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30. 09:00ㆍCzech 2015
" 꼭 미국서부 같지 않냐 ? "
가보지도 못한 미국을 들먹이며 아침은 야외 테라스로 나와서 먹는다.
낮엔 더워도 숲의 아침은 좀 쌀쌀한데 여기는 유리벽이 되어 있어 온화했다.
웨이터가 야외소파에 방석을 깔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나오더니
춥지도 않으신지... 햇볕을 쪼이며 졸고 있다
아침밥 다 먹고, 정원 산책은 어제 했으니 오늘은 생략
방에 올라와 짐 챙겨 11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내려왔다. 4,214 코루나 (210,700 원) 결재.
한국에서 이 호텔을 예약할 때, 현지 물가를 모르니까 적당한 거 같았는데 여행하면서 보니 비싼 호텔에 속했다. 여튼 그래도 1박에 조식뷔페 포함 10만원 정도면 가성비가 만족스러웠다, 돈 아낀다고 도착 첫날부터 너무 싼데는 또 좀 그렇구....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날씨.
우을증, 자살충동도 이런 아침을 맞으면 자연치유 될 듯.
" 흠~ 오늘은 어떤 사진으로 바꿀까 ? "
어젯밤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 숲길에 차를 박아 놓고 내려왔었다.
현주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차로 가서 빙 돌아 입구에 차를 댔다. 짐을 싣기 편하게 경사로를 후진으로 올라왔는데 그래도 될 정로로 한적했다. 시내 큰 호텔이었음 이런 객기도 못 부렸겠지만.
큰 짐들을 해치백 트렁크와 뒷자리에 다 쑤셔 넣어보니 두 사람 여행하기에도 좁은 차다.
오늘부터는 장거리를 뛰어야 하니까 잘 부탁해, SKODA !
■
또 고속도로 진입로를 헷갈려 시내쪽으로 들어갔다가 U-turn 해 차를 올릴 수 있었다.
네비엡이 무료인건 좋은데 도로표시가 명료하지 않고, 응답속도가 느려 자의반 타의반 저속주행을 하고 있다.
복잡한(?) 프라하를 벗어나자 이내 탁 트인 지평선이 시야 끝까지 계속됐다.
맨끝 차선 트럭 하나를 찍은후 같은 속도로 따라가고 있다.
추월할 일도 없고, 백미러를 신경 쓸 일도 없고... 운전 스트레스 제로.
그렇게 한 30 분 달린 후 이내 텅 빈 지방도로 빠져 나왔다
요제프 라다 (josef Lada 1887-1957)
체코의 국민 예술가라고 불리는 만화가, 동화작가
그림이 따스하고 밝으며 위트와 해학이 있는데 그 속에는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이 녹아 있었다.
생전의 요제프 라다와 그의 동화속 주인공들
길이 너무 예뻐서 차를 잠깐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획 지나가기엔 아까워 한참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만 이 길을 독차지하고 있다는게 실감이 안 난다.
완만하게 휘어진 길을 돌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고
동네 어귀에 써 있는 글자, HRUSICICH !
드디어 우리가 찾는 흐루시체 (Hrusice)에 도착했다,
요제프 라다가 여기서 태어났고 그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마을 사거리
식당앞에 주차를 하려다 P 표지판을 따라 북쪽으로 차를 돌려 올라갔다.
집 몇개를 지나치자 이내 마을이 끝나고, 누런 밀밭만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밀밭과 작은 숲이 만나는 시골길에서 동네 꼬맹이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다,
차를 돌려 다시 마을로 들어온다,
그래, 후르시체 맞아 !
텅 빈 마을 공터에 차를 세웠다,
주민들의 우편함과 쓰레기통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아까 본 자전거를 타던 꼬맹이가 어느새 여기까지 따라왔다. 꼬맹이의 젊은 아빠와 누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어디부터 가 볼까 ?
마을 안내판을 살펴보며 머리속에서 루트를 그려본다
한 백여호 되는 집들을 가가호호 다 표시해 놓았을 정도로 손바닥만한 마을,
조금 걸어 내려오자 이 마을의 중심지, 아까 식당이 있던 사거리로 나왔다
마을 한가운데 성당,
라다는 일생동안 고향 흐루시체를 많이 그렸다
봄,여름,가을,겨울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마을 풍광속에는 항상 이 성당이 중심에 있었다,
그의 동화 중에 가장 유명한 건 <검은 고양이 미케슈의 모험 Adventures of Mikes, a little black cat who could talk>이다.
마침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열린 창문 틈으로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마치 미케슈가 라다를 찾아 헤매듯... 죽은지 한 세기가 지난 얫 주인을 그리워하며...
동네 할머니가 자전거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유명세에 비해 너무... 한적하다
그때 내 뒤에서 인솔교사가 한 무리의 학생들을 이끌고 나타나 길건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학생과 얼굴을 마주쳤는데 양 미간이 넓고 눈꼬리가 올라가 있다. 그 뒤에도, 그 옆에도 ...
