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천당으로 가는 길

2015. 7. 31. 17:00Czech 2015

 

 

 

 

시골길을 더 달리고 싶은데 낭만을 모르는 네비가 고속도로를 고집한다,

덕분에 올로모우츠 IC를 10 여분만에 돌파했다.

 

예약한 숙소가 700 m 남았다고 히지만 주변은 바람만 횡한 갈대밭이다.,

넋놓고 외길만 따라 갔는데 네비가 U 턴하라고 빽빽대며 성화를 부린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건물이 호밀밭에 파수꾼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저게 우리가 야심차게 예약하고 기대하던 그 BEST WESTERN Hotel 이란 말이지 ?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베스트웨스턴은 교통이 편리한 시내에 박혀 있으면서도 가격은 중급이며 인테리어는 깔끔한 그런 거 란말이지.!

...우리 눈앞에 저것은 best 가 아니라 W.O.R.S.T !! 라구

 

마지못해 차를 돌려 들어갔다.

진입로는 아스팔트대신 화장실앞에나 깔아 놓으면 딱 맞을 지저분한 보도블럭이고 가로수는 어제 급하게 화분에서 뽑아 꽂은 듯 볼품 없었다,

 

왼편 호수는 딱 모내기 준비중인 논이었다. 

그 옆에 누렇게 마른 잔디밭위에 야외결혼식 의자들만 덩그런히 남아 있었다.

 

호텔에서 한 꼬맹이가 우리차를 향해 달려왔다. 귀여워서 창문 열고 아는 체를 한 다음 출발하는데... 애가 안 보인다 

 

놀라서 차를 세워보니 이 녀석이 해치백 뒤에 찰싹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

얼른 내려오라고 소리치고 백미러로 애를 예의주시하며 천천히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댔다.

애아빠로 되보이는 남자가 들어오는 꼬맹이를 야단쳤다

 

로비 옆 넓은 홀에선 신랑신부와 젊은 하객들의 피로연이 한창이었다.

프런트에 남자직원에게 숙박비가 선결재 되어 있냐고 물어보았다. 휴대폰을 한국에 놓고 와서 카드 결재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네는 신용카드를 예약용도로만 받지 선결재를 하지는 않는다는 시원스런 답변을 들었다. 

 

호텔 외관은 건초 창고 같았는데 다행히 실내는 베스트 웨스턴 맞다,

 

복숭아 하나를 우걱우걱 씹으며 상황 파악하다보니 살짝 졸립다. 바로 오수를 즐겼다

숙소를 전날에 미리 잡아 놓으니 낮잠을 잘 수 있어 너무 좋다. 피로도 풀고 개운하게 씻었더니 저녁시간이 새롭게 기대된다.

 

성당 문 닫기전에 가 보자고 5시쯤 일어나 가볍게 채비를 했다,

주차해 놓은 차 속은 아직도 후덥지근하고 볕이 따갑다. 한참동안 네비랑 씨름하며 간신히 목적지(11 km)를 찍은 후 출발.

 

조금 나오자 마을 사거리 간이정류장에 그림.

 

올로모우츠 시내의 첫 인상은

   깔끔하고 공원이 많고 길이 넓적넓적해서 호주 캔버라 느낌도 살짝 나고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에선 영국의 옥스포드 같기도 하고

   터키 곤야같이 독특한 색깔을 칠한 교회도 보이고

   황량한 철도역 주변과 볼품없이 위압적인 건물들은 구소련의 모습도 아직 남아 있었다. 

 

 

 

올로모오츠 시내를 관통해 다시 교외로 나왔다,

밀밭 한가운데로 난 가로수길을 달린다.

한쪽에선 밀 수확이 한창이고 반대편에선 자전거 하이킹을 줄기고 있다, 

 

 

평화로운 동네를 품고 있은 저 야산이 Svaty Kopecek, 영어로 Holy hili '성스런 언덕; 이다

 

 

언덕이 가까워지자 Bazilika minor panny marie na svatem kopecku 라는 성당이 드디어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냈다,

저 곳을 가보고 싶었다

 

네비는 눈앞에 올려다 보이는 성당을 향해 일직선 줄을 그었고 우리는 의심없이 그 길을 따라 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 비포장의 좁은 산길이다.

