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3. 09:00ㆍTunisia 2015
꾸는 꿈마다 재수가 없더니, 새벽 아잔소리마저 고등학교때 교련선생 구호처럼 짧고 강한 어투가 반복되었다.
깜깜한 방에서 시계를 켜보니 6시. 이불을 머리위로 뒤집어 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눈뜨고 있어 봤자 악몽보다 더 나을 것도 없응께.
8시가 되자마자 나무판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 벽을 부수는 해머 소리, 드릴 소리가 무자비하게 들려온다. 투숙객을 배려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모텔이다,
현주랑 짧게 보이스톡 하고 일어났다. 어제 남긴 빵을 두어번 뜯어먹다 비닐에 도로 싸놨다.
마실 물도 없는데 목이 꽉 막힌다. 나이가 드나 보다 이젠 마실거 없음 음식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24시간 전에 빨아 널은 웃도리는 방금 빤 것처럼 축축하다. 방안 온도가 워낙 낮다보니 폰이나 주변 것들을 만질 때마다 섬뜩섬뜩하다. 코끝마저 차가워 내 것 같지가 않았다.
젖은 옷을 비닐에 넣고 기계적으로 배낭을 꾸려 나왔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이지만 전혀 의욕이 안 생기는, 있는 의욕마저 짖밟아 버리는 날씨다.
명색이 역전인데도 다른 곳보다 더 낙후되고 슬럼화 한 곳을 지나...
큰 짐을 끌고 가는 사람, 손을 잡고 가는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나도 따라가 본다
담장너머로 루아지들이 가득 주차된 걸 확인후에 맘을 놓고, 옆 가게로 들어갔다.
흰수염에 베르베르 망토를 걸친 할아버지가 안쪽 의자에 앉아 목소리 인사를 한다.
가게 안을 둘러봐도 커피나 따뜻한 음식은 안 보이고 달디 단 케익과 시야시(히야시)된 음료수뿐이다. 냉장고 한쪽 구탱이에 지난번 먹어본 바나나 요구르트가 보여 그거 하나 달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이쪽 진열장까지 오기가 귀찮았는지 가까이에 있는 딸기 요구르트를 꺼내준다. 바나나로 달라고 고집을 피웠다. 0.9 dinar (540 원)
문앞에서 까서 마시고 쓰레기통을 찾으니 탁자 아래를 가리킨다.
루아지 터미널로 들어가며, 모여있는 남자들에게 ' 카이로우안 ' 하자 ' 케루안 ! ' 하며 정문쪽 두번째 차로 데려간다.
차안에 아무도 없어 배낭을 던져놓고 나와 사진을 찍는데 두 아저씨가 장난을 치며 자기들을 찍어 달라고 한다.
찍어 보여줬더니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재밌어한다.
누런 망토 아저씨 손에 들린 빨간 카메라
잠시후 가져와서 나에게 모라고 말하는데, 아예 찍는 법을 알려주며 맡겼더니 친구들 사진을 찍으며 아주 신이 났다
이 사진은 망토 아저씨가 찍은 사진
무테안경을 쓰고 검은 코트로 멋을 낸 젊은이가 다가와, 루아지 기사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 난 무슨 학생인줄 알았다. 다른 기사들은 늙었는데 너는 young 하다 ' 고 했더니 young 을 영~ 못 알아듣는다.
터미널 한쪽 구석에 허름한 찻집이 보였다. 추우니 차나 마시자니 젊은 기사가 따라오라며 앞장 선다.
진열장 앞으로 가자 컴컴한 방에서 화롯불을 쐬고 있던 사내들이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젋은 기사도 들어가서 나를 부르길래 못 이기는 척 들어갔다.
차 한잔이 0.2 dinar (120 원) 엄청 싸다. 루아지기사들이 주로 마시니까 그런가 보다. 대신 크기가 곱부잔이다.
주름이 멋진 노인 사진을 찍었더니 이름이 ' 바가 ' 라고 다른 남자가 알려주었다.
맨 오른쪽이 젊은 루아지 기사.
따뜻한 불앞에 앉아 달콤한 차를 홀짝거리고 있으니 누군가 담배를 한개피 준다.
남들은 화롯불 위에 담배를 대고 불을 붙이는데 난 피는 담배를 달래서 맞대고 빨아 불을 붙였다.
차에 가방을 던져 놓은게 계속 신경쓰여 힐끔거리다가 일어나는데 성격 밝은 남자가 나에게 ' 바가에게 차 한잔 사주라 ' 고 하는거다.
흔쾌히 0.2 를 주며 바가 한잔 주라고 손짓하고 차로 돌아왔다.
