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2. 17:00ㆍTunisia 2015
수비틀라 박물관은 별 장식없이 아이보리색의 수더분한 단층건물이어서 위압,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빠른 차들을 더 빠른 속도로 피하며 길을 건너 정겨운 앞마당을 지나 MUSEE 라고 써 있는 현관문에 다가섰다.
문이 닫혀 있어서 점심시간인가 ? 생각했는데 문고리에 칭칭 감긴 쇠사슬을 보니 ...불길하다.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건물 왼편 담옆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박물관 직원같아 보여서
" 문 안 열어요 ? " 물어보자 마당으로 나오며 ' 이탈리아말 할 줄 알아 ? ' 듯한 뜻 모를 말을 했다,
내가 영어로 재차 묻자, 내일도, 모레도 안 열고 단체가 왔을때만 연다고 한다.
내가 실망한 표정을 짓자 이 남자가 ' 이리로 잠깐만 오라 ' 며 아까 있던 장소로 되돌아간다. 혹시나 뒷문이라도 살짝 열어주나 싶어 겁없이 따라 갔더니 의자를 내주며 앉으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펼친다. 1원 짜리만한 동전 두개와 조금 큰 동전 하나를 나 보라고 건네 주는데 옛날 주화라는게 거짓발 하나 안 보태고 내 주머니속 동전보다 더 선명했다
내가 " It's not original ! " 하니 이 남자 뭘 안다는 듯 " Yes, yes ! Original ! " 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한국말로 " 이기~이, 장사꾼이네 ! " 했더니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신나서 " Yes ! Yes ! " 맞장구를 쳤다.
내가 엄청 웃었더니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그도 따라 웃었다. 내가 주화에 환장해서 웃는 줄 알고, 한술 더 떠 카드도 받는다고 한다. 카드 없다고 하니 나에게 돈 많지 않냐고 묻는다. ' 루아지 타고 다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뭔 돈이 있겠냐 ' 고 하자 포기하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아까 산 니트모자가 마빡에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두 손가락으로 연신 이마를 벅벅 긁으며, 내가 ' 당신이 더 부자네 ' 라고 했더니 자기 지갑을 열어 뭘 꺼내 보이는데... Muhammed Haji 란 이름이 써 있는 스베이틀라 투어가이드증이었다. Haji 가 " 가이드 필요해 ? " 하길래 " 가이드 필요없어 " 했더니 계면쩍게 웃으며 집어 넣었다
애가 다섯명이고 61세라고 한다.
그가 두르고 있는 베르베르식 망토를 내가 만지자 자동으로 가격이 튀어 나왔다, 2 dinar !
내가 체머리를 흔들자 옷에 주머니도 있고 모자도 있다며 PR을 한다. 아직도 나에게 뭘 팔아 볼 수 있겠단 미련이 남아 있나보다 미련한 Haji.
그와 헤어져 길을 건너 오다 뒤돌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벽 뒤 의자에 숨어 다음 호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성한 길을 막아 놓은 곳도 지나고
디오클레티아누스 개선문 (Arc de diocletien) 까지 걸어왔다.
옛날에는 이 문을 무사히 통과해야 스베이틀라의 고대도시 수페툴라 (Sufetula)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큰 삼거리를 건너, 시내 들어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었다.
그런데 바람은 불고 차는 안 잡히고... 한동안 서서 고생하다 간신히 합승택시를 잡았다. 뒷문을 여니 길쪽 문으로 타라고 해서 그것도 감지덕지,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낑겨 탔다,
Souk 근처에 한 사람이 내리길래 나도 그냥 따라 내렸다. 0.6 dinar (360 원)
숙소로 들어오다 조그만 구멍가게에 들렸다. 히잡을 두른 아가씨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다. 큰 팩 쥬스 2 dinar (1,200 원)하나 사갖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랫사진처럼 수비틀라 인도는 다 제각각이다.
방에 와 현주랑 보이스톡을 하는데 안마당에서 계속 공사하는 소리, 청소아줌마는 왔다갔다 하고, 먼지 들어오고 ... 방문 닫고 와서 계속 보이스톡하다가 3시쯤에 현주 자라고 보내주었다.
방에 혼자 있으려니 춥고, 따분하고, 별 할일도 없고, 저녁도 먹어야 되서 대책없이 4시쯤에 다시 방을 나왔다.
모텔 문 안쪽에 서서 수비틀라의 늦은 오후를 내다본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찬 겨울바람, 사람들은 꽁꽁 싸매고 다니고... 맘은 나가기 싫은데 몸은 무의식적으로 문을 밀치고 있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녹슨 철문
사람들이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치고는 높은 철탑도 있고, 모하는 곳인지 ...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마을. 오늘은 6시도 안 됐는데 문 닫은 상점들이 많이 보였다.
자동적으로 발걸음이 아침에 샤와르마 먹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거의 다다를 무렵 맞은편에서 신성우랑 똑같이 생긴 남자가 날 보더니 갑자기 반갑게 웃으며 다가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내 모자를 쿡 눌려 주었다.
바로 아래 사진의 흰 모자 쓴 남자.
쌀쌀한 오후가 되자 아침보다 손님이 더 몰렸다. 샤와르마 하나 말아 달라고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몸과 맘이 다 춥고 외롭다.
