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9. 17:00ㆍCzech 2015
현주는 넋을 놓고 성만 보며 저만치 앞서가고
난 현주를 놓칠 새라 쫓아가다 숨을 헐떡이며 쉬었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길바닥에서 코 푸는 사람들이 평소에 멋지게 보였길래, 마침 주변에 보는 사람도 없겠다, 한쪽 코를 막고 팽 ! 힘차게 코를 풀었다
아 시원하다 ~!
다시 지팡이를 짚고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코에서 뭔가가 나오는가 싶더니 회색 돌위에 코피 한방울이 똑 ! 떨어졌다.
빨간 코스모스 꽃잎처럼 ...
이내 콧속에서 질질 흐르는게 지대로 터졌다. 휴지를 대충 찢어 얼른 콧구멍을 틀어 막았다, 밤낮으로 무리했더니 힘들었나보다.
젊었을 땐 뜨거운 피를 감당 못해 황당했다면 이젠 몸이 맘을 못 따라줘 당황스럽다. 그 분수령이 fucking today 다.
망가진 모습을 즐기며 언덕을 다 올라 성 입구에 다다랐다.
길은 산을 따라 생기고
집은 길을 따라 놓였구나.
중세엔 이 곳에 성주가 살고
저 아래엔 농노가 살았구나.
에헤라~디아.
촛점도 안 맞는게, 제정신이 아니구나 ~
성벽 여기저기에 십자가 모양의 감시창과 총구가 뚫려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상당히 길고 어두웠는데 두터운 건물들이 성벽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건물들도 각자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촘촘하게 끼워 맞쳐 요새 같이 견고한 하나의 성이 완성되었다.
프라하 대학을 세우고 체코를 중유럽의 중심지로 만들어 체코인들의 존경을 받는 황제가 있다.
한국의 세종대왕, 카렐 4세다.
그의 유년기를 보낸 곳 치곤 좀 외지고 수수했다.
여기도 지붕이 기분나쁘게 실눈을 뜨고 있었다. 체코사람들은 저게 멋있어 보이나 보다.
보슬비가 내린다.
큰 나무 아래로 피신해 있으려니 현주가 목도리를 두르며 이리로 오고 있다,
마당엔 가설무대도 있고 관광객들도 꽤 보이고, 행사 안내판도 세워져 있는데 ... 온통 체코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
『 방앗간을 운영하던 주인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기로 한다. 첫째에게는 방앗간을, 둘째에게는 당나귀를, 막내에게는 고양이 한 마리를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형들보다 적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쫓겨나기까지 한 막내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자, 고양이는 가방 하나와 장화 한 켤레를 주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가방을 메고 장화를 신은 고양이는 그 나라 왕에게 찾아가 카라바공작을 자신의 주인으로 소개하고, 이후 카라바공작의 이름으로 왕에게 여러 차례 선물을 보낸다. 그리고는 카라바공작이 옷을 도둑 맞은 것처럼 꾸며내어 막내가 왕으로부터 값비싼 옷을 전해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을 물리치고 거인의 성을 차지한 고양이는 왕에게 그 성을 카라바공작의 성으로 소개한다. 마침내 왕은 카라바공작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키고, 방앗간집 막내 아들과 공주, 고양이는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 』 <장화신은 고양이>, 1697년에 발표된 프랑스 동화
갑자기 잊고 살았던 어린 적 동화가 생각났다.
하얀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슬금슬금 현주에게 다가왔다
우리집 고양이 넵킨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리움이 사무칠때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그 속에 한 구절.
넵킨이 우리집에 처음 왔을때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 !
『 ... 고양이 대부분은 우리 생각보다 사람의 몸짓 언어에 대단히 민감하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불평을 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고양이가 있는 방에 있으면, 고양이가 항상 제일 먼저 자신한테 다가온다고. 나는 이 말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함게 있는 자리에 고양이 여러 마리를 들여보내는 실험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내가 실험에 참가시킨 사람들 중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인정하는 여성은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소파에 앉게 한 후 고양이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움직이지 말라고, 심지어 무릎에 올라오려 해도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고양이들은 방에 들어와서 몇 초 내에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한 듯,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다가기는커녕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도 않았다. 녀석들이 그 차이를 어떻게 감지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서 긴장된 모습이나 초조하게 힐끔거리는 모습을 감지했을 수도 있고, 살짝 다른 체취를 맡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실험에서 나타난 고양이들의 반응은 어떤 사람을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사람을 판단하는 날카로운 직관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캣샌스 p 342
고양이가 나를 개무시하고 현주에게 가더니 괜히 친한 척을 하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도 고양이 좋아하는데...
