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31. 22:00ㆍCzech 2015
시내로 들어오는 길, 백미러에 차 한대가 가득 찼다,
껄렁껄렁한 청년들이 탄 차가 옆 차선에 멈췄는데 열린 창문으로 터져 나온 음악소리가 우리 차까지 흔들어댔다. 서로 힐끗 처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우리보다 청년들 눈망울이 더 커졌다.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살짝 놀란 듯... 이내 별일 없이 지나갔다
신부님의 축도를 받은 덕에 우리 눈엔 올로모우츠가 사랑스럽고 자유분방하고 낭만적으로만 보였다,
모라비아 지방에서 지금 가장 큰 도시는 부르노(Brno)다.
지금은 올로모우츠(Olomouc)가 부르노에 반에 반도 안되게 쪼그라 들었지만 17세기까지는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우리들은 상공업보다 역사를 보러 온거니까 당연히 브르노는 제외, 일찌감치 올로모우츠를 점 찍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전차가 심드렁히 지나간다.
좀 쇠락한 느낌은 들지만 건물들의 위용을 보니 옛날에는 대단했던 도시였겠구나 ! 실감이 난다
중심지가 가까워지자 길거리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긴 하는데,
퇴근시간을 놓친 거리 악사의 바이올린 소리가 더 쓸쓸하게 들린다.
'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브런치 카페 '라는 말에 열심히 카페를 찾아 봤는데 정작 주변 주차가 불안해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조그만 광장안에 분수를 발견했다
주차장이 널널해서 쉬어갈 겸 차를 세우고 분수 주변을 거닐었다,
반인반어 동상이 있는 트리톤 분수.
그리고 다시 출발.., 이리저리 돌다보니 구시가지의 중앙광장으로 들어섰다,
시청뒤 공터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길래 우리도 거기에 주차했다.
마침, 구형 벤츠가 들어오더니 동양인들이 내리는데 반가운 한국말이 들려왔다. 노부부와 유모치를 끄는 젊은 부부...여기 교민인거 같았다
광장으로 내려오자 경찰 둘이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순찰을 돌고 있다.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 주차여부를 물어 보았다
" 여긴 주민들이 주차하는 곳이라 안된다 " 고 띄엄띄엄 영어로 설명을 하는데 인상들이 선해 보였다
" 잠깐이면 되는데 ! 금방 보고 올께~요 " 살짝 애교를 떨었더니
" 언제 올꺼냐 ? "
" 10분내에 ! "
그렇게 대충 넘어갔다.
요건 아리온 분수
올로모우츠의 상징인 성 삼위일체탑이 저 멀리 보인다.
쿠트나 호라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훅사병을 물리친 기념탑이다.
여기 것이 더 웅장하고 섬세하고 화려한 것으로 봐선 사망자가 그만큼 더 많았다는 것이겠지 ?
성 삼위일체 탑이 올로모우츠의 큰 자랑거리라면 또 하나는 일곱개의 바로크양식 분수다.
오랫동안 도시의 생명수 역활을 해왔던 분수들이, 상수도가 공급되면서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다른 도시들은 헐어 버렸는데 여기는 그걸 남겨둔 덕분에 지금은 도시의 돈줄기가 되었다. 그 분수들을 찾아다니는 코스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건 헤라클레스 분수
광장 한편에 나무판으로 수평을 맞추고 파라솔을 갖다놓은 카페.
지금은 시청사로 쓰이는 저 건물이 1378년에 지어졌다.
그 당시에 저런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다니...
시청사 한쪽벽에 이 천문시계도 프라하의 그것과 비교되며 유명하다.
프라하 것은 정교한 손목시계처럼 나사와 조각상들이 아름다운데 여기 것은 노동자와 과학자가 모자이크 되어 있고 ... 느낌이 이상하다.
원래 1519년에 처음 만들어진건 제 2차 세계대전때 파괴되고, 사회주의 체재였던 1955년에 다시 제작되는 바람에 이런 몰골을 하고 있었다
" 똑딱 ! 똑딱 ! 8시를 알려드립니다 "
호르니 광장 너머로 해가 저문다.
약속한 10분을 훨씬 넘겼지만 다행히 경찰은 안 보인다. 차로 빼서 그 옆에 쌍둥이 광장인 도르니로 넘어왔다
광장 초입에 넵툰 분수
역시 흑사병기념비
그리고 주피터 분수
둘이 셀카 찍으며 노는 것도, 해 떨어지고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는 5분이 한계고, 이방인에게 지금 절실한 건 따뜻한 음식이었다.
광장 주변의 식당들은 8시를 넘기자 급격히 술집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현주를 태우고 광장을 나와
정처없이 거리를 둘다가 적벽돌로 지은 건물앞에 Taverna Allegra 라는 이탈리아 식당을 발견했다
실내는 모던해서 젊은 취향이었다.
