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8. 16:00ㆍRussia 2018
이즈마일로보 사진을 한국에서 처음 봤을때 ' 설마 '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망한 놀이동산을 시장으로 쓰고 있다면 모를까. 용도와 외관사이에 갭이 너무 커 믿기지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장일거라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마구 솟아올랐다,
유명한 시장치곤 진입로가 인적 없는 숲길이라, 잘 찾아 가고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려준 곳에선, 유리창을 흘러내리는 빗줄기 너머로 괴기스런 분위기의 건물들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빗물을 쓸어내자 이즈마일로보 시장이 뽀얀 얼굴을 조금 드러냈다. 그런데 우리 앞을 지나가는 하얀 웨딩카보다도 존재감이 없었다.
비가 너무 쏟아져 내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
차에 탄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차 양쪽을 잡고 길게 늘어뜨린 듯한 웨딩카들이 이상하게도 주변에 많이 보였다
양복을 말쑥하게 빼 입은 남자가 택시에서 유모차를 내리고 있다.
그 사이 이즈마일로보가 놀이동산에서 시장으로, 시장에서 웨딩카 주차장으로 또 업종변경을 했나 ?
한적한 길가에 주차해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기 위해 시장정문으로 다가가자, 경비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주차비 200루블 (3,600원)을 선불로 내라고 한다. 돈을 치루자 바리케이트를 올려줘서 오른편 넓은 공터에 차를 댔다,
여수팀은 먼저 가고 난 현주가 씌워주는 우산밑에서 경사로를 올라갔다,
중국어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건 아닌데....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땐 각자의 몸 반이 빗물에 다 젖어버렸다,
현주는 어디론가 사라진 여수팀에게 전화해 소핑 도와주러 오른편으로, 난 혼자 천천히 구경하겠다고 왼편으로 각자 헤어졌다, 사실은 지금 화장실이 급해 토일렛 글자판이 가리키는 곳만 눈에 들어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하객들이 빗속에서 어디론가 몰려간다.
여기 어디에 결혼등록소가 있나 ?
안으로 깊이 들어가도 화장실은 안 나타나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볼일을 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가보면 건물마다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건물 아래를 통과해
저 안엔 뭐하는 곳일까 ? 궁금하다,
통나무 건물을 돌자
2인용 흔들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사진사 아저씨
신부사진을 걸어 놓은 예쁜 건물들
아름다운 연인들
이즈마일로보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지금 우리가 들어온 곳은 크레믈이다,
요새같은 크레믈안에 박물관과 예식장, 성당등이 모여 있었다. 하객들이 몇명 안돼 결혼등록소인줄 알았는데 여기가 결혼식장이었다. 사돈팔촌, 동네 아줌마, 아빠의 국민학교 동창까지 다 부르는 한국의 결혼문화만 생각하다 이런 오해가 생겼다.
지도 동쪽편이 시장,
<클릭하면 확대됨>
어느 건물 1층, 신데렐라가 살고 있을 거 같은 예쁜 문에 '뚜알렛' 글자가 써 있었다,
그 아래엔 요일별로 시간까지 적혀 있어서 이게 도대체 뭔 뜻인가, 꼬추를 잡고 한참 고민했다.
두어 계단을 올라서 문을 당겨 열자...
이쁘장하게 생긴 아줌마가 오른편 통로에 작은 책상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놀라 흠짓하자 아줌마가 눈썹하나 안 떨리고 힐끗 처다봤다. 책상앞에 붙여놓은 A4 용지에 '30 루블' 숫자를 보고 그제야 이해했다,
주머니에 지폐한장이 생각나 당당하게 손을 넣었는데 동전하나만 잡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 아까 주차비 줬지, 동전을 꺼내보니 5루블 짜리다. 계면쩍게 한국말로 " 이것밖에 없는데... " 하자 아줌마가 말없이 턱으로 남자 화장실을 가리켰다.