신성우같은 남자가 이쪽으로 다시 오길래 불러 앉혔다. 이야기를 좀 나눠 보았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거의 안되니까 조금 있다 그가 아쉽게 일어났다. 한참 걸려도 음식이 안 나와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샤와르마가 다른 사람들 손을 거쳐 전달되고 있었다. 역시 맛있다
샤와르마 가게 전경.
진열장 앞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흰 모자를 쓰고 입에 손을 대고 나오는 남자가 신성우 닮은 그 남자.
뭔 일을 하는지, 내가 잠깐 있는 동안에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댕겼다.
얼마냐고 물으니 2 dinar (1,200 원). 내용물을 골라도, 기본으로 맡겨도 가격은 동일하다.
다 먹고 추워서 인사도 못하고 그냥 나왔다.
지금은 배가 부르지만 오늘 긴긴밤 분명히 또 출출할테니 과일을 살까, 과자를 살까, 후리까세를 살까 ? 고민하다가 시간도 떼울 겸 카페를 찾아갔다,
Cafe Tunis.
야외 테이블이 딱 하나 놓여 있고 문안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
그래서 기대하고 들어 갔는데 문열고 안으로 발을 들여 놓은 순간 생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바로 정면엔 주방 Bar, 오른편으로 탁 트인 넒은 공간을 3개층 (반지하와 1층, 반지상)으로 나눠 모두 남자들아 꽉꽉 들어 차 있었다,
빈 자리가 없어 2층으로 올라가며 커피 한잔 1 dinar (600 원)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맨 구석 테이블로 갔는데 앉을 의자가 없자 서빙맨이 밖에 의자를 2층까지 갖다 주고 테이블도 닦아 주었다.
1층에선 여기저기서 포커, 마작판이 벌어졌다.
탁자위에 생담배를 태우며 패를 돌리는 남자, 게임을 보며 뭘 계속 기록하는 남자, 승부를 놓고 가볍게 말다툼하는 사람들. 다 끝난 마작을 정리하는 남자,
2층도 비숫했다. 포커판과 물담배 시샤를 피는 남자.
자세히 보니 물담배를 갖다줄 때 낱개 포장된 파이프와 부채 붙이라고 빳빳한 종이도 함께 갖다 주었다.
TV에서 축구중계가 시작됐다.
튀니지랑 아프리카 어느 흑인 나라의 경기였고 등에 CAF (아프리카 축구연맹) 글자를 큼지막하게 붙인 사람들도 보였다.
맨 구석에 앉은 나에게 한 남자가 자기 옆으로 와서 TV 보라고 하길래 상대팀 나라를 물어봤더니 뭐라 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 2층까지 빈틈없이 앉았다,
골이 안 들어가고, 반칙이 있고, 상대방 골이 들어가고 할때마다 카페 마초들의 아쉬움과 분노와 탄식이 격정적으로 터져 나왔다.
남들 하는 스포츠 관람엔 별 취미가 없는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모두 축구관람에 빠져 차를 주문하는 사람이 없자 바리스타도 서빙맨도 팔짱끼고 TV만 바라보았다. 필터담배를 팔러 들어온 남자도 장사할 생각은 안 하고 넋놓고 축구경기만 올려다 보고 있다.
' 나도 여기 살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겠구나 ...' 싶은게 마초들의 이런 Life style 이 약간 부럽기까지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카페 분위기가 약간 어수선한 사이에 밖으로 나왔다, 담배 연기에 온 몸이 훈증된 상태다
거리는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한산한데 여기저기 동네 카페들은 남자들로 북적이고 골목까지 물담배 냄새가 풍겨 나왔다
튀니지에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가 자욱한 담배연기에 잠겨 있다
숙소로 오다가 내처 더 걸어 빵집으로 향했다,
' 오늘 축구 경기가 있으니 빵집은 한가하겠지 ? ' 했는데,
" 어멈 ! " 여긴 오늘도 대박이다.
사람들이 좀 빠질 때까지 빵집 안 창문에 걸터 앉아 있다가 간신히 미니피자 0.7 dinar (420 원) 와 피자 tranche (텅쉐- 절단된) 1.5 dinar (900 원) 하나씩 사서 나왔다.
숙소랑 빵집 중간엔 오븐치킨을 파는 집도 있었다.
냄새는 죽여주는데 추운 방에서 혼자 통닭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몬도가네 같아 보여 깨끗히 단념했다.
방에 와, 오늘은 샤워좀 하려고 채비해서 옆 샤워실로 갔다. 황송하게도 뜨거운 물이 꽐꽐 나와 오래간만에 개운하게 씻고 나왔다,
여기저기서 함성과 휘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한꼴 넣었군, 넣었어 !
카페나 빵집이나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건 LG LCD TV
누가 축구를 이기건, 카페에 마초들이 다 차건, 어느 빵집이 동네를 독점 하건 진정한 승자는 LG 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화는 이미 이 구석 마을까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는데 수비틀라 마초들은 언제까지 안빈낙도, 안분지족의 정신세계만 추구하며 살 수 있을까 .,,
오늘 지출 : 숙박 16
아침밥 2.7
차 1.0
모자 1.0
택시 0.3
오는택시 0.6
쥬스 2
샤와르마 2
커피 1.0
빵 2.2 합 28.8 (17,28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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