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질러 질러, 질러탈 !

2015. 8. 5. 15:00Austria 2015

 

 

 

 

예전에 프랑스를 여행할 때 파리에서 몽블랑 산 아래 샤모니 마을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중부의 기름진 평야를 몇시간 달리자 동쪽에서 산들이 삐쭉삐쭉 솟기 시작하는가 섶더니 이내 만년설을 얹은 고산준령 틈바구니로 끼어버렸다, 그때 든 생각이, 좋은 땅은 힘쎈 놈들이 차지하고 스위스 같은 약소국은 이렇게 사람 살기 힘든 곳으로 쫓겨 났구나 !

이번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쪽 들판은 독일이, 남쪽 산악지대는 오스트리아가 정확히 국경선을 긋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 잘츠부르크 서쪽면이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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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인들은 잘츠부르크에서 인스부르크를 가려면 악산들이 즐비한 남쪽으로 내려가 알프스 산등성이를 넘나 들어야 한다. 평지인 독일로 돌아가는게 절대적인 이득이다. 두 나라가 서로 어떤 주판알을 튕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네들 땅처럼 들고 나는 모습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도 하얀 태산준령을 넘는 대신 지도위에 가느다란 실선으로 그려진 독일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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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다시 오스트리아로 남하.

 

 

 

인스부르크 (Innsbruck)는 애초부터 가기 싫었다. ' 알프스의 장미' 라느니 '티롤지방의 수도'라느니 잔뜩 치켜 세우지만, 그런 번잡한 대도시에서 알프스와 티롤을 지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뻥 뚫린 고속도로는 ' 인스부르크로 가자' 고 나를 꼬시지만 과감히 질러탈(zillertal) 방향으로 핸들을 낚아챘다.

 

티롤 (Tirol)지방은 유럽 알프스중에도 엑기스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오스트리아가 티롤을 반으로 잘라 남쪽은 이탈리아에 상납했지만 그 정통성은 아직도 북쪽에 있다. 티롤에서 가장 큰 스키장이 여기 질러탈에 있어서 유럽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라 한다.

 

어제 돌아다닌 잘츠캄머구트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여기는 산들이 좀 더 완만해서 인가들이 산등성이까지 넓게 드문드문 퍼져 있었다

 

개털갈이 하듯 거뭇거뭇 지저분하게 벗겨진 산등성이들,

 

 

 

 

6.25전쟁후 50,60년대에 생활기반을 잃은 많은 한국인들이 경북 북부와 강원도 영서지방의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었다.

그러나 화전도 경사면이 최대 30 % 이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도대체 저 많은 집들은 화전도 못해 먹는 이 계곡속까지 들어와 어떻게 저리 잘 사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알프스 산들엔 따로 지적도가 필요없다.

척 봐도 누구네 땅이 젤 큰지, 경계가 어딘지 그대로 보인다

 

 

제법 큰 마을인 Ziller를 무심히 지나친 차는 이제 tal (계곡)을 향해 가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숙소를 잘못 잡았나 ?  이제 더 이상 큰 마을이 없을 것 같은 데도 차는 탈탈거리며 계곡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여긴 모든 집들이 다 무주리조트 티롤호텔이다.

 

타워크레인을 보니 문뜩 ' 왜 여긴 20~30층 다국적 호텔체인들이 안 보이지 ? '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대산가 설악산에 전봇대처럼 꽃아놓은 그 고층 호텔들에 너무 익숙해졌다.


한국과 중국의 공기가 탁하고 수질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철강과 화학같이 매우 유독한 산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는 다른 선택을 했다, 청정한 공기와 숲, 그리고 야생동물 등과 같은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실업자에게 공장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자산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국가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환경 오염을 꼽았다, 유조선과 반도체를 못 만든게 아니라 안 만들었던 것이었다.

 

질러탈의 명물이라는 빨간 열차가 파란 계곡숲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더 명물인 증기기관차.

석탄타는 매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고압선과 철탑들이 미관을 지대로 해치고 있는데

 

거대한 산쪽으로 뻗어 있는 걸 보니

 

스키어들을 산꼭데기까지 편하게 실어나를 리프트용 전기였다,

 

 

경사진 곳은 사람들이 일일히 풀을 깎고

 

 

평지는 트랙터가 깎고 있었다

 

 

대동맥에서 나온 우리 차는 하지정맥을 1시간째 들어와 아제는 모세혈관에 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우리 숙소는 어디인가...


