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8. 18:00ㆍCzech 2015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공항청사 요지에 술집, 사내들이 낮술을 벌컥대는 광경을 보니 동유럽에 온 현실감이 팍팍 든다.
인파가 몰려가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따라갔다. 별로 큰 공항이 아닌데도 이동거리가 상당해서 몇번을 쉬어 갔다. 양쪽에 면세점이 즐비한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힘겹게 지나오자 그 끝에 입국심사대가 있었다.
느리게 줄어드는 줄. 마침내 내 앞에 빨간 점퍼 청년만 끝나면 된다.
그런데 이 놈이 줄을 막고 서서 옆라인의 파란 점퍼 청년들을 한명한명 새치기 시키는게 아닌가. 처음에 한두명은 그러려니 했는데 양해도 안 구하고 하는 꼴에 슬슬 열을 받았다.
" What are you doing, now ? " 짜증을 섞어 항의하니
" Sorry, We're group " 이라고 입으론 해명 하는데 얼굴엔 시건방짐이 가득했다.
' ...동유럽 개시끼들..' 한국말로 욕을 씨부렁거리며 화를 삭혔다.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수화물을 찾으러 또 한참을 걸어 갔다,
아직 본격적으로 짐이 나오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길래 현주에게 부탁하고 난 구석에 ATM 기계로 향했다.
상기된 채 Citi 카드를 밀어 넣고 English, Withdraw, password 순으로 버튼을 누르자 돈을 주겠다는 대답이 기분좋게 돌아왔다,
최대 인출액 15,000 코루나 (수수료 포함 737,703원)를 뽑은 후 한번 더 인출했다, 총 3만 코루나. 150만원.
1 코루나가 49.1원이니 대충 50원 잡으면 되겠다.
요즘 환율이 좀 오르긴 했지만 3년, 5년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떨어진 편이다. 여튼 여행하기엔 괜찮은 상황.
돈과 짐을 무사히 찾으니 저절로 기운이 난다,
렌터카 사무실들은 모두 청사밖 주차빌딩에 입주해 있다고 해서 카트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파란데 바람이 바닷가처럼 세차게 불어 댔다.
' 이런 날씨는 형이 좋아하는데 난 좀 춥네, 날씨 예측을 잘못했네 ' 현주가 툴툴댄다.
렌터카 사무실들이 몰려 있는 주차빌딩 1층 로비.
내가 예약한「Rent +」부스를 찾아가 바우쳐를 제출하고 별탈없이 수속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터키여행 이후로 중소 렌터카 회사에 대한 불신이 생겨 버렸다.
처음엔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유혹하지만 차 반납후 귀국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오픈된 카드에서 돈을 빼가는 국제 사기꾼들이다.
이 회사도 충분히 그럴 거란 의심을 깔고 있으려니 인상이 펴지질 않았다
서류 작성후 직원과 함께 위층에 차를 보러 갔다,
외부 상태를 서로 확인해 체크했는데 뒷바퀴 휠에 동전만하게 긁힌 부분은 별 말도 없고 해서 바퀴쪽이라 괜찮은가 보다 하고 나도 그냥 넘어갔다. 그게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줄도 모르고 ...
직원이 간 후에 차를 찬찬히 둘러 보았다.
폭스바겐 그룹의 체코자동차 SKODA 사의 CITIGO. 999 cc의 조그마한 차
오토바이보다 더 썰렁한 계기판. 기어도 P가 아예 없어 N에 핸드 브레이크를 잡아놔야 했다. 3 door 해치백이라 뒷자리에 짐을 싣기도 불편하고 시동도 바로 안 걸려 방전된 줄 알았다. 한 박자 쉬고...부르릉 ~ 모든게 낯설다,
17일 빌리는데 44만원. 하루 26,000원 꼴이라 싼 맛에 빌리긴 했는데 진짜 비지떡이다. 조만간 스코다도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차도 외제라는 이유로 좋다고 사는 사람 분명 있다.
스맛폰 네비가 안 잡혀서 일단 공항을 빠져 나와 근처 주유소 공터로 차를 뺐다,
차분히 앉아 이리 저리 만지다보니 제대로 작동했다, 야호 !