테이블 다섯개 놓은 식당 안쪽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듯한 애들 4명이 앉아 있었고 잠시후 젊은 연인이 들어왔다
약간 건들건들한 웨이터에게 맥주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잠시후 주방장 아저씨가 건들거리는 웨이터를 대동하고 나타나 ... 토마토 스파게티가 안되고 봉골레만 된다고 통보했다.
아저씨랑 이야기 중에 자기가 Rimini 출신이라고 해서 더 반가웠다. 농담도 잘 하고 쾌활한게 거짓말은 아닌거 같았다
잠시후 건들건들이 주문하지도 않은 빵과 화이트 화인을 놓고 간다
당황해서 뭐냐고 물으니 " present ! " 란다.
잠시 후 건들이가 주문한 요리를 내려놓고 도망치듯 후다닥 사라졌다.
검은 후라이팬채 올라온 봉골레 스파게티엔 봉골레(조개)는 안 보이고 올리브유만 질척거렸다. 다른 테이블도 우리랑 똑같은 후라이팬을 받았다. 불평불만이 터져나와야 할 입은 선물 빵이 이미 틀어 막고 있었다.
이 식당 메뉴판은 장식용. 주방장 꼴리는 대로, 그날 남은 식재료가 유일한 메뉴였다. 맛은 고소해서 천만 다행이었다.
맥주에 와인에 정갈한 음식에... 세 테이블 모두 밤늦도록 수다가 풍년이다.
10시쯤에 식당을 나왔다,
문 밖 파라솔에 앉아 있던 주방장 아저씨랑 부인이 우리를 보고
" 한국 한번 갈께 ~! "
" 오면 한국 음식 대접할께요 ! " 라며 헤어졌다. 참 유쾌한 민족이다.
◆
술이 알딸딸하게 취해 기분은 좋고... 현주를 차에 태우고 신나게 올로모우츠의 텅빈 밤거리를 달린다.
속도를 안 줄인채 모퉁이 커브를 틀자마자 저 앞 어둠속에서 경찰 둘이 우리 차를 길가에 세우라고 손짓 하는 것이 아닌가 !
" ... 아 ~ 젖됐다. 이 밤에 왠 단속이야 ? "
아까워 다 마셔버린 와인과 맥주가 갑자기 생각나 간담이 콩알만하게 오그라 들었다.
경찰 한명이 운전석쪽으로 다가오길래 창문을 열었다. 차안에 동양인 중년부부를 본 경찰이
" 구..굿..굿 모닝 ! "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영어로 인사를 했다. 한밤중에 왠 굿모닝 ?
인상을 보니 아직 때를 덜 탄 신참이었다. 그래도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란다. 수많은 나라들을 다녀봤지만 한번도 운전면허증을 노상에서 깐적이 없는데 이 나라에선 벌써 몇 번째여.
베스트 웨스턴 호텔에 놓고 왔다고 하니, ' 다음부턴 꼭 휴대해야 한다. 천천히 다녀라 '고 주의를 주며 우리를 보내 주었다.
휴~ 때..땡.큐 !
얼른 호텔로 피신하고 싶은 맘만 들었다. 변두리로 나오자 껌껌한 사거리에서 정류장 벽화를 발견했다.
이제 다 왔구나 ! 낮의 기억에 의존하여 차를 돌려 돌판길을 달리는데 가도 가도 호텔이 안 나온다. 분명히 몇백미터 정도였는데 3km 이상을 들어가도 시커먼 공장만 보이고 눈에 익은 호텔은 안 보였다. 불안하고 급한 마음에 속도를 내다 급커브길에서 수렁에 처박힐 뻔했다, 술김에도 이 길은 아니다 싶어 다시 차를 돌려 나왔다. 한 남자가 밤길을 걸어가길래 호텔 이름을 대며 물어보니 시내로 나가라고 한다. 별 도움이 안 됐다.
다시 벽화가 있는 사거리까지 나왔다, 이 밤에 혼자 마을쪽으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무섭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텔을 물어 봤지만 이 남자는 더 말이 안 통했다. 술에 취하고 경찰에 당황해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공황에 빠져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깜깜한 한밤에 외딴 마을에 차를 세우고 정신을 가다듬고 네비 지도를 켜고 점을 찍어보니 1.1km 가 표시됐다
아래 지도에 점선이 우리가 헤맨 길. 파란 선이 호텔 위치
간신히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시간까지도 호텔 로비엔 신나는 댄스음악이 찌렁찌렁 울려댔다.
살짝 엿본 홀엔 선남선녀들이 신나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체코의 결혼식 피로연은 밤이 깊을수록 더 화려해진다.
올로모우츠는 참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침대 이불속으로 더 쏘옥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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