시골 마을길

 

 

예약한 숙소 이름 OBLASSER 가 선명하게 박힌 건물이 나타났다. 뒤에는 거대한 산이, 앞에는 파란 풀밭이 있어서 전망이 근사해 보였다,

위용이 맘에 들어 현주에게 안 알려주고 혼자 싱글벙글하며 그 호텔로 향했다,

 

남쪽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Mountain view 방향 객실은 발코니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호텔인지 화원인지 모를 정도다.,

 

 

1층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아직 문을 안 열었다.

현주에게 햇볕을 쪼이며 쉬고 있으라고 하고 나는 호텔 입구를 찾아 건물 옆으로 돌아갔다

 

조그만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깜깜하고 아무도 없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가니 레스토랑 내부로 연결되었다

' Hello, Hello ! ' 부르니까 잠시후 나이든 아줌마가 어둠속에서 나왔다.

' Hotel ? ' 이냐고 물었더니 따라오라며 앞장서서 데려간 곳이 화장실(Toilet) 이다.

이쁜 아가씨였더라면 화장실도 감사하겠지만 지금은 밖에 안사람도 있고... 폰을 켜서 예약바우쳐를 보여 주었다.

그제사 아줌마가 알았다는 듯 ' 여긴 큰 곳, 그건 작은 곳 '이라고 알송달송한 말을 한다.

" 나가서 다른 길로 가요 ! "

 

아까 다 온줄 알고 네비를 무시하고 이름만 보고 왔더니 다른 곳이었나보다

어리둥절한 현주를 태우고 다시 큰 길로 나왔다,

 

아줌마가 손짓한 것만 기억하며 큰길을 따라가니 차는 점점 산으로 올라가고, 네비는 돌아가라고 까마득한 아랫동네를 가리켰다

 

차를 다시 돌려 동네로 내려와, 공사중인 작은 개울을 넘어가자 왠 가정집앞에서 네비가 멈쳤다

 

화단에 조그만 녹색표지판이 있는데 여기에도 OBLASSER 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헷갈릴만 하네 !

 

바우쳐에 사진을 비교해 보니 여기가 맞는거 같다. 아까 큰 오블라세는 Ferienhof Oblasser 였고 우리가 예약한 여기는 Haus Oblasser 였다.

좋다 말았네

 

 

문앞에 써 있는 말이 몬가 ? Ausfahrt freihalten

= Keep the exit clear

 

열린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 아무리 불러도 ... 인기척이 없다

체크인 시간이 2시부터인데 우리가 1시 50분에 도착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10분이나 빨리 왔으니...

 

 

 

 

숙소앞 1층 의자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며 기다려도 안 온다. 2시가 훨씬 넘어간다,

 

 

 

나도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 불안해 하고 있다

뭐가 잘못 된거 같다. 숙소예약 사기인가 ?  

 

 

살짝 잠을 자고 일어나도 ...

 

 

 

 

 

 

 

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아까 문구점에서 산 것들을 꺼내 보았다.

 

LAMY 투명 만년필은 '마데 인 독일'인데,,, 

 

현주가 짱이 주려고 산 것들은 다 브라질, 일본, 동남아 산이었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현주는 옆칸으로 가 잠들어 버렸고

 

난 안으로 들어가 1,2층을 둘러보고 빈방에 화장실도 쓰고 ... 다시 나왔다,

 

조그만 픽업트럭이 마당으로 들어오더니 아저씨가 우리를 식물보듯 하며 자기 개만 데리고 호텔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어떤 방들엔 작업복과 연장들이 있던데 근처 공사장에 인부들이 숙소로 쓰며 들락거리는거 같았다.

 

사람이 반가워 안으로 들어가 부르자 그 아저씨가 2층에서 내려왔는데 서로 언어가 전혀 안 통해 아무 도움이 안됐다,

 

창공엔 행글라이더만 고양이 털처럼 날리고 ... 벌써 4시가 넘어간다.

 

낮잠을 깬 현주가 화장실을 물어봐서 안에 빈 객실에 걸 사용하라고 말해줬다.

잠시후 현주가 나오길래 심난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일단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