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검은 발레리노

2015. 8. 15. 17:00Czech 2015




 

볕은 뜨겁지만 습도가 없어 후덥지근하지 않은 날씨. 파란 하늘만 올려다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날에는 컴컴한 건물 안을 돌아디니는 것보다 거리 구경이 최고다.


발레 타령을 하던 현주가 잠시 조용하다 싶더니 대단한 걸 발견한 양 벌떡 일어났다,

나보다 시력도 나쁜 애가 어찌 저 간판을 봤을까 ?  클래식한 건물앞 철망에 ' 200 SHOPS ' 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다.

무거운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땠다. 

전차가 지나가고 돌이 깔린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오후의 태양속으로 들어갔다.


외부와 달리 내부는 최신 트랜드의 쇼핑몰이었다, 

유명 브랜드샵과 파라솔을 펼친 카페, 전망 좋은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환한 빛을 품은 유리돔 ...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국가별 음식이 한 코너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일단 빈자리가 있고 동양인 정서에 맞는 Mongolian BBQ 에 들어갔다,


현주는 나에게 입맛 일임하고 쇼핑할 생각에 마냥 행복해졌다

 

옆자리 백인처자들이 사발에 머리를 박고 쌀국수를 흡입하고 있었다,

 

메뉴판을 볼수록 인상이 굳어지고 위장이 딱딱해졌다. 

프라하로 들어오자 물가가 따블이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  음식 하나만 시키기.

 

장고 뒤 악수라더니...음식이 나왔는데, 뭔 퓨전이란 명목하에 뜨거운 국물에 쌩 토마토가 들어 있고 팍치에 맛살까지... 이 잡탕을 만원도 넘게 받고 있었다, 간이 안되어 있어 매운 소스를 풀었더니 그나마 좀 낫다. 현주는 맛있다는데 난 처음부터 실망해 짜증만 났다 


밥도 남고, 국도 남고 , 동남아 종업원에게 찬 물한잔 달랬더니 유료라고 한다. 총 283 코루나 (14,150 원) 계산.  


화장실가서 세수하고 나와 현주랑 ' 버거킹에서 3시에 만나 ' 하고 각자 취향대로 발길을 돌렸다.

혼자 버거킹에 갔더니 만석, 그 옆 맥도날드도 빈자리 하나 없이 프라하 물가에 놀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약속을 해 놓은 터라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근처 생과일 쥬스 코너에 걸터 앉았다,

0.5 리터에 99코루나 (4,950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쩝 ! 

 

아가씨가 발치에서 플라스틱통을 꺼내 든다. 그 안엔 토막난 과일들이 즙을 흥건히 토해내고 사망해 있었다. 사망시간 최소 어젯밤 이전.

그걸 푹푹 퍼 담아 믹서기에 넣고 돌려 주는데 ... 애기 분유 타놓은 것처럼 미적지근했다,

얼음 달래서 대충 마셔주고 의자에 다리 올려 놓고 쉬었다,

 

현주가 시간 맞춰 돌아왔는데, 살게 없다고 풀이 죽어 있다.  

커피 사준다고 근처 카페로 데리고 갔다,

 

카푸치노와 배주스 주문

맞은편 뚱뚱한 여자가 동양인 첨 보는지 우리를 노골적으로 대놓고 처다봤다,

점점 불쾌, 불편해져서, 총 113 코루나인데 115 코루나 (5,750 원) 주고 후딱 일어났다,


바가지만 쓰고 가는 기분이다. 200 샵 20,000 들어오고 싶다.,

 

아무것도 안 사고 거리로 나오는데, 딱히 갈 곳 없는 관광객들은 계속 이 쇼핑몰로 밀려들고 있었다.

 

 

 

츄리닝을 입은 뚱띵이가 담벼락에 기대 국민학교때 쓰던 플라스틱 피리를 연주랍시고 불고 있었다,

사람들이 발걸음울 멈추지 않고 귀를 털며 지나갔다

 

한 블럭을 건너자 눈만 하얀 흑인이 북과 탬버린 같은 걸 들고 숨은 듯 모퉁이에 서 있었다, 쑥쓰러워 가만히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만만하다 싶으면 뭐라 말장난을 걸었다. 

한 아랍 가족이 걸려 들었다,

아랍인이 뭐라 하자 외마디 말을 따라하며 북을 치고 히쭉히쭉 웃었다. 아랍남자가 재밌다는듯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들이 지나가며 ' 꼬꼬잡년 ' 하는 말을 검둥이가 듣고 리듬을 넣어 한국말을 흉내내는 식이다

 

 

시민회관 앞에선 말쑥한 정장의 중년 백인남성 몇이 서성이고 있었는데 옆에서 가만 보니,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공연 티켓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 봐가며...

뉴올리언즈 길거리처럼 가짜표는 아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화약탑 앞까지 천천히 나왔다


처량한 기타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청년이 화약탑 그을린 벽에 기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채 기타줄을 튕기고 있었다.

 

그 옆에선 비눗방울 묘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여자를 앉혀놓고 큰 비눗방울로 씌우는 묘기를 부리려는데, 계속 실패하자 여자가 그냥 일어나 가버렸다


 

남자가 측은해서 나라도 자리를 지켜주려고 서 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절로 욕이 튀어 나왔다 

 

" 빙~신,  그래 갖고 밥은 먹고 다니냐 ? "

이 도시에선 공연수준하곤 상관없이 돈만 받고 버스커(Busker) 허가증을 내주나 보다

 


잘 빼 입은 관광객들이 넘처나는 프라하 쇼핑거리에 한 무리의 진짜 배낭여행자들이 나타났다. 맨발과 무거운 배낭과 후줄근한 옷... 

