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5. 15:00ㆍTunisia 2015
바람은 세게 불고, 춥고, 정한 거처는 없고, 다리는 안 펴지고 ...
주저없이 터미널 옆 허름한 식당 안으로 몸을 숨겼다.
조그만 화로에 개똥같은 소시지 몇개가 구워지고 있다.
식당 안엔 빈 페트병 몇개로 끝.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최대한 절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이다.
메뉴판 같은건 당연히 없으니 고르고 자시고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 좋다. 주인장에게 찬장을 가리키고 내 입에 쩝쩝하는 시늉 하나로 대화 끝.
잠시후 두덩어리의 샌드위치가 식탁위에 올라왔다.
바삭한 바게트빵과 매콤한 하리사 양념과 갖은 야채와 과일 거기에 개똥소시지가 그렇게 금상첨화 화룡점정일 줄은 몰랐다 !
수천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맛의 완성을 이룬 이것이 단돈 2 dinar (1,200 원)
베어물 때마다 감탄하고 있는데 크로마뇽인같이 생긴 남자가 들어와 나보다 더 빨리 먹고 나갔다.
방금전 루아지에서 같이 내린 사람이란 걸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크로마뇽인도 이 베이징원인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접시는 벌써 바닥을 보였는데 정신은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밖으로 나와 바로 옆 담배장사에게 까치담배를 하나 샀다. 0.2 dinar (120 원) 지금은 음료수보다 담배가 더 절실하다.
독한 담배연기를 흠뻑 빨아들이자 니코틴이 뇌를 막 두드려 팼다.
" Ramzi "
그래 기억났다. 람지호텔.
역시 정신건강엔 끽연이 최고. 흡연이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그전에 폐암으로 죽겠지만...
터미널 앞에 택시를 잡아 람지호텔을 가자고 했다. 기사가 더 묻지도 않고 출발하는 걸로 봐서 꽤 유명한 호텔인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1892 Le Kef
잠시후 왠 낡은 건물앞에 서더니 다 왔다고 내리라고 한다. 1층 약국간판 옆에 쪼그만 돌출간판. HOTEL 글자가 보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추론컨데 튀니지에서 HOTEL 이란 글자는 한국어로 ' 여인숙 ' 이라고 번역하는게 신상이 편하다.
택시비 0.6 dinar (360 원) 라고 해서 계산해주고 내린후 배낭을 업고 난간도 없는 좁은 계단을 올라간다.
3층 높이 되는 2층을 다 올라가 헥헥대며 프런트로 갔더니 40대 초반의 남자와 여자가 접수를 받으려고 서 있었다.
별 하나 호텔이고 1박에 25 dinar 라고 해서 ' 2박 할테니 40 에 달라 '고 했더니 50을 계속 고수했다.
여자가 방을 보러가자고 하길래 ' 얼마나 대단한 방인데 그러나 ' 하고 한층을 더 따라 올라갔다. 방에 욕실과 화장실이 없다. 복도에 있는 걸 공용으로 써야 한다. Wi-Fi 같은 것 ? 없다. 방에 라지에타가 있길래 만져보니 차디 차다. 밤에 틀어 준다는데 이 비수기에 나 하나를 위해 보일러를 가동할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욕이 나왔다. 요깟 걸로 25 dinar 를 받겠다고 ?
미련없이 나와서 합승택시를 잡았다. " Hotel el Medina 갑시다 "
기사가 조수석 승객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비탈길을 올라 골목안으로 들어가 메디나 호텔앞에 금방 도착했다.
택시비로 1 dinar 를 냈는데 기사가 No ! 하는 거다. 미터기 없이 올라왔기에 여긴 좀 더 줘야 되나보다 싶어 5 dinar 짜리를 줬더니 4.2 dinar 를 거슬러준다. 택시비 0.8 dinar (480 원)
처음에 내가 준 동전이 1 dinar 짜리가 아니고 0.5 dinar 짜리였던 것이다.
람지호텔보다 별반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 메디나호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없다. 다시 밖으로 나와 비탈길에 서서 고민중. 내가 아는 건 이 두 호텔이 전분데 다시 람지로 가긴 싫고 어떡하나...
청년이 언덕길을 내려오다 인사를 하길래 붙들고 " 여기 사람 없어요 ? " 라고 도움을 청했다.
청년이 안에 대고 누구를 부르는 그 때 맞은편 골목길에서 호텔주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내려왔다.
2박을 할거라고 하니 방 보여준다고 키 들고 앞장선다. 계단을 내려가 중정을 지나 또 올라가고... 방은 1박에 10 dinar (6,000 원)인데 뜨거운 물 안나오고 샤워실 없고 세면대는 두 방이 공동으로, 화장실은 바깥으로, 조식도 당연 없음.
지금까지 다녀본 곳중 숙박비도 수준도 가장 저렴했다.
일단 하루만 자는 걸로 하고 돈 치룬후 근처에 Wi-Fi 되는 카페를 물어 나가려는데
" 키 안 가져가 ? " 주인 남자가 묻는다. 열쇠에 노트북만한 쇠판이 붙어있어 무겁다고 했더니 조그만 고리가 붙은 걸로 찾아서 바꿔주었다,
골목길을 내려와 큰길에서 좌측으로 돌자 카페가 보였다
0.4 dinar (240 원)짜리 민트차치곤 양도 많고 순하다.
