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4. 21:00ㆍRussia 2018
볼 거 없을 거 같은 모스크바가 의외로 상당히 세련된 관광상품들을 갖고 있다. 모스크바강에 유람선을 띄우는 회사들이 한두개가 아니였다. 그 중에 가장 좋다는 Radisson royal cruise 를 인당 1,100 루블, 총 4명 예약 (총 79,200원) 18.3.20
이후 내 계정으로 러시아어 e-mail 이 자꾸 들어와 ' 뭔 일인가 ? ' 긴장해서 번역해 보면 이놈들이 보내는 홍보 스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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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래디슨 리버 크루즈 전용 터미널이다.
한국에서 미리 출력해 간 바우처를 용철씨에게 주며 입장권으로 바꿔 오라고 부탁했더니, 그냥 돌아왔다 ' 이 종이 그냥 보여주면 된다네요 '
선착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달래씨랑 둘만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려갈 층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꼼짝을 안한다.
우리가 어리둥절해 있자 경비 할아버지가 와서 뭐라고 소리쳤다. 시끄럽기만 해 그냥 걸어 가려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통역 해줬다.
"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래요 ! "
0층 버튼을 꾸욱 누른채 있으니 그제서야 문이 닫히고 승강기가 아래로 내려왔다, 욕이 치밀어 오르는 걸 달래씨가 옆에 있어 또 꾸욱 눌렀다.
유람선 후미 탑승구에서 종이를 보여주자 배에 타라는데 그 배가 아니고 옆에 옆에 붙어 있는 세번째 배까지 건너갔다,
전망이 좋은 루프탑으로 올라가려다 춥고 아무도 없길래 1층 실내로 들어갔다. 출발 10 여분 전인데 벌써 자리가 거의 다 차서 따로 따로 앉았다, 잠시후 직원이 와서 우리 두 테이블을 붙여 주었다.
용철씨가 갑자기 인종차별 한다고 기분 나빠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옆 유람선은 백인들이 대부분인데 실제 우리 주변은 중국인 단체와 동양인 천지였다. 그렇지만 자세히 찾아 보니 우리배에도 백인들이 몇 팀 보였다. 아마도 출발시간이 다른 배이거나 예약없는 당일 손님을 태우는 임시 편성배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직원이 음식주문을 받으러 왔길래 " 방금전 래디슨 호텔에서 저녁을 먹어 배부르다. 음료만 주문하겠다 " 고 했더니 별 문제 없다는 듯 OK 하고 돌아갔다
고의적으로 파놓은 것처럼 온 땅을 골고루 적시며 부드럽게 휘어 돌아가는 모스크바강.
지도 왼쪽 호텔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해 2시간 반동안 빨간색 글자 관광지를 다 돌아보는 코스다.
우크라이나 호텔이 점점 뒤로 물러나길래 배가 떠가는 줄 알았지 너무 조용해 출발 하는지도 몰랐다.
모두 강풍경을 감상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물보라를 만들며 우리 배를 열심히 따라오는 돌고래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이 일으키는 파도라는 걸 나중에 알고나선 얼마나 허전하던지...
건배를 하자마자 대놓고 자는 용철씨.
그러길래 낮잠을 좀 자줘야 하는데 과욕을 부려 정작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놓치고 있다. 우리도 시차 생각 안하고 런던 첫날 뮤지컬 공연장 갔다가 하염없이 졸았던 적이 있었지.
강변을 조깅하는 사람들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너와 걷던 그 길을
눈에 어리는 지난 얘기는 추억일까
...
소울스타의 ' 비오는 거리' 내 귓가에만 아련하게 들려왔다.
현주는 파뜻한 음식이 먹고 싶다해서 펌킨스프를 주문했는데 한참 있어도 안 나온다.
마침 웨이터가 끌고 가는 카트위 유리병에 든 노란 쥬스가 참 맛있어 보인다 싶더니 그걸 하얀 접시에 부어 주었다. 펌킨스프였다.
거대하고 기괴한 무엇이 어두운 저녁 하늘을 가리며 다가왔다. 표토르 1세를 기념해 높이 98m 무게 1,000톤으로 만든 동상이다. 표토르 1세는 러시아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인물이다. 그래서 모스크바치들은 이 동상을 끔찍히 싫어하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조명 감각이 예술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현주는 강너머 풍경을 보고 싶은데 카메라는 유리창에 흘러 내리는 빗방울이 좋은가 보다
덕분에 그 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졌다.
정작 모스크바의 경치는 거들떠도 안 보고 서로 마주 앉아 떠들고 먹고 마시던 중국인들이 성 바실리성당이 나타나자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 사진을 찍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역시 모스크바는 밤의 미녀다. 낮엔 잠만 자는 숲속의 공주고 밤에 피는 야화다,
황금색 띠를 두른 굼백화점
현주는 창밖만 하염없이 보고 난 현주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여자 행복하게 해주는게 남자로 태어난 숙명이지... 하며
<구글 인용>
시계추 같던 일상에서 하룻밤 만에
강에 배를 띄우고 신비로운 풍경속에 잠겨 있는 지금이 현실같지 않고 몽환적이다.
믿었던 달래씨마저 시차를 못 버티고 쓰러졌다.
묵직한 DSLR 카메라를 목에 맨 러시아 아가씨가 우리 테이블로 오더니,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었다.
' 조금 ' 이라고 하니, 기념 사진 찍어 준다고 하는데 딱 봐도 호의가 아니여서 그냥 보냈다,
잠시후 앞 테이블 커플을 데리고 갑판등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있길래 덜 미안했다.
저녁 8시 출발 유람선을 예약하면 낮과 밤의 경치를 다 즐길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유람선의 진행방향에서 꼭 오른편에 타야 한다는 거. 반대로 타면 갈때는 콘크리트 축대만, 돌아올때는 검은 숲만 보게 된다.
두시간 넘게 풀코스로 먹어대던 중국인들이 끝내 본성을 드러냈다. 제 흥에 겨워 큰 소리로 중국 노래를 불러댔다.
한 곡으로 안 끝나길래 직원 불러 조용히 시켜 달래려다, 컵만 핥고 있는 우리 편을 들어 줄거 같지 않아 손가락으로 내 귀를 틀어 막았다.
웨이터가 음료수값을 받으러 왔다. 890 루블 나와 900 (16,200 원) 줬더니 잔돈을 끝끝내 안 갖다줬다,
잠이 덜깬 용철씨가 물컵을 쓰러뜨려 내 바지가 다 젖었다. 왜 그러셨어요 ?
유람선은 스탈린시대를 출발해 푸틴시대를 함께 달리고 표트르대제시대를 감상하다 이반대제의 시대에서 기수를 돌렸다.
모스크바강은 그 모든 러시아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고성방가후 다음 순서로 지들끼리 치고 받고 싸울 일만 남았는데 절묘하게도 바로 직전에 유람이 끝났다.
배는 정박했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주차장 가는 길은 곳곳이 물첨벙이 되었다,
비오는 늦은밤 시내 도로가 간만에 뻥 뚫렸다.
한결 친해진 모스크바 밤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
<러시아 미술> 미하엘 부르벨 - 앉아있는 악마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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