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숨은 보석마을 Sermoneta

2007. 8. 5. 15:23Italy 2007

 

 

 


이탈리아 반을 돌았을 뿐인데... 

AC 밀란과의 축구경기 전반전을 뛰고 기진맥진한 선수들처럼 모두 차안에서 잠들어 버렸다. 베이스캠프-로마-로 어여 돌아가 남은 북부여행을 위해 쉬고 재충전을 해야 할 시점인거 같다.

한참 자고 일어났을때 '벌써 왔어 ?' 라고 놀라는 가족들의 찬사를 듣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핸들을 잡았다.

난 이런 시간에 운전하는것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다.

  

'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 는 말을 증명하듯이 로마를 중심으로 일직선의 길들이 사방팔방 뻗어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길이 아피아로드다. 

길 양옆엔 키 큰 싸이프러스 나무들이 줄맞춰 도열해 있고 역사와 낭만을 찾는 사람들만이 가끔 오가는 한적한 왕복 2차선인 이길은 예수탄생 이전부터 대로였다. 

  

시계바늘은 저녁 6시로 향해가고 난 로마로 향해가고 석양은 내 두눈으로 향해있다.

운전방향이 석양방향과 정확히 일치하여 썬글라스도 없이 맨눈으로 앞만 보고 가는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석양노을을 보며 퇴근하는 즐거움을 일부러 찾곤 했는데 지금 눈앞엔 언덕하나 없는 너른 평야와 햇살을 가려줄 고층건물도 없는 상황이 몇시간째다. 

두 눈을 찡그리고 자꾸 옆으로 사팔눈을 뜨고 운전을 하다보니 오른편 산위에 하얀 마을이 보인다.

 SERMONETA  (셀모네타)  도로표지판.

일순 '살모넬라' 가 떠올라 찜찜했지만 내 동공은 쪼그라질대로 쪼그라져 그런거 가릴 처지가 아니였다 

 

아래 지도에 노란색 직선로가  ' Via Appia Rd '   표시가 오늘 우연히 만난 마을

  

좁은 외길이지만 올라가는 내내 차 한대 마주치지 않았다.

멀리 산위에 하얀 비석들처럼 또 다른 마을들이 보인다.  옛 로마인들은 참~ 높은곳 좋아한다.

우리나라 촌락들이 평야나 낮은곳에 모여있는거 보면 로마인만큼 전쟁을 많이 겪지는 않은거 같다. 

 

산밑에도 적잖은 집들이 있는데 신식집들이다. 때깔이 틀리다. 태평성대를 누리고있는 이런 집보다

전쟁을 피해 산꼭데기로 올라간 옛 로마인들이 살던 저 산위에 고색창연한 마을이 더 땡긴다. 일단 올라가보자 !

  

뽀족한 바위위에 지어놓은 저 화장실같은 건물은 뭐야 ? 어디로 올라가는 거지 ?   

아마 마을입구에 적들의 침입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듯한데 정확치는 않다.

 

 마을 입구에서 곧바로 안 올라가고 오른쪽에 난 산길로 차를 돌렸다. 둘러봐서 여차하면 그냥 내려가려고...

저 길을 따라 들어오니 차 몇대 세울 공터가 있다. 아이들 내려놓고 벌개진 두눈을 비빈다.

  

 

비탈진 돌산을 개간하여 올리브나무도 포도나무도 심어놨다. 이 동네사람도 어지간히 부지런한듯...

  

지금은 저렇게 부서지고 잡초가 자라고 있지만 예전엔 얼마나 화려하고 번성했을까 ?

저런 건물을 허물어 없애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후손도 대단하구

  

마을 뒤에 아담한 입구,

들어가보고 싶은 맘을 말릴수 없는 아름다운 골목길.

오른쪽 짙녹색괴물이 슬금슬금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살모넬라균처럼...

  

마을안으로 들어와 바라본 문


 

  

마을안쪽길 역시 차한대 다닐수 없게 좁다.

반질반질 닳은 벨지움로드가 이 마을의 나이를 보여준다.

우리집앞처럼 자연스럽게 가족사진 한장 찍고 호기심 출발 !

  

좁고 복잡한 미로처럼 생긴 마을길. 

 

온통 회색빛 돌뿐인 삭막한 골목길일줄 알았는데 예쁜 꽃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귀걸이 꽃이다

사내녀석 귀에도 하나 달려있고

 

 

막내 짱이 귀에도 하나 달아주고...

 

 

마을이 맘에 든다.  " 오늘 여기서 자고가자 ! "  

집앞에서 헷볕 쪼이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물어보니 호텔이 딱 하나 있긴 있단다.  골목길을 돌고돌아 간신히 호털을 찾았다.

아래 사진 왼쪽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편에 호텔문이 있는데, 문열고 들어가니 호텔 로비다.

작긴 하지만 포근한 조명을 켜놓았다. 그런데... 넘 비쌌다. 거의 대도시 별 4개 이상되는 숙박료다.  깎아달라고 부탁해도 고개만 설레설레. 

치사시러워 포기하고 나와서 뒤돌아보니 두 가정집을 저렇게 통로를 내어 연결하고 그 옆에 비슷하게 증축한 것이다

낡은 집들을 기워붙이고 주차할 곳도 없고 아파트 거실만한 작은 로비를 가진 최고급 호텔 ! 

 

쯥 !  마을이나 구경하자 !


 

나도 어렸을때 이런집 많이 지었는데...

바닷가에서 모래로 두꺼비집과 성과 수로와 조개껍질 길도 구름다리도... 한없이 정겨워 한참을 내려본다.

이집은 1층과 2층에 출입문을 따로 내놓았네,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         

  

꽈리꽃이 늘어진 아래 낡은 내복과 수건, 땡땡이 꼬마애 옷이 빨래줄에 가지런히 널려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은 사람에게 대접받는 ARMANI 나 Dior 같은 옷이 아니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저런 옷이 아닐까 ? 난닝구같은 ...

 

절로 경건해지는 창문

  

뭔 뜻인진 몰라도 답답하지 않은 예쁜 디세뇨(디자인)~

  

근데 이 흉칙한 것은 뭐여. 우씨 놀래라. 애들이 귀신댕기머리라고 소리지르며 도망가고 ㅋㅋ

 

 

  

여행책에도 안 나오는 이런 시골마을 구석까지 잘 정돈된 깨끗함

  

 

마을 공터로 나왔다, 골목길안에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방인인 우리를 계속 곁눈질하고 있다.

며느리가 진지자시라고 진즉 불렀을텐데 모처럼 신기한 구경났다고 저러고 계신거 같다. 보아하니 신과 동격의 연세쯤 되어 보인다. 나도 동영상으로 마을을 둘러 찍으며 그분들을 줌으로 땡겨 찍었다 

  


 

  

마을 공터에서 내려보이는 산아래 목가적인 풍경

 

  

공터끝에 광장에 널판지를 깔아놓고 소녀 둘이 열심히 발레연습을 하고 있다 

 

이방인인 우리가 와도 멈추지않고 삼매경에 빠져있다

  

저 애들은 과외학원두 안 다니고 눈높이도 안하겠지 ?  부러운듯이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둘째와 막내

 

  

지나가다 무작정 들른 작고 오래된 마을. 사람 살것같지 않은 산꼭데기 이 마을에

   나뭇가시가 두렵지 않은 맨발의 프리마돈나 소녀가,

   매일 아침 눈뜨며 "오늘도 살아있네 ! " 외치는 할머니가,

   드문 여행객의 돈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한 호텔리어가 살고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내 눈엔 여전히 붉은 석양이 비치지만... 아쉬운 동공은 부드럽게 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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