프라하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왠 허름한 창고 건물앞에 차를 세웠다.
현주에게 ' 여기가 호텔이야 ! ' 라고 했더니 진짜 믿고 약간 실망한 눈치다.
<구글 스트리트뷰>
킥킥거리며 안쪽 길로 조금 더 들어가자 드디어 예약해 둔 호텔이 나타났다
聖 하벨 (Chateau st Havel) 城.
고전적인 외관의 개인소유 저택이었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 들어 가자 프런트에 여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객실은 구닥다리와 천박함 사이를 묘하게 비켜 고급스러웠다
욕실도 환하고 깨끗했다
웰컴 음료와 과일
창밖으론
완만한 구릉에 잘 깎인 잔디밭
골프장을 낀 호수
샤워하고 살짝 낮잠을 잤다.
객실에 안내책자가 몇권 있었는데 그 중에 프라하 맛집을 영문으로 소개한 책이 눈에 띄었다. 대충 훑어보고 현주에게
" 케익 나오는 카페를 갈래 ? 체코 전통요리를 먹을래 ? 퓨전을 먹을래 ? " 물었다.
오늘 저녁은 레스토랑「Zelena Zahrada」당첨 !
여독도 풀리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었다.
상쾌하다.
그런데 식당이 네비에 등록이 안되어 있어 대충 지도에 위치만 찍고 출발했다
신호 주는대로 받으며 느긋하게 프라하의 초저녁 거리를 감상한다.
가난한 레이몬드 카버가 새 차를 사고 뻐기듯 이렇게 말했지. " I don't drive... I motor "
난 차를 모는게 아니야... 운전을 하고 계시는 거지...
시내를 다 들어온거 같은데 식당을 못 찾겠다.
관공서로 보이는 큰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네비에 간신히 식당위치를 찍을 수 있었다.
조금 나오자 오른편으로 큰 대로와 광장이 있었다. 인터넷으로만 많이 본 바츨라프 광장 (Vaclavske namesti) 이다
' 다행히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구나... '
프라하도 파리처럼 구역을 번호로 지정해 놓았다.
바츨라프 광장이 있는 구시가지는 1구역. 지금 찾아가는 식당은 2구역. 호텔은 중심지랑 좀 떨어진 4구역이다.
<클릭하면 확대됨>
한적한 거리를 지나 언덕을 넘어 목적지 식당에 정확히 도착했다.
식당 주변이 주택가라 차 댈 공간이 좀 있긴 했는데 문제는 파란선, 즉 거주자 주차구역이라는 것.
' 찜찜하지만 별일 있겠냐 ' 란 나와 ' 댈 곳 없으면 다른데 가자 ' 라는 현주.
마침 깡 마른 남자가 지나가길래 " 여기 차 대도 괜찮겠냐 ? " 고 물어보았다. 남자가 필요이상 가까이 다가오더니 소근소근 속삭이는데...체코어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 말을 하고 싶은진 충분히 알거 같다.
일단 현주를 다시 타라고 하고 차를 빼서 위로 올라왔다.
로터리 화단 둘레로 녹색 파킹존이 그려져 있고 예약이라도 한 것처럼 빈 자리도 하나 있는 것이 아닌가. 주차부터 하고 표지판을 보니 체코글자와 8:00 - 18:00 숫자가 써 있다. 통밥으로 오후 6시 이후엔 무료라는 거 같은데... 마침 지나가는 예쁜 여학생을 붙잡고 확인사살을 했다.
젊은 애라 영어가 통한다 ' 지금부턴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다 ' 는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마음이 놓여 환해진 현주.
차를 대고 식당쪽으로 내려오니 아까 그 남자가 안가고 서 있다가 ' 티켓 뽑았냐 ' 고 걱정스럽게 또 속삭였다,
" 6시부턴 무료라던데요 ~ "
■
식당안에 불은 켜저 있는데 사람도 안 보이고 ...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랫 계단에서 흰 셔츠에 검은 조끼를 단정하게 입은 중년 웨이터가 어서 오시라고 인사를 한다.
