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8. 09:00ㆍNetherlands 2016
" 여기도 드라이기가 고장 나 있어 "
투덜대는 현주 목소리에 억지로 잠을 깨 일어났다. 욕실 벽에 붙은 드라이기를 살펴보니 역시 작동이 안되고 있다. 수원집에선 밥통이 터졌다는데... 여기저기 난리구만,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 프런트에 이야기했더니 ‘ 직원 보내 check 해 보겠다 ’ 고 한다.
투숙객 조식용 식당은 로비옆 레스토랑에서도 더 안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가보니 식사하는 사람도, 직원도 아무도 없었다.
“ 날 위해 식당 독채 냈어 ? ” 현주가 살짝 비꽈도 할 말이 없었다.
식당 인테리어는 구식이고 화병엔 시든 꽃이, 스푼은 있는데 포크가 없고 팬케익은 있는데 시럽이 없다. 치즈는 둘레가 굳어 딱딱했고 퍼 먹으라고 컵에 올려놓는 계란은 완숙이었다. 큰 보온통에 담아놓은 커피는 너무 쓰고, 과일마저 물에 행군듯 싱거웠다.
먹어도 전혀 안 행복한 표정
어제 저녁때 보이던 투숙객들은 다 어디 간거야 ? ’ 현주 눈치를 보며 억지로 위장을 채우는데 백인아가씨, 백인아저씨, 아랍계남자가 각자 나타나 대충 먹고 올라갔다. 혼밥족만 세명을 보게 되는 이 기묘한 분위기.
갑자기 동양인을 포함한 남자 5명이 식당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의 실망스런 표정을 보지 않기 위해 얼른 일어났다
“ Check해 봤는데 고장이 나서 방을 바꿔 드리겠습니다. 아직 청소가 안되어 있으니 짐을 싸 놓으시면 저희가 낮에 옮겨 놓겠습니다 ”
프런트에 여직원이 말했다.
이 호텔에 휴대용 드라이기 하나 없어 방을 바꿔야 한다니... 기묘하다 못해 기괴한 곳이다. 여긴 네덜란드가 아닌거 같다.
방에 와 풀어놨던 짐을 다시 싸고 현주 외출준비가 끝나길 기다린다.
누가 노크를 해서 얼어보니 방청소 하겠다고 메이드가 서 있길래 ' 오후에 치우라' 고 돌려 보냈다
아침 기온 18 °
어젠 에어컨 있다고 좋아했는데 약하게 틀어도 몸 컨디션이 저조할 정도로 추웠다. 창밖엔 밤사이에 비가 살짝 내렸다. 한여름에도 이 정도인데 겨울엔 얼마나 추울까 ? 여기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들로 미친 듯이 싸돌아다니는 이유를 좀 알거 같다. 반짝 여름이 너무 소중했던 거다.
졸다가 10시 넘어 나오려니 살짝 짜증이 났다.
도서관 건물을 찾아 갔는데 주차할 곳은 없고 차들은 많이 다니고 골목안까지 유료주차고 주민들 운전은 느려 터져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말없이 차를 거칠게 몰아 다시 숙소 앞으로 돌아왔다.
다음 목적지를 검색하려면 Wi-Fi 가 필요한데 생각 나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현주도 열받고 짜증나는 상황인데도 ' 운전을 천천히 해달라 ' 고 좋게 부탁했다
그래서 갑자기 미안한 맘에 근처 쇼핑몰을 가 봤는데... 여긴 가구, 조명, 부엌용품, 패브릭등 모두 홈인테리어 샵들만 모여 있었다,
되는게 없다.
바로 로테르담으로 향한다. 도로랑 나란히 큰 강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이 강만 거슬러 올라가도 뒤셀도르프, 퀼른을 지나 독일 내륙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천혜의 요지를 차지한 덕에 로테르담은 일찌감치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 되었으며 네덜란드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현주에게 " 가방을 사주겠다 " 고 호언장담하며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목적지를 못 찾고 빙빙 돌다 번화가랑 멀어지고, 경찰차는 뒤에 있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네덜란드는 얼른 중립국을 표방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히틀러는 그러나 전날 국회에서 ‘네덜란드의 입장을 존중한다' 고 연설해놓고 다음날 새벽 중무장한 전투기들을 네덜란드 하늘위에 새까맣게 띄어 올렸다. 안네 프랑크(유태인)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히틀러라면 네덜란드의 어디부터 공격하겠는가. 독일의 공중폭격으로 암스테르담에선 건물 한 채만 부서졌고 로테르담은 딱 건물 한 채만 남았다. 90 여대의 전투기가 100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 부은 로테르담은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로테르담의 복구는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똑같았고, 그라운드 제로인 상태에서 독창적인 현대건축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큐브하우스다.