가방은 별일 없어서 더 안쪽 자리에 밀어 넣고 젊은 기사랑 이야기를 더 나눴다. 비제르트 출신의 27세 아흐메드 (Ahmed) 라고 한다.
그래서 ' 나 비제르트 갈껀데 싼 호텔좀 추천해 달라 ' 고 했다.
뭐라고 이름을 말하길래 적어 달라니 차로 가서 종이를 뜯어 와 적어 주었다.
☆ 하나를 그려 넣으며 30 dinar 라고 한다. 더 싸게 해달라고 했더니 친구에게 잠시 전화해 보고 25에 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로서 숙소 또 하나 해결 !
아흐메드의 루아지는 가베스 가는 차인데 거기도 손님이 없어 차에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난 다시 불을 쬐러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보니 ' 바가 ' 가 여기 주인인 것 같다.
안쪽에 앉은 남자가 찐계란을 까먹고 있길래 내가 부러운 눈으로 처다보자 누가 계란을 하나 가져와 내민다.
노란 반숙 계란.
유난히 꼬소하다.
성격 밝은 남자가 들어와 내가 ' 바가'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하더니 ' 바가 핫산' 을 따라하게 했다.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게, 또 사람을 끌고 와 나에게 ' 저 남자이름 ? ' 하면 난 자동적으로 ' 바가 핫산 ' 을 외쳤고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당사자인 바가까지도. 난 그렇게 수비틀라 루아지 터미널 한 구석에서 앵무새가 되었다.
하긴 ' 바가 ' 이름을 외칠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빠가 ! 빠가 ! 했는지
여기 도착한지 벌써 한시간이 지나가는데 내 루아지에는 여자 한명 앉아 있더라고 아흐메드가 알려준다.
추워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다. 몇시에 출발이 아니라 오늘 내로 출발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바가랑 둘이만 앉아 있을때도 사람들이 수시로 까치담배와 찐계란을 사러 왔다.
담배는 0.2 dinar (120 원) 찐계란은 0.3 dinar (180 원). 이제는 앵무새가 혼자 장사도 할 수 있게 생겼다.
화롯불을 끼고 앉아...할일도 없고 심심하다. 바가가 또 담배를 피길래 나도 하나 달랬더니-수스에서 산 까치담배-크리스탈이다. 까치담배값으로 동전을 내밀자 ' 됐다 ' 고 손짓한다. 자기 걸 준거니까 파는 게 아니란다
담벼락에서 서로 부등켜 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연인,
찐계란 두개로 끼니를 떼우는 아줌마.
내 루아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좀 차는 거 같다. 일어나 나오며 바가에게 0.2 를 주고 차를 한잔 더 달라고 했다.
바가가 말없이 젖은 손을 내밀어 나에게 뭘 쥐어 주었다.
손을 펼쳐보니 엣 주화였다. 어제 박물관옆 남자가 나에게 팔려고 했던 것과 똑같은 ...
바가가 말도 표정도 별로 없어 나에 대해 별 감정이 없나보다 생각했는데 의외의 선물에 감동 먹었다. 난 그에게 0.2 차 한잔 사줬을 뿐인데
그는 담배 두개피 0.2 * 2에 계란 0.3 거기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동전까지 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동전을 내려다 보는데 ...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슬프지도 않은데.
튀니지 사람들이 이렇게 내속을 뒤집어 놓을 줄 몰랐다. 루아지를 두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이때만큼 따뜻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없었다.
루아지로 와 보니 11시 6분에 6명. 그 사이 많이도 찼다.
마당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흐메드와 눈이 마주쳐 서로 웃어 주었다. 가베스행 루아지는 언제 손님이 다 차려나 ...?
11시 9분에 손님이 7명이 되자 기사가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차를 출발시켰다.
그동안 정들었던 루아지 터미널의 남자들이 차창을 스쳐간다.
카메라 값 -중고로 400 dinar 줬다고 해줬다-물어보던 사람들.
루아지 배차 시간을 기록하던 남자
성격 밝은 남자와 아흐메드 ... 그리고 바가아저씨까지
역전쯤 가더니 차를 세우고 한 여자를 더 태워 드디어 정원을 다 채웠다.
산정상에 구름이 걸린 거대한 산도 지나고,
평야에 우뚝 솟은 산도 지나고... 기사는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려는 듯 과속과 추월을 일삼는다.
루아지가, 느리게 가는 큰 트럭 뒤꽁무니를 박을 뻔한 적도 있었다.
사람손가락 같은 선인장 꽃도 보고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잠이 깼을때 눈앞에 파란 피라밋과 클레오파트라의 눈물방울같은 특이한 조형물이 나타났다,
카이로우안 (Kairouan) 이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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