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7. 09:00ㆍNetherlands 2016
창밖은 아직도 대낮같은데 시간은 밤 10시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현주가 잠꼬대를 한다 ' 폰 충전이 안돼 ...'
아침에 내가 해 보니 충전기가 고장났다, 여행 초반에 아이폰 충전기가 고장났으니 쌩돈 들게 생겼다, 경재에게 SOS를 치자 한국에서 구해 놓겠다고 하는데 사후약방문이고...
현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짐을 싸놓고 7시 20분쯤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이번엔 사람들하고 좀 떨어진 한적한 창가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첫날의 반밖에 못 먹겠다. 위장은 우직하지만 혀는 참 간사하다.
이 진수성찬을 컵라면 하나랑 기꺼이 바꾸고 싶다.
내가 현주 커피에 사카린 같은 걸 넣어 주는 장난을 치자 현주가 일갈 했다
" 됐어 새까 ! "
무방비로 강펀치를 맞은 듯 황당해서 제대로 반격도 못헸다. 현모양처가 며칠새에 게르만 바이킹 전사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스페인 운동팀들이 시끌벅적 요란법석을 떨며 아침 식당 분위기를 마구 휘젓고, 나이든 코치X은 줄 서 있는 내 앞에 불쑥 껴들어 음식을 집어 간다.
미인대회가 끝났나 ? 아가씨들이 안 보이네...
가볍게 먹고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창밖엔 새들이 편대를 이뤄 날아가고 부지런한 양들은 벌써 넓은 초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풀을 뜯고 있다.
▲
10시도 안됐는데 일찍 check out 했다.
무거운 짐가방을 불근 들어 차에 싣고 네비를 세팅해 앞유리에 붙인 후 상쾌한 아침공기를 가른다.
호텔을 나와 조금만 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암스테르담 가는 길이라 익숙하고 오른쪽은 한번도 안 가본 길이다. 주저없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키 큰 미루나무들이 도열한 한적한 국도. 창문을 열고 부드럽게 휘어진 가로수길을 돌아 나간다.
꽁꽁 얼어 쩍쩍 금이 간 호수같은 네덜란드의 하늘
유명 관광지인 알크마르, 잔서스한스를 가볍게 무시하고 북쪽으로 돌출된 반도끝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갑자기 익숙한 풍광이 나타났다. 오른편엔 잔잔한 바다가, 왼편엔 높은 둔덕이 길게 뻗어 있는 방조제였다.
내가 사는 수원 주변에도 시화, 아산만, 삽교천부터 화옹, 남양, 탄도까지 방조제가 참 많긴 한데 여긴 건너편 육지가 안 보일 정도로 크다.
네덜란드는 1933년에 주다지(Zuiderzee) project라고 하는 간척지 사업의 일환으로 이 방조제를 건설했다. 눈부신 햇살을 튕겨내던 왼편 바다는 졸지에 에이셜(IJssel) 호수(meer)가 되어 버렸다.
빨간 선이 방조제
<인용사진>
곧게 뻗은 도로를 한참 달리자 전망대가 나타났다.
12-Souvenirkiosk Afsluitdijk holland (제방 휴게소)
좀 쉬어가자고 길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횡단하는 육교로 올라갔다
강한 바닷바람에 몸이 휘청해서 아찔하다.
아랍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부인과 애기 사진을 찍어 주다가, 나에게 폰을 내밀며 가족사진을 부탁했다
오죽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까 싶어 정성껏 두장이나 찍어 주었다,
이 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댐(32.5km)으로 수십년동안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었다. 여기 매꾸느라 네덜란드 땅을 다 깎아 버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꼬솝게도 이 기록이 76년 만에 깨졌다. 2010년 한국의 새만금 방조제가 33.9km로 1위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만 팔아도 이렇게 잘 사나 ? 평소에 궁금했었다. 그 답을 여기서 찾았다. 네덜란드국토 대부분은 강 하구 삼각주 모양의 낮은 땅이어서 유럽대륙의 배수구라고 불렸다. 그래서 일찌감치 치수기술이 발달했다. 델프트 공대의 수력학은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댐’ 이라는 단어도 네덜란드에서 온 것이다. 암스탤 강(Amstel river)을 댐으로 막은 게 암스테르담이다. 그 기술로 두바이 인공섬, 베네치아 방조제등의 전 세계 물관련 프로젝트를 도맡아 연 2000억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꼬솝다고 놀린 것도 잠시, 기네스 1등 새만금도 실상은 실무팀들이 네덜란드에 와서 연구, 자문, 실험한 결과였다.
댐의 명성에 비해 참으로 소박한 전망대를 나와 남은 방조제를 달린다.
