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3. 17:00ㆍAustria 2015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다 문뜩 작은 욕심이 생겼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우리집에서 내 차를 끌고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 죽기전에 그런 날들이 왔음 좋겠다
체코 남부와 비엔나 근방의 지평선끝까지 누런 밀밭에 질릴 즈음에,
짙녹색 산과 야트막한 언덕, 구릉지, 그림같은 마을들이 조화를 이룬 오스트리아 중부지방은 아기자기하게 이쁘다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에 미리 고속도로를 내려와 국도 드라이브를 즐겼다.
처음 만난 마을은 멜크 (Melk)
오스트리아의 정신이자 문화라는 멜크수도원이 산하나를 완전히 깔아 뭉개고 있었다,
동네가 워낙 작아 차를 멈출 타이밍도 없이 교외로 빠져 나왔다
상당히 큰 강인 도나우를 건너자
오늘 우리가 묵을 마을이 강 건너에 보였다.
전날 부랴부랴 싼 숙소를 구하다보니 관광지랑은 조금 떨어져 있고, 강가에 거대한 굴뚝이 박힌 공장도 있었다,
마을 안쪽길에서 Kammerer 라는 호텔 이름을 발견했다. 이름앞에 Fam 은 Farm 인지 Family 인지 궁금해졌다
몇호 되지도 않는 마을에서 길을 잃었다, 네비엔 바로 근처라는데... 호텔이 보이질 않는다
뒷골목에 동네 아줌마랑 아저씨가 나와 있길래 차를 끌고 들어갔다,
창문만 열고 아줌마에게 호텔 이름을 발음하며 물어보자
" Left ? Right ? ... ? "
친절하게도, 자기 몸통에 팔꿈치를 붙이고 오른쪽, 왼쪽을 손짓하다 또 반대로 서서 집을 바라보며 좌우를 헷갈려 하더니 본인도 민망했던지 웃음보가 터졌다. 아줌마가 하도 해맑고 쾌활해서 우리까지 긴장이 풀려버렸다. 결국 영어가 익숙치 않다고 고백하며
" 여튼, 우리 집 뒷집이예요 ㅎㅎ "
간단한 걸 참 어렵게 가르쳐 주신다.
다시 차를 돌려 뒷집이라는 곳을 찾아왔는데 아까 무심코 지나친 건물이었다,
그런데 흔한 HOTEL 간판도 없고, 벽에 뭔 뜻모를 단어 하나 붙어 있고 ...그냥 누추한 가정집이었다
내가 자랑스럽게 예약한 호텔을 현주가 걱정스럽게 처다보기만 했다.
말 없이...
공터에 차를 대고 길 건너와 현관문을 밀어보니 ... 잠겨있다,
' 허걱 ... 호텔 사기당한거 아녀 ? '
덜컥 겁이 났다, 난 당황해서 눈 앞이 깜깜한데 현주가 침착하게 구석탱이에 조그만 초인종 단추를 찾아 내 눌렀다,
잠시후 키 작은 시골아줌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다행(?) 스럽게도 내가 예약한 곳이 맞긴 했다
서로 초면인 어색함이 사라지자 비로소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 가정집 현관이었고
우리 방은 이층이라고 해서 난간을 잡고 무거운 몸을 들어 올렸다
2층도 ... 그냥 살림집이다.
여드름 난 집주인 아들이 옆방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가정적인 분위기였다, 호텔 이름앞에 붙은 Fam 의 의미를 이제 알거 같다,
여기는 작고 썰렁한 우리 방.
일단 샤워하고 나와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채 낮잠이나 청했다.
4시에 방에 들어와 억지로 자고 났더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이렇게 어설프고 쓸쓸하고 춥고 할일 없고 객적은 시간을 대비해 한국에서 갖고온 비장의 무기, 컵라면과 햇반 !
나갈 채비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와 아줌마를 찾았다.
내일 아침먹으러 내려 오라는 식당은 복도 옆에 있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깔끔한 주방,
오늘밤에 얼큰한 한식으로 향수를 달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 아줌마 저녁때 전자레인지 쓸 수 있어요 ? "
" 아줌마 뜨거운 물도 있어요 ? "
" 아줌마. 여기 Wi-Fi 돼요 ? 비번이 모예요 ? "
아줌마가 나보다 한술 더 떴다
" 더 필요한거 없어 ? 스푼 ? "
아빠가 죽을때 유산으로 물려준 금화꾸러미를 찰랑거리며 사탕가게에 가서 ' 사탕 18kg 주세요 ' 그날 오후 친구들과 질리도록 사탕을 먹어대던 말괄량이 삐삐. 그 철딱서니 없음에 경악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얼마나 부럽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던가.
