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30. 20:00ㆍCzech 2015
나와보니 활기는 사라지고 성당주변이 적막하다
6시라고 다 저녁 먹으러 갔나 ? 머리 위 하늘은 아직도 정오같이 눈부시다
성당 옆 별채(Kaple Boziho tela)는 현주만 살짝 들어가 봤는데 텅 비어 있었다
시내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본다,
축대 난간이 언뜻 보면 프라하의 카를교다.
프라하 카를교의 그것도 모조품이듯, 여기 난간에 조각상들도 가까이서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소조물이었다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언덕마루에 탁자 하나가 놓여 있고
비탈엔 포도송이들이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비탈 끝에선 동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둉양인 부부가 유모차를 밀며 성당쪽으로 오고 있다, 가까워졌을 때 한국말 대화가 들리길래 반가워 인사를 했더니
"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 " 라고 하는데 그 억양이 칭찬인지, 핀잔인지, 조롱인지 아주 모호했다.
순간 실례한 거 같아 대충 얼버무리고 멈춤 없이 스쳐 서로의 갈길을 갔다.
축대를 따라 지어진 이 백색의 아름다운 건물 (Jezuitska Kolej)은 현재 대학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건물 끝까지 걸어 왔다.
난 더 가보고 싶은 맘은 없고
현주라도 구경하고 오라고 '무섭다' 는 현주 등을 떠밀었다
주인과 산책을 하던 개가 갑자기 어느 집 대문에 매달려 컹컹 짖어댔다.
그 개 집인줄 알았는데, 안에서도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서로 방방뛰며 사람보다 더 열렬한 상봉을 나눴다. 개도 저릴진데 ...
화단 턱에 앉아 길어지는 그림자를 멍하니 처다보다가 갑자기 후회가 들었다
' 현주에게 돈을 좀 줘 보낼껄 ...'
◆
그 시각 현주는 국제미아가 안되려고 큰 길만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잡지 AB ROAD 2014.04 에서 ...
『 은화를 주조하던 조폐국. 이탈리언 궁전 Italian court
14세기 바츨라프 2세의 명령으로 축조된 궁전. 현재 시청 겸 박물관으로 쓰인다.
체코에 이탈리아 궁전이라니 의아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는 이탈리아 건축기법이 유행했다. 그래서 피렌체 출신의 건축가를 초빙해 건물을 지었고,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색채가 듬뿍 묻어난다.
400년전, 이곳애선 자체적으로 화폐를 주조했다, 중세 유럽에선 은화가 유행했는데 당시 유로화였던 '프라하 그로센'을 제작했다. 크기가 큰 은화는 '탈러'라 불렀는데 오늘날 '달러'의 어원이 되었다. 궁전 안 박물관에는 다양한 은화가 전시돼 있고, 한쪽에선 장인이 직접 은화를 만들어 보여준다. 5kg의 망치로 은화를 내리치면, 고막을 찢을 듯한 엄청난 소리가 난다. 그래서 동전을 만들던 대장장이는 귀머거리가 많았고, 밑에서 주조 틀을 붙잡는 사람은 손을 다칠 수 있어 범죄자들이 주로 이 일을 했다 』
시내에서 올려다본 바르보라 성당
◆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바라보며 난 다시 성당쪽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보도블럭에 끼워 넣은 건 쿠트나호라 구시가지 약도
시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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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가 봤다. 그는 그 프레임이 특별히 맘에 들었나보다.
셔터소리가 방해 될까봐 멀찌기서 풍경속에 그를 담아 보았다,
등 떠밀땐 언제고, 걱정과 후회에 사로잡힌 채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시내쪽만 바라본다.
멀리서 보라색이 어른거린다.
벌떡 일어나 힘차게 손을 휘저었더니 현주도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다
현주랑 성당 앞쪽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편하게 입던 대로 바람 쐬러 나온 동네 사람들만 몇 보이고, 정원이 고요하다,
바르보라 성당을 바로보며 두 사람이 각자의 카메라로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보지만 결과물은 영 맘에 안 든다,
측면과 지붕에 비해 퍼사드(정면)가 확실히 단조롭다. 육백년도 부족했나 ?
