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타임머신 불시착하다

2015. 1. 21. 18:30Tunisia 2015

 

 

 

 

카이세린에서 수비틀라간 도로는 양옆으로 울창한 가로수가 호위하고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루아지는 한적하고 완만한 커브를 부드럽게 돌아 나가고 내 기분은 소풍이라도 가는 듯 즐거워졌다.

 

 

 

 

 

두 아가씨중 한명이 아쉽게도 중간에 내렸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

 

 

 

언덕을 넘어서자 넓고 비옥한 평야에 자리잡은 수비틀라 (Sbeitla) 시가지가 내려다 보였다.

내리막길을 달리던 루아지가 갓길에 서서히 차를 세우길래 누가 또 중간에 내리나보다 했는데...

 

기사랑 아가씨가 날 보며 ' 호텔에 다 왔다, 내리라 ' 고 하는 거다.

왼편 창밖으로 산기슭에 꽤 비싸 보이는 호텔이 하나 올라 앉아 있었다. ' 시내에 호텔 없냐 ? ' 고 묻자 없다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나만 내렸다  2.1 dinar (1,260 원)

정문을 지키는 경비와 인사를 나눈 후 호텔 입구를 향해 언덕길을 올랐다.

 

대리석으로 두른 넓은 로비에 일단 기가 죽은 후 한쪽에 프런트로 가서 숙박비를 물어 보았다. 아침 포함 82. 아침 저녁 포함은 95 dinar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지, 자기가 영어에 자신이 없는지, 영어 잘하는 직원을 불러 왔다.

좀 깎아 달라니 Fix price 라고 하며 협상의 여지를 초반에 잘라 버렸다. 잠이야 대충 이슬만 피하면 되는건데 5만원씩이나 내고 하룻밤 자는건 부담스러웠다. 영어 잘 하는 직원에게 ' 시내에 싼 호텔 있냐 '고 물어 보았더니 있다며 시내까지 걸어가라고 한다. 택시를 불러 달라-2,3 dinar-고 하고 화장실 쓰고 Wi-Fi 비번 얻어서 로비에 앉아 언능 집에 안부를 남겼는데도 택시가 안 온다. 

 

 

잿빛 하늘에 바람은 불고... 그냥 여기서 잘까 ? 고민중인데 택시가 현관앞에 도착했다.

 

뽕쟁이 같은 기사에게 jeunesse 호텔 이름을 보여주며 가자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왼편으로 로마유적지가 보였다. 그 유적지 끝에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옆으로 차를 대며 호텔이라고 손짓했다. 기본료도 안 나올 거리를 2 dinar (1,200 원) 주고 내렸다,

 

호텔이름을 보니 Jeunesse 가 아니였다. 그래도 유적지가 가까워 위치는 괜찮아 보였다.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명찰을 목에 건 할아버지가 문앞에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무시하고 들어가 호텔 프런트에서 가격을 물어보니 40 dinar. 깎아 달라고 애원을 했는데도 무슨 시즌이라며 절대 안 깎아줬다.

내가 조사해 간 출력물에 Jeunesse 16 dinar 를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보았더니 길따라 쭈욱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고 순순히 알려 주었다. 호텔문을 나서는데 명찰 할아버지가 또 뭐라고 말을 걸었다. 택시비나 호텔비에 성질이 난 터라 " 비싸대 " 퉁명스럽게 한국말을 던져주고 얼른 피했다

 

알려준 시내 방향으로 걸어가며 밥이나 먹자고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매운 스프같은 ' 케모니아 ' 사진을 보여주니 그건 없다고 레스토랑에 가라고 한다. 이야기 좀 나누다 Jeunesse 호텔 물어보니 택시를 타라고 한다. 나와서 택시를 잡아도 없다. 여기는 택시가 손님을 찾아 돌아 다니는게 아니고 손님이 택시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거나 Call 하는 시스템인가 보다.

내가 길에서 계속 서 있자 친절한 식당 청년이 나와 보더니 다른 친구에게 택시를 부르라고 시킨다.

택시비 물어보니 2, 3 dinar.  따따윈에 바가지 택시가 생각났다.

범죄형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후 택시가 맞은편 길에서 나타났다. 손님을 내려주고 U턴해서 내 앞에 서길래 앞자리에 앉았는데 이 범죄형 남자가 넙죽 뒷자리에 올라타는 것이다. 기분이 나빴다.