이 아줌마를 보자 그 삐삐 (잉거 닐슨)가 나이들어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환각이 보였다,
비록 크고 고급진 호텔은 아니였지만, 깨끗한 주방을 쓸 수 있고, 호텔리어보다 진심 따뜻한 아줌마가 있는 이 곳에 마구마구 애정이 솟았다
아줌마가 신신당부한대로 현관문을 잠그고 나왔다
현주를 태우고 한적한 강변도로를 달린다
멜크수도원이 숲 위로 머리를 삐쭉 내밀고 우리를 바라 보고 있다
햇살은 유시(酉時 오후 5~7시)가 되자 한결 부드러워지고
곳곳에 하이킹을 즐기는 가족과, 차 트렁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꺼내 신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천국에서 우리 기분도 점점 Up 되어 갔다
유모차에 탄 채 끌려가는 저 애기는 뭔 죄인가.
빌렌도르프 (Willendorf)라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간다
기원전 2만~2만 5천년 것으로 추측된다는 뚱띵이 인형 하나가 여기서 발견되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되었다.
이 계곡에 그토록 오래전부터 인류가 살아왔다고 자랑이 등등하다,
도나우 강, 영어로는 다뉴브 (Danube)
독일에서 발원하여 흑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옛부터 동양문화가 이 강을 거슬러 동유럽과 중유럽에 영향을 끼쳤고 투르크인들이 침입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무역선이 왕래하며 비엔나와 독일 남부 연안도시들이 동방무역으로 번성하였다
우리는 비엔나에서 왓지만 물길은 비엔나로 흘러간다
여기는 중간 마을인 슈피츠 (Spitz)
비엔나에서 당일투어를 오는 사람들은 유람선에 탄 채 바하우계곡을 돌아보고 여기 선착장에서 내려 포도밭으로 올라간다.
강 건너의 마을들
구불구불 흐르는 강과
계단식 포도밭,
수도원과 고성,
조그만 마을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는 바하우 계곡
<인용사진>
한 청년이 몸을 기울여 사진을 찍고 있길래 우리도 내려 보았다,
강가 손바닥만한 땅에 마을, 돌산위에 폐허가 된 고성이 한 폭의 그림이다,
조금 더 가다보니 절벽위에 기마상이... 혹시 리처드 ?
아까 사진 찍던 청년과 동행인 아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뒤른슈타인성이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잠시후엔 어쩐 일인지 아가씨 혼자 자전거 패달을 열심히 밟으며 간다. 청년이 좀 꾸물거린다~ 했다,
용맹해서 사자왕이라 불리는 영국의 리처드 1세는 3차 십자군 전쟁터에게 연합군인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드 5세의 깃발을 찢어 그를 모욕했다. 레오폴드는 삐져서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전쟁이 끝난후 리처드는 변장해서 신분을 숨긴 채 잉글랜드로 돌아오다가 1192년 12월에 비엔나에서 발칵되고 만다. 복수심에 불탄 오스트리아 공작은 리처드왕을 여기 뒤른스타인성에 가둬 버린다. 우리에 갇힌 사자왕은 오랜 협박에 굴복하여 막대한 몸값과 영지를 내놓는 조건으로 1194년 2월에 풀려났다.
아래 동영상은 그 전설을 토대로 제작된 대한항공 CF.
직진하면 뒤른스타인 (Durnstein) 마을인데 우리는 산위에 성이 보이는 왼편 샛길을 선택했다
좁아진 비탈길을 차로 올라간다
마을 입구에선 길이 더 좁아져 더 이상 차를 끌고 들어가기가 불길했다
마침 주차장이 있길래 빈 자리에 차를 끼워 넣었다, 그 앞엔 꽤 비싸 보이는 호텔이 있었다
우리가 차를 세우고 나오자 아까 청년과 아가씨가 어느새 이 언덕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고 있다,
차 한대가 들어오더니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악기 하나씩을 들고 내린다
언덕위 전망대
2850km 나 되는 도나우 강줄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여기 오스트리아 멜크(Melk)에서 크렘스(Krems) 사이인 36 km 구간이라고 한다
그렇다니 믿어야지 뭐, 이 곳만 특별히 바하우(Wachau)계곡이라 부르고 2000년에는 UNESCO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까지 됐다.
우리 눈엔 북한강변이나 섬진강가보다 더 나은진 잘 모르겠다능...
산위에 고성을 올라가 볼 여건은 안되고 다시 강변도로로 내려와서 뒤른스타인 마을을 지나간다
강 건너 남쪽 산위에는 Benediktinerstift Gottweig 수도원이 웅장하게 얹혀져 있었다.
그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바하우 계곡의 북쪽 마을들을 다 지나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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