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주피터, 주노, 미네르바

2015. 1. 22. 10:00Tunisia 2015

 

 

 

 

꿈꾸느라 잘 잤다. 좀 춥긴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룻밤을 더 잘 수도 있겠단 긍정의 마음도 생겼다

새벽 3시에 깨보니 현주 카톡이 들어와 있어서 ' 좀 더 잘께 ' 보내놓고 내처 자다보니 거의 9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아침을 안 주는 숙소니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좋네. 이불속에서 현주에게 보이스톡을 보냈다. 카톡으로 못다한 수다를 떨다보니 40 여분이나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나중엔 꺼내놓은 손이 시려워 사타구니에 끼고 한참을 녹여야 했다


EXR 웃도리를 빨아 널면 내일은 마르겠다 싶어 세면대에서 주무르는데 계속 찬물만 나온다.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찬물만 나오던데 온수를 시간제로 공급하는 건가 ?

빨래 끝내고 조금이라도 마르라고 방문을 열어놓은 채 케익과 오렌지를 까 먹었다. 케익이 진짜 달다. 이리 먹으니 중년이후엔 모두 몸집이 비슷해지지, 여기 사람들은 당뇨도 안 걸리나 ?

모텔 안마당에선 아침 일찍부터 공사소리가 요란하다. 츄리닝입고 외출준비를 해서 나오니 주인아저씨는 인부들 일 감독하고 있다. 내가 안 가고 머뭇거리자 아저씨가 다가 오셨다.

"  하룻밤 더 묵을껀데... 어제 오늘 아침 계속 찬물만 나와요 " 했더니 보자고 해서 방문을 다시 열고 들어갔다. 1분후면 온수가 나온다며 물을 틀어 보더니 계속 찬물만 나오자 옆 샤워실로 날 데리고 가 거기 온수를 틀어 보았다. 거긴 금방 온수가 나왔다. 벽에 가스보일러를 가리키며 객실은 멀어서 그렇다고 변명했다.

프런트로 나와 아저씨 16 dinar (9,600 원) 하루치 방값 더주며 루아지 터미널 물어보니 걸어서 2분 거리라고 한다. " 왜 여기 택시들은 미터기를 안 켜요 ? " 물었더니 call 택시는 안 켠다. 시내로 나가서 타라고 알려주셨다

 

모텔문을 열고 나왔다.

어제보다 날은 갰지만 우중충하고 을시년스런 느낌은 여전했다.

아침 일찍부터 동네 남자들이 화단 위를 정리하고 있다. 어제 고양이 사체는 치웠을래나 ? 

 

 

빵집쪽으로 돌아 시내로 들어간다.

이 마을의 보도는 각 가게들의 재량인가보다.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타일, 보도블럭, 시멘트 등 스타일도 다 달라서 차라리 차도로 나와 걷는게 더 편했다.

젊은 애들이 차 본넷을 열고 뭘 만지다가 실수로 카부레터 (Carburetor)를 열었는지 굉음과 함께 주변에 검은 먼지가 확 퍼졌다. 얼른 도망쳤다

통행량이 많지 않아도 워낙 고물차들이라 아침부터 큰 길엔 매연이 심하다

 

기찻길 공터. 

어제 본 염소가 오늘도 그 자리에 매여져 있었다, 아마 그제도 어제도 내일도 쭈욱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와 쓰레기가 뒹구는 땅바닥이 날 슬프게 한다.

 

 

흰 가운을 입은 정육점 주인과 젊은 남자들이 도축한 소를 가계 안으로 옮기고 있다,

여기도 소머리를 간판 대용으로 매달아 놓았는데 특이하게도 풀을 머리위에 늘어트리고 콧구멍에 박아 놓았다.

장난치곤 좀 잔인하다 싶어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정육점 남자가 나오다가 꽥 !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무안했는지...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먼지나는 신작로 담 아래에 일찍부터 노점을 펼친 상인과

그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동네 노인들.


사거리에서 왼편 시장방향으로 돌아갔다. 

어제 저녁땐 동네사람들과 좀 친해진 기분이었는데 오늘 아침엔 또 다시 폐쇄적이고 경계하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아침부터 약간 추워 따뜻한 국물 음식이 먹고 싶다. 마침 간판에 음식사진들을 붙여 놓은 식당이 보였다. 이른 시간이지만 식당안에 불이 켜져 있길래 안으로 들어가자 키큰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왔다. 내가 먹는 시늉을 하자, 안된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며 나를 두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래서 나도 나오려는데 젊은 애가 뛰어 들어와 영어 통역을 해준다.

"  스프 먹을수 있나 ? "

"  그런 건 없고 스파게티와 치킨이다 "

그제서야 어제 저녁 식당이 이해가 됐다. 나중에 갖다 준 치킨 두조각은 써비스가 아니라 스파게티와 세트였던 것이다. 오늘도 똑같은 걸 먹긴 싫어서 사거리로 나왔다. 아까 사진 찍는다고 혼줄이 난 터라 카메라는 주머니 깊이 넣고 손도 안 댔다

 

사거리 안쪽으로 진열장을 내 놓은 간이식당이 보였다. 돈도 아낄겸 가보니 샤와르마를 파는 집이었다.