프라하는 이미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줄 곳이 아니였다, 

 

현주를 따라 한 쇼핑몰에 들어갔다. 현주가 둘러 볼 동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좀 쉴 수 있었다, 

 


  

 

상품들이 역시 맘에 안 드는 현주,

 

다시 거리로 나와 체코의 자부심, 알폰소 무하 (Alfons mucha) 갤러리를 찾아간다.

 

땀을 줄줄 흘리다보니 손수건을 쇼핑몰에 놓고 올 걸 알았다. 다시 가긴 힘들고 어짜피 냄새 나 버리려 했었다고 자위했다.

건물 뒷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자 MUCHA Museum 초록 간판이 눈에 띄었다


마침 중국인 단체가 한바탕 휩쓸고 가고

 

  

매표소로 가보니 입장료가 240 코루나 (12,000 원) 이었다, 일인당 만이천원,

무하의 원판들을 볼 수 있겠단 기대를 하고 왔는데 ... 그 돈으로 차라리 무하 그림책을 사는게 더 낫겠다. 

그의 작품이 애초부터 포스터, 제품 라벨, 삽화, 인테리어 등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어 널리 팔리다 보니 원판의 감동이 적은 편인걸 감안하면 입장료 책정이 날강도 수준이다. 

 

화장실만 쓰고 바로 기념품샵으로 들어갔다.

 뭔 특별한 아이디어 상품도 없더구만, .기념품마저도 촬영금지였다,

 

 

  

 

 

 

사실 비싼 입장료 내고 원본 보는거랑 기념품점에서 복제품 보는거랑 똑같다, 알폰소 무하 작품은 그래도 된다.

정작 감동은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도서관에서 빌려온 mucha 책을 읽을때 가장 인상 깊었다. 

무하에 관한 독서후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


 

 

 

 

 

박물관을 나와 왼편으로 더 걸어가 보았다.

극동아시아 청년이 호텔앞에 세워진 벤츠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이 마냥 부럽다.


바츨라프(Wenceslaus) 대로 방향으로 이면도로를 걸어가는데 괜히 신이 나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렸더니 현주가 못하게 했다.

쇼윈도우에 장똘뱅이 거지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스스로 놀라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 상업,문화,교통의 중심지인 바츨라프 거리에 도착했다

한가운데 웅장한 건물은 프라하 국립박물관 



 

 

 

 

어디에 좀 앉아 있을래도 주변에 담배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에나 나오니 거리공연 수준이 그나마 좀 낫다


 

 

 

 

 

 

 

 

 

 

 

 

 

거리 서쪽 끝에선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는 것 같았다 

 


소련군을 위시한 바르샤바 조약국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와 이 거리에서만 100 여명의 시상자가 발생한 ' 프라하의 봄'  

 

 


1968~1969년 체코의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독립운동과 무력진압, 체코 사태, ' 프라하의 봄 '

1989년 일어난 혁명을 체코에선 ' 벨벳혁명' 슬로바키아에선 ' 신사혁명' 이라 부른다

1993년 드디어 분리독립하기까지 체코도 참 힘든 시기를 보낸 나라였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행복한 유토피아가 40년전 체코인들이 탱크에 깔리고 총을 맞아가며 지켜낸 거리였다는 거.

그것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있는 사진전이었다,

  

 

동유럽 구식 자동차 한대가 바리케이트 안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연유는 모르겠다

 

기새좋게 뻗어오던 바츨라프 대로가 양쪽으로 쪼개져 흐지부지 사라지자, 인파들도 모래에 물 빠지듯 골목길로 스며 들었다,

길이 좁아지니 더 활기차고 볼거리가 다양해졌다.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리던 남자가 지맘대로 안되는지 길바닥에 철푸덕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땅꾼의 후예들

 

 

알폰소 무하를 발굴한 곳도, 전성기때 활동무대도 파리였지만 그의 고향이 체코란 이유만으로 프라하 곳곳이 무하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공중부양을 하며 서민들을 사기치고 있는 수도사.

 


 

디스플레이가 더 먹음직스러운 사탕가게

  

 

800년 됐다는 하멜시장.

구경하고 싶은데 저녁식사가 예약되어 있어 그냥 지나쳤다,

 

 

 

 

맛있어 보이는 피자집

 

 

위트 있는 대머리 DJ

 

들어갈수록 길은 점점 더 좁아졌다, 


섹스머신 뮤지엄 ? 

 

꼴에 사내라고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보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발기부전으로 고생하는 중년 아재들만 보였다.

  

 

여기 변태시끼 한명 더 추가요.

 

골목길 볼거리에 정신이 팔려 걷다보니 낯익은 마당으로 나왔다

틴광장 천문시계탑 앞이었다

 

역시나 정각에 맞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두번 볼 거리는 전혀 안되니 지금 모인 사람들은 몇분후 집단 실망의 처참한 결말을 맞보리라 ㅋㅋ

 

 

 

 

 

 

틴성당의 종탑끝이 늦은 오후 햇살에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광장 한켠에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동상.

 

웃통을 벗고 있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이 곳은 동유럽

 

한쪽에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웃고 사진찍고 ... 

 

 

 

한쪽에선 다크 초코릿의 흑인 발레리노가 번들거리는 몸을 흔들며 땡볕에 춤을 추고 있다.

모름지기 광장은 이래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저녁을 무료로 준다길래, 활기찬 광장을 뒤로 하고 6시에 맞춰 숙소 1층 식당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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