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4. 18:00ㆍCzech 2015
옆문으로 들어가 레스토랑을 지나쳐 좁은 복도에 있는 호텔 프런트로 갔다.
아무도 없어 한참을 기다리자, 현주 짐을 맡아줬다는 중년여자가 윗층에서 내려왔다. 호텔 메니저인거 같았다.
우리를 보더니 ' 기다리라 ' 한마디 해놓고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우리가 멍하니 서 있자 ' 옆 카페에 들어가 기다리라 ' 고 했다.
건물 1층 가운데 통로는 호텔 프런트로, 양편은 식당과 카페로 쓰이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앉아 기다렸다.
안쪽 테이블엔 동양인 아줌마 한명과 아가씨 둘이 앉아 있었는데 좁은 카페에 한국말이 선명히 들렸다.
한참 후 메니저가 들어오더니 세여자에게 뭘 적어주며 설명을 했다. 여자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트렁크를 끌고 마지못해 나갔다. 그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그리고 또 함흥차사... 카페안에 우리만 남았다
시간은 3시 30분을 넘어간다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하니까 답답해서 프런트에 가서 빨리 체크인을 해달라고 항의했다. 매니저가 귀찮다는듯 설명도 없이 또 기다리라고 한다.
열불나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광장을 구경하고 있으니 웨이트리스가 영문도 모르고 주문을 받으러 왔다.
땀이 말라 소금기가 버석거리는 옷도 갈아입고 얼른 샤워도 하고 싶은데 ... 한참 있으니 매니저가 나와서 우리에게 손짓했다.
문앞에서 뭐라 길게 말하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대충 들으면 안될거 같아 프런트로 데리고 가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했다.
' 객실 욕실에서 물이 샌다. 오늘은 숙박이 안되고 내일부터 가능하다. 택시로 다른 호텔까지 데려가고 데려오겠다. 내일 점심이나 저녁을 무료로 제공하겠다. 호텔은 같은 Praha 1 구역에 있는 것이다 '
그러면서 -못 믿겠으면-올라가 방을 확인해 볼거냐고 물었다.
어쩌겠는가 ... 현주랑 상의한 후에,
' 알았다. 대신 좋은 호텔로 줘라. 내일 아침 10시에 픽업 와라. 내일 6시에 저녁을 먹겠다 ' 고 했다
카페에 앉아 또 한참을 기다리는데 대머리 중년남자가 광장쪽에서 성큼성큼 걸어와 불쑥 들어왔다
대머리가 매니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따라오라며 우리 짐을 매고, 끌고 나갔다. 지팡이를 짚고 얼른 그 둘을 따라갔다
광장에선 경찰이 관광객용 클레식카를 단속하고 있다.
택시를 부른 줄 알았는데 왠 벤츠 e-class 자가용에 짐을 실으며 타라고 한다.
카프카의 청동조각상이 있는 유대인지구를 통과해 미로같은 구시가지를 이리저리 돌더니 어느 회색건물 앞에 멈췄다. 유명관광지 뒷골목의 그저 그런 특색없는 거리,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오후의 땡볕만 눈부시게 가득했다.
대머리가 차 트렁크에서 짐을 빼 호텔 로비에 부려 놓곤 후다닥 떠나 버렸다.
로비에 들어서자 유행 지난 밤색 합판쪼가리, 여러 종류의 조명이 중구난방 붙어 있는 천장,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자가 정장이 아닌 편한 옷차림으로 포런트에 서서 우리를 맞았다. 호탤의 품격이 느껴졌다.
Check-in 하고 승강기를 타러 뒤쪽 홀로 갔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2인용 소파에 낑겨 피곤한듯 널부러져 있었다.
2층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파리 한마리가 선회비행을 하고 있고 얼룩진 카펫에선 곰팡내가 솔솔 올라왔다
뜨거워진 매연과 거리소음이 열린 창문으로 팡팡 밀려 들었다. 얼른 벽과 천장을 스캔해 봤지만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 하나 없었다.
볼록한 브라운관 TV가 가뜩이나 더운 방을 더 깝깝하게 만들고 있었다.
Sivek hotel 이라...
이름 한번 참 ~ 씨발스럽네.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와 현주 눈치를 보며 말했다.
" 다른 호텔로 바꿔 달랠까 ? "
말수가 적어진 현주가 체념하듯 ' 그냥 자자' 고 했다. 왠만하면 현주말을 들었을텐데 은근히 부화가 치밀었다.
... 일박에 13만원 넘게 주고 고작 이런 방에서 자야 되는거야 ? ...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망칠 순 없어 !
혼자 로비에 내려와 프런트 여자에게
" 호텔을 바꿔 달라고 Lippert 호텔에 전화해 달라 " 고 부탁했다.
당황한 여자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방이 맘에 안든다고 했더니 좋은 방으로 바꿔 주겠다고 했다.
' 에어컨 있냐 '고 묻자 여자가 체념하고 잠시 기다리라며 어딘가 전화를 했다.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통화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 올라가 기다리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
2층 올라와, 더위에 지쳐 늘어진 현주에게 ' 호텔 바꿔 달라 ' 고 했다니 별 기대 안한다는 듯한 표정이다.
