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나도 거부하고 싶다

2015. 8. 5. 10:00Austria 2015

 


 

 


어제 마당에서 뒹굴던 개가 오늘 아침에 긴 털을 흔들어 대며, 나도 쫓겨난 주방과 식당 안을 휘젖고 다니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가 살짝 불쾌해졌다. 유럽인이 개를 사람과 동격시 한다면 나도 여기사람들을 개로 봐 줘야겠다.

 

마침 창가에 빈 자리가 있어서 앉았는데 사람들이 이 자리를 비워놓은 이유를 금방 알겠다.

제대로 눈을 뜨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역시 부실한 아침 메뉴

 

돌처럼 딱딱한 빵.

반 잘라 속을 긁어내고 햄과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커피머신이 보이길래 카푸치노를 마시려고 하니 그건 유료, 테이블에 차려진 묽게 내린 드립 커피만 무료. 

(올로모우츠 숙소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무료로 대접해준 아줌마에게 감사한다)

 

8시에 내려갔다가 1시간도 못 있고 방으로 올라왔다.

 

 

주변경치가 아무리 좋고 시설이 최신이어도 이 호텔은 그냥 정이 안 간다. 가방에 짐을 던져 넣듯 꾸리고 check-out 하러 내려왔다

앞 투숙객들 수속 끝나길 기다렸다가 내 순서가 됐다. 메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방 번호를 확인하더니 76.2 유로 (96,012 원) 청구서를 내밀었다.

' 나는 72.9 유로로 알고 있다 ' 고 했더니 도시세가 붙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기분이 확 상했다

 

그날 저녁 Wi-Fi 되는 곳에서 확인해 보았다.

Booking.com 에서만 숙소를 예약하는데 표시된 숙박비의 대부분이 세금이 포함되어 있는 최종가격이었다. 그런데 이 숙소만 세부사항에 작은 글씨로 도시세가 별도라는 문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디폴트옵션 (Default option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 즉 기본값)을 교묘하게 역이용한 고도의 사기로 밖에는 안 보였다.

 

호텔 주차장 앞마당에선 클래식 오픈카가 뚜껑을 열어 놓은채 밤새 내린 비에 쫄딱 젖어 있었다,

 

마을을 떠나며 주유소에 들렸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이 한쪽편에만 길게 늘어서 있어서 반대편에 차를 세우고 줄을 차 너머로 당겨 가득 채웠다, 리터당 1.267 유로 (1,600 원) 이었고 41 유로 (51,660 원)이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가 현주 줄 껌 한통(1.19 유로) 사고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  No card, only cash ! "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써서 고시생같이 생긴 점원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다른데는 다 되는데 왜 안되냐고 물었더니

"  기름이 비싸집니다 ! "

 

잘츠캄머구트를 떠나며 현주랑 차 안에서 게르만족(Germanic peoples) 욕을 실컷 했다

   모짜르트가 얼마나 얄밉게 굴었으면 할아버지 뻘인 살리에르가 질투를 했겠냐,

   생긴것도 무뚝뚝한 베토벤은 귀까지 먹었으니 얼마나 고집불통이었을까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 아니라 가면의 왕일꺼야. 좀 호모스럽지 않냐. ㅋㅋ

현주도 여기 여자들이 거만하고 재수가 없다고 그간의 억화심정을 맘껏 표출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놈들에게는 돈 쓰기 아깝다는 결론을 내릴 쯔음엔 차가 잘츠부르크 외곽도로를 돌고 있었다,

 

네비가 가리키는 길로만 가는데 이정표에 낯익은 지명들이 떴다,

Munchen...먼첸 ? 아 뮌헨 ! 

 

놀라서 네비 화면을 보니 우리가 어느새 독일 땅을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집들도 그러고보니 좀 다른거 같고... 갑자기 쫄아버렸다, 방금전까지 기세등등했던 독일 욕이 쏙 들어가 버렸다.

 

 

맨 끝 차선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기어가니까 뒤에 큰 트럭이 빵빵가리며 추월해 갔다.

우린 독일에 들어올 계획도 맘도 없는데... 당황스러웠다, 어딘가에서 나치가 우리를 잡아 홀로코스트 해 버릴것만 같았다.