털어봤자 나올게 없다는 걸 알았는지 냉정하게 우리를 떠나
다른 가족에게 가서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애기들은 항상 먹을게 안 떨어진다는 세상 이치를 알고 있는 고양이다,
가랑비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장사는 계속 되고 있었다
이런 산위에 요새에선 가장 중요한게 식수였을 것이다.
도르레를 걷어 치운걸 보니 지금은 사용을 안 하지만, 깨끗하게 보존 관리되고 있는 우물.
기념품점 내부
조그만 여자애가 엄마에게 수줍게 속삭이자
엄마가 동전 한닢을 꺼내 밋밋한 동판과 맞바꾸었다, 뭔가 봤더니 옛날 주화를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애가 히마리없이 망치를 내려치자 기념품점 주인이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다.
' 긁히지도 않겠다 ! ' 란 표정으로...
그래도 스맛폰 갖고 노는 것보단 훨 나아 보였다
누추한 집안에서 낡은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아마 성안에 상주하며 매점이나 성을 관리하는 사람들인거 같다.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망루 계단을 올라가 보니 성벽 위를 걸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 약해 보이는 건물은 높고 두꺼운 성벽을 그 앞에 더 쌓아 올렸다
2층 방 하나엔 화려한 기념품등을 팔고 있었는데 문밖에서 힐끗보니 이 성 이미지랑은 전혀 관계없는 물건들이었다.
체코가 1989년에 구소련의 사회주의에서 해방된지 채 30년이 안된다, 저렴한 물가로 덜 훼손된 중세 유럽을 경험 할 수 있다는 소문에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나라 전체가 급격히 자본주의, 돈 맛에 빠진거 같다. 체코 여행 내내 이런 느낌을 몇 번 더 받게 되는데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미뤄야 겠다
' 난 옆으로 가본다' 고 현주에게 손짓하고 호기심에 끌려 발코니끝 방으로 향했다.
이 방은 텅 비었는데, 거친 나무바닥과 어두침침한 계단, 먼지 뿌연 탁자가 보였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미줄 위에 먼지가 뽀얀 창문,
그 아래로 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무섭다는 현주를 극구 창문까지 끌고 와 고성의 분위기를 지대로 보여주었다.
성안 사람들의 유일한 시계였을 해시계가 벽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정상작동하고 있었다.
이 성안엔
손님을 영접했던 '왕의 홀'을 비롯해
금과 은을 저장했던 '보물창고'
창문 하나 없는 '감옥'
전기의자등이 있는 '고문실'
화려한 '성당'
등이 있다고 하는데 우린 성 내부 투어를 안 하니 막상 별로 할게 없다.
현주가 안내창구에 무슨 전시회를 하는거 같다고 해서 가보았다.
성벽 속에 큰 공간이 있었다. 왼편은 안내desk 고, 직진하면 매점, 오른편은 동굴 같은 방이다.,
뭘 잔뜩 전시해 놓긴 했는데 그런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천정이 둥근 지하동굴 분위기에 압도당해 좀 무서웠다,
여기 수감된 인물중 유명한 사람이 연금술사 에드워드 캘리(Edward Kelley)다.
합스부르그 왕가 황제 루돌프 2세의 총애를 받아 많은 부를 쌓으며 궁전에서 호의호식하던 캘리가 또다른 연금술사를 살인하고 도망치자 황제가 그를 이 성에 가둬 놓았다. 어느날 캘리가 탈출을 시도하는데 낡은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바위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화가 난 황제가 그의 다리를 잘라 버리고 나무다리를 박아 버린다. 영원히 이 성을 나갈수 없게 된것에 절망한 캘리는 1597년 42세의 나이에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를 기념하여 매년「애드워드 캘리와 함께 하는 야간 성 투어」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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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방, 차디차고 시커먼 의자가 붙박이 가구처럼 한쪽 벽에 붙어 있었다
캘리 이야기 속에선, 이 방으로 죄수를 끌어와 고문과 재판을 하고, 배심원이나 저승사자들이 부동자세로 여기 쭈욱 앉아 있었겠지.
현주 놀라라고 귀신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방의 끝은 매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긴 그나마 창문도 있어서 숨통이 좀 트인다,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채여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보다 놀랐지만 서유럽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과잉 친절하지는 않았다,
' 여기 사람들이 대체로 무표정하고 감정을 밖으로 잘 드려내지 않는구나 ' 란 느낌을 받았다.
성을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은 신시를 지나 초저녁 유시(PM 5~7) 로 들어서고 있었다.
코피를 흘렸던 언덕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걸어 가는데 숲 오솔길에서 또 비를 만났다. 어깨에 떨어진 빗방울이 스며들다 못해 흐르기 시작했다.
당황한 현주가 육교를 놓치고 숲속으로 더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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