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3. 09:00ㆍAustria 2015
어젯밤 11시부터 아침 7시 반까지 한번도 안 깨고 푹 잤다.
그 사이에 비가 약간 왔나보다. 아침 햇살이 가득한 뒷골목이 아직은 조금 젖어 있었다.
모짜르트 음악을 틀어놓고 여유로운 아침을 시작한다.
난 뜨거운 욕조에 들어 앉아 턱 수염을 불리고 있고, 현주는 거울 앞에서 오늘 입을 의상 패션쇼가 한창이고, 아이들은 한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나갈 채비가 다 끝난 나는 현주가 준비하는 동안 스맛폰으로 오늘 갈 곳 자료를 찾아 봤다,
월요일 아침 9시까지 길가에 주차된 차를 빼야 되서 서둘러 방을 나왔다,
난 무거운 배낭을 매고 현주는 트렁크를 끌고, 긴 복도를 지나, 붐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간 통로를 한참 걸어 호텔 로비에 내려왔다.
프런트에서는 흑인여자랑 중년남자가 선 채로 아침 업무를 상의하고 있다. 방 키를 내밀자 특별한 말 없이 영수증을 출력해 주길래 후다닥 나왔다. 현주가 차에 짐을 싣는 동안 영수증을 보니 97.2 유로가 찍혀 있었다,
' 그제 체크인할때 분명 88 유로를 결재 했는데... 뭔가 분명히 잘못되고 있어... '
호텔 앞을 벗어난 후에 배낭에서 생수 두병을 꺼내 현주에게 주며 호기롭게 외쳤다.
" 맘놓고 마셔 ! "
▲
유럽에서 화려함으로 베르사이유와 쌍벽을 이루는 곳,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
우리는 지금 쇤브룬 궁전으로 가고 있다
이 사진 한장에 홀려서 ...
<인용사진>
출근 러쉬아워는 끝났을 시간인데도 교외로 나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
공사구간도 있고, 교통경찰도 나와 있고, 짜증 섞인 클락션을 울리는 차도 있고,
왼편에선 오래된 적벽돌 건물을 수리하느라 인부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오른편 1층 사무실에선 중년남자가 커피를 바닥에 쏟아 어쩔줄 모르는 모습도 보이고 ...
비엔나나 발안이나 튀니스나 사람 사는건 다 똑같다
쇤브룬이 너무 넓은데다 어디가 주차장인지도 모르겠어서 네비에 글로리에테를 찍고 도착한 곳.
평온한 주택가 옆으로 쇤브룬 숲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바리깡으로 시원하게 밀어부친 길 끝에 글로리에테가 보였다.
동네에 차를 댈 공터도 좀 있었다.
상황파악을 위해 다시 큰길로 나와 쇤브룬을 시계방향으로 돌아본다,
몇 블럭을 돌아 큰 서거리를 지나 고가도로를 타고 ... 하다보니 이번엔 글로리에떼 반대편에 도착했다.
여기는 정식 주차장도 있고 관광객들도 많이 입장하고 있었는데 이 시간에 벌써 주차장이 꽉 찼다. 내 뒤로 차들이 계속 밀려 들었다.
이왕 도는거 차를 빼서 정문쪽으로 계속 내려가 본다.
갑자기 차가 엄청 막히기 시작했다.
맘은 급하고... 꾸역꾸역 가다보니 길 한쪽을 막고 차들을 교행시키고 있었다.
정문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에버랜드 입구보다 더 큰 광장에는 사람들이 궁전으로 몰려 들어가고 있었고, 몇 백미터를 더 직진하자 길 건너에 주차장이 나타났는데 여기도 빈 자리가 안 보일 정도로 차들이 가득했다, 길을 건너는 관광객들의 얼굴엔 조급함과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부랴부랴 속도를 내서 처음 입구를 찾아 왔다. 여긴 아까 봐둔 빈자리가 그대로 있을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한적하다.
다른 사람들이 한 것처럼 까진 화단위에 차를 걸쳐 놓고 단단히 채비를 갖추었다
가장 신경 쓰였던 주차문제가 해결되자 다음으로 식사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다행히 입구에 간이매점이 있었다.
