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6. 20:00ㆍTunisia 2015
택시가 카페 앞에 섰다. 내가 앞에 탔고 또 당연히 차비를 내려고 했다.
미터기에 2.** 이 나왔길래 돈을 기사에게 내밀었는데 안 받는다, 왜 안 받지 ? 뒷자리에서 내미는 돈은 받았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이라 상대하기 싫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카페는 지금까지 튀니지에 와서 본 것과 완전 달랐다. 푹신한 소파와 사이버틱한 인테리어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중앙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 내가 택시비를 냈는데 기사가 안 받더라 ' 는 얘기를 했더니 ' 에이썸이 기사아저씨에게 돈 받지 말라고 미리 말해놨다 ' 고 한다. 그제서야 오해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오누이 형제 우애가 참 좋다
이 카페가 자랑스러운지 나에게 어떠냐고 물어보길래... ' 좋네 ! ' 라곤 해줬지만 한국으로 따지면 유행이 지난 칙칙한 커피숍 정도.
그래도 가베스에선 젤 hot 한 곳이라 손님들이 꽤 많았다
내가 여기 온 첫번째 목적은 집에 안부를 전하는건데, 기대하던 Wi-Fi 가 잘 안된다
한참을 이리저리 해보고 웨이터에게 물어봐도 원론적인 대답만 하고, 낙담하다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약하게 잡혔다.
얼른 ' 나 무사하다 '고 카톡부터 보냈다.
잠시 후 하셈이 왔다.
에이썸과 죽이 잘 맞아 바퀴벌레를 먹는다는 둥 장난을 치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재스쳐도 재밌고 나도 대화에 동참하게끔 스맛폰으로 검색해 가며 모르는 단어를 알려 주었다.
에이쌈이 23세고 하셈이 27세 훨씬 형이지만 이 나라는 형이나 동생이나 언니나 다 동네 친구일 뿐이다,
또 한참 담배 이야기로 넘어가서 나도 세개피나 얻어 피웠다,
평소엔 전혀 안 피지만 오늘같은 날은 킥연의 즐거움만 향유했다,
하이파의 피앙세 ' 무하마드 ' 가 일 마치고 합류했다,
하이파가 내년에 결혼하는데 나에게 꼭 참석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기에 상대가 누군지 궁금했었다.
어제 침 맞은 에이썸의 친구도 무하매드, 오늘 피앙세도 무하마드. 이름이 같다. 잘 생기고 듬직한 무하마드가 지병이 있는 하이파와 결혼하려는 맘이 참 대견했다.
하셈 - 이븐 할둔
에이썸 - 하비브 브르기바
무하마드 - 카다피
내가 각자에게 닉네임을 붙여줬더니 재밌다고 야단이다. 두 자매는 추천을 받아 각각 ' 에이미' ' 샤샤' 로 정했다.
신나게 수다떨고 박장대소하는데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어제, 오늘 첨 본 이들과 4시간 이상을 함께 떠들며 놀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서로 기념으로 남기자고 각자 폰으로 찍고 그것 갖고도 또 웃고...
9시가 거의 다 되어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니 우리도 이제 일어나자고, 함께 못 온 엄마에겐 테이크아웃을 해 가자고 말했다.
웨이터가 take-out 개념을 이해 못해서 에이썸과 하셈이 한참 설명했다. 그것까지 합해 차값 18.2 dinar (10,920 원)은 당연 내가 냈다
나에겐 작은 돈이지만 커피나 민트차 한잔이 0.5 dinar 인 여기 물가론 비싼 가격이었다
카페 앞에서 작전을 짰다. 각자 출발해 하이파네 집에서 다시 뭉치기로...
하셈과 무하마드는 가져온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나머지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난 당연히 하셈 오토바이 뒷자리에 얼른 올라탔다.
부쩍 친해진 하셈 허리를 잡고 둘이 가베스의 밤거리를 달린다,
늦은 시간, 혼자는 절대 나돌아 다니지 못할 곳을 현지 청년 오토바이에 타고 싸돌아 다니고 있다
무하마드가 이내 우리 오토바이를 찾아 쫓아왔고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가베스를 벗어났다
내 길눈이 밝아 하이파네 가는 길을 알고 있는데 둘이 약속이나 한듯 갑자기 어두컴컴한 야자나무 숲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겁이 덜컥 났다.
안지 하루도 안되는 두 사람을 난 뭘 믿고 여기까지 온 건가 ? 여기 야자나무 숲 어딘가가 내 묘자리 ?
길은 울퉁불퉁 했고 커브가 많아 불쑥 마주치는 차가 위협적으로 스쳐갔다. 가로등이 없어서 전조등이 들어오는 우리가 앞장섰고 해드라이트가 나간 무하마드 오토바이는 뒤에 붙어 따라왔다.