그때까지도 이 음식을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 다른 남자들이 먹고 있는 걸 가리키며 하나 달라고 했다.

치즈넣냐 ? 양념은 ? 야채는 ? ... 생긴거에 비해 주문이 까다로워 그냥 다 넣어주고 참치와 하리샤도 넣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콜라 한병 !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다른 사람거 다 만들어 주고 마침내 내것도 나왔다. 2.7 dinar (1,620 원)

 

내용물이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할 때 먹으니 꽤 맛있었다. 저녁때도 여기서 먹고 싶어 몇시까지 하냐니 밤 10시라고 한다

 

골목에선 파란색 루이지가 손님들을 싣고 와 부리고 시골 촌부들을 태우고 또 떠난다.

사거리로 다시 나와 택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캡위에 후드티 모자를 쓴 남자가 흰 물통을 갖다놓고 차를 팔고 있다. 테이블 위에 찻잔이 올려져 있고 남자들이 둘러 서 있었다.

추워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여야겠다 싶어 그 상인에게 다가가 나도 차를 달라고 했더니... 남자가 당-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1~2 초후 상황 파악하고 서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차 파는 상인이 아니라 차 마시는 남자였다,

무안해서 벽으로 물러서있자 자기가 먹던 차를 나에게 먹어 보라고 주었다. 찻잔이 아직도 따뜻했다. 

살짝 목만 축이고 맛있다며 돌려 주었다. 한입거리도 안된다고 홀짝 다 마셔 버리면 주먹 날라오지.

 

 

후드티 남자가 흰 물통을 내려놓고 나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튀어나온 손잡이랑 마개위로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맞춰 앉자 옆에 또 다른 남자가 어디가서 걸상을 하나 가져와 앉으라고 한다. 아침햇살을 받아 등받이가 따뜻했다.

 

후두티 남자가 담배를 하나 준다. 넙죽 받았다. 담배이름은 Business royal

다른 남자에게 담배불을 빌리자니 담배를 대준다. 이 나라는 담배끼리 끝만 대서 불씨를 나눈다. 

 안 붙길래 뺏어서 맞대고 빨아 붙였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눈에 인상을 팍 쓰며...

주변 남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 오호, 저렇게 붙이는 거구나 ~! '  감탄하며...

 

담배를 맛있게 빨고 있는데, 후드티 남자가 차 마실거냐고 묻길래, 응 !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내밀자 1 dinar 한개를 가지고 길 건너가서 플라스틱 컵에 차를 한잔 사왔다,

추웠는데 따뜻해서 좋다고 몸짓으로 감사를 표했다

 

담배 빨고 따뜻한 차 마시고 담배 빨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후드티 남자가 이번엔 고이 접은 종이를 펼쳐 보였다

조그만 호두조각 같은 걸 먹으라고 한다. 좀 큰 걸 하나 집어 입안에서 혀로 돌려 보는데 아무 맛이 없다.

' 잘 모르겠는데 ? ' 표정을 지었더니

 

의자를 갖다준 남자가 옆에서 알려준다

"  씹어 ! "

조금 더 혀로 굴리다가 씹어보니 향긋한 생강향이 나며 껌같이 계속 쫄깃쫄깃하게 덩어리가 남았다. 렌즈뚜껑에 뱉어 놓고 차를 마저 다 마신 다음 또 씹었다

 

한 남자는 벽에 걸린 칠판에 수시로 뭔 숫자를 적고 가던데 아마 택시 배차 시간을 체크하는 것 같았다.

 

한 남자는 테이블위에 2G폰 중고 배터리 두세개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이래뵈도 여기선 최첨단 하이테크 품목이다

나에게 의자를 갖다주고, 씹으라고 알려준 남자는 바닥에 헌옷가지와 모자를 깔아놓고 파는 상인이었다. 

아래사진에 보이는 물건이 다다.

 

모자 얼마씩 해 ? 물어보니 1~2 dinar 한대서 등산모자를 하나 집어 써 보았다.

하필 이건 3 dinar

 

넝마같은걸 뒤적거리다 지푸라기가 붙고 빵구가 난 니트모자를 물어보니 1 dinar (600 원) 이라고 한다,

 

어떠냐 ?

괘안타 !

 

두건은 목에 두르고, 니트모자는 먼지와 지푸라기를 탈탈 털어 머리에 쓰고 횡재했다고 신나게 길을 나선다,

 

서로에게 관심이 많은 아랍여인

 

택시가 서 있는 곳으로 갔더니 마침 후드티 남자가 역시 옷가지를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  나 모자 샀는데 이쁘요 ? " 물어본 후에 Park Roman 가는데 이 택시 타면 되냐고 맨 앞에 빈 택시를 가리켰다.

얼른 나에게 와서 그 택시 말고 뒷차를 타라고 알려주며 택시기사에게 내 목적지를 말해줬다. 뒷차엔 벌써 다른 손님이 앉아 있었고 잠시후 또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고 이내 출발했다. 합승택시였다. 다른 차는 장거리용이어서 잘못 탔으면 비싼 요금 낼 뻔했다.

