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 19:30ㆍTunisia 2015
박물관을 나와 도로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시내로 나가야 하니까...
서쪽으론 태양이 두꺼운 구름속에 숨어 있는데 동북쪽은 오래간만에 하늘이 화창하게 개어 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늦은 오후시간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다.
택시를 잡아 타고 " 쉐라톤 호텔 갑시다 " 했더니 뭐라고 아랍말을 하길래 " belvedere park, Zoo 근처요 " 하며 잘 아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기사가 잘 알아듣고.... 차를 180 ˚ 돌려 시내가 아닌 북쪽으로 올라가는게 아닌가 ?
길 방향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한 꼴이라니 ㅋㅋ
변두리 동네를 한참 지난 후 택시가 고속도로에 올라타자 상황 파악이 됐다.
외곽 도로를 타기 위해 더 북쪽으로 차를 돌렸다는 걸...
석양 빛이 회색도시를 비추고 있다
언덕위에 늠름하게 서 있는 세라톤 (Sheraton hotel) 호텔의 S자 마크가 차창밖으로 보였다.
인터체인지를 나온 택시가 언덕길을 올라 호텔 정문 경비들을 통과해서 본관 앞에 도착했다.
고급호텔을 가자해도 택시비는 동전으로 정확히 계산해 주었다. 팁도 없이. 2,75 dinar (1,650 원)
왜냐하면 난 이런 고급호텔에 묵을 정도로 부자가 아니니까 ...
도어맨과 프런트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대리석 로비를 지나 오른편으로 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뭔 사무실만 있었다
다시 프런트앞을 당당히 지나 이번엔 왼편으로 쭈욱 들어갔다. 그동안 싸구려 호텔에서 너무 떨어서 그런지 여긴 실내가 전체적으로 훈훈하다.
각층 안내판이 없어 얼른 엘리베이터로 숨었다. 5층까지 밖에 없어 일단 맨 꼭데기층을 눌렀다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Sheraton CLUB 이라고 써있는 라운지가 나타났다. 회원제나 VIP 전용이란 느낌이 팍 들었다.
복도로 더 들어갔는데 양편이 다 호텔 객실이어서 다시 라운지 앞으로 돌아왔다.
안을 힐끗 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고급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 전망좋은 창가에 양복을 입은 백인 남자 두명이 앉아 있다.
이런 호텔에 묵을 수준은 안되지만 나도 엄연히 한국 쉐라톤호텔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니까 테이블 세팅 하고 있는 웨이터에게 당당하게 물었다. 아들입던 분홍색 잠바와 때가 반질반질한 츄리닝 바지에 빡빡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
" 커피 마실 수 있냐 ? "
" 6시부터니까 1시간만 기다려 주실래요 ? "
얼른 로비로 내려와 수도꼭지가 반짝거리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업무보고 거울에 비친 몰골 한번 확인하고 나오는데 백인 꼬맹이들이 화장실에 들어온다. 좋겠다 니들은 부자아빠 둬서 ...
복도 한쪽에 환하게 불 밝힌 곳을 들어가 보았다. 여긴 Bar 였는데 마찬가지로 오픈 준비중이었다.
로비에 소파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를 골라 널부러졌다.
튀니스 시내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반짝거리고, 오른편엔 바다 같은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젔다
내가 여기를 찾아 온 이유가 바로 이거다.
차 한잔하며 튀니스의 노을과 야경을 즐기기 위해... 여행의 마지막은 이렇게 럭셔리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호텔 로비나 커피숍이나 라운지에 흔한 필리핀 라이브 가수 한명 ,노래 하나 틀어 놓은게 없이 밍숭맹숭하다.
박물관에서 얻은 리플렛을 그제서야 꼼꼼히 읽으며 편안한 소파에 묻혀 있으니 슬슬 졸립다. 눈이 피곤해 살짝 감았는데
날씬하고 예쁜 여직원이 내 앞을 지나 스탠드에 불을 켜주고 간다
해가 저물고 시내가 하나둘 불을 밝히는데 ... 주문을 받으러 올 기미가 없다.
차라도 한잔 팔아줘야 할것 같은데 본의아니게 실속만 차리고 가는 얌체가 돼버렸다,
잘 쉬고 경치 실컷 감상하고 일어났다.
현관에 서 있으니 다행히 택시가 금방 들어왔다.
뒷자리에 타려는데 아까부터 서 있던 남자가 조수석으로 가서 문을 열고 기사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 나보다 먼저 택시를 기다린 남자인가 보구나 ' 싶어서 양보하려는데, 택시기사랑 함께 조수석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내가 뒤에 타기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 그는 특급호텔의 도어맨다운 풀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기사아저씨에게「port de france」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며 가자 하자 약간 머뭇거렸다.
도어맨이 이번엔 운전석쪽으로 와서 쪽지를 보고 아랍어로 설명해 주자 기사가 이내 출발했다
별로 높은것 같지 않았는데 아래 시가지까지 내려오는 길이 꽤 멀었다. 기사아저씨가 불어로 뭐라고 말을 거는데 못 알아 들어서 그냥 유야무야.
벨베데레 파크를 나와 시내를 지나오는 길.
아직 밖이 환한대도 길거리가 한산하고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프랑스문 도착 2.7 dinar (1,620 원)
광장 주변에 카페와 기념품가게, 꽃가게등이 문을 닫고 그 많던 관광객들이 다 사라졌다.