그런데 잘 따라오던 무하마드가 안 보인다. 길 옆에 서서 기다렸다
잠시후 어둠속에서 무하마드가 오토바이를 밀며 나타났다, 벨트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세명의 남자가 곤경에 빠졌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지만 이밤에 이런 곳에서 오토바이가 복원될 확률은 미적분 제로에 수렴하고 있었다
무하마드가 무동력 오토바이에 올라탄 채 하셈의 어깨를 잡고 질질 끌러왔다, 갸날픈 하셈의 허리와 어깨가 사정없이 비틀어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밤하늘은 신비로웠고 야자나무 숲 밤공기는 시원했다
" 야호 ~ "
갑자기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자 하셈도 이 상황이 재밌는지 같이 소리를 질렀다. 무하마드는 할아버지처럼 빙긋이 웃기만 했다,
자전거만도 못한 속도로 셋이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해 드디어 세니니 동네 어귀에 들어섰다.
마을로 들어가는 노란 택시가 우리를 앞서가며 빵빵 크락숀을 눌렀다. 에이썸 형제들이 탄 차인가 보다
우리가 동네 뒤로 해서 집앞에 도착했는데 에이썸 형제자매가 안 보였다. 아직 도착을 안했나 ? 어찌 된건지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골목입구에서 하이파 자매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빵빵거린 택시는 다른 차였고 이 팀은 테이크아웃해서 가져오느라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허걱 !
Take-out 해 온 잔이... 유리컵에 호일로 씌워져 있었다, 1회용 종이컵에 플라스틱 캡이 아니었다,
내가 뭐도 모르고 무리한 주문을 한거란걸 그제야 알았다
잠시후 아빠 아부드마지드가 퇴근하셨고 엄마 퓌다가 우리 먹으라고 늦은 저녁을 차려 오셨다
동네 백수건달 넷이 샥슈카 (Chakchouka)에 달라붙어 바게트빵을 찍어 먹는다, 샥슈카는 이 나라 음식 오짜 (Ojja) 랑 비숫한 프랑스음식이라고 하는데 안에 닭고기가 들어 있어 체면 불구하고 연신 건져 먹었다,
' 떼이-아함미드 ' 라는 차로 입가심.
에이썸 오늘도 하루 더 침 맞고
하이파가 자기 남친 작년에 손목이 골절돼 한달 기브스 했다고 봐 달라고 해서 무하마드도 치료해 줬다
아빠도 손목 아프대서 내가 장난 좀 치고,,, 잘 안 움직이는 한쪽 안구는 얼른 치료 받으라고 설명해주는데 잘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치료 안받고 방치하면 이렇게 된다고 사팔뜨기 흉내를 냈더니 다 뒤집어졌다,
식구들이 내일도 가지말고 더 있으라고 성화다,
에이썸은 내일 일요일에 가베스 시내 souk에 큰 장이 서니까 그거 보러 가자고 꼬시고, 아빠는 따따윈엔 모래바람만 부니까 볼거 없다고 협박하고, 하이파는 날 보고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고 전번 달라고 하고 내년에 꼭 다시 오라고 애원했다
더 있음 더 가기 힘들거고 아쉽고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침과 알콜솜이 다 떨어졌다
담배문화가 관대한 나라라 어른이나 아들이나 담배를 펴대서 거실이 매쾌하다.
하이파는 연신 마른 기침을 해대고 나는 간접흡연으로 혈액내 니코틴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내가 두바이를 거쳐 왔다니까 하셈이 지구본을 가져와 식구들에게 두바이와 한국과 튀니지 위치를 보여준다,
혈기왕성한 이 백수들에게 두바이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꿈의 신세계라고 한다
아부드마지드와 에이썸이 방을 나가자, 하이파가 " 써프라이즈 ~ " 있을거라고 귀뜸해줬다
잠시후 북을 들고 나타난 에이썸
백파이프를 가져와 멋지게 연주를 하시는 아빠,
엄마도 하셈도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황송하게도, 나 한사람을 위한 가족 합주단이 결성되었다,
훤칠한 키에 재치있고 입담좋고 악기도 잘 다루는 멋쟁이 아빠 아부드마지드
목소리는 크고 터프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베스트 요리사, 베스트 춤꾼 엄마 퓌다
동생을 잘 돌보는 에이썸,
천사 하이파,
아가씨 되면 모델 할 정도로 이뻐질 리하브... 잊지 못할 가족들
수시로 와서 놀고 밥 얻어먹고 담배피는 편한 동네친구들
집에 오는 손님을 신처럼 대접하는 이슬람 문화 ... 진짜 인간답게 사는구나 !
하셈과 에이썸이 나에게 북치는 것과 튀니스 전통 리듬을 알려주고...
하셈과 에이썸이 몸싸움 장난하길래 내가 위로 덮치며 장난치고...
12시가 넘었는데도 이웃주민들 안면방해 같은건 아랑곳 없이 마지막 밤을 즐겼다
지금 1시 25분
거실에 나 혼자다.
하셈은 포옹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며 돌아갔고, 가족들은 다 옆방으로 가서 잠 안자고 계속 수다중이다,
아직 여정의 1/3도 안 지났지만 지금껏 쌓인 추억과 재미가 내 용량을 초과했다,
튀니지, 참 매력있는 나라다
오늘 지출 : 차값 18,2 dinar (10,92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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