옷도 못 벗고 욕실에서 찬물에 손수건을 빨고 있는데 maid 아줌마가 와서 ' 로비에 내려가 전화받으라 ' 고 알려줬다. 부리나케 내려가자 여자가 Lippert 호텔에 전화해 나를 바꿔 주었다,
- 호텔을 바꿔 달라
= 지금 호텔들이 다 차서 빈방이 없다. 1시간 거리에 호텔도 괜찮겠냐 ?
- Praha 1지구 아니여도 괜찮으니 가까운 곳으로 달라
= 알았다. 직원을 바꿔 달라
씨벡 여자가 리페르트 매니저 여자랑 통화를 끝내더니 나에게 말했다.
" 택시 온다니까 짐 챙겨 내려오세요 ! "
그녀들에겐 내가 진상이겠지만 이건 엄연히 나의 권리다.
방으로 와 현주에게 이야기하고 풀지 않은 짐가방을 들고 얼른 로비에 내려왔다
아직도 반신반의한 현주가 로비 옆 Bakery 에 들어가 맛있는 빵을 골라왔다 106 코루나 (5,300 원)
한결 밝아진 현주
하얀셔츠에 넥타이를 맨 잘 생긴 청년이 로비에 들어와 나를 찾는다.
호텔 앞에 이번엔 검은색 아우디가 기다리고 있다. 청년은 짐들을 트렁크에 싣는 사이, 우리는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시내를 벗어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데도 왠지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뒷자리에서 주변 경치에 빠져 버린 현주
프라하 남쪽으로 내려가자 현주가 ' 처음에 우리 묵었던 호텔이면 좋겠다 ' 고 웃으며 말했다.
아우디는 그 말을 뭇 들은 척 무심하게 속도를 더 냈다.
길거리에 흔하게 보이는 현대자동차
고속도로 왼편에 Best Western 호텔이 보였다. ' 혹시 저기 ? ' 살짝 기대했는데 어느새 호텔이 등 뒤로 멀어져 갔다.
1시간 거리면 프라하를 완전 벗어나는 건가 ... 슬슬 걱정이 됐다
말없이 운전만 하던 청년이 드디어 고속도로 IC를 빠져, 변두리 동네를 지나, 조그만 호텔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Hotel selsky Dvur (셀스키 드부르) ★★★★
짐을 내려주며 청년이 ' 내일 10시반에 모시러 오겠다 ' 고 했다. Lippert 매니저에게 10시라고 했다 하니 ' 그럼 다른 사람이 픽업을 온다 '고 한다. 그때 현주가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
" 난 이 남자가 좋으니 10시 반에 가자 "
황당해서 청년에게 고대로 전했다
" 내 아내가 당신이 좋다니 10시반에 봅시다 "
청년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생겼다.
프런트 여직원은 말 안해도 우리 사정을 안다는 듯 시종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방에 들어와보니 산뜻한 침구세트, 고급스런 인테리어, 욕실은 번쩍번떡 럭셔리 했고 무엇보다도 에어컨이 있었다.
같은 SH 계열 호텔인데도 '씨발' 하곤 비교가 안되게 좋았다.
1시간 걸린다더니 시내에서 여기까지 30분도 안 걸렸다, 포기하게 하려고 일부러 겁준거 같아 Lippert 매니저가 더 괘씸했다
아까 우리랑 같은 처지였던 세여자분은 어떻게 됐을까 ? 그제서야 궁금해졌다.
샤워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속에 쉬고 났더니 피로가 싸악 풀렸다.
동네 산책하며 저녁을 먹자고 7시쯤 방을 나왔다
엔틱가구와 대형 SAMSUNG TV가 놓여 있는 호텔 복도
물레방아도는 호텔 중정이 ... 레스토랑이었다.
오늘 저녁은 근사하게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자고 하니 현주도 좋아했다.
하늘은 명화처럼 아름다웠고,
주변의 저녁분위기가 평온했다
메뉴 곁장엔 이 레스토랑 주방장이 2013~2014 년 연속 ' 올해의 체코 요리사 ' 로 뽑혔다는 자랑글이 붙어 있었다.
그 다음장의 메뉴들이 더 맛있게 보이고 높은 가격이 수긍이 됐다.
맥주 45, 레모네이드 59
레스토랑엔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등 외부인들도 많이 보였다,
빈 테이블들이 금방 다 차버렸다.
스프 65
배추 셀러드 185
Back Lip 195
더 앉아 있고 싶어 커피 50 까지 추가
총 599 코루나 (29,550 원)
서빙하는 직원들도 친절하고 음식맛은 당연히 수준이상이다
현주랑 10시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다 일어났다.
로비에 스테인드 글라스
객실로 들어가며 계단에 앉아...
현주는 ' 행복해, 행복하다 ' 는 말만 자정을 넘겨 1시까지 반복하다 결국 잠들었다.
내 더러운 승질머리도 써 먹을때가 있다는게 행복한가 보다. 나도 오래간만에 위신을 세워 행복했다.
' 맹한 부부 삼천지교' 를 먼 동유럽에서 실감하고 간다,
TV속 귀여운 캐릭터를 보니 24살 은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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