거기엔 낮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광장의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낡고 황량하고 기괴하기까지한... 축구하는 꼬맹이들과 골목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동네의 혼령처럼 느껴졌다,
어디서 본듯한 남자가 다가와 날 grand hotel de france 에서 봤다며 향수와 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됐다고 하며 얼른 숙소방향으로 걸어왔다. 나중에 기억을 떠올려보니 여행초반 지투나모스크앞에서 본 호객꾼이었다,
아까 호텔을 나올때 봐 두었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지금 안 먹으면 빈속에 자게 될 거 같아 다시 광장쪽으로 걸어 나왔다
호텔 간판만 쓸쓸히 불이 들어와 있다
다행히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식당이 있었다
따뜻한게 먹고 싶어 Ojja 를 달라고 했더니 이것저것 종류를 물어본다. 내가 못 알아듣자 알아서 집어 넣었다
안에 자리가 꽉 차서 밖에 앉으려고 하니 남자애가 ' 추운데 안쪽으로 들어오라 ' 고 한다. 자리 없잖아 ! 했더니 한 남자가 맞은편 자리에 동석하자고 일어났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인줄 알았는데 여기 사장이었다능
음식이 나왔다, Ojja 는 먹을만 한데 바게트빵이 바짝 말라 촉촉한 맛이 없이 다 부서져 버렸다.
맛있었음 샌드위치도 하나 더 먹을려고 했는데...
" 함둘레~ 카데쉬 ? (배부르다, 얼마야 ? ) " 하니 불어로 5.5 dinar (3,300 원) 라고 했다,
고등학교때는 그렇게 안 외어지던 불어 숫자가 이젠 귀에 착착 감겨온다. 정확하게 계산해 주자 사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배도 부르고 몸도 따뜻해졌지만 거리가 무서워 어디 갈 데도 없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골목 안쪽에 동네 청년들 몇이 모여 있는 것도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빠직 ! 리어카를 끌고 페트병을 줏으러 다니는 남자. 부피를 줄이기 위해 페트병을 납작하게 밟는 소리만 추운 밤거리에 메아리쳤다
호텔골목에 문 연 카페 발견
안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밖에서 오렌지 쥬스 한잔 주문
생과일 오렌지 쥬스 한 컵엔 작은 오렌지 4개가 들어갔다. 쥬스를 짜는 애가 ' 겨울엔 오렌지쥬스가 최고 ' 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 옆에 남자애는 이 오렌지가 포루투갈 꺼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정확치는 않다.
인도에 쪼르르 붙여놓은 의자에 앉아 쥬스를 마신다.
내 이럴줄 알았다. 아무리 지겨운 여행이어도 여행 막판엔 시간이 아까워 어떡하든지 알차게 보내려고 용을 쓰고 있다
들어가 1 dinar (600 원) 계산한 후 까치담배 하나 팔으라고 동전을 내미니 말보로 한개피를 꺼내주며 한사코 돈은 안 받았다
초저녁부터 텅 빈 골목에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간다
호텔에 무사히 돌아왔다.
발걸음이 자연적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민트티 한잔을 주문하며 ' 까데쉬 ? ' 했더니 콧수염을 기르고 인상이 선한 아저씨가 웃는다. 0.7 dinar (420 원)
얼러리요 ? ... 하나도 안 달았다.
이 나라와서 마셔본 수 많은 민트티가 다 달착지근해서 난 원래 단줄 알았다. 그 맛으로 계속 시켜 먹어왔다,
그러나 지금껏 난 설탕탄 민트차를 마셔왔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아저씨가 먹어보라고 오렌지를 몇 조각 주시고 넵킨도 갖다 주셨다
7시까지 앉아 있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샤워실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단 화장실로 갔다. 변기뚜껑은 역시 없는데 두루마리 휴지는 있다.
어찌어찌 변기 위에 앉아 있는데 누가 불을 톡 껐다. 얼른 노크했더니 다시 켜줬다. 그런데 잠시후 또 불을 껐다
" Turn on ! "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는데도 이번엔 불을 안 켜준다
어두운데서 투덜대며 꼼지락거리자 또 불이 켜졌다. 센서등이었나보다.
우라질 놈들, X 싸다 놀라 뒤져불것다 ~!
방에 돌아와 메리야스와 츄리닝을 걸치고 샤워용품과 현찰을 다 챙긴 후 방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로비 프런트에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 알로 ? 샤워 ! " 수화기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그게 암호다. 이 호텔에서는 샤워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자 사환이 올라와 샤워실 문을 열쇠로 열어 주었다. 귀찮고 한번 샤워에 1,200 원을 내야 하지만 은근히 재밌다.
앞방엔 꼬맹이가 투숙했나보다. 신나서 소리지르고 노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왔지만 짜증보다는 오히려 귀엽게 들려왔다
뭐가 저리 재밌을까 ? 동심으로 돌아가면 매 순간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행복할텐데...
이제 아홉신데 뭐하지 ? 로비 휴게실에 내려가고 싶어도 또 너구리굴일테고...
침대에 누워 1980년대 팝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채널만 올려다 보며 어여 졸립기만 바랄 뿐이다.
빨간 선이 오늘 이동루트. 드디어 두 선이 만나 하나의 원이 탄생했다,
오늘 지출 : 택시 1 1.89
루아지 4.8
택시 2 2
숙박 59
커피 0.9
택시 3 3.2
박물관 11
택시 4 2,75
택시 5 2.7
저녁 5.5
쥬스 1.0
민트티 0.7 합 95.44 dinar (57,264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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