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골든 튤립을 거닐다

2015. 2. 3. 18:31Tunisia 2015

 

 

 

시내를 등지고 동쪽으로 30분 이상을 달리던 버스가 La marsa 외곽도로를 지나 

 

산위로 올라가더니 왠 리조트 단지 같은 곳으로 들어가 야트막한 저택 현관 앞에 섰다.

이런 외진곳에 뫤 X-ray 검색대 ?  낌새가 이상하다

현관 입구부터 경비들의 철저한 짐수색을 통과 후 프런트로 안내되었다

아랍 커플 먼저 체크인 수속 후 다음으로 나를 부른다. 한껏 티꺼운 표정으로 느릿느릿 다가갔다. 여권 보여주고 체크인 끝난거 확인한 다음 인상을 구기며 프런트 직원에게 말했다 

"  내가 비행기 취소돼서 "

"  압니다 "

"  스케줄 조정도 해야 하고, 머리가 복잡하니 담배와 라이터를 줘라. 비용은 항공사에 청구 놓고 ! "

"  알겠습니다. 룸서비스 40 버튼 눌러 요청하세요 "

"  알았다. 안되면 내려오겠다 "

 

Wi-Fi 와 식당과 내일 공항 출발시간등을 확인하고 도어맨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들어왔다

도어맨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더니 또 똑같이 40번 이야기를 하길래 ' 너가 직접 가져와라 ' 고 내보냈다

 

일단 Wi-Fi 잡아 카톡으로 여기 상황을 알려 주고 안심을 시켰다

그제서야 방이 눈에 들어왔다

 

금칠한 코린도식 기둥과 검은 대리석으로 장식된 욕실, 더럽히기가 미안할 정도로 깨끗했다

 

 

10 여분후 방문 노크소리가 들린다.

말보로 골드 한갑과, 싸인을 해달라고 청구서를 내미는데 12 dinar (7,200 원) 라고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라이터를 안 가져왔다. 룸서비스 40 번을 누르란다.

" 또해 ?  그냥 가져와 " 하니 OK 하며 또 사라졌다.

한참 기다려도 안온다. 담배만 처다보고 있으려니 열불이 나서 직접 40번 룸서비스를 불렀더니 알고 있단다. 

 

라이터는 함흥차사인데 점심시간은 놓칠거 같아 2시쯤 식당을 찾아 나왔다.

 

오늘 무슨 세미나가 있나 보다. 복도 한 방엔 회의실이 차려저 있고 식당에선 30 여명의 백인들이 모여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식당앞은 고대 유적지를 본 떠 꾸며 놓았고 수영장도 있고 럭셔리했다

 

 

뷔페식당일줄 알았는데 메뉴판을 펼쳐 주며 음식을 주문하란다. 적혀 있는 가격은 내가 먹고 다닌거에 딱 열배였다.

그렇지만 에미레이트에서 낸다니까... 김밥천국도 부담시런 내가 난생 처음으로 가격을 무시하고 마구마구 시켰다.

   스타터로 양고기 스프,

   샐러드는 씨저 샐러드,

   메인요리는 비프스테이크 웰던,

   후식은 아이스크림 (더 묻길래 알아서 달라고 하고)

   그리고, 드링크 ? 

   그건 쌩~오렌지 쥬스지 !

 

 

 

 

음식이 차례차례 나오는데 모두 맛있고 비즈니스 기내식보다 더 훌륭했다

에미레이트 야들 돈 많네 ~ 역시 만수르야 !

비즈니스 업그레이드에, 고급 호텔에 고급 음식까지 ... 이게 뭔 복이다냐.

하긴 세사람 태우려고 A380 띄우느니 이걸로 떼우는게 남는 장사겠지만 ...

 

현주는 그동안 소찬소식했으니 많이 먹으라고 한다.

내 여행기 보고 튀니지에 관광객들이 늘면 자기들도 이득이니 대접해 주는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현주가 꿈보다 해몽이라고 핀잔했다

 

두툼한 스테이크

 

여자 메니저도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며 지나 다니고, 써빙맨이 ' 아리가또 ' 인사를 했다.

나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하며 자기 누구가 한국가서 일을 한다고, 써비스도 좋고 다 좋은데 ' 빨리빨리 ' 란다

' 내 테이블은 빨리빨리 할 필요없다 ' 고 말해줬다

 

아까 아랍 커플이 느즈막히 식당에 들어오길래 반갑게 인사했다

순만이가 카톡을 보내왔다. 비행편이 취소되어 이렇게 꽁짜밥 먹고 있다고 찍어 보냈더니 대박이라며 부러워했다

 

음식이 맛있어 그 많은 걸 다 먹고 쥬스까지 한잔 더 추가해 마셨다. 나오면서 커플에게 인사하며 슬쩍보니 거기도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계산서에 싸인해 달라길래 도대체 얼마나 나왔을까 ? 힐끗 보니 107 dinar (64,200 원) . 내 2,3일치 여행경비다,

 

웨이터에게 " 라이터 있냐 ? " 물으니 " fire ? " 하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쓰던 라이터를 꺼낸다.