별 문제없이 Jeunesse 호텔에 도착했다. 범죄형 남자가 뒷자리에서 3 dinar 를 주라고 하는걸 무시하고 돈 없다 하며 2 dinar (1,200 원)만 주고 얼른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입구엔 모텔이라고 써 있다.

 

가격은 싱글 16 dinar (9.600 원) . 내가 조사해간 자료엔 2박에 24 줬다는 이야기도 있어 더 깎을려다가 말았다. 아침식사 불포함. 만약 먹으려면 4, 저녁 식사는 12를 더 내라고 한다. 그 돈이면 밖에서 사 먹는게 더 낫지. 그나마 Wi-Fi 는 무료라고 한다.

방에 와 보니 세면대만 하나 있고 화장실과 욕실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 공용이었다. 싼 이유가 다 있구나

 

 

 

방에서 떨며 현주에게 카톡을 보내도 연락이 없어 보이스톡을 해보니 곧바로 현주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신기해 !

은재랑 짱이 목소리까지 들으니 기운이 난다, 17분 이상을 통화했다.

옛날엔 국제전화 한번 하는 것도 참 어렵고 비쌌는데 지금은 이렇게 무료로 간단히 할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다,

 

 

한국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여긴 오후 4시. 아쉽게 전화를 끊고 늦은 오후에 시내구경을 하러 나왔다.

방문을 못 잠궈 고생하다 아저씨에게 부탁. 아저씨도 간신히 잠궜다.

 

모텔 앞에 서서 보니 완전 한국 70년대 풍경이다.

   촌스런 화단 공원

   말이 묶인 구루마가 세워져 있고

   먼지 풀풀나는 신작로에 큰 차가 지나가자 입 막고 걷는 아녀자들

   차양에 먼지 뽀얗게 앉은 노점상

   입에 피를 흘린채 화단에 죽어있는 고양이 등...

내가 타고 온 타임머신이 불시착했다,

 

 

 

 

괜찮은 식당은 시내로 나가라고 주인 아저씨가 알려줘 썰렁한 거리를 따라 내려간다.

 

 

동네 건달 둘이 날 부른다.

튀어야 벼룩보다도 더 못한 달팽이라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으로 갔다.

사진을 찍어달란다. 나무 아래로 모시고 와 사진 박아주고, 또 길을 떠난다.

 

오거리 시장으로 나오자 매연과 담배연기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날 외계인 보듯 경계하는 사람들

 

 

 

 

레스토랑이란 글자를 보고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식당 안에서 한 남자가 포크로 스파게티를 찍어 먹고 있다

식당주인에게 케모니아 사진 보여주며 되냐니 No, 오믈렛도 No... 그러면서 남자가 먹고 있는 스파게티를 가리킨다.

남자가 ' 꽤 괜찮다 ' 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주문 가능한 음식.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잠시후 빵과 셀러드와 함께 스파게티가 써빙되었다. 비쥬얼 대비 먹을 만 했다,

다른 손님이 오면 나도 아까 남자 같은 표정을 지어 줄 수 있을 거 같다,

 

큰 생수 한병을 식탁위에 올려 놓고 가더니 이번엔 닭날개쭉지를 갖다 주었다, 꽁짠가 ?

 

그것도 깨끗하게 발라먹고 냉장고에 가서 푸른색 사이다를 고르려 하자 아래 칸에 맥콜같은 걸 손짓하며 꺼냈다

그게 더 맛있다고 추천하는 것인가 보다. 내가 모르니까 자기가 알아서 생수 가져오고 맛있는 음료수 추천하고 ...

 

다 먹고 문위에 걸린 TV 를 멍하니 바라봤다, 튀니스와 보스니아의 핸드볼 경기.

 

따뜻한 차나 마시자고 나오며 계산하니 10 dinar (6,000 원)

이게 싼건가 ?  한국에서 동네 짜장면에 공기밥 비벼 먹는 것보다 더 비싸네 !

아까 식당주인과 지금 돈 받는 남자가 동일인인듯, 아닌듯 해서 돈 주면서도 찜찜해 불어보니... 형제라고 해서 함게 웃었다,

 

지저분하고 건조한 거리.