" 30루블도 안되는 XX 두쪽만 달고 다니는 인간' 이라고 아줌마가 속으로 흉봤을 거라 생각하면 존심이 상하지만 바지에 싸는 것보단 덜 치욕적이라 고맙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얼른 소변을 해결하고, 하루종일 화장실 냄새 속에 사는 아줌마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하늘의 비도 그쳤다
첨탑에 십자가가 꽂힌 저 목조건물이 성 니콜라스 교회
1층 복도를 지나 크레믈 북쪽으로 나와 보았다.
통로에 물이 가득해 더 가볼 엄두가 안나서 다시 크레믈 안으로 들어오는데 중년 남녀가 입구에 서서 열심히 담배를 피워댔다,
나무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은 건물
벤치에 앉아 중정 연못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행이 Shop에서 나오고 있었다,
불러서 시장위치를 알려주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딱 봐도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크레믈안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앞장서 이곳저곳 데려가고 덩치는 청년이지만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들 둘이 무표정하게 따라 다니며 사진찍으라면 마지못해 자세를 잡아 주었다, 그 뒤로 엄마가 남자 셋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 옛날 모습을 보는거 같다.
지금도 계속 유지보수를 하고 있는 이즈마일로보
크레믈 동쪽 통로는 시장 윗층 회랑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시장으로 넘어갔다
평일이라 손님들이 많진 않았다.
기념품과 모피, 중고품, 골동품등을 팔고 있는데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며 흥정도 가능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시장
이 시장안에는 저렴한 유스호스텔도 있다,
주변 모든 건물들이 다 일관된 디자인으로 지어져서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일행은 밍크 목도리를 사러 시장을 돌아다녔다,
첫번째 가게 모피상은 나이가 있고 손님을 대하는 것이 베테랑이다.
두번째 가게 주인은 좀 더 젊고 싹싹하고 영어가 짧은 손님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재주가 았었다. 현주가 핑크색 모피를 고르자, 한국인, 동양인은 그런 색 고르는 사람이 없다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달래씨는 똑같은 색의 워모 5개가 필요했는데 여기엔 2개 밖에 없고 주인이 근처 가게를 가서도 못 구해왔다. 한개당 800루블 달라는 걸 750에 두개만 샀다,
달래씨가 털이 좋다는 이유를 대며 다시 첫번째 가게를 가자고 했다, 모피상이 1,000 짜린데 800루블로 주겠다고 하며 현찰만 된다고 해서 용철씨가 나한테 돈을 빌려야 한다고 현주에게 말했다.
나는 한바퀴 둘러보고 크레믈 정문쪽으로 나오는데 현주가 날 찾아왔다,
여수팀이 쇼핑한다고 만루블 (18만원)을 빌려 달래서 가방에서 꺼내 주자마자 부리나케 시장쪽으로 돌아갔다,
현주가 도착해보니 여수팀이 5개를 더 사는데 하나도 못 깎고, 개당 800을 다 주는 걸로 벌써 이야기가 끝난 상태더라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 그럼 저 하늘색 워모라도 선물로 주라 ' 하니 모피상이 700으로 깎아 줄테니 사라, 500해줄께 사라고 해서 현주가 ' 돈없다' 고 계속 요구하자 결국 선물로 주는 걸로 됐다, 그러고 현주 주머니에서 큰 돈이 나오자 모피상이 당했다는듯 웃었다. 만 루블이 현주→ 용철→ 모피상으로 가고 모피상이 잔돈을 용철씨에게 주자 현주가 세어보니 하늘색 워모값 500까지 제한 금액이었다고 한다. 현주가 항의하자 마지못해 500루블을 돌려주었다. 현주가 하늘색 워모를 ' 진솔이 선물' 이라며 그자리에서 달래씨에게 주었다
흥정 잘하는 내가 없으니 자기가 자연스럽게 그 역활을 하게 되더라고 현주가 사석에서 말했다
화창하게 갠 하늘아래 이즈마일로보가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결혼식 마치고 나온 신랑신부와 사진사들
웨딩카
중국인 단체가 들어닥쳤다,
주차장 한켠에 세워놓은 고사포에 중국인 아줌마가 올라가 이즈마일로보를 향해 포를 쏘아댔다,
' 그래 다 부셔라 '
폭우에 세차가 필요 없어진 우리 차
잠시후 여수팀이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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