그거 나주라 ! 했더니 머뭇거리다가 준다

 

 

방으로 돌아와, 정원과 연결된 발코니로 나왔다.

 

방에 있는 푹신한 쿠션을 의자에 깔고 앉아 드디어 담배를 개봉했다.

담배연기속에, 그동안 까치담배로 연명하던 서글픈 시절들이 아스라히 사라져 간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건, 캔슬이 되건 이렇게만 해준다면야 뭐 나야 좋지.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까.

그동안에 백수라고 괄시받던 처지를 한큐에 통쾌히 위로 받았다.

 

소화도 시킬겸 다시 나왔다

 

로비 커피숍은 전망은 좋은데 건물에 가려져 잘 안 보였다.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현관 기둥옆에 붙은 현판을 보니 오성 호텔이었다, 역시 뭔가 좀 다르다 했다.

지금껏 별볼일 없는 숙소만 전전하다가 하룻밤새 별 다섯개짜리 호텔이라니 !

내가 봐도 이건 너무 드라마틱하다

 

정원으로 나가 정문 경비에게 전망 좋은 산책로를 물으니 위로 올라가란다

"  밖으로 안 나가고 ? " 되물으니 자신있게 " 예 " 한다

 

천천히 단지내에 있는 Golden tulip Inn 쪽으로 올라갔다,

 

단층짜리 가든행사장 앞을 지날때 멀리 바다가 보였다,

내려올때 가보기로 하고 계속 언덕을 올라갔다

 

튀니스 앞바다는 군청색과 옥색의 바닷물이 선명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언덕위에도 별장같은 단독 객실들이 멀찍 멀찍 지어져 있었고 수영장과 고대 유적지도 있었다

그림같은 경치마다 찍다보니 마침 카메라 메모리가 꽉 찼다. 그늘에 앉아 눈물을 머금고 덜 중요한 사진들을 지웠다,

 

탁 트인 전망의 발코니와 벤치

 

거기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인당수보다 더 짙고 푸른 심해였다,

왼편엔 작은 섬이 떠 있고 오른편은 육지의 끝 반도였다. 

 

그 섬 위로 서광이 비쳤다.

어디선가 본 듯한데 ... 바로 젬브라 (Zembra) 섬이고 캡봉 (Cap bon) 반도였다, 

 

튀니지 여행기 12편에 나오는 그 젬브라 섬이 이 언덕위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클릭하면 확대됨>

 

 

언덕 끝까지 그림같은 리조트 별장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있고, 드라이브하기 최고의 Down- Hill 도로가 바닷가까지 이어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얼른 언덕을 내려와 중간 전망대쪽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 풍경이었다. 나를 튀니지에 오게 만든 ! 

이 곳이 La marsa 란 정보 하나만 갖고 튀니스에 도착한 다음날 전철을 타고 찾아왔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간 라 마르사.

무탈하게 오늘 출국했으면 평생 못 봤을 이 풍경.

무슨 복으로 이 경치를 보라고 비행기도 취소되고 날씨마저 이토록 맑게 개었단 말인가. 

감동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이가 들수록 쉽게 감동 되는 경박스러움을 실토하지만 여튼 진심 감동이었다,

 

  저쪽 언덕 위와 뒤편이 Sidi bou side 고

  하얗고 큰 건물들이 있는 시가지가 La marsa 전철 종점이었고,

  백사장 있는 곳까지 걸어 왔었지...

전망대 발코니위에 서서 하염없이 경치만 바라 보았다

 

 

 

 

 

이 좋은 곳에 혼자 있으려니 이내 가족들이 그리워 의기소침해졌다,

엉덩이 털고 일어나 슬슬 호텔 방향으로 내려온다,

 

여기는 리조트 내의 인도식 식당이었다, 정원 곳곳이 이국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더 안쪽엔 헬스클럽과 스파등도 갖춰져 있었다.

차도 별로 안 다니고 외부인이 철저히 통제된 럭셔리한 산책로

 

다시 실내로 들어가려는데 경비가 입구에서 금속탐지기를 들고 서 있다,

내가 ' 아슬레마 ' 아랍인사를 건네며 검색하라고 두손을 펼치자 웃으며 그냥 들어가란다, 처음 들어갈 때 검색했고 아까 빈손으로 나오는 걸 봤으니까. 안에 X-ray 투시기 직원도 나 들어가기 편하게 봉을 치워 주었다, 이 정도 최고급 호텔에 묵고 있는 투숙객에겐 모든 직원들이 이 정도의 친절과 서비스는 기본인가보다

 

로비 라운지에 좀 앉아 있으려다 방으로 들어와 카메라에 메모리 카드부터 다시 챙기고

 

베란다 나가서 의자에 다리 올리고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원한 바닷바람

고요함.... 