컴컴한 나무집 안에서는 세상 풍파를 덩치로 받아내고 있는 아줌마가 혼자 간단한 조리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핫도그와 커피 주문 9.5 유료 (11,970 원)
호텔에서 갖고 나온 생수
빈 자리가 없어 널판지에 앉아 있었더니 다행히 매점 옆 파라솔에 자리가 났다,
음식을 기다리며 뒷집 마당 구경
97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서양식 핫도그에 질려 한식만 찾던 현주가 지금은 독일식 소시지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가 됐다
그런 현주가 노란 소스를 먹어보더니 왠지 깨름칙하다고 한다.
설마 ~
내 입맛에도 좀 노골적이긴 하지만 ...설마 그럴리가
아까부터 할아버지가 왠 책가방을 매고 있나 했는데, 가만보니 산소호흡기였다.
안색이 안 좋더라니...
할머니 한분이 나타나 둘이 반갑게 서양식 빰키스를 했다,
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 부부는 절대 아니다
개구리가 키스 한방에 왕자 되듯 뽀뽀를 받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생명연장 장치를 벗어 던지시더니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키셨다.
" @#$^* ? ... train ..$^&@@ .. ! "
할머니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가 어리둥절해 하자 개구리 할아버지가 묵직한 목소리로 통역을 해 주셨다
" Train 타라. 7 유로야, 하루종일 탈 수 있어. 바로 앞 ! "
" 아 ~ 잘 됐네요. 네 감사합니다 ! "
할머니가 슬그머니 어딜 갔다 오시더니 우리에게 팜플렛을 하나 주셨다.
쇤브룬 내부를 도는 관광열차 시간표였다. 우리가 못 알아 들을까봐 정원 입구 안내부스까지 뛰어 가서 가져 오신 것이다.
노린내 나는 소시지와 생수로 아침을 떼우고 열차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로까지 나와, 방향을 손짓해 주셨다,
다리를 건너 정원입구 인포메이션 창구-매표소 아니였음-를 지나 Train 이정표 아래 섰다,
넓은 쇤브룬을 도는 루트와 시간이 자세히 적혀 있다
어린 지지배들도 병아리처럼 총총 신이 났다,
외국관광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 점심거리를 싸온 할머니등 대부분이 동네사람들이었다
Train 이 글로리에테를 돌아 우리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가까워 올수록 애들도 나도 흥분이 되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시에 맞춰 열차가 멈췄다
허리에 쌕을 맨 여자가 자리마다 다니며 돈을 받는다.
7 유로씩이라고 해서 장애인 할인 되냐니 4 유로를 달라고 한다. 총 11 유로 (13,860 원)
이 나라는 절대 자발적으로 할인해 주는 법이 없다. 눈 앞에서 땅바닥을 기어 다녀도 말 안하면 정상인이다.
아줌마가 팔뚝에 확인도장을 쿡쿡 찍어주는데... 낼 모레면 50 줄에 오리 스탬프를 받으니 갑자기 동심으로 돌아갔다,
현주랑 오리 두마리를 마주 대고 '꽥깩 !!' 소리를 내며 마냥 좋아했다.
정원 진짜 넓다. 궁전앞에서 한참 정차해서 승객 물갈이를 한 후에 다시 출발,
우리는 땡볕이 무서워 계속 타고 있었다
1758년 쇤브룬궁전 그림
<클릭하면 확대됨>
온실을 지나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동물원에서 병아리들이 내리고
대가족이 올라탔다, 가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빠진 사람 없나 부산하게 체크하고 다녔다
어디선가 영어가 들리고, 남미 히스패닉들도 보이고...
젊은 남자가 횔체어를 탄 엄마를 모시고 올라 탔다,
혼자 애쓰는게 딱해서 조금 도와 드렸다, 지친 아들 표정도 안쓰럽고 미안해 하는 엄마도 안쓰러웠다,
우리의 목표는 궁전보다는 언덕위 그림같은 글로리에떼였기 때문에 거의 한바퀴를 돌아 하차했다,
여기선 쇤브룬 궁전과 비엔나 시내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드디어 사진으로만 봐왔던 글로리에테 (Gloriette)앞에 섰다.
그런데... 별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막상 가까이서 본 글로리에떼는 그리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조잡한 콘크리트 덩어리 같았다.