차로 돌아와 빙 한번 둘러보고 시내로 다시 들어온다
구시가 입구에 이정표 격인 Stone fountain (Kamenna Kasna)
낮에 비해 훨씬 한적해진 시내 여기저기를 차로 돌고 있다.
골목길 끝에서 성당(Kostel Matky Bozi Na Nameti)을 오른쪽으로 돌자 낮익은 골목이 나타났다. 바로 우리 숙소 뒷길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 구시가지.
광장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호기심에 얼른 주차하고 가 보았다,
먼저 가본 현주가 피씩 웃으며 돌아왔다
한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거기까지면 딱 좋았을텐데 아가씨가 노래중간에 한번씩 실로폰을 쳤다
나 국민학교때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그 실로폰 소리가 너무 안 어울려 웃(기지만 슬)픈 공연이었다.
광장끝에 웅장하고 높은 탑(Morovy sloup) 이 세워져 있는데 체코어를 번역하면 '전염병 기둥' 이 된다.
14세기 중세유럽 인구의 1/3을 몰살시킨 흑사병이 마침내 물러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기념비를 세웠는데 체코 곳곳에 이런 탑들이 산재해 있다. 기념탑의 크기가 그지역 사망자 수와 비례한다능 ...
그 탑 아래 행색이 누추한 노인 둘이 웅쿠리고 앉아 있었다.
잠시 휴식후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공연하는 곳을 지나쳐 오자
광장 반대편 끝에 푸드트럭이 세워져 있고 포장마차에서는 아저씨가 뭘 열심히 요리하고 있었다.
소시지와 구운 치즈였다
아저씨가 연신 '슬로바키아' 산 치즈라며 맛있다고 하길래 하나 달라고 했다. 40코루나 (2,000 원)
오스티포크(Ostiepok)라고 써 붙인 이 치즈는 슬로바키아(Slovensky) 목동들이 저온살균하지 않은 양젖으로 만든다
자기들만의 특징을 표시하려고 독특한 기하학적인 문양을 찍어 훈제해 내놓는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호밀빵이나 흑빵에 버터를 발라 이 오스티포크를 곁들어 먹는다.
우리도 제대로 먹어보라고 아저씨가 빵을 같이 싸 주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군침이 도는데 현주가 한 입 베어물고 나에게 줬디. 먹어보니... 따뜻한 지우개 씹는 맛
비록 어설픈 연주지만 동네 기지배들이 그 음악에 맞춰 장난을 치다가 ...
이내 멋진 춥으로 승화 시켰다, 슬라브족이 흥미 많은 민족인가 보다
지우개로 배를 채울 순 없고 학예회를 막 벗어난 수준의 공연을 감상할 만한 인내력도 바닥나서 '저녁 먹고 오자' 고 일어났다
미리 파악해둔 맛집을 네비에 찍고, 다시 stone fountain 을 돌아
근처에 있는 다츠키 (Dacicky)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이 골목 안쪽에 숨어져 있었다. 주차선은 없지만 작은 차 한대는 충분히 댈 수 있길래 차를 돌려 대며 현주에게 식당안에 들어기 주차를 물어보라고 시켰다
식당에서 한 남자가 나와 보더니 주민들이 신고하면 주차위반 딱지를 뗄 수 있다고 걱정을 해줬다.
차가 못 다니게 막은 것도 아니고 이 시간에 설마 신고를 할까 싶어 그냥 내리자 직원도 내 상태를 보고, 그냥 대도 될 거라고 한다.
AB ROAD 2014.04 또 한 페이지
『 쿠트나 호라는 제 2의 '몬테카를로'라 불렸다.
