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발가락 따윈 필요없다

2015. 8. 2. 12:00Austria 2015

 

 

 

 

 

" 점심 먹으러 가자 ! "

현주가 타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구시가지를 빠져 나왔다. 

 

비엔나도 옛날엔 두터운 성벽이 반지(링)처럼 둘러 싸고 있었다. 그 성벽을 허문 자리에 지금의 왕궁과 미술관들이 들어섰다.

찻길 하나 건너 링 바깥으로 나오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4대문안 구시가지는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 나는데 바깥동네는 같은 도시인가 싶을 정도로 적막했다. 

 

 

Schnitzelwirt 식당에서 정통 비엔나식 슈니첼을 푸짐하게 준다는 소문이 한국까지 들리길래 어렵사리 찾아 왔는데, 문이 잠겨 있고 후줄근한 프랭카트 한장만 걸려 있었다. 

WIR MACHEN URLAUB  (= WE ARE on HOLIDAY)

  

낙담하여 갈 곳을 몰라 하자, 현주가 ' 오는 길에 괜찮은 카페를 봤다, 거기로 가자 ' 고 한다.

금방 신나서 몇 블럭을 크게 돌자 카페 아이다 (cafe Aida)가 보였다, 

처음 식당은 52번지, 카페 아이다는 64번지, 같은  neugaugasse 거리였다.

<클릭하면 확대됨>

 

 

거대한 볼링공 가로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리

보름달처럼 불이 켜지는 어슴푸레한 저녁거리는 얼마나 낭만적일까 ?

 

카페 안에 사람들이 몇명 보였지만 거리구경이 하고 싶어 어닝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 난 이거 ! "

 

커피 종류는 여러가진데 알고보니 에스프레소와 우유만 가지고 장난친 거에 불과하다능 ...

여튼 카페오레와 카푸치노의 차이는 확실히 알겠다. 카푸치노는 우유거품을 위에 더 올린거구 카페라떼는 에스프레소가 투샷이었다.

 

 

대머리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큰 개를 데리고 오더니 우리 옆에 앉았다

 

개가 덩치에 비해 순하게 생겨서 정이 갔다

 

근데 이 개시끼가 초면인데도 현주에게 주댕이를 들이 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졸랐다,

이 나라는 개나 남자나 좀 느물느물 하다.

 

 

주문 받으러 온 아줌마에게 메뉴중 ' Tee mit rum' 이란게 알콜이 들어간 럼주가 맞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놀라서, 그냥 기본 Tee (tea) 를 주문했다.

 

잠시후 티가 나왔는데, 현주가 조그만 잔을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황당하다듯 웃는다,

도수 44 % 짜리 지독한 럼주였다.

아줌마 덕분에 낮술먹게 생겼다,

 

난 카푸치노

 

 

그리고 토스트와 파이.

 

점심때가 되자 비엔나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들어 가벼운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개도 어엿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

 

관광객들이 별로 안 다니는 이 거리. 길 건너에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저씨 두명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6.25 전쟁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어느 나라를 가나 중국인의 인해전술과 맞닥뜨렸다, 


그때, 고지 정상의 전초 진지에서 북쪽의 산들을 감시하던 다이하드들과 조크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미들섹스 대대의 병사 제임스 비벌리의 말이다

꽤 먼 거리였습니다.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무기의 사거리 밖이라는 것만은 분명했어요. 북쪽으로 그만큼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산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

그는 자신이 본 광경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적의 대군이 산의 사면을 가득 매운채로 내려왔기 때문에, 그 군복색 때문에 산의 색깔이 바뀐 것이었다.   

6.25사변을 다룬 실화「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책의 406 p 에 나오는 내용이다. 압록강까지 진격해 종전을 눈앞에 둔 UN군이 중국 군인들의 인해전술에 놀라는 모습이 여실히 느껴졌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라와 내 주변을 배회하길래

 

 

빵을 좀 뜯어 주었는데

잘 안 보이는 건지, 경계를 하는 건지 가까이 오지 않았다.

 

손으로 빵을 가리켜 주자 그제야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한쪽 발에 발가락 두개가 없었다. 비둘기에게도 대도시의 삶은 고달픈가보다. 

 

막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비둘기 두 마리가 잽싸게 날라와 얼른 뺏어 먹는 것이 아닌가.

그 두놈은 두 다리가 정상이고 덩치도 더 컸다,

쫓을수도 없고, 싸우지 말고 먹으라고 빵가루만 더 뿌려주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 다 사라지더니,

석조건물 사이 창공으로 비둘기 세마리가 힘차게 날아 오르고 있었다.

비록 발가락은 없지만 두 마리 비둘기랑 함께 자유롭게 날아가는 그 비둘기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래 튼튼한 날개가 있으면 발가락 따위 필요 없다.

 

건물들이 빈틈없이 바짝 붙어 있고 특별히 튀지 않게 잘 어울려 있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보면 다 개성이 넘치고 특별했으며 멋있었다. 조화속에 개성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나이되니 좀 알거 같다.

그 중 한 건물에 주물 발코니가 예뻐서 나중에 우리도 응용해 보자며 현주랑 희망에 부풀었다.

 

 

 

 

비둘기를 소 닭보듯 하는 개

 

 

아침부터 흐리더니 기어이 보슬비가 내린다, 

차 바닥은 아직 마른 땅일 정도로 큰 비는 아니었는데 거리가 더 차분해졌다

커피를 마시며 어닝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긴장과 피로가 스르르 사라졌다

 

오후를 활기차게 시작할 정도로 Full 충전이 되었다

총 12.60 유로 (15,876 원) 계산,

 

비가 그쳤길래 다시 구시가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짜피 비엔나의 명소는 그쪽에 다 몰려 있고 오늘은 하루종일 비엔나에 있을거니끼 ...

 

 

미술사박물관을 찾아 갔다,

역시 차를 댈 곳이 없어서 넓게 두 바퀴나 빙빙 돌았다

 

비가 그치자 박물관 앞 정원에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었다

 

 

 

 

 

 

미술사박물관 뒷편 골목에서 마침 차 한대가 빠지길래 얼른 차를 댔다,

조금 걷더라도 이 정도 거리에 차를 댈 수 있는 것만으로 급 행복해졌다.

 

현주랑 우산을 나눠 쓰고 정문쪽으로 걸어 간다,

 

거리 어디선가 희미하게 클레식 음악이 흘러왔다,

비로소 비엔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미술사박물관 이름이 kunsthistorisches museum 다.

너무 길어 외워지지도 않고 발음도 모르겠는데 정문 옆 안내판에는 띄어쓰기가 확실하게 되어 있었다,

 

KUNST

HISTORISCHES

MUSEUM

W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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