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밤하늘에 십자가

2015. 8. 13. 21:00Czech 2015

 



 

모제르 옆동네로 조금 들어가자 바로 고속도로에 닿았다. 이 도로는 프라하까지 발을 뻗고 있다,

도심지를 기세 좋게 관통하던 고속도로는 숲속에 들어서자 부끄럽다는듯 휘어지고 조그만 마을에선 어깨 폭을 좁히고 밀밭에선 꼬리를 내렸다.

산을 뚫고 계곡을 나르고 동네를 뭉개 버리는 6차선 무시무시한 도로가 아니라 동물,인간,마차가 오랜 세월 디뎌왔던 길이었다.

 

한손으론 핸들을 잡고 한손으론 사과를 베어 먹으며 아직도 크리스탈의 매직에서 헤매고 있는데 ... 현주가 내 옷에서 땀냄새가 엄청 난다고 타박을 했다. 현주 코만 비정상이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입고 있는 검은 티 어깨엔 현주가 꿰매준 표시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베트남 여행때 날카로운 버스 귀퉁이에 찢어졌어도 못 버리고 여행때마다 입는 건 빨래가 쉽고 금방 마른다는 이유였다. 너무 오래 입어서 그런가 요즘은 매일 빨아도 땀 한번 흘리면 금방 냄새가 난다. 30년후 노인이 되어 여행할 때도 앙상한 몸통위에 이 옷이 걸쳐져 있는 상상을 하니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카를로비 바리와 프라하의 중간쯤에 위치한 크루쇼비체 (Krusovice) 마을을 지나간다,

 

크루쇼비체는 체코의 유명 맥주 브랜드기도 하다,

 

마을 끝에서 적당한 레스토랑을 하나 발견했다, 역시 윗층은 숙소로, 아랫층은 레스토랑으로 쓰는 조그만 건물이었다.

주변 공터 주차장과 야외 테라스가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꽉 찼다,

  

restaurant U Lipy

 

우리는 더위를 피해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낮은 천장과 아치형 기둥 때문에 동굴같이 어두침침했다. 동굴속에서 여직원들이 밝은 얼굴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먼저 마실걸로 음료수와 맥주를, 메인으로는 치킨 스테이크 149, 돼지목살 스테이크 159 를 주문했는데... 아가씨가 안 가고 사이드 메뉴를 고르라며 서 있다.

사이드 메뉴의 가격을 보고서야 알았다. 지난번 플젠 맛집에서 계산이 추가된 이유를 !

현주는 케찹을 16, 난 쌀밥을 35 추가로 시켰다.

 

 

 

현주거 

 

내꺼

 

와~ 지대로다. 이곳 보헤미안 지방의 요리는 진짜 대박이다. 싸고 푸짐하고.

너무 맛있다보니 포크까지 깨물 정도었다.

 

앞니 사이에 뼈 조각이 끼었나보다. 혀에 거칠거칠한게 느껴졌다. 빼려고 종이로 쑤셔 봐도 안된다.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보니 거울속에 영구가 있었다.

낀게 아니라 깨졌다. 포크를 뒤집어 입안에 넣다가 깨물어서 앞니가 조금 깨져 있었다. 


음식값이 싸서 부담없이 커피를 추가하고도 총 470 코루나 (23,500 원)

한국에서 이렇게 먹으려면 5만원 이상 나올 뿐더라 이런 음식을 파는 데도 별로 없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점심을 즐기고 나왔는데

체 세워 놓은 곳까지 가는 동안에 머리털이 꼬실라질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다, 얼른 차로 뛰어가 에어컨 틀고 출발


프라하를 향해 동쪽으로 달리다 크지보클랏 (Krivoklat) 이정표를 보고 고속도로를 빠져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예전에 한번 와 본 길이라고 눈에 익었다,

라니 (Lany)에서 갈림길이 나타났다. 우측은 크지보클랏, 우리는 왼편 베로운(Beroun) 방향으로 멈춤 없이 달린다

 

 

 

야트막한 산들을 넘어오자 베로운으로 흐르는 강과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강가 공터에 나신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게 보였다,

왠 떡인가 싶어, 길옆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줌을 이빠이 땡겼다

  


다음엔 망원경도 가져와야겠다.,

 

 


우리를 수상히 여길까봐 얼른 차를 빼서 나왔다,

 

베로운 (Beroun)의 인상은 건물도 사람도 삭막하다는 거

 

 

 

 

작은 배로운을 금새 통과해 변두리의 인적없는 마을에서 우회전하여

 

 

 

오늘의 목적지 카를슈테인 (Karlstein) 을 향해 산길을 오른다,

 

 

베로운 뒷산을 힘겹게 넘자 평평한 고원지대가 나타났다,

 

 

햇살은 아직도 뜨거운데

 

한 청년이 웃통을 벗은채 킥보드를 타고 있다

 

조금 더 가자 카를스테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마을 초입에서 맞닥트린 오토캠핑족

 

 

 

 

카를스테인 성과 예약한 숙소를 가려면 왼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경찰차가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이 길은 저녁 7시까지 '보행자전용' 이라 당당히 밀고 올라가기도 찜찜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창문을 열고 경찰차에게 호텔 이름을 외쳤다,

경찰이 순순히 차를 비켜 주었다.