카페 앞에서 기웃거리다 담배연기 때문에 포기하고 더 걸어 내려왔다,

 

6시가 되자 시장상인들이 철시준비를 하고 있다,

아까는 과일 장사가 많았었는데 이젠 두어 곳만 장사를 하고 있다. 좀 괜찮아 보이는 노점에서 과일을 골랐다,

귤 같은 것도 있는데 맛 검증을 못해봐서 그냥 주먹만하게 잘 생긴 오렌지 두개를 집어 들었다 1.1 dinar (660 원)

아저씨가 과일을 담아 주며 ' 여행객이냐, 여기 사냐 ? ' 고 물으며 엄청 반가워했다,  페인트 묻은 츄리닝 입고 검은 비닐봉투 달랑 들고 시장 돌아다니면 여행객으로 보이진 않겠구나 싶다

 

조금 더 내려오다 구멍가게 앞에서 반가운 걸 발견했다.

가베스 하이파네 집에서 줏어먹던 군것질 거리를 팔고 있었다. 두 종류를 반반씩 달라고 했다.

 

산적처럼 생긴 애가 날 보더니 아주 신이 났다,

일본 ? 하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북,남 물으며 계속 싱글벙글이다.  1 dinar (600 원)

 

두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 아줌마가 인도위에 쓰레기를 비질하느라 내 앞 길을 방해한 상황이 되었다, 다른 아줌마가 얼른 그 아줌마를 불러 길을 터 주었다.

 

달콤한 과자를 파는 가게를 돌아 숙소쪽으로 향했다

 

철도길 주변은 더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넓은 공터안에 창고 같은 건물 옆엔 히잡을 두른 아줌마들이 집시들처럼 철푸데기 모여 앉아 있었고, 풀숲에는 염소들이 매어 있었다.

철길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등에 노란 노을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남자애 둘이 건너편 길에서 날 부르며 지나간다. 내가 인사해 줬더니 나에게 다가 와서 싱글벙글이다.

몇마디 나누다가

 

손에 쥐고 있는게 뭐냐고 보자하니... 누전되서 불탄 콘센트 였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는데 제과점앞에 동네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아이폰 출시를 기다리는 얼리어답터 마냥 바게트를 몇 덩어리씩 갖고 나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튀니지인에게 바게트는 이제 쌀밥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힐끗거리는 데도, 나도 먹고 살겠다고 계속 빵집앞을 서성거렸다

그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  바게트 사려고 ? "

"  난 바게트 사려는게 아니라 sweet 사려고 ... "

"  들어가서 사 "

"  옆 호텔에 묵고 있어서 천천히 사도 돼 "

했는데도 사람들을 밀쳐내고 날 진열장 앞까지 모셔갔다,

 

근데... 너무 달아 보여 별로 내키지가 않는거다.

옆에서 여자애들은 자꾸 처다보고 빵집 아가씨도 주문 받으려고 서 있고... 어쩔 수없이 케익 두개를 골랐다,  3.6 dinar (2,160 원)

내가 ' 까데쉬 ? ' (아랍어로 -얼마예요 ? ) 했더니, 내 등뒤에 누군가가 아랍말을 더 해보라고 했다

"  함둘레 ~ 아이쉭 ~ (배불러요, 고마워요) "

주변 사람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빵집을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산 거를 펼쳐 놓고 하나씩 집어 먹어 보았다.

 

방이 춥다, 썰렁하다. 밖에 샤워실 갈 엄두도 안 난다. 그러다 머리를 썼다

방 세면대에 뜨거운 물을 졸졸 흐르게 했다. 라지에타처럼 ... 진짜 좀 훈훈해지는거 같더니 잠시후엔 찬물만 나와 그것도 실패했다

 

...

어영부영 또 10시 42분.  자자

 

 

 

 

오늘 지출 :   토쥬르 택시           0.7

                  루아지 : 메틀라위   3.65

                  참치샌드위치         2.7

                  루아지 : 갚사         2.7

                  요구르트               1

                  화장실                  0.2

                  루아지 : 카이세린   7

                  생수,쥬스              3.25

                  루아지 : 수비틀라   2.1

                  택시 1                   2

                  택시 2                   2

                  숙박                    16

                  스파게티              10

                  오렌지                   1.1

                  과자                      1

                  케익                      3.6                      합 59 dinar  (35,400 원)

 

 

'Tunisia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39> 마초라이프는 안빈낙도  (0) 2015.01.22
38> 주피터, 주노, 미네르바  (0) 2015.01.22
36> 버림받은 도시들  (0) 2015.01.21
35> 사라진 붉은 도마뱀  (0) 2015.01.21
34>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미로게임  (0) 2015.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