 

 

 

 

갑자기 현주 얼굴이 밝아졌다

"  우리 그럼 독일 구경도 하는거야 ?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 "

이기~ 너무 무서워서 돌았나 ?

 

준비안된 여정을 달리다가 독일 남부의 대도시 로젠하임(Rosenheim)으로 빠졌다

그나마 현대와 기아 간판을 보자 약간 마음이 안정된다,

 

 

 

조그만 동네를 통과하다가 오른편에 카페가 눈에 띄었다. 골목안으로 한바퀴 빙 돌아 카페 앞에 차를 댔다.

프런트에 아가씨는 수줍듯 친절했다,

커피와 도우넛과 아이스크림콘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로 나갔다,

 

서빙하는 아줌마가 물 같은걸 주문받는거 같은데 우리가 독일어를 못 알아듣자 알았다는 듯 손짓하며 돌아갔다,

 

 

 

 

 

 

 

 

평일 오전인데도 카페엔 아줌마, 아저씨들이 축치고 앉아 수다를 떨고 있고 한 아가씨가 달마시안 개를 데리고 지나간다

요즘 독일경제가 잘 나간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여유가 넘처났다

 

단거 먹고 푹 쉬었더니 몸도 맘도 안전히 릴렉스 되었다. 이젠 로젠하임이 맘에 들기 시작한다

 

 

 

 

 

 

이제 계산하고 가야 하는데 서빙아줌마가 여기 저기 계산하고 다니느라 바쁘다.

안으로 들어가 아가씨에게 계산해달라고 했더니 밖에 서빙아줌마에게 해야 한단다

다시 나와 바쁜 서빙아줌마와 눈도장을 찍었다

한참후 다른 아줌마가 와서 5.5 유로 (6,930 원) 이라고 해서 카드를 줬더니 카드는 안에 들어가 계산하라고 한다

또 다시 안으로 들어와 카드를 들고 서 있으니 이번엔 다른 아줌마가 ' 카드가 어쩌구 저쩌구 ... 안된다 ' 는 것이다.

 

현주가 화장실을 갔다와서 한참 기다릴 정도로 시간만 잡아 먹고 신용카드는 천덕꾸러기 취급하니 승질이 났다

엄한 현주에게 ' 돈 가져오라 '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로서 두번째 카드거부를 당했다.

 

주차된 차가 뜨끈뜨끈하다.  낮이 되자 급격히 더워졌다

공기가 맑고 미세먼지가 없어 피부가 금방 화끈거린다.

 

차 끌고 나오다가 아까 봐둔 문구점을 들렸다

 

넓은 점포에 가득찬 문구들을 보자 급 흥분되었다

 

 

 

안쪽에 내가 좋아하는 LAMY 가 !

 

손 떨려서 못 샀던 만년필들이 다양한 종류로 진열되어 있고 가격도 한국에 비해 약 60 % 수준이었다

 

현주가 짱이 선물로 이건 어떠냐고 눈앞에 들이대는데, 그냥 건성으로 좋아, 좋아 하며 내 눈은 뒤에 만년필에 가 있다.

 

일단 계산대에 여자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카드 되냐고 !

데스크위에 분명히 카드단말기가 있는데도 뭐라뭐라 하며 안된다고 한다. 세번째 거부를 당하니 이젠 승질도 안 난다.

 

수중에 가진 돈을 먼저 다 세어 본후, 

나에겐 18.9 유로 (23,814 원) 짜리 LAMY 만년필을 선물하고 짱이 줄거 이것저것 포함해 34.66 유로 (43,672 원)을 계산해주고 나니 주머니에 동전 두닢 남았다,

 

문구점 아줌마에게 근처에 ATM 기계를 물어보았다. 조금만 내려가면 은행이 있다고 알려줬다

 

은행은 삼거리 1층에 있었는데 그냥 봐선 조그만 개인사무실 같고 안에도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200 유로 (252,000 원)을 인출했다

  

로젠하임의 변두리 동네 라우블링(Raubling)을 떠나며 현주랑 그런 예기를 했다.

   신용카드를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저 사회가 부럽다

   우리는 한국가서 그럴 수 있을까 ?


※ 참고로 각국의 신용카드 사용율을 조사해 보면 미국 41 % 중국 55 % 캐나다 68 % 인데 한국은 73 % 독일은 6.8 % 세계최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