 

한적한 마을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을 끝에 성이 있었다,

체코 황실의 보물을 보관하던 난공불락의 요새.  카를슈테인 성 (Hrad Karlstein)

 

길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가다 KORUNA 란 글자를 찾아냈다

주차장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건물 옆으로 철문이 달린 주차장이 있었다, 주인 아저씨가 목발을 짚고 나와서 주차를 봐 주었다.




주인 남자는 왠지 독일인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1층 식당에서 check-in 수속을 밟고  


 

남자 웨이터를 따라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은 아담하게 거실도 있고 미로같은 복도를 따라 객실이 제법 많이 붙어 있었다

 

복도 옆에 난 문을 통해 2층 옥상으로 나갈수 있었다. 거기에서 카를스테인 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인용사진>

 

우리 방은 2층에 남쪽으로 넓은 창이 두개나 있어 훈증막이었다

땀 냄새 난다니까 배낭에 빨래까지 다 꺼내 샤워부스에 들어 앉아 다 빨아 버렸다. 현주에게 빨래를 밖에 널어 달라고 부탁하고 샤워 후 나와보니 현주가 사라졌다. 현주도 더워서 방에 못 있고 복도 소파에 앉아 논문을 보고 있었다,

 

방으로 와서 창문을 다 열고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시간이나 곯아 떨어져 버렸다.


7시가 넘었다.

현주가 찬물이 먹고 싶다고 나가자고 한다. 비몽사몽 옷을 주워 입고 더운 방을 탈출했다,

기껏 1층 식당으로 내려와


물과 음료수 60 코루나 (3,000 원) 시켜 마시고

 

Wi-Fi 비번 물어서 연결하고 좀 앉아 있으니 차츰 차츰 정신이 돌아왔다

 

마을을 산책하려고, 식당 옆 복도로 주차장에 가 차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행길로 나가려고 철문을 열어 보니 잠겨 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 나가려는데 뒷곁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웨이트리스가 와서 철문을 열어 주었다. 서로 민방한 상황.


마을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상점들은 벌써 다 문을 닫았다,

 

 

 

  

 

 

 

 

 

 

 

 

길가 주택들은 관광객을 낚아채기 위해 다 가게로 개조했는데, 뒷집들은 아직도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노부부와 마주쳤다.

' 재키' 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반갑다고 촐랑대길래 안아주었더니 노부부가 우리에게 일본인이나고 묻었다. 

 

내가봐도 그날의 난 이완호가 아닌 ' 이노끼' 처럼 생겼다

  

 

 

문닫은 가계안을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엔틱이나 second-hand 를 팔고 있었는데 거의 고물상 수준이었다 

 

 

 

오전에 모제르의 제품들을 보고 왔는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고양이 한마리가 지나가길래 반가워 ' 야옹' 소리를 냈더니, 잠깐 맘추고 두리번 거리다 제 갈길을 가 버렸다.


 

 

  

일제 SUV 한대가 올라오더니 길 한복판에 섰다. 아저씨가 창고 나무 문을 활짝 열고 차로 돌아와 후진으로 넣으려고 했다.

덜덜거리는 소음과 매연을 뿜으며 열번 이상을 들락달락해도 차를 못 집어 넣었다.  현주가 한참을 못 오고 기다렸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요란해졌다,

성 방향에서 오토바이들이 줄줄히 내려왔다. 퇴근길 러시아워가 여기도 있었다.

 

큰길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문 연 곳이 있음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길에 우리 숙소 식당만 아직 불이 켜져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저녁과 아침을 다 여기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식당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재키가 날 보고 또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노부부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 분도 여기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 동내 바닥이 이렇게 좁다.

 

뭘 먹을까 ? ...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우리를 2층으로 안내해준 아까 그 웨이터가 오더니

"  영업이 끝나서 주문이 안된다 " 며 미안해 했다.  이제 고작 8시 40분인데 !

 

파라솔 날개를 하나씩 접으며 엄습해 오는 눈치가 부담스러워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차에 가서 구황식품을 다 챙겨 2층 옥상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그래봤자 물과 과일과 찐계란 하나와 과자 한봉지가 전부.

 

옥상으로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속에 잠긴 고성을 바라보며 먹는 저녁시간은 ... 나름 분위기가 괜찮았다

 

갑자기 군청색 하늘에 하얀 십자가가 선명하게 그어졌다

 

 

" ... 낮부터 프라하와 주변 성에서 왕과 귀족들이 모여 들었다.

      오늘 밤 카를스테인 성에서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 

      윗층 구석방에 불이 켜졌다. 눈맞은 남녀가 몰래 빠져 나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 " 

 

투숙객이 들어와 옥탑방 창문을 열길래 쓰레기를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방이 아직도 후덥지근하다. 참다 못한 현주는 씻으러 들어가고 난 카메라 사진들을 정리했다.

계곡에 밤이 깊어져 간다

 

오늘의 이동거리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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