치아야 뽀쿠쁘까 ?


매점앞 공터엔 뜻모를 글자를 유리창에 써 붙인 차들이 세워져 있고


길건너엔 나무로 지은 오래된 집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아빠 손잡고 뒷집에 동물들 구경가는 아이.


매점 문앞에 늙은 개 한마리가 힘없이 철퍼덕 앉아 있었다



달래씨가 귀여워 쓰다듬어줘도 아주 순했다, 매점 주인집 개인가보다



동네 아저씨가 장을 보고 나오자 그 개가 아저씨를 쫄쫄 따라갔다.

갑자기 아저씨가 개 뒷덜미를 잡고 있다가


차들이 지나가자 손을 풀고 같이 길을 건너갔다.


안에 화장실이 있나 궁금해 나도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용철씨가 꼬맹이처럼 넋놓고 매달려 있는 곳은


보드카.

귀국선물로 사가야 된대서 가격을 알아보니 거의 만원 이하였다,


화장실을 물어봤더니 여긴 없다며 도로따라 쭈욱 올라가면 카페들이 나오니 그리로 가라고...





일행이 사탕을 사려고 골랐는데 아줌마가 꺼내보고 녹은걸 다 빼 버렸다,


사탕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샀다



이런 시골에서 고급 아이스크림을 만나니 좀 의외였다, 가격은 하나당 천원정도


더운 날씨에 녹는 바람에 두세번 베어물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재충전하고 다시 출발 ! 


정겨운 시골동네풍경


가까이서보면 약간 촌스럽지만 멀리서 보이는 색깔의 조화는 신비로움 자체였다




매점 아줌마가 말한 카페를 지나


길가 수박장수


시골길이 더 볼게 많아 차가 느리게 가도 재밌다




왼편에 검게 불탄 집과 오른편엔 가구점




여자들은 물 빼야 한다고 재촉하고 차는 물 달라고 아까부터 깜빡거린다.

절묘하게 만난 주유소.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 주유소로 들어갔다


Shell 석유 잠바를 입은 청년에게 화장실을 물어서 여자들 들여보내고 휘발유 종류중 NO 95를 가득 채워달라고 했다



옆차 아가씨가 사무실에서 계산을 치루고 나오며 이 청년에게 동전을 한닢 주고 기갈래 아차 싶어서

" Tip 보통 얼마쯤 주냐 ? " 고 물었는데 대답을 안한다.


기름은 50 리터넣고 4만원 정도 나왔다. (리터당 788원. 한국의 절반)


용철씨에게 5루블(90원)짜리 동전 하나 달라고 해서 청년에게 주니 얼굴 표정이 환해졌다.

용철씨가 ' 더 줘야 하지 않나요 ? ' 묻길래 ' 기름 한번 넣어준 수고비로 그 정도는 적당한거 같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몰라서 청년애개 바보같은 질문을 했다

"  OK ? " 청년이 다시 수줍게 웃었다.


모델처럼 잘 생긴 러시아청년이 순박하기까지 하니 시골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잘레스키가 가까워오자 용철씨가 관광가이드처럼 이 곳의 정보를 읽어주었다

' ... 유리 돌고..돌고루끼가 1152년에 새운 도시로 유명하다. 특히 13세기 몽골...아니 몽고 지배시대에 러시아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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