40곳이 넘는 사창가, 술집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광부들은 6일 동안 광산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술독과 여자에 빠져 살았다. 13세기부터 200 여년간 쿠트나호라는 밤낮으로 흥청거리는 유럽 최대의 은 광산도시였다. 왕족과 귀족들은 은광 운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왕실 조폐소를 설치하는 등 프라하를 능가할 만큼 막강한 세력을 키웠다. 쿠트나호라의 최대 번영기인 14세기, 바출라프 4세는 이곳에 궁전을 짓고 종종 머물렀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었다, 16세기 들어 은이 점차 고갈되었고, 수만명을 앗아간 후스전쟁과 30년 전쟁으로 도시는 처참히 무너졌다. 한때 7만명이 북적이던 도시는 현재 2만 2000명이 살아가고 있다. 이제 희뿌연 역사 속 이야기일 뿐, 지금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 불과하다 』
밖에서 보면 영업을 하는지도 의심스러웠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홀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찼다,
직원을 따라 뒷마당으로 나왔는데 여기도 손님들이 곳곳에 그득그득했다.
쿠트나호라가 유명세에 비헤 상대적으로 식당들이 적다보니 관광객들은 다 여기로만 몰린거 같다
아가씨가 '지금 주문하면 ' 음식은 1시간 후에나 나올거 ' 라고 미리 경고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맥주잔만 앞에 놓고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폼이다.
서빙하는 여직원들이 쾌활하고 친질해서 좋았다, 식당분위기가 활기차서 덩달아 신이 났다. 오늘밤은 기꺼이 중세 쿠트나호라의 광부가 되어 술독과 여자에 빠지고 싶어졌다
내 흑심을 눈치 챘다는 듯 아가씨가 생글거리며 맥주를 내려 놓고 간다
한잔은 필스너 우르켈 38코루나 (1,900 원) 또 하나는 여기 맥주 35코루나 (1,750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데 맥주가 술술 넘어갔다
현주가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덧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나왔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수저를 들었는데 ...스프는 짜고 체코 전통음식은 약간 우리 취향이 아니였다.
현주 속이 뒤집혔다
그땐 몰랐는데 귀국 후 여행기를 쓰다보니 행간에서 현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read between the lines),
크지보글랏에선 얼마나 추웠는지, 쿠트나호라에선 얼마나 그 음식이 입에 안 맞았는지, 내가 불편할까봐 내색을 안 하고 넘어갔구나.
18년전 뉴질랜드에서 한식 먹고 싶다는 현주를 면박줘 눈물 흘리게 한 일까지 다 후회되었다,
내 맘 같으려니 하고 먀냥 여행이 즐거운 줄만 알았는데...앞으로 더 얼마나 현주를 행간속에서 보게 될까, 겁이 난다
주변이 어둑해지자 급격히 쌀쌀해졌다.
그 많던 수다쟁이들도 다 돌아가고
우리도 계산해 주고 나왔다. 340코루나 (17,000 원)
가득 차서 시끌벅적했던 홀도 손님들이 거의 다 빠졌다
식당앞 골목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달려온다
내가 다급하게 " 야옹, 야옹" 거리자
가다말고 담에 몸을 비비며 나에게 연신 뭐라고 야옹거렸다.
알달달한 기분으로 단번에 숙소까지 차를 몰았다,
주차장 안쪽까지 빈 자리가 없어 간신히 차를 댔다
샤워를 하는데 또 코피가 터졌다, 한동안 흘려 보내도 멈출 기미가 없어 코를 틀어 막고 씻었다.
현주가 걱정할까봐 나올 때 흔적을 싹 지웠다.
밤은 점점 깊어 가는데 창밖에서 간간히 남자의 연설소리 같은게 들려왔다
현주가 잠들었길래 열린 창을 닫아 주려다보니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윽고 촛불을 하나씩 켜 들고 조용히 줄을 맞춰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모지 ?
투숙객들을 상대로 소방훈련을 하는 건 아닐테고, 이교도 집단인가 ? 저 사람들이 다 내 방에 처들어 오는건 아니겠지 ?
동유럽 시골동네의 첫날밤이 기묘하게 저물고 있었다
빨간 선은 오늘의 이동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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