46-Kubuswoningen (집합주택) overblaak 70, 3011 MH Rotterdam
이 자리는 원래 넓은 광장이 있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1984년 건축가 피트 블롬은 피렌체 베키오 다리를 흉내내 다리위에 주거용 건물들을 올렸다. 30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상당히 전위적인데 그 당시엔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을까 ? 그런데 피트 블롬이 생각지 못한 문제가 그 이후 발생했다. 큐브하우스 밑으로 넓은 도로가 생기면서 지금은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고 있는데 아직도 뾰족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3 €만 내면 집안을 구경할 수 있다.
큐브하우스 옆에 뚱뚱한 연필모양의 고층건물은 팬슬하우스다.
큐브하우스 아래를 통과하자 오른편에 거대한 롤케익 같은 건축물이 보인다
47-Markthal (쇼핑몰) dominee jan scharpstraat 298, 3011 GZ Rotterdam
주변에 주차공간이 전혀 없는 시내중심지라 어쩔 수 없이 건물 지하 주차장을 찾아 들어갔다. 아직 오전인데도 주차장이 거의 꽉 찼고 에스컬레이터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위로 올려 보내고 있다. 약도를 볼 필요도-그럴 새도-없이 사람들만 따라가면 되니 길 찾기는 쉬웠다.
이 쇼핑센터에서 현주에게 옷과 가방을 사주려고 한다.
지상으로 올라서자마자 이 건물의 매력에 푹 빠졌다. 머리 위로 부드러운 반원형의 지붕이 덮혀 있고 화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건물 양편은 투명유리로 막혀 있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졌다
재래시장의 골목을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유난히 시끄럽게 들리는 중국말과 수많은 관광객들을 비집고 매장들을 기웃거리는데 좀 이상하다. 이 세련되고 비싼 건물에서 파는 품목들이 화장품이나 향수, 명품이 아니라 온통 생선, 정육, 꽃, 구근, 화분, 간단한 먹거리 같은 것뿐이었다. 쇼핑센터가 아니라 진짜 시장이었다. 어리둥절하다가 마침 유모차를 끌고 장을 보고 있는 젊은 한국 여인에게 물어보니
" 여기선 오일릴리 같은 옷이나 가방 등의 패션용품은 안 판다 " 고 알려주었다.
살 것도 없지만 그냥 나오기도 뭐해 해물샐러드를 조금 사먹었는데 딱 100g이 3€ 였다.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양을 보고 현주가 빈정이 상해버렸다.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상인들의 상술을 떠올리게 했다. 이 마크탈시장은 현지인보다 외지인이 더 많았고, 형태는 시장이지만 행태는 백화점이었다.
주차장에 내려갔더니 남미사람 같은 한 남자가 ' 주차티겟이 자꾸 토해진다' 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내꺼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주차비로 또 3 € 뜯기고서야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기차역을 보기도 전에 현주가 로테르담의 복잡함과 상업성에 질려 얼른 도망가고 싶어 했다.
48-Rotterdam Centraal (기차역)
막히는 시내를 꾸역꾸역 이동하여 로테르담 기차역을 찾아왔다. 삐딱하게 서서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의 거대건물은 장관이었다. 네덜란드 건축가들은 비대칭을 설계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역구내는 당연히 들어가 볼 엄두도 못내고 도로가에서 현주가 건물사진을 찍으려는데 한 남자가 깜짝 포즈를 취해 준 것이 이 도시가 우리에게 웃음을 준 유일한 순간이었다.
차에 탄채 역앞 광장을 한바퀴 돌아 나왔다. 자료사진을 보면 역안은 아른햄 터미널의 유선형 실내와, 리에주 기차역의 반투명 지붕을 섞어 놓은 형태였다.
시내주요 로터리 하나가 공사중이라, 기대를 안고 시내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실망하고 나가는-우리 같은-사람들이 뒤섞여 속이 꽉 찬 순대처럼 미어 터졌다.
주택가로 삥 돌아 진을 다 뺏긴 후 외곽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뒤도 안 돌아보고 로테르담에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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