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Zomer burger

파장 분위기인 도서관을 나와 광장 너머 성당으로 향했다,

한여름인데도 소박한 성당마당엔 냑엽들이 굴러다녀 가을 정취마저 느껴졌다

광장을 가득 매웠던 차들이 다 빠지고 입구에 주차차단봉이 귀신같이 올려져 있다

아까 차 통제하던 아줌마와 행사 요원들만 모임이 무사히 끝났음을 한켠에 모여서 자축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개인과 단체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런게 행복인데...한국에서는 나부터 점점 인간적인 교류들이 줄어들고 있다.

다시 도서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1.3 € 주차티켓을 끊고 차를 지상으로 올렸다.

현주랑 저녁을 먹으러 아까 봐둔 동네 레스토랑을 찾아 갔다. 다행히 장애인 주차구역에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마당에 사람들을 의식하며 불쑥 식당 안으로 들어 갔다가 급 당황했다.

일반적인 식당 스타일이 아니었다.

식당 한가운데에 세로로 큰 칸막이가 있고 우측공간엔 테이블이 잔뜩 놓여 있었는데 빈자리가 안 보일 손님들이 많았다. 왼편공간은 벽 쪽으로 조리실과 진열장과 계산대가 함께 있었고 그 앞엔 음식을 주문하려는 사람들과 포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섞여 전쟁통 식량배급소 같았다.

바로 돌아 뛰쳐 나가고 싶지만 그게 더 창피할 거 같아 일단 줄 같아 보이는 사람뒤에 서서 이 낯선 식당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한참 있다 드디어 내차례.

천정에 걸려 있는 것이 맛있게 보여 햄버거와 샐러드 그리고 현주가 치킨 3조각 추가주문

주문은 했지만 음식은 또 언제 나올지 몰라 현주에게 일단 자리부터 잡고 앉으라고 하고

난 그 옆에 아이스크림 코너로 갔다

그 코너엔 친절하지만 약간 수줍고 영어발음이 특이한 청년이 담당하고 있었다. 

아주 어렵게 밀크쉐이크 주문.

갑자기 쌍둥이 같은 흑인 아가씨 둘이 나타나더니 아주 터프하고 활발하게 주문을 따발총처럼 쏘아댔대,

주문하고 마실거 다 마시고도 한참만에 음식이 서빙되었다. 얼추 1시간은 걸린 거 같다.

그렇게 고생해서 고대했던 ZOMER(=summer)시리즈 햄버거와 샐러드는 특유의 소스가 우리 입맛에 안 맞았다.

괴로워하는 현주를 위해 콜라 시켜주고

"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 해서 나가서 사준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콘 사진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밀크 청년에게 다시 가서

두가지 맛 아이스크림 콘으로 소원성취한 현주

부끄러워하는 현주를 식당앞에 세워놓고 사진 ㅋㅋ

골목끝 풍차 있는 곳까지 와서 차를 세우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는데 뒷차가 빵빵거려 그냥 이동,

녹아 내린다고 현주가 그 사이 아이스크림을 자기 뱃속에 다 넣어 버렸다,

주변을 돌다보니 우리가 아까 간 식당 뒤쪽이 오히려 번화가였다.

수로에 운치있게 식당을 꾸며 놓은 곳도 있고 음식종류도 다양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동네 곳곳에 흑인과 아랍인들이 많이 보였다

7시쯤 숙소로 돌아왔는데 호텔앞 극장 주변은 차들이 꽉 찼고 주차장 끝에 식당앞엔 흑인들 몇명이 나와 있어 좀 무서웠다,

비가 약간 내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밤늦게까지 놀고 싶은데 긴장이 풀리면 사고가 날거 같아 호텔로 들어왔다.

프런트 직원이 130호실 키와, 혹시 모르니 짐 체크하라고 예전 142호 키를 함께 내주었다. 짐은 모두 잘 옮겨저 있었다.

난 8시반까지 비몽사몽 자고 현주는 옆에서 카톡. 밖은 아직도 환하다.

씻고 나왔더니 10시도 안되어 현주는 잠들어 버렸다.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던 여행지의 태양도 어느덧 사그라 들어 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새로 산 만년필속의 잉크도 다 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