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7. 21:00ㆍNetherlands 2016
' 피동적인 삶도 가끔은 필요해... '
자유여행의 폐해를 실감하며 딱히 갈 곳 없이 시내를 배회하다 한적한 강옆 도로로 들어갔다. 주택가와 강변 사이엔 작은 정원이 길게 뻗어 있고 차는 돌아 나가는 막다른 곳이라 주차할 공간도 널널했다.
울창한 나무들로 어둑어둑한 보도블럭을 걷다보니 수로 한가운데 세워진 Groninger museum 을 만났다,
물위에 지어놓은 박물관
지나가던 할어버지가 사진 놀이 하는 우리 둘을 보고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수로 너머에 붉은 벽돌의 고색창연한 건물은 기차역.
학생과 교수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흥겹게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있는 구시가지로 몰려 온다
중년 부부가 조그만 배를 타고 수로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고 있다.
뭘 해도 별 신이 안나는 기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거리 구경을 한다.
유명한 대학이 있는 도시라서 젊은 사람들이 역에서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계속 들어왔다. 이성보다는 동성들 무리가 더 많았고 커플도 안 보인다. 비싼 옷에 화장한 사람들은 거의 없이 대부분이 수수했다. 노인들은 잡초같이 뻣뻣하고 강인해 보였다. 사람도 건물도 검소해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린고비란 소리가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니었다.
“ 앞으로의 남은 여행이 걱정된다 ”
현주가 팔짱을 낀채 앉아 일갈했다. 그 말 속에 이 밍밍한 도시 호르닝은에 불만, 불안, 나를 질타하는게 다 들어 있는 걸 알지만 달리 반박을 못 하겠다. 나도 동감하니까...
심심한 천국이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마약과 섹스에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거 같다.
7시가 넘어가자 금방 쌀쌀해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키가 큰 흑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적선을 청하고, 늘어난 츄리닝을 입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백인은 벤치 옆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찾아 피웠다. White trash가 여기도 있다. 어느 집 창문가에 내놓은 인형은 처키처럼 보여 질겁하게 만들었다,
분위기가 낯설어 정이 안 붙는 곳. 이 큰 도시가 여행가이드북에 없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담부턴 별중 떨지말고 고집 피우지 말자.
현주가 춥다며 일어났다.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고, 방향제에 쩔은 객실도 끔찍해, 네비에 다음 건축물을 찍고 외곽으로 나왔다.
■
도시의 남쪽 신흥 주거지역은 시내랑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격자형으로 널적널적하게 조성된 단지에 똑같은 모양 없이 개성적으로 지은 집과 잘 다듬어진 정원, 고급차가 세워진 한적한 길에서 동네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고 있었다. 영화 세트장처럼 온 동네가 완벽하게 넉넉하고 평화로웠다. 부러운 눈으로 한집,한집 감탄하며 가다보니 마을 끝까지 왔다.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데 빨간 주차기둥이 막고 있어 더 이상 전진이 불가했다. 길옆 덤블에 차를 바짝 붙여놓고 무작정 걸었다.
좁은 길을 경계로 왼편 어느 집 뒷마당에선 고기 굽는 냄새와 청년들의 웃음 섞인 대화가 나무담장을 넘어 들려왔다. 오른편은 산책하기 좋은 울창한 숲과 오리들이 놀고 있는 잔잔한 연못이다.
지루할 틈 없이 마을과 자연풍경을 번갈아 즐기다보니 길 끝에서 내가 찾는 건축물을 발견했다.
15-Wall house 2 (가정집) A.J lutulistraat 17, 9728 WT Groningen
건축과 예술을 기초없이 콜라보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집을 설계한 John Hejduk은 건축가이기도 하지만 예술가, 시인, 교육자로서 초현실주의 조각, 입체파 회화를 건축에 융합하는 시도를 해왔다. 바로 그 사조가 1930년대 De stijl 건축양식인데 21세기에 각광 받기엔 너무 늦었거나 아직 일렀다. 거주공간은 원색 칼라로, 공간을 나누는 벽은 무채색(시멘트 바탕색)으로 처리한 건 참신한 아이디어지만 내 눈엔 주변 자연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형태와 색이었다.
정작 내 혼을 쏙 빼 놓은 건 동네 앞의 큰 호수였다.
발목까지 웃자란 잡초를 헤치고 호숫가 벤치에 앉았다.
호수 남쪽 요트정박지는 저녁 햇빛이 흰 돛에 반사돼 반짝거리고 잔잔한 수면위로 배들이 듬성듬성 떠 있었다.
아까 무섭던 호르닝은은 어느새 잊고 더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했다.
주인과 산책 나온 순하게 생긴 개가 우리에게 달려와 냄새를 맡고 간다,
가까운 배에선 두 청년이 음악을 틀어 놓고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산책 나온 사람... 천국이 어떤지 더 찾아 다닐 필요가 없었다.
다시 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돌아온다,
현주에게 먼저 가라고 했더니 춥다고 일찌감치 차에 혼자 들어가 있고 난 눈부신 석양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덕분에 길위에서 달팽이같이 생긴 이상한 벌레도 발견하고...
내친김에 이 도시에서 살펴볼 건축물을 오늘 다 숙제한다. 마지막 건물은 시의 남서쪽 고속도로변에 있어서 오며가며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숙소도 일부러 그 근처에 잡았다.
16-La Liberte (복합건물) 9728 Groningen
저 고층건물은 시정부와 민간업체가 호로닝은의 젊은 이미지와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잡고 지은 성공적인 프로젝트중 하나다.
아파트, 호텔, 사무실등이 두 동 구역을 나눠 입점해 있었다.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상복합 빌딩이지만 색깔과 형태에 조금만 변화를 줘도 그 차이는 엄청 나서 극동아시아에서도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을 풍겼다. 마치 여자가 화장으로 변신하듯...
숙소 주차장에 도착하자 현주가 더 추워했다. 난 호텔 로비에서 휘청하며 넘어질 뻔 했다.
방에 올라와 보니 다행스럽게 냄새가 거의 다 빠져 방문을 닫고 잘 수 있었다.
난 빨래하고 현주는 뜨거운 차를 마시며 네덜란드 북쪽 낯선 도시에서의 하룻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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