실내는 약간 차가운 모던 스타일이고 손님이 한명도 없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안쪽에도 자리가 있다고 해서 현주에게 가 보라고 했다.
현주가 보고 오더니 안쪽이 훨씬 낫다고 해서 따라 들어가 보니... 오 마이 가~뜨 !
하얀 천이 길게 드리워진 아늑한 온실 (Greenhouse) 공간이 뒷곁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원같은 뒷마당은 녹색나무들이 울창하고, 오솔길 사이사이로 식탁이 놓여 있어 숲속에 들어 앉은 기분이었다
자그만 연못까지 만들어 놔 물소리가 졸졸졸 들려 온다.
손님들도 여기 다 모여 있었다.
부부 동반모임, 데이트하는 연인, 한무리의 아가씨들, 우리 옆엔 영어로 대화하는 접대자리 등등 ... 조용히 그러나 쾌활한 수다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그 속에 있는 우리까지 덩달아 즐거워줬다.
비싸 보이는 식당수준에 비해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수수했다. 그런 점도 동유럽스럽게 다가왔다
일단 마실거로 레모네이드와 탄산수
그리고 안내책자에 소개된 태국식 볶음쌀국수 (Pad thai)
흑미밥위에 문어 한조각 (Black risotto with grilled octopus).
체코어 메뉴로는 문어대신에 낙지 (Chobotnice)라고 써 있었다. 하긴 문어가 낙지과이긴 하지만.
6.25 전쟁이 끝난지도 62년.5개월이나 지났는데 한국음식문화는 이제서야 양(Quantity) 에서 질(Quality)로 넘어가고 있는거 같다.
TV에서는 육해공군을 다 때려 넣은 꿀꿀이죽 수준의 잡탕 식당을 소개하고 사람들은 무한리필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전국을 찾아 다녔다. 최근에 요리사들이 뜨는 현상이 이젠 맛을 추구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와중에 사업수완이 좋은 백중O 이나 gundown 블로거지 뱍태O 등의 사람들이 맛의 대가인양 포장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 백종O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10년 9월 소유진씨 연극을 보고난 직후였다. 고만고만한 식당 체인을 하는 사업가와 연예인과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때의 연극 관람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
뭔 분자요리도 아니구... 두숟갈 밖에 안 되는데 짭쪼롬하고 고소해서 조금씩 아껴 먹었다. 여긴 이미 질적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주변이 어둑해지자 공간은 더 환상적으로 바뀌어갔다
우리보다 더 일찍 온 사람들이 일어날 기미가 없이 즐거운 대화들이 쉼없이 이어졌다. 이 나라 사람들 참 수다쟁이다
그래서 우리도 부담없이 앉아 카푸치노까지 시켜 먹으며 프라하의 첫날밤을 행복하게 보냈다,
총 701 코루나 (35,050원)
카푸치노가 2,500원이 안되고 레모네이드도 1,900원 정도... 참 싸다. 근데 이것도 여행 후반에 보니 꽤 비싼 거였다.
1 코루나는 깎아 달라고 했더니 웨이터가 갑자기 그 말은 못 알아 들었다.
니오면서 찍은 식당전경
주택가 골목
식당이 이런 외진 곳에 있어도 맛집에 소개되고 손님들도 많은 걸 보니 우리가 잘 찾아왔나보다.
차를 몰고 나오다 일방통행 골목에서 경찰차를 만났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쫄아 얼른 시내쪽으로 내뺐다
하루도 안돼 완전 현지에 동화된 기분으로 어두운 시내를 드라이브 했다,
그러다 만난 ' 춤추는 건물 (Tancici dum) '
이 건물을 지은 프랑크 게리 (Frank Gehry)가 바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사람이다. 주책없이 내 눈물을 흘리게 만든...
내친김에 몰다우강을 건너
어느새 나와 혼연일체가 된 SKODA를 몰고
프라하성 아래 광장까지 왔는데 ...
조수석을 보니 현주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깰까봐 얌전히 운전하여 호텔에 도착한 시각. 10: 20.
유명관광지 주변엔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 다니는데 변두리와 호텔 주변은 적막하니 무서웠다.
오늘 이동거리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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