Wi-Fi 도 잘 터지고... 기분좋게 접속을 하는데 갑자기 안되는 거다. 일하는 애한테 물어보니 커피머신을 교체하기 위해 잠시 전원을 꺼 놓았다고 한다. 잠시후 다시 원활히 연결되었다.
날은 추운데 가족과 카톡을 하고 있으니 향수병이 더 심해진다.
카페안엔 나 들어올때부터 있던 남자들이 내가 나올때까지도 그 자세 그대로 멍하게 앉아 있다.
3시쯤 카페를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까 그대로 카스바성에 올라갔으면 비를 쫄딱 맞을 뻔했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데 바로 뒤가 문방구다. 안에 들어가 볼펜을 하나 샀다. 0.55 dinar (330 원)
레스토랑에서 우아한 중년여인이 니와 대기하고 있는 차에 타고 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봤다.
부럽다.
이런날 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히터 틀어놓고 따뜻하게 다닐수 있을텐데. 여긴 춥고 바람불고...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언덕을 올라와 숙소로 들어왔다.
커버없는 변기에 이젠 익숙하게 올라타고 두루마리 휴지는 이 나라에서 사치품이니까 바라지도 않고 변기 옆에 물호스는 만지기도 찜찜하고 침대에 이불 펴 놓고 옷 겹겹이 껴 입고 4시쯤 다시 숙소를 나왔다. 방에 있어봤자 더 춥고 할게 전혀 없으니까 어쩔수 없이 나와야 했다.
호텔 앞에 서서 산등성이위에 카스바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동네 청춘남녀들이 지나가다 한 아가씨가 ' 안녕하세요 '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나도 얼떨결에 ' 안녕하세요 ' 인사를 해줬다.
동네 아줌마에게 길을 물어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데 대학생쯤 되보이는 남자애가 내려오며 인사를 한다. 어디서 왔냐고 해서
" Sud, Coree " 했더니 곧바로 " America ! " 라고 하는 것이다.
튀니지인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꼭 북이냐 남이냐를 물었다. 튀니지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남한사람이라고까지 부언설명을 해준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그 당시엔 왜 그렇게 있지도 않은 북한사람들을 찾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러나 이제 좀 알것 같다. 그들의 머리속엔 ' 남한 = 미국 = 아랍의 적 '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 미국과 맞장뜨는 북한 = 아랍의 친구 " 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지금보다 한 3배는 더 열렬하게 환영받지 않았을까 ? 싶다.
드디어 카스바 (Kasbah) 성이 보인다
별로 힘들지 않게 카스바까지 올라왔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단체가 견학을 왔는데 선생님이 조각상을 보며 설명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난 아무 사전지식이 없으니 그냥 눈길 한번 안 주고 지나쳤을 돌덩어리였을텐데 덕분에 나도 자세히 들여다 봤다.
얼굴이 검은 아저씨가 나에게 오더니 안에 구경할 거냐면서 나를 데리고 성문안으로 들어간다.
입장료 받는 사람인가 ? 가이드 해주고 돈 달라고 하겠지 ?
성안에 프랑스 대포와 부르기바 대통령 감옥이라며 설명을 해주었다.
고맙다고 하고 더 위로 올라가 내성으로 들어갈 즈음에 빗방울이 겉옷에 후두둑 떨어졌다.
성안에는 아무도 없다.
성곽으로 기어 올라가자 먼 곳에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큰비가 오기전에 얼른 도망가자고 내려왔다.
아까 가이드 해주던 아저씨가 혼자 성안으로 들어오길래 이제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나보다고 생각했다.
내성을 나와 비탈길을 돌아 내려가는데 마침 또 다른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오는게 보였다.
내가 비를 맞으며 나가려는데 아저씨가 ' 비 그칠때까지 안에서 기다리는게 낫겠다 '고 날 잡아 끄셨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 아저씨가 안내해 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아저씨의 거쳐였고 아저씨는 여기 경비를 혼자 서는 것 같았다. 꼭 노틀담의 곱추처럼 ...
누추한 침대와 먹던 콜라와 찻잔.
나에게 콜라를 마시라고 건네주었다.
나같으면 체면때문에 먹던 걸 손님에게 권하지 못했을텐데 워낙 없다보니 마음에서 우러나 뭐라도 주고 싶으신가 보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서 마음만 나눴다.
밖에 인기척이 들리자 아저씨가 또 빗속으로 부리나케 달려 내려가셨다,
가욋돈이 생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참 성실하게 또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차가운 돌로 둘러쌓인 동굴같은 공간.
허연 입김만 나오고 몸을 바들바들 떨리는데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약간 비가 뜸한거 같아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성문을 나왔다.
단체 관광객중 한 아줌마가 노틀담 아저씨에게 묻는다
" 어디서 왔대요 ?
" 한국이래요 "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등지고 성을 내려왔다
<클릭하면 확대됨>
'Tunisia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 위대한 우산 (0) | 2015.01.26 |
---|---|
46> 그 돈, 얘꺼야 ! (0) | 2015.01.25 |
44> 자마평원의 한니발 (0) | 2015.01.25 |
43> 들통에선 양고기가 끓고 있다 (0) | 2015.01.24 |
42> 오사마 VerSus 오바마 (0) | 2015.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