 

MTB를 타는 사람들과 등산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살보며 덜컹덜컹 고지를 향해 산길을 오른다.

저렇게 큰 성당의 진입로치곤 너무 옹색한거 아냐 ?

 

손주들과 산길을 오르던 할머니가 우리 차 소리를 듣고 풀밭으로 피신했다,

 

그 옆을 지나가기도 죄송하고 또 무턱대고 올라가는 것도 아닌거 같아 차를 멈추고 물어 보았다

"  저 ... 성당을 가려는데 이 길이 맞나요 ?  네비는 이리 가라는데 ... "

꼬맹이들이 넋을 놓고 우리를 처다보고 있다, 아이들과 할머니가 미국의 아미쉬족처럼 생겼다. 

그제서야 할머니가 환한 표정으로 길을 알려 주었다.

"  도로 내려가 로터리에서 오른쪽 큰길로 돌아가요 "

 

고대로 산길을 후진하여 옆에 난 숲길로 돌아 내려왔다,  숲으로 난 길 꼬락서니를 보니 이 놈의 네비가 더위 먹은게 확실하다

' 안 물어보고 계속 올라갔으면 어쩔 ~ '

 

 

 

아랫마을에서 큰 길로 끼어 들어 로터리를 지나 할머니가 알려준 포장된 길을 따라 성스런 언덕을 올라왔더니 드디어 아까 본 녹색 종탑의 성당이 바로 앞에 있었다,

 

최대한 교회 가까이 주차하기 위해 좀 더 올라가 동네 안쪽길로 해서 성당 옆 나무아래 주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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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깍는 아저씨가 풀먼지를 뒤집어 쓴채 전화 통화를 하고 있고

 

 

할아버지가 옷을 홀라당 벗고 성당 아래 계단에 앉아 썬텐을 하고 있고

 

풀밭에선 한가족이 한가로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고

 

누런 밀밭 너머에 올로모우츠 시내가 환히 내려다 보였다

 

 

 

성당이라기보다 요란하게 치장한 귀족의 저택 같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신도들 여나무명이 여기저기 앉아 있고 막 미사를 준비중이었다,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저녁 6시 미사가 시작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어갔다가 분위기에 놀라 앞자리에 주저 앉은 현주는 상황파악이 끝나자  ' 얼씨구나 ! ' 하고 건너편 앞으로 도망가 버렸다.

오도가도 못하게 갇혀버린 무신론자는 얼떨결에 머리를 조아리며 주를 영접하게 되었다

 

미사 중간중간 목 운동 하는 척 성당 안을 살짝살짝 훔쳐보고

노모를 모시고 미사를 드리러 온 가족들도 보고

아내를 따라온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앞자리 이쁜 여자에게 다가가 천연덕스럽게 귓속말을 하니까 여자가 성물실을 알려주었다, 거기 들어와 성경책을 가져와 아내 옆에 앉았다. 

아까 자전거를 타고 온 마을 청년이 어느새 금띠를 길게 드리운 신부복을 입고 나타나 신부님을 보조하고 있는 곳,

 

신부님의 성스런 설교 목소리가 성당안에 울려 퍼지고

첨 듣는 찬송가도 재밌고

앉았다 일어났다, 기도할때는 살짝 정신줄도 놔 보고

친교시간에 주변사람과 인사하라니까 배불뚝이 아저씨가 나에게 건너 와 악수도 청하고,,,

 

 

예배가 끝나자 신부보조하던 마을 청년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뭘 나눠 주는데 맨 뒤에 앉은 나에게까지 와서 주었다,

찬송가등이 적힌 주보같았다

 

졸지에 믿음이 신실한 마을 주민이 되어 버렸다

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이방인으로 보이지 않는게 분명하다. 이 시간에 이런 곳에 두 부부가 와서 농땡이도 안 치고 40 여분을 앉아 있었으니 그럴만두...TT

 

성령충만에 꽁짜 축도까지 받고, 예배가 끝나자 얼른 나왔다

 

 

 

 

주차장에선 같이 예배 드린 분들이랑 눈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내려오는 마음이 한결 행복하고 죄사함을 받아 가벼워졌다

 

 

다시 가로수 길을 따라 올로모우츠 시내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  우리가 여기 왜 왔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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