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6. 10:00ㆍAustria 2015
아침 7시도 안 됐는데 현주는 일어나자마자 발코니로 나갔다.
질러탈의 밤과 알프스의 아침을 놓치고 싶지 않아 아예 잠을 안 잤을지도 ...
아침 햇살이 산꼭데기에 걸려 계곡 깊숙히 진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자 마치 썬글라스를 쓰고 보는 것처럼 초원은 더 푸르게, 집들은 더 하얗게, 꽃은 더 붉게 알프스가 제 색깔을 맘껏 발산했다.
태양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자,
영롱하게 반짝이던 초장(草場)의 이슬들이 금새 날라가 버렸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8시에 아침 먹으러 2층으로 올라갔다,
아줌마가 올라오는 우리를 보더니 " 아침을 방으로 갖다줄까 ? " 하길래 손사레를 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2층은 아침 햇살이 더 가득했다,
옆방 새댁과 꼬맹이 둘은 벌써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볍게 굿모닝 인사하고 자리를 잡았다,
아줌마가 우리 식탁에 다가와
" 커휘, 티이~ ? " 하는 것까진 금방 알아들었는데
" 에크 ? 에크 ! " 라고 하자 현주랑 나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어리둥절했다.
답답하다는 듯 옆테이블 새댁이 말없이 계란 하나를 들어 보였다. 아 Egg ~!
아줌마가 계란을 들고 오더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막 손을 흔들어댔다. 우리가 또 어리둥절하자 애기엄마가
" 스크램블, 스크램블 ! "
졸지에 통역대동하고 아침을 성공적으로 먹을 수 있었다,
이건 빵에 발라먹는 돼지고기 스프래드,
대부분 메뉴가 다 육가공식품이었다. 신선한 야채 종류가 좀 아쉽긴 했다,
이런게 알프스, 티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라면 배부르게 먹어줘야지 !
아마 평생 기억될 질러탈.
아침먹고 내려오다 복도에서 아줌마를 다시 만났다
기념사진좀 찍자고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와 자세를 잡으랬더니 잔뜩 긴장한 얼굴..
10시에 알아서 나갈거니까 방값을 미리 낸다고 하니 좋아하신다.
56 유로 + 3 유로 (Tax)
여기서도 예상못한 Tax 가 붙긴 했지만 선월트에서의 경험도 있고, 이 숙소는 맘에 들어 흔쾌히 지불했다,
방으로 내려와 또 발코니로 나왔다,
눈부신 질러탈의 아침 !
머리를 들어보니 윗층 발코니에도 꽃들이 흐드러졌다
바로 앞에 초장은 이 숙소 소유인가보다.
어제는 무용지물이던 아저씨가 트랙터를 몰고 내려가 넓은 풀밭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고
비탈에선 아가씨가 자기보다 더 큰 낫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다.
얼굴 탈까봐 혐오스런 마스크를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한국여자들만 보다가 저런 에너제틱하고 건강한 여자를 보니 존경스러웠다
조깅을 즐기는 아저씨
아랫집 뒷마당에서도 아줌마가 헤어밴드를 두르고 열심히 풀을 깎고 있다
앵~앵~ 소리가 들린다.
한 남자가 예초기를 매고 두둑을 따라가며 풀을 베고 있었다,
온 동네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여기저기 나와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네사람들을 보자 우리도 덩달아 신이 났다.
옆방 애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엄마가 부르자 모두 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또 나간다.
아빠가 안 보여 조금 의아했지만 대자연속에 며칠씩 묵으며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현주는 방에 들어와서도 보고 또 보고 ... 1분도 아까워 10시를 꽉 채울 요랑이다
여기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나는 또 짐을 싸야 한다
... But something deep inside of him
Keeps telling him to go
He hasn't found a reason to say no ...
차에 짐을 다 싣고 숙소를 떠난다.
동네어귀에서, 어제 아저씨가 데리고 다니던 개를 만났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 옆에서 노부부가 햇살을 피해 앉아 있었다.
우리가 개 사진을 찍자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네셨다, 손 흔들어 주며 오솔길을 내려 왔다,
동네 마트를 지나 질러탈을 서서히 떠난다
못내 아쉬워 마을 안으로 돌아 들어가도 보고 ...
티롤 집들이 듬성듬성 박힌 산중턱올 가리키며 현주에게 올라가보고 싶다고 했다
현주 눈에 갑자기 흰자위가 가득해졌다.
한번 가본 길은 다시 안가는 성격이라 Zell am ziller 마을에서 즉흥적으로 지방도로 방향을 틀었다
<클릭하면 확대됨>
평탄한 계곡만 따라가던 길이 갑자기 가파른 산등성이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연속되는 Hair-pin 커브에 몸이 이리저리 쏠렸다
어느덧 질러탈 계곡이 발밑으로 까마득하게 보였다.
현주가 무섭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보다 더 강적인 것은, 이 산등성이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도 꽤 많더라는 거,
산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길이다 보니 커브가 많고 좁은 도로에 자전거족 피하랴 마주오는 차들 신경쓰랴 ... 운전이 긴장되서 바깥 경치를 맘껏 즐길 수가 없는게 아쉬웠다.
산등성이를 한참 달리자 너른 고원에 큰 마을이 나타났다,
워터슬라이드, 티롤 호텔과 거리에 이어지는 기념품점... 유럽인들이 주로 휴양과 레져를 즐기는 관광지로 보였다.
여기선
오토바이로 떼빙을 즐기건,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오르던, 트래킹을 하던 ...
아무도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개울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마을 공터엔 젖소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이 동네의 젖소들은 갈색 얼룩을 가진 브라운스위스 (Brown swiss)품종의 젖소가 대부분이었다,
중학교 농업시간에 배웠던 홀스타인은 검은 얼룩이라 구분이 쉽다.
홀스타인이 우유공장이라면 브라운스위스는 치즈공장이다,
휴양마을을 통과한 길은 다시 산위로 휘돌아 올라가는데...
고개위에서 젖소떼들을 만났다.
추워도 잘 살고 경사가 심한 산악지형에도 잘 적응한다더니 여기까지 올라와 있었다.
차를 멈추고 서 있는데 지나가던 소 한마리가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큰 대가리를 쑤욱 들이 밀었다.
현주가 질겁을 안 했음 그 두툼한 혀로 한번 훑을 기세였다, 아무리 온순하다지만 덩치가 깡패라서 ...
슬슬 눈치를 보며 지나가는 녀석
10 여 m 쯤 가자 또 한무리의 소떼가 내려오는 바람에 차들이 다 멈춰섰다,
내년엔 트럭을 렌트해서 한 마리 싣고 가야 되겠다 ...
다시 출발하자마자 또 소떼들...
이건 뭐 야생 싸파리를 지나가는 기분이다, 젖소 싸파리.
이 길의 주인이 자기들인양.
비킬 줄을 모르고 도로 한가운데를 유유자적 걷는 녀석,
코뚜레를 한 소도 있고...
딸랑 딸랑~
방울을 흔들며 지나가는 녀석
우연히 만난 소떼들로 인해 더 행복한 기분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길 오른쪽에 펼처진 풍광에 다시 차를 세울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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