그 끝에서 또 도개교를 올리고 배를 먼저 통과 시키느라 정체.
방조제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바람에 네비를 혼동해 출구를 놓처 버렸다.
길옆 쉼터에 차를 세우고 네비를 다시 세팅했다
이내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섰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시골도 여기저기 공사중이었다.
네비의 직진길을 막고 선 인부에게 길을 물어 지도에도, 일정에도 없는 시골마을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마을 초입, 양들이 그늘에 한가롭게 누워 있길래 장난을 치려고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메엠~양소리를 냈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양들이 일어나더니 매엠~ 소리로 화답하며 나에게 다가 왔다.
동네 아줌마는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고
길가 어느집 앞마당엔 조랑말이 매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골목길처럼 이어진 수로, 창문을 예쁘게 장식한 아담한 집, 마을 한가운데에 교회... 죽지도 않고 천국에 온 것 같았다.
하도 마을이 이쁘고 부티나게 보여서 우리가 불쑥 침입한 이방인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작은 마을을 벗어나 조금 달리자 또 공사중이라 우회.
▲
목적지도 잊은채 알수없는 시골길만 다니다가 갑자기 대도시와 맞닥뜨렸다
높은 빌딩과 넓은 대로를 품은 레이와르던(Leeuwarden) 이다.
베스테 빌리지는 도시 남쪽 큰 도로가에 있어 금방 도착했다
13-Veilige Veste (보호소) holstmeerweg 1, 8936 AS Leeuwarden
인적없이 고요해서 들어가기가 약간 주저되는 건물이다. 텅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신하게 건물 전면으로 돌아가 보았다.
외벽은 매끈한 백색판넬을 다이아몬드 커팅한 것처럼 예술적으로 이어 붙였고 창문에 해당하는 부분엔 분홍색 판넬을 붙여 산뜻하게 보였다.
입구바닥엔 무당벌레가 그려진 타일이 박혀 있고 문은 닫혀-잠긴지는 확인 못했다- 있었다. 문에 쓰여진 Graag aan bellen 은 나중에 알아보니 ' 전화하라 ' 는 뜻이었다.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 보면 사무실 같은데 보도블럭에 칠해진 색색 글자로 봐선 유치원 같기도 했다
" 허걱 ! "
귀국 후 이 건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 나도 모르게 시껍했다.
베스테 빌리지는 전 세계의 인신매매 피해여성들의 쉼터, 즉 수용소였다. 오픈 당시엔 이 지역 경찰대가 오토바이로 콘보이(Convoy)를 하며, 입주여성들 카퍼레이드까지 해줬다고 한다. 그런 사정도 모른 채 건물 주변을 허락도 없이 돌아다녔다.
옆마당엔 돼지 우리가 있었는데 전기울타리가 둘러처저 있었다. 건물 뒤쪽에서 여자 두어명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먹던 사과를 돼지에게 주려하자 현주가 정색을 하고 말렸다.
건물이 하도 깨끗해서 신축인줄 알았는데 예전에 경찰서로 쓰이던 것을 리모델링 했다 한다.
정사각형 건물 가운데는 중정이 있어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여성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잡초가 우거진 앞마당에 앉아 사과를 먹은 후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바로 건물을 나왔다
왔던 길을 무시하고 호기심에 끌려 오른쪽으로 더 들어가보니 바로 뒤 신축 건물이 경찰서고 그 뒤로 높은 담과 전기철망이 설치된 교도소가 붙어 있고 그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어쩔수 없이 차를 돌려 나왔다
레이와르던은 네덜란드에서도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는 프리슬란트의 주도(州都)라서 역사적인 볼거리가 많았지만 우린 건물 하나만 보고 바로 이 도시를 떠났다.
나무 한 그루 안 보이는 너른 벌판을 달리다가 차가 갑자기 굴다리 같은 곳을 들어갔다 나왔다.
뭐지 ? 머리 위로는 좁은 수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저 물길을 위해 4차선 도로를 지하로 파놓다니 ! 처음엔 웃음밖에 안 나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들은 쉽게 내려왔다 올라갈 수 있지만 물은 스스로 올라가고 내려갈 수 없으니 일견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현장과 비슷한 사진을 찾아 보았다
<인용사진>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일러 바쳐야겠다.
여긴 차선을 줄일 때 꼭 1차선을 없애 2차선에 붙인다. 지금껏 20여 나라를 운전하며 다녀봤지만 이런 교통체계는 첨 본다. 여튼 바깥차선이 없어지는 방식에 익숙한 터라 어느 방식이 합리적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인들의 머릿속은 역시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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