 

고된 여정의 끝에서 즐기는 최고의 휴양,

 

집사람 수고 덜으라고 빨래를 몽땅 꺼내와 욕실로 갔다

드라이기도 있고 전기 다림판도 있고 전등 갓위에 널어 놓고 방에 히터 틀면 충분히 다 마를거 같다,

 

이 나라엔 냉장고가 없는 줄 알았는데 큰 냉장고에 차가운 음료수와 초코렛등이 가득가득했다,

빨래 끝내놓고 힘 썼으니 에너지 드링크부터 하나 쭈욱 빨고...

 

TV 를 틀자 첫 화면에 ' Bienvenue Mr Lee Whanho ' 환영인사부터 떴다,

최고 선명한 LG TV. 오늘 밤도 잠 다 잤군

 

느긋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실내.

여행은 돌발상황을 즐기는 거라지만 이번 여행은 처음과 끝이 대박 돌발이다, 

 

저녁을 맛있게 먹으려고 산책에 빨래까지 했더니 소화가 좀 됐다.

점심때랑은 다른 패션인 검은 반팔티에 두건을 쓰고 저녁식사 시간인 7시에 맞춰 방을 나섰다

식당으로 가는 중간 복도 모습 

 

식당엔 달랑 아랍가족과 흑인 한명이 손님의 전부였고 점심때 써빙하던 직원들이 싹 바뀌었다

 

 

또 가격 무시하고 먹고 싶은 걸 맘대로 시켰다,

 

내돈 내는 거면 한두개만 시키는 걸 풀코스로

   스타터로 모로코식 스프,

   샐러드는 토마토치즈 샐러드,

   메인요리는 양고기 타진  

   후식은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리고, 드링크 ?  모히또 ! (Mojito)

 

샐러드와 스프가 나오고

 

딸기쥬스도 하나 만들어 달래서 빨고

 

요리사가 큰 뚝배기에 원뿔형 뚜껑을 덮은 요리를 가져와 내 앞에 내려 놓더니 뚜껑을 열었다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 (Tagine) 이다. 튀니지 와서 먹어 볼 요리중에 타진도 적어 왔었는데 결국 이렇게 먹어본다

푹 익힌 양고기를 고소한 육수국물에 적셔 먹으니 부드럽고 맛있었다. 양이 워낙 많아 약간 남겼다  

 

모히또가 안된다고 해서 민트티를 시켰더니 잦을 함께 가져왔다,

원래는 tea 에 견과류를 넣어 먹는게 튀니지의 전통인데 내가 가난한 동네 카페만 전전하다보니 알맹이 없이 물만 마셔 왔다

 

이쑤시개 달래서 이빨에 낀 양고기를 쪽쪽 빼 먹으며, 설문지도 정성껏 체크해 주었다,

후식으로 과일이 푸짐하게 나왔다,

"  나 과일 시킨 적 없는데 ?  초코릿 아이스크림 시켰는데 ! "

웨이터가 죄송하다며 그냥 드시라고 하고

 

초코릿으로 범벅을 한 아이스크림을 한 삽 퍼왔다

 

Golden Tulip 호텔에 El Montazah 레스토랑

저녁 음식값 87 dinar (52,200 원)   맘껏 시켰는데도 점심보다 싸게 나왔네

 

Golden Tulip 을 첨 들어봐서 검색해 보니 유럽 제2의 호텔그룹인 루브르 소유의 체인호텔이였다,  그러니 이렇게 투자가 가능하지 !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본사가 프랑스에 있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다고 해도 튀니지인들의 머리위에는 아직도 프랑스인들이 앉아 있었다

 

위층 로비로 올라갔다

 

Bar Bacchus 로 들어가 창가에 흡연석에 앉았다

 

 

 

 

짧은 치마의 섹시한 여직원이 생글거리며 주문을 받으러 왔다

"  아래 식당에선 모히또 안된다고 해서 못 먹었는데 여기선 가능하냐 ? "

"  예스 ! "

그래 ?  그럼 그거 한잔 !

 

그거 한잔에 15 dinar (9,000 원) 이나 하는데 ' 항공사에서 다 해주겠지' 하고 평소에 못 먹어본거 맘껏 시켜 먹는다

오늘 하루는 억만장자가 안 부럽다, 아멕스 카드라도 주운 기분이다. 이런 날이 평생 있었을까 ? 있을까 ?

 

담배갑에 남은 걸 세어보니 오후에 벌써 9개피나 피워 댔다

 

다리 올리고 편하게 앉아 있었더니 10시쯤 되자 슬슬 졸려온다.

 

 

방에 와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몸 푹 담그고 그간의 여독을 풀어냈다

환기 시키기 위해 발코니 창을 활짝 열었다. 하나도 안 춥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널어 놓은 빨래마저 바싹 말랐다.

오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

 

 

 

오늘 지출 :  택시비   4.75

                 생수      2.1                        합  6.85 dinar  (4,11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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