역시 쇤부른의 글로리에떼는 멀리서 올려다봐야 제 맛이었다
합스부르크 귀족들이 놀던 정자는 지금 카페가 되어 있었다. 현주에게 들어가 뭐좀 먹을거냐고 물었는데 싫다고 한다.
그래서 연못으로 내려왔다,
오히려 한국단체, 중국인등 전세계 인종을 여기서 다 구경 할 수 있었다
이왕 찍는거 요염한 포즈로
현주도 같은 포즈로.
팔뚝에 찍힌 오리랑도 기념사진을 찍었더니
자기들도 찍어달라고 연못 오리들이 포즈를 잡았다,
연못을 돌다가 볕이 너무 뜨거워 얼른 숲으로 피신했다.
별로 할 일이 없다, 글로리에테 풀밭에 비스듬히 누워 Train을 기다린다.
올 시간이 됐는데도 안 나타나길래 몸을 일으켜보니 숲길 응달속에 쏘옥 숨어 있었다,
열차에 올라타는데 직원들이 친절하게 발판을 대 주었다
" 한바퀴 더 돌까 ? " 했더니 현주가 좋다고 한다.
중간에 애기엄마 두명이 애기들을 안고 탔다. 뚱뚱한 저 애기 엄마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메뚜기처럼 홀쭉한 애기엄마가 얼마나 떠들어 대는지...다른 승객들도 힐끗거리며 맘 속으로 ' 고만 좀 닥쳐라 ! ' 고 외쳐댔다,
궁전 앞에 도착해서 표 팔던 아줌마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수 아저씨가 표를 팔았다,
오후가 되자 관광객들이 더 늘었고, 넓은 정원을 걷기엔 날이 너무 더웠다. 사람들이 Train 을 타려고 몰려 왔지만 빈 자리가 없다.
관광열차이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으려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한 아줌마가 착 달라붙은 레깅스를 입고 정원을 조깅하는데 그 자세가 아주 특이해서 모든 사람들이 처다보았다. 그 시선을 즐기는 거 같았다.
Train 이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들이 창문을 때리고 어두운 숲길에서 사람들이 가끔씩 튀어 나왔다,
맹수들이 숨어서 노려보는 정글을 사파리 버스에 숨어 지나가는 느낌이다
Train 으로 쇤브룬숲을 한바퀴 도는데 딱 한 시간이 걸렸다. 본전 뽑으려다 오히려 시간만 낭비했다, 두번째는 아니 탔어야 했다.
처음 탓던 곳에서 내린후 다리를 건너 주차된 차로 달려 갔다,
차 안에 타자마자 에어컨부터 Max 로 돌렸다,
쇤브룬도 시내 외곽이지만, 여기서 비엔나를 떠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꾸역꾸역 사거리까지 밀려가 보니 진앙지를 알 수 있었다.
굴절버스가 우회전 하는데 승용차가 모퉁이에서 끼어버린 것이다. 경찰들도 팔짱만 끼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땀이 베어 나왔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계속 Go West !
좀 한적해질 때까지 나오자 주유소와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기름은 많으니까 한편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부터 갔다
다행히 유료는 아니였지만, 옆 카센터의 작업복 입은 남자와 부량자 사이에 끼어서 거시기를 꺼내려니 상당히 껄쩍지근했다,
화장실을 나와 걱정스레 현주를 기다리는데 안 나온다.
' 오겠지 ! '
하고 옆 편의점으로 들어갔더니 현주는 벌써 진열장 앞에 서 있었다,
" 빨리 나왔네 ? "
" 지저분한거 같아 아예 안 들어갔어 ! "
샌드위치, 생수, 빵등 사고 7.84 유로 (9,878 원)
구석에 가서 장바구니 올려 놓고
카푸치노 2 유료 (2,520 원) 한잔 뽑아
허겁지겁 늦은 점심을 먹었더니 그제야 풀린 눈에 총기가 돌았다,
큰 유조차가 들어오고 운전수가 내려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창밖으로 무심히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운전수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두 남자-편의점 주인과 운전수-가 구석까지 나를 찾아왔다,
" 저... 탱크에 기름을 넣어야 해서,.. 차 좀 빼주실래요 ? "
마침 다 먹은 참이라 남은 걸 챙겨 차에 싣고 곧바로 비엔나를 빠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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