저 식당이 맛집인거 같아 우리도 길을 건너갔다,
사실, 문 연 식당이 여기 밖에 없었다.
식당 이름 대신 라다의 그림이 붙어 있는 간판
원본 그림.
틀린 그림 찾기.
비슷한 분위기의 또 다른 작품
문앞에도 마을그림이 조그만하게 붙어 있다
원본그림
식당 안에는 다운증후군 애들 말고도 이미 여러 손님들이 배를 꼬르륵 거리며 포크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라다의 그림들로 도배된 식당 벽,
바쁜 아가씨가 지나가다 주고 간 메뉴판
허걱 !
하얀 종이엔 체코어만 빼곡히 써 있고 칼라 종이는 뭔 음료수 공장 카다로그 인줄 ...
일단 주방하고 붙어 있는 Bar로 갔다,
맥주 디스펜서가 보이길래 그 중에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한잔 달라고 했다.
아가씨가 체코어로 뭐라고 반복해서 말하는데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
안 판다는 건지, 갖다 주겠다는 건지, 민증 까라는 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거구의 할아버지가 불쑥 나타났다,
굵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내 귀에 쏙 들어왔다. English 다.
" 그 맥주는 품절이래요 "
할아버지가 우리 자리까지 와서 메뉴판을 한줄한줄 영어로 번역해 주셨다, 이왕 신세 진거 한 페이지를 다 통역해 달라 했다,
아래 사진의 가운데 여자분이 할아버지랑 부부.
" salmon " 발음이 나오자 처세의 달인, 현주가 얼른 찜을 했다,
세명(할아버지와 나, 서빙아가씨)이 긴시간 머리를 맞대고 Potato 의 요리 방식까지 선택한 후 드디어 주문 완료,
아가씨에게 Wi-Fi 비번까지 물어봐서
음식이 나올때까지 인터넷에서 라다의 그림들을 검색하며 식당 것과 맞춰 보았다
라떼 50 코루나 (2,500 원)
우여곡절끝에 마시게 된 맥주 한잔 17 코루나 (850 원)
' 체코에선 맥주가 물보다 싸다' 란 말이 뻥이 아니였다
드디어 메인요리가 나왔다
현주가 주문한 연어 스테이크 99 코루나 (4,950 원)
포크 스테이크 79 코루나 (3,950 원)는 내꺼,
비프스테이크보다 훨씬 부드럽고 간도 잘 맞고 굽기도 적당했다.
프랜치프라이 위엔 오뚜기케찹 대신 여기서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를 끼얹어 왔다,
현주랑 즐겁게 수다떨며 먹고 있는데 구세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먼저 일어나 인사하고 가시고,
사거리엔 마을 방문객들이 간간히 지나 다녔다.
계산서를 받아 보니 우리가 시킨건 네갠데 하나(30 코루나 1,500 원)가 더 적혀 있었다,
아가씨를 불러 확인해보니 사이드 메뉴인 감자요리가 별도 계산이였다, 총 275 코루나 (13,750 원) 가격 대박 싸 !
마을탐방을 하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려야겠다.
선악과를 몰랐던 아담과 이브가 그려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번엔 문 두개가 나타났는데 각각 'Pani' 'Dama' 라고 써 있었다
' 아 C ~ 급해 죽겠는데...
잘못 열면 교도소고 잘 열면 해우소렸다...
pani 는 페니스라고 치고, Dama 는 다마 ? 구슬 박은 ?
아 ~ 쓰벌, 몰라, 몰라 ! '
어떻게 박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해 일단 다마부터 빠꼼히 열어 보았다,
허걱 ! 소변기가 안 보인다. 얼른 닫고 패니로 숨었다
내가 화장실 앞에서 고민하는 사이, 현주는 기다림에 지쳐 버렸다
소화도 시킬 겸 본격적으로 마을 산책을 나섰다,
이런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거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길가 구멍가게
정오를 지나자 햇볕이 점점 강해졌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집 앞을 지날 땐 맹견이 달려나와 사납게 짖어 댔다. 팬스가 너무 낮아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집주인이 나와 개를 진정시키는 사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가도가도 우리가 보려는 곳이 안 나와서 현주에게 다시 돌아가 차를 끌고 오자고 했다,
오는 길에 현주가 식당 화장실에 들른다기에 신신당부했다.
" 다마는 들어가면 안돼...아니, 아니다, 패니말고 다마로 들어가 ! "
길가에 노란 꽃
차를 끌고 가보니 기대와는 달리 조각이 가정집 안마당에 있고 약간 실망스러웠다,
아까 본 다운증후군 애들이 여기까지 걸어 왔다가 돌아가고 있었다.
지친듯 터벅터벅 걸어가는 애들 옆을 차로 지나가려니 좀 미안하다
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쪽은 모라비아, 서쪽은 (보헤미안의 어원이 된) 보헤미아라 부른다.
왠지 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보헤미아의 품안에 흐루시체가 있었다,
요제프 라다의 고향, 흐루시체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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