 

역시 걷긴 좀 먼 거리를 달려 유적지 입구에 도착했다

10 dinar 지폐를 냈더니 운전수가 뒷사람에게 동전을 미리 받아 계산해 보더니 안되겠는지 10 지폐를 도로 주는 것이다. 그냥 내리라고...

미안해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0.3 dinar (180 원) 을 쥐어주고 내렸다. 

어제 택시들은 미터기도 안 켜고 바가지를 씌우더니 오늘은 꽁짜로 태워 주다니. 아까 후드티 남자가 기사에게 말해서 좀 더 신경을 써준거 같아 고마웠다.

 

프랑스어 표기 스베이틀라 (Sbeitla) 현지 발음 ' 수비틀라' 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1세기 후반에 지어진 로마도시다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 말까지 번영하다가 아프리카로 밀려오는 이슬람세력과 맞써 싸운 최후의 도시가 되었다,

그 시절의 도시유적지가 여기 Park Roman 지역이다

 

입구에 매표소는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다.

 

얼른 들어가 왼편 벽뒤로 숨어 일단 상황을 좀 지켜봤다, 

눈앞으로 로마시대 유적지가 듬성듬성 펼쳐져 있다.

 

전혀 관광객 복장이 아닌 아가씨가 유적지를 가로질러 정문 밖으로 나가고

어깨끈가방을 맨 남자가 들개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날보고 다가왔다. 혹시 매표직원인가 ?

나에게 조금 말을 걸더니 가방을 열어 뭔 돌을 꺼낸다, 여기서 발굴한 것이라고 사라고 한다

 

안 산다고 했더니, 가려다 말고 ' 입장권 끊었어 ? ' 라고 묻는다,

처음부터 물었음 속았을텐데, 잡상인인거 뻔히 알아버린 터라 ' No money ! '  한마디로 그냥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 안내판이 붙어 있긴 한데 불어로 써 있어서 무용지물,

한글로 된 가이드북이 있었음 더 깊이 이해했을텐데, 아쉽다

 

 

 

 

이천년전에 이런 정방형의 도시를 계획,설계,시공해 살았다는 거,

고대 로마 도시들이 원형극장과 목욕탕과 신전을 도시기반시설로 갖추고 있었다는 거,

식민지 나라에 이런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해주고 불만을 잠재우며 문화를 동경하게 만들었댜는 거.

왠만한 것에 감탄이나 칭찬이 인색한 나지만 역시 대단하다. 

 

후세에 무자비하게 도로를 내버려 고대유적지가 땡강 짤려 버렸다,


도로 밑에는 새까맣게 산화된 쇠파이프가 곳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상수도관으로 보였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지만 예전엔 건물로 꽉 찼을 들판 너머로 포럼 (Forum)이 우뚝 솟아있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도로. 그 끝에 웅장한 안토니우스 개선문이 서 있다

 

 

멀리서 보면 작고 귀여운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압도적이다

 

 

 

안토니우스 개선문에서 안마당 방향 주피터신전이 보이는 장관을, 옛 튀니지 1 dinar 동전에 새겨 놓았다,


<인용사진>


2세기 중반에 지어진 신전들

왼쪽부터 주피터 신전 , 주노 신전, 미네르바 신전이다. 三神堂 ! ㅋㅋ

   주피터 (Jupiter) 는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를 뜻하고

   주노 (Juno)는 주피터의 아내, 그리스신화의 헤라다

   여신 미네르바 (Minerva) 는 그리스신화속 아테나인데 로마가 건국된 후에는 로마를 수호하는 여신이 되었다,

판테옹처럼 만신전을 짓는 경우는 있어도 세 신을 한 포럼에 각각 모시는 경우는 로마 도시중에서도 드문 경우다.

 

 

 

 


 

 

 

 

이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소변은 급하고...일단 신전 뒤부터 경배해야 했다, 

 

 

주피터 신전에 올라가 안토니우스 개선문을 바라본 모습

 

 

 

코린도식 기둥문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주노신전 

 

 

 

신전 뒤로 나오자 또 시가지가 넓게 깔려 있는데 지금은, 부러진 기둥들만 남아 꼭 공동묘지 비석 같았다,

 

 

 

 

공사인부와, 길을 가로질러 가는 주민들만 가끔 보일뿐 관광객은 전혀 없다

바람 불고 쓸쓸하고...

 

 

 

2000 년전 이 도시를 먹여 살렸을 기름진 올리브동산과 강은, 지금 지력이 다한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주춧돌 위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수천년전의 영화를 상상해 본다,

  

 

 

원형극장까지는 못 가고 돌아 나왔다.

 

정문으로 나오며 불안한 눈으로 매표소를 힐끗 보니 아직 아무도 없다.

몇시간을 돌아도 관광객 하나 안 보이는 이 곳에 월급 줘가며 매표소에 직원을 상주시켜봤자 수지가 안 맞나보다

 

튀니지가 아프리카지만, 이슬람문화지만 이런 고대 로마 유적지도 산재해 있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나같이 고요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길 건너에 박물관으로 건너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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