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4. 09:00ㆍCzech 2015
아침 8시까지 늦잠을 자는 사이, 현주는 자기 짐보따리를 다 싸 놓았다.
불안해 하는 나에게 ' 방이 갑갑해 언능 나가고 싶다 ' 고 이상행동을 설명했다.
방이 좀 식을만 하자 다시 달궈지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인용사진>
8시 반에 아침 먹으러 1층으로 내려왔다.
어두운 로비 한구석엔 크리스탈 제품들이 관광객들의 눈탱이를 치기 위해 선반위에 도열해 있었다.
영롱한 광택은 흐리멍텅해진지 오래였고 붙여 놓은 가격표에 놀라 고개를 돌려버렸다
투숙객용 아침식당은 어제 음료수를 마셨던 칸이 아니라 좀 더 안쪽에 만들어져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마자 ... 장례식에 온 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너무 엄숙하고 조용해 먹던 것도 체할 지경이었다.
음식 형편없음.
먹을게 이것밖에 없었는지 콘프레이크가 담긴 단지만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신경질적으로 쏟아 부어 가져왔다,
에어컨도 없는 방, 유스호스텔보다 못한 아침 메뉴 ... 슬슬 짜증이 났다
가족투숙객이 내려와 뒷 테이블에 앉았다, 군청색 티를 입은 남자애(아랫사진 뒤쪽)가 콘프레이크를 스푼으로 푸려는데 단지가 깊어 계속 헛손질이다. 저러다 아침 굶을거 같아 보다 못해 " 도와줄까 ? " 하고 단지를 거꾸로 들어 그릇에 탈탈 털어 주었다.
음식을 입에선 거부하는데 억지로 위장에 채워 놨다,
더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서 식당을 나와 마당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현주는 운동겸 성에 갔다오기로 하고 난 여기 앉아 마을의 아침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
가까워질수록 아래에서 올려다보이는 성은 더 크고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이 성은 14세기에 축조되어 황제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성 바로 아래 숲에서 길을 잃었다
성 내부를 보려면 투어비를 내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가이드를 따라 정해진 장소로만 다녀야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보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요새이며 보석과 진주,순금으로 떡칠을 한 왕관의 제작비용만 15억 가량 된다고 하니 아무나 들여보낼 수 없었나보다. 더 황당한 건 진품 왕관들은 비엔나와 프라하성에 있고 여기엔 복제품만 있다는 거.
옛날 성주는 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 인구밀도가 낮은 원예 사회에서는 지주들이 대부분 노예를 고용했다. 그러나 쟁기의 사용으로 농업생산량이 증가하고 인구밀도가 높아지자 절반이상의 지주들이 강제노동 대신 임금 제도를 택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토지와 노동력의 비율이 바뀌면 노예제도가 곧바로 부활했다. 14세기에 유럽 인구의 절반을 쓸어 가고 이후 300년동안 정기적으로 찾아온 흑사병은 그러한 변화를 제공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의 경우, 16세기 이전에는 농노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줄자 지주 계층은 소작농들의 이동성을 제한하기 위해 황제에게 로비를 벌였고 그리하여 지주들로 하여금 도주 소작농을 되찾도록 허용하는 법안과 채무 예속을 통해 소작농들을 땅에 귀속시켰다...』 <모든 겻의 가격> 176 p
혹시 우리가 일평생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현대판 노예가 아닐까 ? 자발적 임금제도를 빙자한 ...
숙소 앞에선
고희를 넘긴 백발이지만 기골이 장대한 할아버지와 피부가 늘어지고 검버섯이 핀 할머니가 쫄쫄이 싸이클복을 입고 숙소 뒤로 돌아갔다, 잠시후 자전거를 끌고 나오더니 전용 케리어 4개를 자전거 앞과 뒤에 걸었다. 할머니도 사각형 케리어 두개를 뒷바퀴쪽에 양편으로 걸쳤다. 수십 kg는 족히 될 그 자전거를 들고 문턱을 넘다 할머니가 넘어질 뻔했다, 할아버지가 짐을 대신 가져갈줄 알았는데 자전거만 꺼내 주었다. 노부부가 힘겹게 패달을 밣으며 먼길을 나섰다.
이번엔 가족이 자전거를 한대씩 끌고 나타났다. 가만보니 아까 내 뒤에 앉았던 사람들이었다, 40대 초반의 부모와 두 사내 아이가 화목해 보였다. 성을 향해 경사진 길을 힘차게 올라가는 아이들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한편, 성을 다 둘러보고 내려오는 현주,
관광객들을 행렬이 아침부터 계속 이어졌다
삼거리에서 잠시 길을 헷갈리기는 했지만 제 길을 무사히 찾아 내려오는 현주,
마을 초입에서 마차를 타고 성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난 9시 20분쯤까지 기다리다가 가방을 싸 놓으려고 방으로 들어왔다. 짐을 다 챙겨 나가려는데 마침 현주가 도착했다
등산을 하고 났더니 몸도 맘도 상쾌하다고 해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현주는 찬물로 샤워하고 나온다고 해서 나 먼저 내려가 주인아줌마에게 방값 1,200 코루나 (60,000 원) 지불했다.
오늘 차를 반납하는 날이라 차 안에 잡동사니들을 내 배낭에 다 쑤셔 넣었다. 현주랑 주차장을 나올때 주인 아줌마가 철문을 열어주며 손을 흔들었다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성이 있는 산위로 향했다.
차로 갈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하필 경찰차가 우리 뒤에 바짝 따라 붙었다. 찜찜해서 성 입구를 그냥 지나치자 경찰차가 백미러에서 사라졌다. 꼭 우리를 구역 밖으로 쫓아내려는 듯...
좁은 산길을 따라 카를스테인 성 뒷고개를 넘어 숲을 빠져 나온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숲속 여기저기서 사슴처럼 불쑥불쑥 나타났다,
숲을 빠져 나오자 프라하 남쪽엔 지평선 끝까지 누런 밀밭이다.
저 멀리 프라하가 희미하게 보일때쯤 현주가 이야기를 꺼냈다
' 요즘 외국을 여행하는 한국 젊은애들은 옛날의 배낭여행객들이 아닌거 같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경비를 절약하며 여행을 다니던 시대가 지난거 같아요. 부모에게 지원 받고, 그 돈으로 젤리까지도 명품이라고 잔뜩 사서 SNS에 자랑하고, 외국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인상쓰고 ... 경제가 어려워 가난한 청춘들은 점점 더 여행이 힘들고 ... '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무사히 프라하에 다시 들어왔다,
변두리 주유소에서 일단 기름부터 가득 채웠다
776 코루나 (38,800원)
주유소 조금 아래에 이번엔 마트가 있었다.
차 반납하기 전에 무거운 짐 쇼핑을 하려 했는데 순서가 착착 맞았다.
카트에 무슨 동전을 넣을지 몰라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웃으며 내 손바닥에서 10 짜리 동전을 집어 주었다.
하얀 동전 하나가 손바닥에서 떨어져 또르르 굴러갔다. 또 다른 여자가 주워서 내 손바닥에 올려주고 간다.
역시 한적하고 넓다
현주는 차(Tea) 코너로 달려가고
나는 짱이가 좋아하는 불량식품 코너로 달려 갔다
' 아까 말한 명품 젤리라는게 이거야 ! '
현주가 빨갛고 노란 색소덩어리 젤리를 한 봉지 들어보였다.
HARIBO ? 골드베렌 (금곰) 이라고 촌스럽게 써 있는데 오래된 독일제품이고 한국에서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 젤리를 나중에 귀국후 마켓에서 하나 사 먹어 봤는데 표면이 딱딱하고 싱겁고 잘 부러졌다, 내 어린 추억속의 젤리는 보들보들하고 칙칙 늘어나고 콜라맛이 나고 설탕 범벅이어야 한다. 보약이 아닌 이상 맛이 있어야 한다.
은재가 좋아하는 술 들어간 초코릿도 사고
그러다 발견한 깨엿. 체코에 와서 한국의 옛 정취를 느끼다니 !
한 아저씨가 빈 플라스틱 용기들을 가져와 수거함에 넣고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인스턴트 스프등을 카트에 담고 계산대로 갔다, 비닐봉지를 달랬더니 점원 아줌마가 계산대 아래를 손짓했다,
총 405 코루나 (20,250 원) 많이 산거 같은데 별로 안 나왔다
마트 출구는 동네쪽으로 나 있어 한바퀴 돌아 프라하로 들어가는 간선도로에 합류했다
라디오에서 바츨라프 노이만 (Vaclav Neumann) 이 지휘하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빰~ 빰빠 ? 빰 ! 빠 ! 빰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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